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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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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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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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4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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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DUMMY

정원택은 여전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는 눈치였다.


‘‘뭐라고?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는 광고문구와 문창섭 차장 네 여론조작이랑 관계있다고? 지금 강소장, 나랑 뭐 수수께끼 게임이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정선생님! 사랑만 움직이나요?’’

‘‘그럼?’’

‘‘리을을 시옷으로 한 번 바꿔 보시죠?’’

‘‘뭐라고? 리을을 시옷으로 바꿔?’’

‘‘예.’’

‘‘무슨 리을을 무슨 시옷으로?’’

‘‘사랑을 사상으로요.’’

‘‘사랑을 사상으로?’’

‘‘예.’’

‘‘그럼, 사상도 움직이는 거다?’’

‘‘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게 바로 그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김여중을 힐끔 쳐다보았다.

사상도 움직이는 거야, 라는 말이 나오자 김여중은 순간 움찔하는 기색이었다.

다시 말해, 김여중은 익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

그것은 다름 아닌 김여중의 옛 동지, 진보 정권 시절 청와대 수석에 국정원 차장을 역임하며 핵심 브레인 중 하나로 활약했던 문창섭이 진보 진영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창섭은 여느 때처럼 진보 진영 선거 캠프의 주요 전략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었다.

갈수록 양극화 되는 현대 정치 지형에서 어느 나라나 공히 고민하고 있는 선거 전략 방법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집토끼만 최대한 결집시켜 승부를 보느냐

또 하나는 외연 확장을 위해 산토끼를 잡으러 가느냐

바로 그 두가지다.


문창섭은 후자를 주장했고, 당시 선거 캠프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무리 전략이 그럴 듯해도 필드에서 실행이 제대로 안 이루어지면 일을 그르치게 되는 법.

결국 중원 싸움에서 보수 진영에 밀리면서 진보 진영은 근소한 차이로 대선에서 패배하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강성 지지자들이 패배의 책임 소재를 묻는 장에서 문창섭을 핵심 전범 중의 하나로 지목하며 무차별 공격을 가한 것.

그로부터 문창섭은 운동권 대학생 시절 이래 무려 40년 가까운 세월 몸 담고 있던 진보 진영에 처음으로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만다.


사람들 눈을 피해 야인 생활을 하던 지난 몇 년 간 그는 결국 전향을 결심하게 되고 이번 총선에 보수 진영 승리를 위해 역할을 자임하게 된다.

그러면서 보수진영을 후원하는 재력가 하나와 연결이 닿으면서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 이라는 여론조사 업체를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니까 강소장 말은 문차장이 이제 보수로 확실히 전향했다는 이야기야?’’

‘‘뭐 보수로 확실히 전향했다기 보다 더 이상 진보주의자는 아니라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이건 정말 김선생님이 대답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


정원택이 김여중에게 또 물었지만, 김여중은 고개를 슬쩍 저어대기만 할 뿐이었다.


‘‘음, 좋아. 다 좋다고. 강소장 말 팩트라고 치자. 백 번 양보해서 다 팩트라고 치자고. 근데, 문차장이 왜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오버하는 여론조사를 내보냈냐고? 난 이게 정말 이해 안 가고 궁금하다고. 내가 아는 문창섭은 이렇게 오버하는 사람이 절대 아닌데. 얼마나 치밀하고 정교한 양반인데. 누구보다도 현실 인식에 밝은 사람인데. 대체 이게 무슨 꿍꿍이냐고. 그거에 대해서도 뭐 강소장 생각하는 게 있나?’’


정원택이 속사포처럼 내게 쏘아붙였다.


‘‘음 ......’’


사실 방금 전 나타난 프롬프터에는 이에 대한 답변까지는 나오지 않았었다.

다시 말해, 지난 대선 과정을 통해 문창섭이 진보진영에 회의를 느끼고 우클릭을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우파 쪽 재력가 투자를 받아 여론 업체를 만들었다는 것.

여기까지만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프롬프터에게 아쉽다거나 야속하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진정한 교재는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게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니까.

