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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숲을보다
작품등록일 :
2024.05.08 12:45
최근연재일 :
2024.06.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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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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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장의 자질!

DUMMY


짧은 휴식기가 끝나고 우리 중대가 속한 여단은 북한 강원도 문천시를 점령하러 떠났다. 문천시는 신라시대부터 관문으로 쓸 만큼 수비하기에 적합한 지형이었고, 문천을 점령한다면 그로부터 금야까지는 이렇다할 고지가 없는 평야였기에 전략적 요충지였다.

원산시에서 문천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두 개였다. 하나는 해변을 따라 뻗은 도로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륙으로 뻗은 7번국도를 따라 들어가는 것이었다.

여단장은 상대적으로 높은 산을 끼고 있는 해변도로가 아닌 대부분이 평야이며, 낮은 야산들로 둘러싸인 7번국도를 목표로 삼았다. 우리가 점령해야 하는 것은 문천역에서 남쪽으로 약 3.5km떨어진, 국도의 양쪽에 있는 언덕이었다.

치열할 것이라 생각한 언덕전투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너무 낮은 언덕이었기에 방어하기에 비효율적이라 판단한 적군은 저항하는 흉내만 내다가 문천시도 비워두고 서북쪽고지로 후퇴했다.

문천시 서북쪽입구의 도로는 너비 약 700m되는 평지사이로 지나가고 있었고, 이 평지의 양옆에는 해발 200m의 산이 있었다. 이 산에는 오래 전부터 땅굴을 파고 우리를 기다리는 적군이 가득했다. 평지와 도로에 가득한 지뢰를 해제하고,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쪽의 고지를 점령해야 했다.

아군은 적의 참호와 진지에 약 3시간 동안 포격과 폭격을 했고, 산을 거의 20cm는 깎아버렸다. 충분하다고 판단한 여단장은 돌격을 명령했고, 우리 중대는 전차와 장갑차 뒤에 숨어 동쪽 고지로 기어올랐다.

아군의 강력한 포격과 폭격에도 많은 적군이 살아 있었고, 내려다보고 직사로 쏘는 대전차 로켓과 미사일에 전차와 장갑차의 대부분이 중턱에 이르기도 전에 파괴되었다. 덕분에 보병은 중장비의 보호도 없이 고지로 올라야 했다.

귀에는 쇠붙이가 날라 다니는 소리, 지휘관들의 고함소리, 나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눈에는 포탄에 사지가 뜯겨 나가고, 총알에 머리가 뚫리고, 가슴과 배가 찢겨 흐르는 창자를 부여잡으며 살려고 발버둥치는 전우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중턱에 이르러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밤에 공격할 때는 몰랐지만 고지를공격 하는 것은 역시 할만한 것이 못되었다. 수비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것은 마치 사자의 아가리 속에 자진해서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공포는 내 뇌를 지배했고, 두려움은 육신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나는 살 구멍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내 뒤를 따라오던 분대원들을 보았다. 그들의 눈에도 공포가 짙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살려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인원을 확인하는 척하며 찰나의 순간에 수만가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심호흡을 하여 이성을 되찾은 나는 고개를 들어 위쪽 지형을 살폈다. 포격과 폭격으로 곳곳에 구덩이가 만들어진 것이 눈에 띄고, 여기저기 지형지물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아난다는 조상들의 지혜에 감복하며 작전을 설명했다.

나는 돌을 던져 첫번째 은폐물로 삼을 구덩이를 가리키고 재빨리 뛰어 구덩이로 몸을 숨겼다. 분대원들도 빠르게 내 뒤를 따랐다. 나는 다시 돌을 던져 지형지물을 가리키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 순간, 중대원모두 우리 분대의 뒤를 따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절망했다. 소수로 움직일 때에는 적의 눈에 띌 확률이 적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선두에 서있는 나는 1차 목표물이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서는 소대장과 중대장이 빨리 앞으로 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분산해야 했다. 내가 살려는 의도도 있지만 이렇게 한 곳으로 밀집해 가면 집중사격을 받고 전멸하기 십상이었다.

