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22,463
추천수 :
509
글자수 :
454,020

작성
24.07.19 02:04
조회
131
추천
4
글자
13쪽

73화

DUMMY

문창섭에게 문자를 보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집에 와서 30분 정도 문장을 마사지하고 난 후 보냈다.



‘‘문차장님! 우선 귀한 시간 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차장님을 알게 된 것만으도 저에게는 엄청난 영광이었는데, 미천한 제게 엄청난 프로젝트 참여 제의를 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었습니다. 사실 문차장님뿐 아니라 예총장님 역시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제의를 부득이하게 거절한 이유는 평소 시사평론에 대한 제 개인적 소신 때문입니다. 시사평론을 하면서 진보성향이든 보수성향이든 이념은 가질 수 있지만 인물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현재 강대구 정치연구소라는 사업체를 운영하지만 실질적으로 페이퍼 컴퍼니와 다를 바 없게 운영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중구난방에 출연한 이래로 몇몇 정치인들이 컨설팅을 부탁해왔지만 전부 거절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정인을 컨설팅하다 보면 아무래도 제 시사평론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시사평론가라면 이념에 대해서는 중립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인물에 대해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문차장님이 해주신 귀한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는 바입니다. 아무쪼록 언젠가 다른 좋은 프로젝트를 통해 문차장님과 다시 함께 하길 기원하겠습니다.’’



잠시 후, 문창섭으로부터 답장이 도착했다.



‘‘강소장님,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대충 알겠습니다. 비록 제 제안을 거절당했지만 건강한 사고를 하는 논객을 만나게 되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흐뭇하네요. 아무쪼록 강소장님이 말씀하신대로 언젠가 좋은 다른 프로젝트가 있으면 우리 같이 일을 하기로 해요. 그럼, 휴일 잘 쉬시고 또 다음 주부터 좋은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창섭이 내게 보낸 답장은 기대했던 대로였다.

왜냐하면 그와 식사 도중 내 눈앞에서 보였던 프롬프터 내용은 이러했으니까.



[문창섭이 지금 제안하고 있는 예지호 총장 캠프 참여는 강대구를 시험해 보기 위한 일종의 떡밥임. 고로 덥석 물어서는 절대 안 됨. 현재 예지호는 대권 가도에 뛰어들기보다 IMF 사무총장 연임을 더 원하고 있음. 그래서 문창섭의 대권 플랜 제의에 시큰둥한 반응임. 아무튼 문창섭은 차기 대권에 예지호와 같은 새 인물을 킹 메이킹하고 싶어함. 그러면서 자기 사무실에도 기성정치권에 때 묻지 않은 참신한 인재들을 영입하려고 함. 사욕에 사로잡혀 있거나 이념에 집착하지 않는 인재. 그 중 하나가 강대구임. 고로 강대구는 이 떡밥 덥석 물지 않고 거절하면 문창섭으로부터 오히려 더 신임을 얻게 되면서 다음에 더 좋은 제안을 받게 될 것임. 문창섭이 길게 보듯이 강대구도 길게 봐야 함]



프롬프터야, 평소에도 늘 고마움을 느껴왔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정말로 고맙다.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시험 문제를 사전에 유출시켜 줘서.

하하하, 하하하.



+++



이전에 나는 무늬만 시사평론가였던 것 같다.

정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으로만 나불대었던 것 같다.


반면 프롬프터가 내 눈앞에 등장한 이래로 나는 진짜 정치 세계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문에 기사화되는 건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이고,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 진짜 커다란 덩어리가 숨어 있는 것이 정치였다.


당대의 지략가 문창섭과의 치열한 머리싸움 수 싸움에 나는 정신적 녹초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방식은?


운동이나 게임이나 레저 활동이나 뭐 그런 게 아니다.

입으로 또 수다를 떠는 거다.

더군다나 오늘 아침 일요토론 프로 출연이라는 좋은 소재거리도 있지 않나.



‘‘아이 시발 진짜.’’

‘‘어허! 아이 시발이라니요? 어찌 과년한 처자가 오라버니한테 하는 말버릇이 그리 비천할 수 있소.’’

‘‘아이 시발 진짜 목소리 똑바로 안 풀래?’’

‘‘어허! 주화옹주! 정녕 친 오라버니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른단 말이오?’’

‘‘니가 뭐 하는 놈인데?’’

‘‘오늘 아침 일요토론에 출연한 사람이올시다.’’

‘‘일요토론? 그게 뭔데?’’

