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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숲을보다
작품등록일 :
2024.05.08 12:45
최근연재일 :
2024.06.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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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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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만의 참패!

DUMMY

이와미산다에 상륙한 아군은 도쿄로 가지 않고 375번 국도를 따라 진격하여 혼슈의 허리를 끊었다. 규슈에서 진격하는 미군과 싸우는 일본자위대 주력을 포위 섬멸하는 작전이었다. 전략적 요충지인 미요시시에서 자위대의 엄청난 저항이 있었지만 조상들의 한을 가슴에 새긴 아군의 진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군의 신속한 움직임으로 주력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 일본자위대는 급하게 시코쿠 방면으로 퇴각하여 본토 깊숙이 물러났다.

적의 주력을 완전히 궤멸하지는 못했지만 큰 성과를 거둔 아군과 미군은 동서로 나뉘어 도쿄로 진격했다.

우리는 일본에게 맺힌 것이 많았지만,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성노예로 삼지는 않았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런 짓을 하면 “일본군국주의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철저히 자위대와 민간인을 구분해서 싸웠으며, 민간인을 방패로 시가전을 벌이면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도 민간인을 구출했다. 물론 일본인들 전부가 고마움을 아는 것이 아니었고, 뒤통수를 치는 인간들도 많았지만 ‘성인’에 버금가는 인내심으로 그들을 보호했다.

결과 일본과 전쟁을 치른지 4개월이 채 안 되어 일본의 민심은 우리에게 많이 기울었다. 과거 자신들이 한 짓이 있기에 극도로 우리를 두려워했지만,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

우리 연대는 타 연대와 숫자는 비슷했지만, 질적으로는 많이 부족했다. 2/3가 신병들이었기에 첫 전투에서 연대의 대부분을 잃지 않기 위해 급하게 부대정비를 해야만 했다. 고참들과 신참들을 적절히 섞고, 갓 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들 밑에는 유능한 부사관들을 배치하여 그들을 돕도록 했다.

고참들과 신참들 간의 유대와 신뢰를 쌓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지만, 누구도 우리의 사정 따위에는 관심 없었고, 나는 불안에 떠는 부대를 이끌고 격전지로 가야 했다. 우리가 집결지인 신참역(驛)에 도착한 것은 10월 13일이었다.

신참역(驛)은 회령시와 청진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철로의 분기점이었기에 이곳을 빼앗기면 허리가 끊기게 되어 함북도를 내주는 것은 물론, 청진, 라진항을 잃게 되어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접 갈 수 있는 보급로가 열렸다. 반드시 막아야 했다. (억측일 수도 있지만··· 러시아는 우리가 함북도를 빼앗기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보급로를 이어주며 중간에서 챙기는 수수료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신참역에 도착하여 직접 눈으로 적의 방어진지를 본 나는 ‘ㅈ됐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사방이 벌거숭이 산이었고, 그 산에는 개미굴 같은, 아군의 포격과 폭격을 피하기 위해 산에 파둔 갱도와 벙커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번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수비였다.

일일이 하나씩 점령하면서 진격하면 늙어 죽어도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다. 너무나 견고했다.

나는 참호에 틀어박혀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물론 사단의 한 전략한다는 전략가들도 생각해내지 못한 것을 내가 몇일 만에 생각해낼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생각해야 했다. 살아남아야 했고, 살려서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6일 후, 나는 사단지휘부를 찾아가 새작전을 제안했다. 나의 작전은 거부기가 등껍질 속에서 나오게 하자는 것이었다. 허나 사단장은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었기에 계속 지키고 있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었다. 허나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소모전을 하게 될 것이고, 중국에 비해 인적자원이 적은 우리는 버틸수록 손해였기에 강행해야 했다. 모험이 없으면 승리도, 명예도 없는 법이었다.

나는 구체적인 작전을 말한다음, 21일 저녁 우리 연대가 지키고 있는 서북쪽고지에서 철수할 것이라 말하고 사단지휘부를 나섰다. 서북쪽 고지를 내주면 신참역과 도로를 지키고 있는 부대도 철수해야 하고, 결국에는 사단 전체가 철수해야 했다.