이제부터는 전적으로 내 몫인 것이다.


‘‘문차장이 보수가 오히려 이길 거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여론조사 결과를 만들어낸 건, 외람된 말씀이지만, 정선생님과 다른 전략을 취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나와 다른 전략?’’

‘‘예.’’

‘‘내 전략이 뭔데?’’

‘‘뭐 정선생님뿐 아니라 김선생님도 그렇지만, 판세 예상에서 일부러 자기 진영이 많이 밀린다 엄살을 부리시면서 결집시키려는 전략이시잖아요.’’

‘‘허허, 참나. 좋아! 그럼, 문창섭 전략이 나랑 다른 전략이라니, 그건 정확히 무슨 뜻이야?’’

‘‘정원택 선생님께서 엄살을 피우시면서 보수층 유권자 위기감을 고조시켜 결집시키려는 전략이라고 한다면, 문창섭 차장님께서는 정 반대로 뻥을 좀 치시면서 보수층 유권자를 패배감에서 깨어나게 하시려는 전략인 거죠. 그러니까 문차장님이 오히려 정선생님보다 지금 상황을 보다 비관적으로 보고 계신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정부 여당 쪽에서 딱히 선거 판세를 반전시킬 카드가 없어 보이니 아예 자신이 이 여론조사 카드로 반전시키려 드시는 걸 겁니다. 이번 선거 거의 포기하고 있는 보수 쪽 유권자 층에서 어라? 이런 여론조사 결과도 있네? 고성능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썼다고 홍보도 하니 그럼 기존 여론조사 업체 조사가 잘못 된 건가? 하긴 요즘 여론조사는 많이 하지만 오히려 예전보다 잘 맞지도 않더만. 조작도 많이 하는 것 같고. 그럼, 우리 애국보수들 다시 한 번 일어나볼까, 뭐 이런 선동을 꾀한다고나 할까요?’’


하하하, 하하하.


내 설명을 듣던 정원택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그는 내게 엄지 척을 해 보였다.


‘‘강소장! 지금 강소장 말이 사실이든 소설이든 간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 이건 소설이라도 정말 잘 쓴 소설이야. 아주 핍진성이 대단한 소설이라고! 하하하하.’’


그 사이, 나는 슬쩍 김여중에게로 시선을 던져 보았다.

그는 여전히 옅은 미소를 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피부색이 조금보다 훨씬 상기된 빛을 띠우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방금 전 내 말에 그 역시 핍진성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그는 애초부터 내가 지금 이야기한 내용과 거의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참! 근데 말이야, 강소장. 이 신박한 가설의 근거는 뭔가?’’

‘‘아! 이 가설의 근거요?’’

‘‘응. 개인적으로 강소장도 김선생님처럼 문차장이나 그쪽 누군가와 연이 좀 있나?’’

‘‘에이, 제가 어떻게 그쪽 분들하고 인맥이 있겠습니까?’’

‘‘그럼 대체 어쩌다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 거야?’’

‘‘음 ...... 그건 ......’’


정원택과 김여중이 동시에 나를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이것도 움직이는 거니까요.’’

‘‘으잉? 이거라니? 그게 뭔데?’’

‘’사랑도 움직이는 거고, 사상도 움직이는 거고 ...... 제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통찰력도, 분석력도, 예측력도 움직이는 거니까요, 하하하.’’



+++



녹화를 마치고 나서 나는 김피디와 일대일 면담을 요청했다.


‘‘오늘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소장님.’’


현재 본인 방송 시청률 상승세의 견인차인 나를 향해 김피디는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요즘 강소장님 분석력, 식견, 언변 정말 모든 게 절정을 이루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아이고! 제 그 모든 게 이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에? 무슨 앞이요?’’

‘‘저를 과감하게 픽업한 김피디님의 혜안과 결단력 앞에서 말입니다, 하하하.’’

‘‘하하하, 역시나 강소장님 순발력은 당해낼 재간이 없네요. 참! 근데 하시고 싶은 말씀은?’’


