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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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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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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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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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2화

DUMMY

문창섭이 나를 얼굴 마담으로 영입하려고 하는 이유를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만약 예지호 총장이 본격적으로 대선에 뛰어들게 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그의 집안이 될 거라고 봐요. 일반인과 너무나 위화감이 생기는 집안이니까. 사촌들까지 초 엘리트들이 즐비한데다가 설상가상 처가는 재벌 가문. 거기에 캠프 구성까지 엘리트들로 구성되면 분명히 그게 문제가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

‘‘예, 이제야 제가 말한 얼굴마담 의미를 알겠어요, 강소장?’’


진짜 자타가 공인하는 지략가답다.

예지호의 엘리트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삼류 시사평론가로 전전하다 요새 좀 치고 있는 나를 영입하겠다는 의도.

이거 어디 범인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일까?


‘‘좀 불쾌한 이야기일까요, 강소장?’’

‘‘예? 아, 아니요. 부, 불쾌하긴요. 제가 엘리트랑 거리가 먼 건 엄연한 팩트인데.’’

‘‘대신 일이 잘 진행되면 개국공신으로 확실히 밀어드릴 겁니다. 그건 제가 이 자리에서 확실히 약속드릴게요.’’

‘‘아! 예.’’


생각지도 않은 일요토론 출연으로 나는 새로운 꿈이 하나 생겨났었다.

다름 아닌 일요토론 사회자.

50년 이상 전통의 양복집에서 수백 만원짜리 정장을 차려입고 지금 일요토론 사회를 맡고 계신 교수님 못지않은 미중년 포스를 뿜어내며 진행을 맡는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잠깐 그런 꿈을 꾸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문창섭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꿈의 기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장차관이나 청와대 수석?


예지호라는 원석에 문창섭의 가공을 거치면 명품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터.

다시 말해 차기 정권을 잡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거기에 내가 방금 전 문창섭 말대로 개국공신 대접을 받게 된다면?

앞 서 말한 대로 장차관이나 청와대 수석 자리까지 노려볼 수 있겠고 한 가지 더.

송주나나 신선혜나 한소라보다 더 나은 혼처가 나를 기다리고 있겠군.


푸하하하하하하하!


‘‘저기 근데 차장님.’’

‘‘예. 뭐든지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요.’’

‘‘만약 벌써부터 팀이 비밀리에 운영된다면, 저는 거기서 어떤 역할을 맡는 건가요?’’

‘‘한 1년 정도는 지금 내 역할과 비슷한 역할 맡아주면 돼요.’’

‘‘차장님과 비슷한 역할이요?’’

‘‘예. 예지호 총장 임기가 1년 정도 남았잖아요. 그래서 총선 끝나고 몇 달 후부터 우리 업체에서 차기 대선 후보 조사에 예총장을 본격적으로 넣기 시작할 거예요.’’

‘‘아하!’’

‘‘아마 그 효과는 엄청날 거예요. 다른 업체들도 하나 둘 따라서 예총장을 집어 넣으면바람이 안 불래야 안 불 수 없을 테니까요. 물론 예총장은 IMF 총장 임기 마칠 때까지 차기 대선에서 대해서는 가타부타 절대 이야기 못 하게 할 거고요.’’

‘‘외곽에서부터 군불을 때는 전략이네요.’’

‘‘바로 그거죠. 그러니까 여론조사 쪽에서는 내가 그 군불을 떼는 거고, 방송에서는 .....’’

‘‘저요?’’

‘‘예. 그렇게 쌍끌이 작전으로 가자는 게 지금 내 전략이에요.’’

‘‘아하!’’


문창섭의 설명을 들으니 이건 더 더욱 실크로드다.

한 마디로 문창섭과 동급으로 예지호 대선 가도에 내가 역할을 수행한다는 이야기.

만약 정말 꿈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단순히 장차관이나 청와대 수석이라는 직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권 실세 중의 실세가 된다는 이야기 아닌가.