나는 5분간 움직이지 않았고, 소대장이 내 옆으로 기어왔다. 그리고 협박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말이다. 나는 ㅈ 같은 소리를 하지 말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고, 소대장은 우리 분대의 막내인 이성진을 가리키며 앞으로 나아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겁에 질린 막내는 나를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았고, 나는 중대장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후 옆에 나타난 중대장에게 이런 식이면 한순간에 전멸하니 분산해서 동시에 올라가야 함을 어필했다. 하지만 중대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계속해서 우리 분대가 앞장설 것을 강요했다. 나는 안된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소대장은 끝끝내 막내를 은폐물 밖으로 떠밀었다. 막내는 채 한 발을 내딛기도 전에 벌집이 되어 죽고 말았다. 이곳만 바라보고 있던 적의 집중사격에 어찌해 볼 틈도 없었다.

나와 분대원들은 분노했고, 살기를 느낀 중대장과 소대장은 허둥지둥 밑으로 기어갔다. 이어서 각 분대별로 분산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분대원들을 이끌고 분산된 적의 화력을 피해 다시 움직였다. 물론 한번 표적이 되었기에 쉽지는 않았지만 어찌어찌 다음 구덩이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이 과정에 한 명의 희생도 뒤따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약 10분 후 적의 턱 밑에 다다를 수 있었고, 수류탄과 유탄을 있는 대로 적의 참호에 던져 넣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분대원들은 막내를 잃은 분노를 적에게 쏟아냈다. 온 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미쳐 날뛰는 그들은 악귀가 따로 없었다.

적군 한 개 중대가 지키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우리 군 1개 보병대대, 포병대대, 3개의 폭격기 편대가 동원되었지만 남은 인원은 채 1개 중대가 되지 않았다. 물론 포병, 조종사의 손실은 없었다.

희생이 너무 컸다. 이런 식이면 전쟁이 끝나고 젊은 남자가 남아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 전투가 끝나고 포상이 있었지만, 소대장과 중대장은 제일 먼저 고지에 오른 우리 분대를 배척했다. 명령 불복종이 이유였다. 포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8명중 6명이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고 살아 남았기 때문이다. 초반에 혼자 살아남은 것에 비하면 큰 성과였다.

문천전투 후 아군과 미군 연합군은 파죽지세로 동부전선을 위로 밀어붙였다. 전쟁 발발 1주년을 맞아 우리는 함흥시가 바라보이는 성천강 이남까지 점령했다.

허나 서부, 중부전선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평양에 발이 묶인 것이다. 도시를 포위했지만 시가전은 너무나 힘겨웠다. 특히 상징성이 있는 도시라 북한의 지도부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적군은 악착같이 버텼다. 나는 왜 그들이 그렇게 목을 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 쳐도 저들은 이겨도 독재인데, 왜 그러지?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해서 나는 임시 포로수용소에 가서 포로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첫번째 질문은 당연하게도 왜 싸우는가? 였다.

그들의 답에 하나 같이 있던 것은 애국심과 우리에 대한 분노였다. 그들에게 우리는 더 이상 동족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그런 삶을 살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우리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우리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세뇌된 것이다. 포로로 잡히면 고문을 당하고, 여자들은 강간을 당하고 목매달려 죽는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 정부나, 군에서는 포로를 잘 대우해 주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허나 대부분은 포로들을 잘 대우해 주었다. 물론 오랫동안 욕구를 채우지 못해 여자들을 범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걸리면 군사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당했기에 그런 사례가 많지는 않았다.

두번째 질문은 아군에 전향해서 같이 싸울 생각이 있는가? 였다.