내가 다소 조심스럽게 어조를 바꾸어 말했다.


‘‘아까 우리 녹화 중 문창섭 차장님 여론조사 업체 부분 있잖아요.’’

‘‘예. 그거 왜요?’‘’

‘‘그 부분은 좀 들어내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문제의 문창섭 여론조사 주제에 이어 소소한 다른 테마 몇 개를 다루는 동안 나는 속으로 결심했다.

방송 끝나자마자 김피디에게 얼른 달려가 이 말을 해야겠다고.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소송 당할 것 같아서였다.


시사평론가들 방송 발언으로 고소고발 당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실력도 없는데 벌금까지 내면서 살 수는 없어서 최대한 조심하며 살아온 평론가 인생이었다.

게다가 캐릭터 자체가 공격 쪽이 아니라 수비 포지션이면서 자학하는 캐릭터다 보니 다른 평론가들에 비해 리스크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다른 시사평론가들 사례를 미루어 봤을 때

문창섭 차장 건에 관한 나의 발언은 빼박 벌금형이었다.


여론조사 업체가 의도를 가지고 조작을 시도했다는 식의 발언.

이건 내가 문창섭이라도 나를 고소했을 것이다.


‘‘예, 그러죠. 저도 이건 편집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쟁여놓았다가 언제 자료화면으로 쓰던가 하죠.’’


약간은 의외였다.

김피디가 너무나 순순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으니까.


김피디가 이렇게까지 몸 사리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자기가 원하는 장면은 국장하고도 언성 높이며 대판 싸우면서 관철하던 사람인데.


‘‘사실은 김여중 선생님도 나가시면서 귓속말로 그러셨거든요.’’

‘‘예? 김선생님이 뭐라고요?’’

‘‘자기가 한 번 문창섭 차장 쪽에 알아볼 테니까 그때까지는 오늘 문차장에 관한 내용은 방송 보류했으면 좋겠다고요.’’

‘‘아! 그랬군요.’’

‘‘원래 김선생님이 정선생님보다는 편집 요구 많이 안 하시는 분인데, 이렇게 간만에 부탁하시는 거니 들어드려야죠, 하하하.’‘

‘‘예, 그렇군요. 사실 저는 저대로 명예훼손 소송 들어올 것 같아 쫄려서요.’’

‘‘하하하, 예,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세 명 다 이해관계가 딱 맞아 떨어지네요. 잠정적으로 그 부분 편집 결정하는 게.’’

‘‘예? 세 명 다요?’’

‘‘예, 세 명 다요.’’

‘‘아니, 저나 김선생님 말고 정선생님한테도 그 부분 편집하는 게 뭐 이익되는 면이 있나요?’’

‘‘하하하.’’


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묻자 김피디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나더니 이윽고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아니요. 정선생님이 아니라 저요, 저.’’

‘‘예에? 김피디님이요?’’

‘‘예, 강소장님, 김선생님, 그리고 저, 세 명 이해관계가 딱 들어맞네요. 정선생님한테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하하하.’’

‘‘근데 김피디님한테는 무슨 이익이 ..... 보통 이 경우 출연자 개인 발언이니까, 고소장이 날아와도 저한테 날아오지, 프로그램 제작진한테 날아오지 않을 텐데?’’


내가 다시 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아니요. 저는 고소장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요. 문창섭 차장님 여론조사 업체 부분 들여내면 다른 부분을 더 살릴 수 있어서요.’’

‘‘예에? 다른 부분이요?’’

‘‘예, 시사 방송 패널하면서 한 당에 말도 안 되게 편파적인 발언만 일삼다가 그 당에 비례대표 신청한 임민정 교수나 자신의 1인 시사 방송을 가지고 공천 받으려고 온갖 협잡 짓을 하고 있는 방용섭 전 시장. 이런 사람들 까는 부분을 더 늘일 수 있으니 저한테도 대단한 이득이죠. 제가 이래뵈도 시사 프로 12년차 피디인데 이런 시사 방송 부조리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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