사단장은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온전히 내가 지게 될 것이라 협박했지만, 나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실 신참역을 내어주면 사단장이 그 책임을 지게 될 수밖에 없기에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고, 우리 연대가 철수한다면 사단장은 어느 정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의 명령불복이 주 원인이니까···

21일 저녁, 나는 늘 하던 대로 적의 1,2차 공격을 막은 다음, 사단지휘부에 철수한다는 것을 알리고 고지에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재빠르게 철수했다.

사단장은 끝까지 막으려 했지만, 이미 철수는 진행중이었다. 나는 차량과 전차는 모두 도로를 따라 후퇴시켰고, 보병들은 뒤편 골짜기를 따라 5km정도 떨어진 숲속으로 도보이동을 시켰다.

나는 철수하면서 제발 사단장이 내 작전을 따라 주기를 바랬다. 사단장이 내 의견을 무시하고 그대로 철수만? 한다면, 나는 정말로 역적이 되는 것은 물론, 연대의 2100명을 죽음의 구덩이에 밀어 넣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 연대는 밤새 달리고, 다음날 아침에도 달렸다. 35km의 산길을 우회하여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서풍산역 서쪽 고지였다. 예상대로 적군은 무산읍에 있던 보급기지를 신참역으로 옮기고 있었고, 차량행렬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세계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사거리 3.5km인 60mm 국산 박격포로 선두차량과 마지막 차량을 공격하게 하여 길을 먼저 막은 다음 집중 포격을 하라고 명령했다. 솜씨 좋은 사수들은 나의 명령을 훌륭히 이행했고, 무자비하게 적을 죽였다. 공격을 받은 적의 보급부대는 포격을 피해 차량을 버려두고 반대편 고지로 기어올랐다.

허나 적은 얼마 오르지 못하고 다시 쫓겨 내려와야 했다. 아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단장이 내 작전을 따라 준 것이었다. 승기를 잡은 나는 고지에 박격포중대만 남기고, 2개 대대는 남쪽으로 내려가 적이 버려둔 갱도와 벙커를 점령하도록 했다. 그리고 직접 1개 대대를 이끌고 도로로 뛰어내려갔다. 포격에 살아남은 적을 소멸하는 것도 있지만, 보급품을 노획해야 했다. 우리 연대는 3일 분 식량과 탄약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사단장은 2개 연대는 회령방면으로 가는 길목인 ‘차유령’에서 적을 막게 했고, 청진항쪽 루트는 신참역에서 동남쪽으로 약 5.3km정도 떨어진 마을에서 독립대대가 막게 했다. 그리고, 1개 연대는 나의 반대편에 보낸 것이었다. 적들은 보급로가 끊겼다는 것을 알면 국경을 마주한 회령방면이나, 서풍산역을 뚫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단장의 예상대로 적은 차유령과 서풍산역에서 엄청난 공격을 해왔다. 차유령을 지키는 2개 연대는 지리적 이점은 물론, 보급로가 열려 있기에 버티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서풍산역 동, 서쪽 고지에 있는 우리였다. 우리는 가지고 있던 3일분의 보급품과 적에게서 노획한 것이 전부였다. 누가 먼저 보급품이 떨어지느냐? 의 싸움이었다. 허나 나는 보급품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자고로 적은 활로는 열어주고 공격하라고 했고, 활로가 없는 적은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적이 파놓은 갱도와 벙커를 이용해 싸웠지만, 좌우, 앞뒤에서 우리를 재우지도 않고 공격해오는 집요하고, 악착같은 공격에 빠르게 지쳐갔다. 탄약도 예상보다 더 빠르게 소모되었다.

나는 정말로 두려웠다. 나 때문에 수천명의 병사들이 죽게 될 수도 있다는 압박감은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졌고,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

나는 매일 매시 살기 위해서는 도망치라는 나의 본능과 싸웠고, 이런 나를 버티게 해준 사람은 이주성과 심연영(연영은 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군의관에 지원했고, 배치는 우리 대대를 희망했다.)이었다. 연영은 사단지휘부를 따라 후퇴하라는 내 명령을 거부하고 전선에 남았고, 연영 덕분에 목숨을 건진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이들이 없었으면, 첫 날에 무너졌을 것이다.

···.

적의 보급로를 끊은 지 8일째 되는 10월 30일 오후, 나는 탄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고, 무언가 수를 내야 했다.

