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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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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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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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1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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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DUMMY

코너 클로징 멘트를 앞두고 실시간 채팅창 반응은 여전히 이러했다.


기대보다 너무 미적지근했다.

차라리 두 양반 예전 캐릭터가 더 재미있었다.

이렇게 게스트 못 살릴 바에 이 코너 없애라.


‘‘오늘 어렵게 모신 두 분, 아무래도 저희 인터넷 방송은 처음이라서 그런지 좀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네요 ......’’


그렇게 두 사람을 살짝 돌려까기 한 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우선 우진태 의원님부터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예. 어험, 어험 ......’’


실시간 반응이 안 좋다는 걸 눈치 챈 걸까?

뒤늦게 원래 꼰대 캐릭터로 돌아가기라도 하려는 듯 우진태가 헛기침을 몇 차례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은 ....... 카메라 어디 있죠?’’

‘‘카메라요?’’

‘‘예. 영상편지 좀 보내고 싶어서요.’’

‘‘아아! 예, 그럼, 저기 저 카메라 보시고 하시면 됩니다, 의원님.’’


한소라가 친절하게 카메라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 그렇군요. 어험, 어험.’’


우진태가 카메라를 바라보더니 다시금 헛기침을 해댔다.

그리고 나서 그가 한 말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여보! 사, 사랑해!’’


그런데 우진태의 그 예기치 않은 말과 동시에

내 눈앞에 프롬프터가 떴다.


아주 짧은 단문이었지만, 나는 많이 놀라고야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프롬프터에는


[두 달 전 우진태 부인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아서 지금 호스피스에 있음]


이렇게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아아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그래서 아까부터 우의원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자꾸 아내 이야기를 ......

참! 그러고 보니 그가 민주화 투쟁 하다 옥고를 치렀을 때 그의 아내가 노점부터 해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집안을 건사했다는 일화도 불현듯 생각이 났다.


‘‘하하, 오늘 우의원님께서는 작정하고 캐릭터를 애처가로 잡고 나오셨나 보네요.’’


내가 멘트를 못 잇고 있는 사이 최웅이 한 마디 내뱉었다.


‘‘근데 진짜 의원님 사랑꾼이신 것 같아요. 원래 막 길게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보다 여자는 저렇게 단 한 마디, 사랑해, 저 말 한 마디에 정말 감동 많이 받거든요. 사모님, 정말 부러워요.’’


이어서 한소라도 한 몫 거들었다.

그녀는 정말 우진태 부인이 부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김용국 의원님 차례인데요. 그건 그렇고 야! 강대구 인마!’’


최웅이 멍 때리고 있는 나를 불렀다.


‘‘진행을 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인마. 의원님들 모시고 이게 뭔 결례야!’’

‘‘아! 죄, 죄송합니다, 의원님.’’


마치 풋잠에서 깨어난 표정으로 내가 우진태를 바라보며 목례를 했다.

남들은 눈치 챘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 물들어 있는 붉은 기운을 어렵지 않게 캐치해낼 수 있었다.


‘‘아! 그러면, 다음은, 뭐였죠? 아참! 다음으로 김용국 의원님 영상편지, 아니 꼭 영상편지가 아니라 그냥 하고 싶으신 말씀 하시면 되죠. 뭐 영상편지 보내실 분 계시면 보내셔도 되고요.’’


다소 버벅거리면서 내가 김용국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아! 나도 그럼, 우리 우의원처럼 영상편지 하나 보낼게요.’’

‘‘그러실래요?’’

‘‘예. 나 이런 거 방송에서 남들 하는 건 많이 봤는데 내가 하는 건 또 처음이네, 허허.’’

‘‘그러시죠, 그럼.’’

‘‘어험, 어험.’’


김용국도 방금 전 우진태처럼 헛기침을 몇 차례 내뱉었다.


‘‘음, 제가 영상편지 보내고 싶은 이는 불특정 다수입니다.’’

‘‘불특정 다수요? 불특정 다수라는 말은 보통 범죄 저지를 때 하는 말인데 ......’’


내가 슬쩍 위트를 쳤다.


‘‘그렇죠. 이번 나의 경우도 역시 불특정 다수가 피해자입니다.’’

‘‘예? 피해자요? 무슨 피해자요?’’

‘‘허허허.’’


김용국이 무슨 일인지 대답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예, 좋습니다. 그럼, 영상편지 보내시겠습니까?’’