하나같이 아니라고 답했다. 강제로 끌려가면 억지로 싸울 수는 있지만, 친구와 형제들을 죽일 상황이라면 그러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우린 서로 너무나 오래 헤어져 있었고, 하나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질문하기를 그만 두었다.

···

나는 사적으로 포로들을 만났다고 누가 상관에게 보고했기에 7일간 영창에서 지내야 했다. 그사이 평양을 점령한 아군은 위로 밀고 올라와 길어진 중부와 동부전선의 틈을 메꾸고 다음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성천강 이남에 주둔하고 있던 우리는 함흥시를 점령하기 위해 도하전투 준비했다. 중부전선의 공백이 메꿔진 덕분에 상류에서도 도하가 가능했고, 우회하여 함흥을 완전히 포위할 수 있었다.

나는 게임에서도 지긋지긋한 시가전을 현실에서 한다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너무나 무서웠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와 박힐 지도 모르는··· 생각만으로도 속이 울렁이는 그 느낌은 정말 싫었다.

그리고 나는 수영을 잘하지 못했다. 물에 대한 트라우마와 공포가 있던 나는 사실 시가전보다 도하전투가 더 무서웠다.

나는 전쟁이 발발하고 두번째로 믿지도 않는 하느님께 빌었다. 제발 배가 뒤집히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다. 허나 하느님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내가 탄 상륙정은 거의 강변에 이를 즈음 바로 옆에 떨어진 포탄으로 크게 흔들렸고, 나는 그대로 물에 빠졌다.

공포가 뇌를 지배한 나는 허우적거리며 공업용수에 오염된 성천강물을 잔뜩 들이 키며 가라앉기 시작했고, 극도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한 내 뇌는 그대로 불을 꺼버리고 말았다.

···

강변으로 밀려나 눈을 뜬 나는 사후세계인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했다. 뺨도 때려보고, 꼬집어도 보았다. 분명히 나는 살아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옥의 울부짖음이었다.

나는 총도 없고, 군장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허리춤에 매달린 단도와 탄창주머니가 끝이었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가 가까운 시체에서 총을 하나 주워 들고 앞으로 기었다. 그 사이 적의 탄환은 계속해서 주변에 박혔지만, 나는 거의 무아지경으로 움직였다. 강변은 엄폐물이 거의 없었고, 살기 위해서는 제방 바로 밑에까지 기어가야 했다.

제방위에서는 적의 기관총이 불을 뿜고 있었고, 아직도 도하를 시도하는 아군의 배들이 보였다. 나는 총을 끌어안고 제방에 등을 기댄 상태로 멍하니 강변을 바라보았다. 옆에서는 제방을 점령하기 위한 지휘관들의 고함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살았다는··· 그 느낌을 오래 느끼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던 나는 누군가 목덜미를 잡아 끌고 가기에 고개를 돌려 상대를 보려고 했지만, 등을 돌리고 있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이끌려 구덩이에 버려졌고, 그제서야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분대장 김준호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고, 분대원 모두 따라 웃었다. 나를 물독에 빠진 쥐새끼 같다며 놀리는 분대원들을 둘러보던 나는 3명이 보이지 않음을 알았지만,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다. 분대원들도 알고 있을 것이고, 슬픔을 잊어 보려고 억지로 웃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강변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내린 명령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중화기가 없는 상태로 제방을 오르면 죽을 확률이 아주 높기에 수륙양용 전차가 어느 한 곳을 부수고, 그 곳에서의 공격이 성공하면 뒤따라갈 생각이었다. 저기 멀리서 소대장이 나머지 분대장들과 함께 무언가를 할 요량으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굳이 찾아 가지는 않았고, 소대장도 우리 분대를 찾지는 않았다. 저번의 그 전투 후부터 우리 분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우리 분대원들도 기회가 되면 부당한 명령으로 막내를 죽인 소대장의 등에 총알을 박을 기세였기에 최대한 멀리···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우리는 소대장을 조롱하며 물에 젖은 식량을 꺼내 요기를 했다. 이날 나는 한가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분대원들은 나를 신뢰하고, 진심으로 따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구덩이에서 무언가 변화를 기다리는 동안, 전공을 탐내는 중대장의 부당한 명령을 거역하지 못한 소대장은 콘크리트 절벽을 기어오르다 눈앞에서 쏘아대는 적의 총탄에 머리가 뚫려 즉사했다. 우리 소대장만이 아닌, 3소대(우리는 2소대 3분대였다.)장도 그렇게 죽었다. 물론 다수의 분대장, 병사들도 허무하게 죽었다.