나는 다음날인 11월 1일 새벽까지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지만 어떤 뾰족한 수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수송기를 부를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3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적은 아군 전폭기는 격추하지 못해도 수송기만큼은 필사적으로 격추시켰다. 물론 아군도 포위된 적군에게 가는 수송기를 이를 악물고 격추했다.

11월 1일 밤, 나를 비롯해 모두가 마지막 밤이라 생각했고, 부상자들 까지도 자리에서 일어나 백병전을 준비했다.

이날 밤은 유난히도 별이 밝고, 고요했다. 마치 안식을 찾을 것이라는 것을 알리듯이···

···

긴 적막을 깨고 포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중국군 대구경 대공포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터지고, PGZ-07의 35mm탄이 하늘에 점선을 그렸다. 지대공 미사일은 밝은 빛을 내며 대기를 가로 질렀다.

그 사이로 보이는 아군 전투기가 화려한 몸놀림을 선보이며 적진으로 날아들어갔다. 이날의 아군 폭격은 여느 날과 같지 않았다. 보통 우리를 공격하는 적의 보병과 보급품기지를 몇 차례 폭격하고 물러가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수십차례에 거쳐 수천개의 폭탄과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했다. 물론 적의 방공부대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적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것은 확실했다. 이날 저녁, 중국군은 감히 우리를 공격하지 못했고, 피해를 수습하는데 힘을 썼다.

그리고 적의 혼을 빼놓은 전폭기들 사이에 숨어든 수송기가 우리에게 단비를 뿌려주었다.

연대 장병들은 내가 강력히 요청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기적을 바라고만 있었다. 물론 장병들에게 진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정신적 지주이며, 의지하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5일을 더 버틸 수 있었고, 적군은 연료가 없는 탱크와 장갑차, 자주포, 차량 등을 모두 버리고 걸어서 차유령과 금패역 사이 숲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굳이 따라가지는 않았다. 하루 3~4시간을 자면서 적과 싸워온 우리는 따라갈 힘도, 병력도 얼마 남아있지 않은 것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역으로 매복에 당할지도 모르기에 현 위치를 고수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었다.

만약··· 포위된 적군이 3일만 더 버텼더라면 결과는 바뀌었을지도 몰랐다.

···

11월 11일 우리는 적을 무산읍과 무산광산에 몰아넣을 수 있었다. 무산광산이 ‘노천광산’이고, 읍 주위는 대부분 야산이라 우리에게는 참 다행이었다. 땅굴에 숨은 적 때문에 고생할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적을 좁은 지역에 몰아넣은 아군은 주구장창 포격과 폭격을 했고, 중국군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갑부대 대부분과 대공포를 전부 자국영토로 철수시켰지만, 아군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아군의 자주포 사거리가 중국산 보다 우월했고, 전폭기나 전투기도 성능이 월등했기에 중국군은 국경지역이 아닌 멀리 후방으로 보내야 했다. 무산군에서 중국내륙과 이어진 도로는 하나였기에 철수하는 과정에서도 중국군은 엄청난 손실을 입어야 했다.

무산을 침공한 적의 주력인 202, 204합성여단은 거의 전멸했고, 78공병, 방공, 포병여단도 엄청난 피해를 입은 78집단군은 11월 15일, 자국으로 철수를 시작했고, 아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한반도에 발을 들인 적군의 90%이상이 두만강을 다시 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중국군이 무산에 많은 공을 들였듯이 우리도 많은 전력을 투입했기에 패한 쪽이 엄청난 손실을 입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아군은 두만강을 넘어 전초기지를 세웠지만 20km이상은 들어가지 않았다. 내륙으로 통하는 도로가 하나였고, 그 주위는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산에는 수많은 거점이 있었기에 더 들어가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무산에서 크게 패하여 많은 인적, 물적 자원과 사기를 잃은 78집단군의 다른 여단들과 국경수비대도 곳곳에서 무너졌으며, 특히 중국육군내 최강의 부대라 일컫는 79집단군이 단둥 시에서 참패함으로써 북부전선의 승기는 아군에게 확실히 기울었다.

중국은 70년 만에 자국의 영토 일부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작가의말

크고 강한 것에는 이점이 있지만, 한번 넘어지면 걷잡을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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