‘‘예, 그러죠. 음, 저 김용국 정계 은퇴한 지도 어느새 벌써 10년 정도 세월이 흘렀네요. 일할 때도 시간이 빨리 흘러갔지만 놀 때도 마찬가지로 시간 참 빨리 가네요, 허허. 그 10년 간 제 지난 정치 인생에 대해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제 발언 때문에 상처받으신 분들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구요. 저의 사려 깊지 않은 언행에 상처 받았던 국민 여러분이나 혹은 동료 정치인들께 이 자리를 빌어 꼭 사과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


방금 전 우진태는 그저 사랑한다는 짧은 말이었기 때문에 쉽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용국은 상대적으로 다소 긴 발언이었기에 이내 다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울먹이고 있었다.


‘‘.......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다 보니까, 요즘 수시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뭐 이 나이에 죽는 게 무섭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정말 무서운 건 사라진다는 것보다, 내가 사라진 후에 남은 사람들이 나 죽었는데 좋아하고 시원해 하고 그런 게 정말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불현 듯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언제 기회가 닿으면 꼭 내 정치인생 동안 상처 준 사람들께 이렇게 영상편지로 사과의 말 전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기존 미디어에서는 이런 거 하기가 힘들잖아요. 내가 방송 사유화 하는 것 같고, 허허. 그런데 이 시사팩폭쇼 이 프로는 이런 거 하기 딱 적당한 것 같아서, 그래서 방송 섭외에도 흔쾌히 응했던 겁니다. 아무튼 지난 세월 동안 다시 한 번 저의 사려 깊지 않은 언행으로 상처 입으셨던 많은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 전하는 바입니다, 허허허.’’


김용국의 긴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내 눈앞에는 다시 또 프롬프터가 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조금 전 우진태 때보다도 더 짧은 말이었다.


[지금 김용국 하는 말 전부 다 진심임]



+++



방송이 끝나고 나자 김용국 의원이 간만에 보는 우진태 의원에게 자기가 한 턱 쏘겠다며 대포 한 잔을 제안했다.

하지만 우진태 의원은 급히 가 봐야 할 곳이 있다며 양해를 구한 후 실지로 급히 사라져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우의원이 급히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었다.

아내가 누워 있는 하얀 호스피스 병실일 것이다.


다소 섭섭한 표정의 김용국 의원이 간단하게 차 한 잔을 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피디와 함께 복도까지 나가 그를 배웅했다.


‘‘안 들어가요, 강소장님?’’


피디가 대기실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피디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고서는 저 만치 복도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노정객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리즈 시절, 아니 소싯적 그들은 오늘 본 모습과 확연히 다른 모습들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들 철학과 논리에 확신에 차 있었던 그들이었다.

꼴통, 꼰대 소리를 아무리 들어도 아랑곳 하지 않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본 그들 모습은 그때와 달라도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좁아지고 빈약해진 체구.

더 이상 당신들의 시대를 고집할 수 없다는 걸 절감하는 듯한 현실 인식.

반면 한결 부드러워지고 여유 있는 표정과 언사들.


저 만치 복도 끝에서 김용국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대기실 앞 텅 빈 복도에 홀로 서 있는 중이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이미 그새 우리 시사팩폭쇼 방송에 관한 기사 하나가 업데이트가 되어 있었다.

오래간만에 모습을 보인 김용국 우진태의 출연과 방송에 드러난 그들 동정에 관한 기사였다.


아직 댓글 란은 비어 있었다.

내가 첫 댓글을 남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다소 긴 문장을 썼다.


[우진태 김용국 두 의원님 오늘 뵙게 되어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사랑꾼 면모를 보여주신 우진태 의원님의 로맨틱함에 반했고, 자신의 지난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용기를 보여주신 김용국 의원님 모습에도 정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아무쪼록 두 의원님 정계 은퇴하셨다고 해서 정치 현안에 대해 가만히 계시지 마시고 현역 시절 못지않은 쓴 소리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방송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항상 오늘 모습처럼 건강하시고 화이팅하세요! ㅎㅎ ]



+++



지난 주 중구난방 역시 성공작이었다.

이전 회차에서는 내가 엎드려 사과 절까지 하는 연극 퍼포먼스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면,

지난주는 정통 시사 프로로서 진면목을 보여줬다는 찬사가 잇따랐다.


특히나 내가 제기하고 정원택 김여중이 동조한 선거에서 인물론이란 의외로 별 영향력이 없다는 명제는 꽤나 설득력을 발휘했다.

많은 네티즌들이 그것에 동의하면서 공부가 되었다는 평도 남겼다.


그래서 이번 주 방송은 시작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더군다나 본격적인 총선 정국이 되니 주제거리도 만발했다.

나, 정원택, 김여중 셋이 초반부터 긴장감 넘치면서 치열한 입씨름을 예고했다.


이번 회차에서 흥미로운 첫 주제는 여당의 윤희철 의원에 대한 평가에 있었다.

야권의 가장 강력한 대권 주자 이수영의 지역구 용인에 출마를 자원했다는 뉴스가 막 떴기 때문이었다.