우리는 끝까지 구덩이에 몸을 숨겼다. 몸을 숨기고 20여분이 지나서야 새로운(먼저 도착한 전차들은 상륙하기도 전에 물속에 가라앉거나, 차단물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다 파괴되었다.)중장비와 전차들이 강변으로 상륙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들 뒤에 몸을 숨기고 제방을 타고 올랐다. 그 후는 너무나 쉬웠다. 한 곳이 뚫리자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적들은 도시와 공장으로 퇴각했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무모한 공격으로 중대원의 태반을 잃게 한 중대장은 이병으로 강등되었으며, 나는 2소대장이 되었다. 전쟁에 참여한지 한달만에 나는 이병에서 소대장이 되었다. 허나 나의 소대장생활은 쉽지 않았다. 시가전은 살과 뼈를 깎았고, 그동안 단 한 번도 부상을 입지 않았던 나는 처음으로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장기가 손상되지는 않았지만 출혈이 심했기에 여단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었다.

···

야전병원에서 나는 나의 첫 사랑이었던 장아영을 만났다. 반가웠다. 허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솟구치지는 않았다. 타향에서 고향사람을 만난? 그런 반가움일 뿐이었다. 솔직히 나는 나와 소대도 지키기 힘든 상태였기에 누군가를 사랑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고백을 해도 아영이가 받아 줄지는 모르겠지만···

야전병원에서의 생활은 아늑하고 좋았다. 통조림이나, 플라스틱 봉지에 담긴 간편식이 아닌, 가마솥에 익힌 밥과 국을 먹는 것이 좋았고, 습하고 눅눅한 침낭이 아니라 뽀송뽀송한 이불속에서 잠드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이렇게 나는 보름쯤 침대에 누워 있었고, 6월 6일 퇴원하기로 되어있었다. 허나 나는 다시 한달을 더 누워 있어야 했다. 6월 5일 저녁, 중국군의 특수부대가 여단본부가 아닌 야전병원 인근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날 저녁 비바람이 거셌기에 이곳까지 잘못 날라온 적군은 여단본부를 찾아 행군하다 6월 6일 새벽에 야전병원에 이른 것이었다.

목표는 우리가 아니었기에 만약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지나칠 적들이었다. 허나 초병에게 발각되었고, 일이 틀어진 것을 알아챈 적은 꿩 대신 닭을 선택했다.

병원을 지키는 것은 1개 중대정도의 병력이었고, 대부분이 신병들이었기에 직업군인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전투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적의 강력하고, 재빠른 공격으로 공포에 질린 군의관들과 간호사, 신병들은 허둥지둥 뒤로 물러났고, 병원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오직 혼자 살기에 바빴다. 처음으로 코앞에 자신을 죽이려는 적군을 맞이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었다.

내 침대는 창가에 있었기에 적이 몇 명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강한 빗바람에 여기저기 흩어진 탓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소대정도의 병력인지는 몰라도 대충 30명정도였다. 적들은 상대적 강함?을 이용해 빠르게 우리를 궁지에 몰고 있었고, 경비병력은 공포와 미숙함으로 제대로 된 초등대응을 하지 못했다.

환자와 경비병력을 합치면 300명이 넘었고, 우리가 정신만 차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었다.