‘‘내가 잠깐 좀 찾아보니까 현재 강소장께서는 상당히 파급력 있는 프로그램들에 많이 출연하고 계시더군요. 중구난방이니 시사팩폭쇼니. 그런 데서 알게 모르게 예지호 총장 이야기를 슬쩍 슬쩍 시간 날 때마다 흘리면 됩니다. 너무 대놓고 하면 티가 나니까 예지호 총장네 처가 쪽 사업체 미담이라든지 뭐 그런 걸 우선 흘리고 나서, 내가 여론조사에 예총장을 집어넣은 후에는 본격적으로 예총장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흘리는 거죠. 물론 우리 쪽에서 예총장에 관한 고급 정보들을 강소장에게 끊임없이 계속 제공할 거고요. 다른 일반 기자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로요.’’


나는 한참 설명을 이어가고 있는 문창섭을 바라보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게 진짜 정치구나!


순간순간 임기응변과 순발력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것도 정치겠지만,

이렇게 시간을 길게 내다보고 일찌감치 정교한 플랜을 짜내어 실행에 옮기려는 것.

이런 게 진짜 정치라는 생각이 불현 듯 들게 되었다.


‘‘물론 아직 시간 여유는 충분하니까요. 강소장님, 천천히 생각하면서 결정 주시면 됩니다. 자! 오늘은 그 이야기는 이 정도 선에서 마치고요. 식사 하시죠. 여기 이 전복찜이 정말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별미에요. 참! 핸드폰은 다시 주머니에 넣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식사를 하면서 나와 문창섭은 다른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현 총선 분위기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또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정세, 혹은 최근 일어났던 이런 저런 사건 사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나는 입으로는 문창섭과 대화를 나눈 척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그가 방금 전 제의해 온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주제 이야기를 하다가도 느닷없이


‘‘차장님! 방금 전 말씀하신 그 예총장 캠프에 들어가는 거, 저 바로 시작할게요.’’


라고 말하고픈 유혹에 시달렸다.


내 입장에서 문창섭이 해온 제안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 자체였으니까 말이다.

설령 문창섭이 짜놓은 예지호 차기 대권 플랜이 중간에 생각지도 않은 암초를 만나 좌초된다고 해도 밑질 거 하나 없는 장사가 될 것이다.


예지호, 문창섭을 기본옵션으로 하면 뉴스에서나 볼 수 있던 내로라하는 인물들과 교류를 하며 인맥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캠프에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면서 엄청난 현장 경험과 이력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말로만 듣던 꽃놀이패가 이런 거란 말인가, 하하하.

이다지도 쉬운 게 인생이거늘 예전의 나는 왜 이렇게 인생이 어렵냐 그리 불평불만에 가득찼었단 말인가.

인생이 제일 쉬웠어요, 인생이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으흐흐흐, 으하하하하.


반주로 나온 청주도 맛이 참 좋았다.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목구멍을 간질거리며 술술 넘어갔다.


그런데 대낮부터 알딸딸해지면서 내게 유혹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면서 문창섭은 나에게 천천히 시간 여유를 가지고 생각한 후 결정하라고 말한 바 있었다.


내 입장에서도 그랬다.

너무 좋은 제의라고 덥석 무는 건 영 폼이 나 보지 않았다.

연애처럼 어느 정도 밀당이 필요한 상황이다.

만약 내가 손을 번쩍 들며


‘‘차장님! 저 바로 하겠습니다! 차장님을 위해 이 한 목숨 다 바치겠습니다!’’


이러면 문창섭은 속으로 이러겠지.


‘‘그럴 줄 알았다, 이놈아. 아주 구워삶기 좋은 재료 하나가 도착했군.’’


그러니 괜히 좀 뻐팅기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누가 봐도 정상이었다.


하지만 나, 강대구, 원래 심지가 없는 놈이다.

멋들어지게 표현 하자면, 바람을 벗 삼아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놈이다.


자존심 싸움, 몸값 올리기, 수 싸움, 내숭, 표정관리.

그게 다 무슨 시간낭비란 말인가.


맛있는 건 바로 덥석 물어 얼른 삼키자.

혹시나 나보다 더 괜찮은 놈이 나타나 그새 내 걸 낚아챌지 모르는 비정한 세상 아닌가.


맛있는 청주에 알딸딸해진 기분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생각이 바뀌어져 갔다.