‘‘이런 게 바로 선당후사의 모범이죠. 애초 우리 보수 쪽 취약지구에다 상대는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인 이수영 후보 지역구. 이런 험지를 누가 가려고 하겠습니까? 이런 데 벌써 자원해서 간다는 것만으로 이미 그 용기를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정원택이 운을 띄우자 김여중이 바로 반박에 들어갔다.


‘‘윤의원님이랑 친분 좀 있다고 정 선생님이 너무 띄우시네. 윤의원 지금까지 걸어온 행적 잘 아시면서.’’

‘‘무슨 행적이요?’’

‘‘그 분 이쪽 전문가잖아요.’’

‘‘무슨 쪽이요?’’

‘‘센 놈이랑 붙어서 자기 체급 불리기 전문가요.’’

‘‘아이고, 김선생, 그건 또 뭔 소리예요?’’

‘‘맞잖아요. 지난 총선에서 윤의원 떨어지고 나서 4년간 해온 행적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보궐선거랑 지자체 선거 때마다 험지 출마를 자원했잖아요. 그것도 상대가 전부 대선 후보급. 그들이랑 붙어서 장렬하게 전사해도 남는 장사. 그렇게 한 체급 한 체급 올리더니 이번에는 급기야 가장 강력한 대권후보랑 붙자는 거예요.’’

‘‘쯧쯧. 좌파 쪽은 왜 매사 그렇게 음모론적으로만 생각하는지.’’

‘‘에이, 정선생님 저보다도 더 잘 아시면서. 정치권에 순수하게 험지 출마하는 사람 본 적 있으세요? 지금은 눈에 안 보이지만 후에 보면 지금 출마해 떨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보상거리가 있으니 출마하는 거지. 그러다 운 좋게 상대 후보 큰 비리가 터져서 당선되면 그건 금상첨화고.’’

‘‘됐어요. 강소장은 어떻게 생각해요?’’


정원택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물어왔다.


‘‘저는 김여중 선생님 말에 동의하는데요.’’


그새 나는 두 사람 앞에서 또렷하게 내 의견을 개진할 만큼의 위상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나의 말에 정원택은 한 번 더 살짝 미간을 찌푸렸고.


‘‘그래요?’’

‘‘예. 김여중 선생님 의견에 동의하고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게 있을 정도입니다.’’

‘‘으잉? 그건 또 뭔데?’’

‘‘사실 윤의원 출마는 단순히 그 분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한 사항이 아닌 걸로 보입니다.’’

‘‘그럼?’’

‘‘대통령실과 교감이 있지 않나 싶은데요.’’

‘‘대통령실? 대통령실과 어떤 교감?’’

‘‘야권의 차기 유력 대선 주자 이수영 후보의 최고 약점이 경제에 문외한이라는 점이잖아요. 반면 윤희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 전문가고요. 그래서 윤의원으로 하여금 이수영 후보와 맞붙게 해서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이의원의 경제 문외한 약점을 도드라지게 하는 전략인 거죠. 그렇게 해서 차기 정권 재창출의 밑거름을 만들려는 거죠. 그리고 윤의원은 이번에 떨어져도 경제수석, 혹은 경제부총리 입각을 시키면서 노고를 보상해주고요.’’


반박은 정원택보다 오히려 김여중에게서 나왔다.


‘‘에이, 그건 강소장님이 너무 나가는 것 같은데. 이수영 의원을 벌써 낙마시켜서 보수진영에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아직 대선까지 3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벌써 상대 진영 누구 낙마시켜서 좋을 게 하나도 없지. 오히려 상대 후보는 난립시켜 놓고 경쟁 붙이게 하고 적전분열 시키는 게 지금으로서는 더 유리한 법이에요.’’


김여중이 마치 강의해 주는 투로 내게 말했다.

그의 말이 꽤나 설득력 있어 보였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프롬프터가 그렇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대통령 실 쪽에 어느 감각 없는 참모가 그렇게 설계했나 보지, 뭐.

혹은 뭐 다른 꿍꿍이가 있거나 권력 다툼의 산물일 수도 있고.

원래 이 바닥에는 온갖 시나리오가 서로 중첩되고 크로스 되고 그러는 일이 비일비재한 법이니까.


‘‘자! 그럼, 또 다음 주제로 들어가 봅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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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2화 +1 24.07.18 130 5 12쪽
72 71화 +1 24.07.17 135 3 12쪽
71 70화 24.07.16 13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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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8화 +1 24.07.14 145 4 12쪽
68 67화 +1 24.07.13 144 5 12쪽
67 66화 24.07.12 17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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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4화 24.07.10 16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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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화 +1 24.07.04 16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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