환자들 중(전투경험이 풍부한 이들이었다.)에서 몸이 멀쩡한 몇몇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한 후 빠르게 병실밖으로 나갔다. 나는 우선, 뭘 할지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는 원장을 만나 여단본부에 상황을 알리고, 환자들을 대피시키라는 조언을 한 후에 장아영을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 구석에 숨어 있는 신병의 총을 빼앗았다.

총성은 더욱 가까워졌고, 나는 살면서 최고의 속도로 병원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약품보관 창고에 숨어있는 첫 사랑과 그녀를 감싸 안고 있는 군의관을 발견했다.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군의관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수컷의 어떤 본능이었던 것 같다.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영을 데려가려는 나를 막아서는 군의관을 발로 차서 떨궈버리고 아영의 손을 잡고 창고를 빠져나왔다. 아영도 군의관을 외면하고 본능적으로 나를 따랐다. 여기서 아영이 저항했다면 끌고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건물을 빠져나왔을 시 아영은 나보다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내가 창고를 벗어나 본관 건물에 이를 즈음 어느 정도 방어체계를 잡은 환자들과 신병들이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적을 막고 있었다. 나는 앞쪽은 안전하다는 판단을 했고, 몇을 데리고 뒤쪽의 약품보관 창고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적군 몇이 뒤로 돌아 은밀히 접근하고 있었고, 나는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처음에는 겁을 먹고 있던 신병들도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아니면 공포에 적응을 했는지는 몰라도 열심히 총을 쏘기 시작했다. 물론 제대로 맞추는 이는 없었다.

우리의 전력을 파악한 적은 몇몇을 더 불러 증강된 인원으로 뒤쪽을 뚫으려 시도했고, 적들은 정확히 내가 위치한 곳에 수류탄과 HJ-12 로켓을 발사했다. 나는 찰나의 순간에 붕대가 쌓여 있는 뒤편으로 몸을 날렸고, 두툼한 천뭉치는 나를 안전하게 막아 주었다. 시가전을 치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총 잘 쏘는 적이 지키는 건물을 뚫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겁먹지 않고 침착하게 신병들을 지휘하여 뒤편을 막는데 성공했다.

10여분의 시간이 지난 후 적들은 후퇴하기 시작했고, 나는 저들이 후방에 남으면 얼마나 위험한 존재들인지 알았기에 신병들을 이끌고 뒤를 쫓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죽인 적이 6명, 앞쪽에서는 더 많은 적과 아군이 싸웠으니 최소 10명이상의 적군은 죽였을 것이라 생각하면 나머지 적은 10명 안팎이라··· 빠르게 추격하면 5명은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허나 나는 한 명을 사살하기도 전에 내가 죽을 뻔했다. 야외에서 그들은 나보다 몇 수나 위였다. 나는 급하게 후퇴를 명령했고, 뒤를 지키다 또다시 복부에 총상을 입고 말았다. 이번 총상은 대장도 뚫어버렸기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맨 뒤에 있었고, 첫 전투에서 살아남은 희열과 기쁨? 등으로 나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은 신병들 때문에 나는 총상을 입은 지 3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그 사이 내장을 뚫고 나온 분비물과 뜨겁고 습한 날씨는 나를 빠르게 오염시켜 놓았다. 나는 대장을 절단하고, 뱃속에 남아있는 분비물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고 7일만에 정신을 차렸으며, 한달 동안 병원에 남아 있게 되었다. 병원을 지켜낸 공로로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했지만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다. 군의관(수류탄이 하필 군의관이 숨어 있던 곳에 떨어지는 바람에 즉사하고 말았다. 이 일로 아영은 내가 일부러 죽게 만들었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나는 굳이 해명하지는 않았다. 아영도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녀도 군의관을 버리고 나를 따라 나왔으니까···)을 구하지 않은 나 자신의 옹졸함, 어이없게 죽을 뻔한 스스로가 한심했기 때문이다.

························.