그리하여 다시 또 내 잔에 술을 따라주려는 문창섭을 향해


‘‘저기 차장님!’’

‘‘예, 강소장. 병 다 비운 것 같은데 어떻게, 한 병 더 할래요? 나야 뭐 낮술이 원래 체질인데 강소장은 오늘 다른 일정 없나요?’’

‘‘예, 뭐 술을 더 시켜야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차장님과 좀 세게 건배를 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나와 좀 세게 건배?’’

‘‘예, 방금 전 말씀하셨던 예지호 IMF 사무총장 대권 프로젝트 ......’’

‘‘저기, 강소장.’’

‘‘예?’’

‘‘목소리를 좀 낮추지.’’

‘‘아차! 죄송합니다. 제가 술김에 좀 흥분해서 ...... 아무튼 차장님이 꾸미시는, 아니 설계하고 계시는 그 프로젝트에 저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아! 정말?’’

‘‘예, 그럼요. 쇠뿔도 당긴 김에 당장 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처럼 결단력 넘치는 사람이 정치하는 그런 시대가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이렇게 호탕하게 웃으며 말할 뻔 했다.

하지만 문창섭이 따라주는 술을 받으며 당신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입 안에서 막 준비하고 있는 그 순간이었다.


내 눈앞에 역시나 다시 또,

프롬프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역시나 다시 또,

프롬프터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었다.


‘‘강소장. 병 다 비운 것 같은데 어떻게, 한 병 더 할래요? 나야 뭐 낮술이 원래 체질인데 강소장은 오늘 다른 일정 없나요?’’

‘‘......’’

‘‘강소장? 강소장?’’

‘‘아, 아. 죄송합니다.’’

‘‘하하. 나 이 장면 중구난방에서 본 것 같은데.’’

‘‘예?’’

‘’강소장,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말 멈추고 허공 바라보는 거요. 그러다가 방송 중 우리 김여중 그 양반한테 한 소리 듣고 그러지 않았나, 하하하.’’

‘‘아! 예. 그, 그런 적 있었죠. 김여중 선생님이 그래서 저보고 방송 중에 멍 때리는 사람 첨 봤다고 놀리셨죠.’’

‘‘맞아요. 그랬었지. 그래서, 술 한 병 더 시킬까? 난 괜찮은데. 간만에 말 잘 통하는 젊은 친구 알게 되어서 반갑고. 강소장님은 어때요?’’

‘‘음 ......’’

‘‘왜요? 다른 일정 있어요?’’

‘‘아니요. 다른 일정은 전혀 없는데요 ......’’

‘‘근데요?’’

‘‘저, 좀 그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


내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예? 아, 아니, 왜요?’’


문창섭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가, 갑자기 몸이 불편해서요.’’

‘‘왜요? 어디 아파요?’’

‘‘아! 제가 술이 그렇게 세지 않아서.’’

‘‘아니, 강소장, 술 되게 세다고 들었는데.’’

‘‘예? 아, 예. 하하. 역시나 국정원 차장님이라서 그러신지 정보력이 ......’’

‘‘예?’’

‘‘아, 아닙니다. 아무튼 저 그만 가보겠습니다.’’

‘‘아! 뭐, 정 그러면 할 수 없지. 나는 간만에 온 김에 다른 테이블에 아는 사람도 있고 해서 좀 이따 가려고요.’’

‘‘예, 그러시죠. 음식도 많이 남았는데. 너무 맛있는데. 죄송합니다, 차장님.’‘’

‘‘아이, 무슨. 몸이 제일 중요하죠. 강소장도 이제 서서히 관리 할 나이인데. 자! 내 강소장 문 앞까지 배웅 해드리지.’’


문창섭이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 순간, 내가 바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참! 그리고 방금 전에 차장님께서 제안하신 거 있잖아요.’’

‘‘예. 그거, 왜요?’’

‘‘그거는 못할 것 같습니다.’’

‘‘예? 왜요?’’


문창섭이 동그랗게 눈을 뜬 채로 되물었다.


‘‘제가 몸이 안 좋아서 바로 설명은 못 드리겠고, 좀 이따가 문자로, 좀 정리된 글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꾸벅 문창섭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나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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