이렇게 7월이 되어서야 전선에 복귀한 나는 나의 이전 소대원들이 있는 소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보통은 이러기 쉽지 않았지만 부소대장인 중사 김준호가 완강하게 다른 소대장의 부임을 거부하고, 나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중사라고 했지만 나처럼 갓 진급한 애송이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병사들은 나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아군은 북한의 최대공업지역 중 하나인 함흥, 낙원을 점령했고, 동부전선의 절반은 동해안을 따라 진격하고, 반은 영광, 신흥을 거쳐 북한의 군수공장이 집결된, 북한이 최후의 요새라 일컫는 자장도로 진격했다.

내가 속한 부대는 동해안을 따라 진격하고 있었고, 동해를 완벽하게 장악한 연합군 함대의 지원을 받으며 그나마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신포항은 육군이 당도하기도 전에 해군에 의해 점령(마양도를 함락할 때 조금 애를 먹었지만)되었으며, 북청까지는 거의 저항이 없이 진격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백두대간의 자연방벽을 만나야 했으며, 정규군은 물론,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게릴라전을 펼치는 교활한 적들과 싸워야 했다.

너무나 힘들었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적들로 인해 잠은 물론, 볼 일도 편하게 볼 수 없었다. 극도의 긴장감과 피로감은 병사들을 예민하게 만들었으며, 이에 더해 복잡하고 험준한 지형으로 인하여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산속에서는 전차를 비롯한 중장비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게 되자 탈영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의 첫 일과는 전날 탈영하다 잡힌 병사들을 사형하는 것이 될 정도로 군의 사기는 바닥을 찍었다.

우리는 꾸역꾸역 북으로 전진했고, ‘품속골’이라 부르는 자그마한 분지에 이르렀다. 이 일대에서 그나마 대규모 군이 주둔하고, 보급창고를 건설할 수 있는 지형이라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곳이었다.

품속골은 남, 동쪽은 산줄기가 감싸는 형태라 공격하기 어려웠지만 서쪽은 상대적으로 낮은 야산과, 골짜기가 있어 공격하기 쉬었다. 그리고 북쪽은 산줄기가 분지에 수직으로 뻗은 형태라 우회가 성공한다면 능선을 타고 내려가 손쉽게 분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우리 중대는 우회하여 북쪽지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야밤에 은밀히 행군하여 분지 서북쪽 작은 고지에 다다랐다. 그 사이 연대는 서, 남, 동쪽에 병력을 집결하여 북쪽에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적의 눈을 돌렸다.

여단장의 전략이 통했는지 작은 고지에는 수비병력이 없고, 몇 개의 경계초소만 있었다. 우리는 들키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서쪽으로 우회하여 오후 즈음에는 북쪽 첫번째 고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날 저녁 중대장은 나에게 정찰임무를 맡겼고, 나는 5명을 차출해 은밀히 고지를 기어올랐다. 그리고 나는 굳어 버렸다.



작가의말

두려움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두려움에 정신을 지배 당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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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새로운 국면! 24.06.03 33 1 26쪽
13 쥐덫! 24.05.31 38 1 16쪽
12 교활한 여우, 우직한 곰! +2 24.05.29 43 1 14쪽
11 목숨을 건 테스트! 24.05.27 39 1 17쪽
10 70년 만의 참패! 24.05.25 43 0 13쪽
9 새로운 마음가짐! 24.05.24 40 0 13쪽
8 소용돌이의 중심! 24.05.22 47 0 21쪽
7 토벌, 그리고 혹독한 현실! 24.05.20 48 0 15쪽
6 계산된 행동, 해야만 하는 것들! 24.05.17 48 0 17쪽
5 뛰어난 전략가! 24.05.15 55 0 16쪽
4 언제나 길은 있다. 24.05.13 55 1 19쪽
3 고립! 24.05.10 64 0 23쪽
» 장의 자질! 24.05.09 79 1 23쪽
1 평범한 인간 +2 24.05.08 143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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