‘‘역시나. 우리 가족 중에 일요토론 아는 사람 아무도 없을 줄 알아 일부러 말을 안 했지요. 일요일 아침에 하는 토론프로를 볼만큼 부지런하면서 배우신 분이 어찌 내 피붙이 중에 있을 수 있단 말이오. 어서 다시보기나 쳐 보시오. 내 오늘 국회부의장 여당 원내대표 국정원 차장 이런 사람들과 겸상하고 온 몸일소이다.’’

‘‘뭐? 국회부회장?’’

‘‘국회부회장은 없소이다. 국회부의장이지.’’

‘‘그래? 그렇게 높으신 양반들이랑 같이 있었으면 출연료 좀 세겠네. 오빠! 돈 좀 빌려주라. 애 분유값이 떨어져서, 흑흑흑.’’



혹시나 부정이라도 탈까봐 일요토론 출연에 대해서는 사전에 아무에게도 이야기 안 했지만, 출연 직후 나의 영원한 사생팬 신선혜에게는 바로 피드백이 왔었다.



‘‘신변!’’

‘‘예, 오빠.’’

‘‘미안해. 아까 문자 받았는데 바로 연락 못해서.’’

‘‘아이, 괜찮아요. 와! 아침에 무심코 리모컨 돌리다가 오빠 얼굴 보고 진짜 깜짝 놀라서요.’’

‘‘아이고. 신변도 참. 일요일에는 좀 늦잠도 자고 그러지. 그렇게 바쁘게 살다가 과로사 당하고 그럴 지도 몰라, 이 사람아, 하하하.’’

‘‘아이, 저보다 오빠가 훨씬 더 바쁘게 사시는 것 같은데요, 뭘.’’

‘‘하긴. 요즘 나의 경우는 식사 자리도 일의 연장선인 경우가 많다네. 거기 문창섭 차장 있잖아.’’

‘‘아! 예. 국정원 차장 하셨던 분.’’

‘‘역시나 우리 신변은 배운 사람답네. 방금 어떤 년은, 아니 어떤 애는 국정원 차장이랑 같이 프로 출연했다니까 돈 좀 빌려달라고 하더만. 아무튼 그 문차장님이랑 방송 끝나고 더 이야기 할 게 좀 있어서 같이 밥 먹고 오느라고. 그래서 좀 시간이 없어서 신변한테도 이렇게 연락 늦게 하게 된 거야.’’

‘‘어머나! 정말이에요? 와! 진짜 오빠 요즘 너무 잘 나가신다.’’

‘‘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변한테는 바로 연락을 했어야 하는데. 워낙 또 차장님과 식사 하면서 중요한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와서.’’

‘‘프로젝트요? 또 무슨 프로젝트요?’’

‘‘에이, 그건 말할 수 없지. 대화 상대가 보통 상대가 아니었는지라.’’

‘’아하! 예, 그럼요. 오빠,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요.’’

‘‘그렇지? 이해 가지? 아! 솔직히 이런 경험 난생 처음이었거든.’’

‘‘예? 어떤 경험이요?’’

‘‘밥 먹으면서 핸드폰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먹기. 녹취 안 한다는 거 보여드리려고.’’

‘‘아하!’’

‘‘무슨 첩보 영화 찍는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야! 진짜 그러네요.’’

‘‘아무래도 국정원 차장님과 이야기하는 거니까, 중간중간 국가적 기밀도 있고 그러니까 말이야. 참! 신변! 혹시나 해서 노파심으로 하는 말인데, 내가 문차장님하고 밥 먹은 이야기도 어디 가서 절대 하면 안 돼. 괜히 잘못 소문 퍼지면, 무슨 말인지 대충 알지?’’

‘‘그럼요. 절대 안 하죠, 호호호.’’



신선혜에 이어 또 친구 놈 몇에게 찐하게 허세를 좀 부리고 나서 마침내 시사팩폭쇼 MC 최웅과의 통화가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내가 전화를 건 게 아니라 저녁 무렵 그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야! 휴일 잘 보내고 있냐?’’

‘‘에이, 이 인간 또 시작이네.’’

‘‘뭐가, 인마?’’

‘‘오늘 아침에 봐 놓고서.’’

‘‘뭘 봐, 인마?’’

‘‘흐흐흐. 실시간? 다시 보기?’’

‘‘밑도 끝도 없이 또 뭔 소리야, 인마?’’

‘‘밑도 끝도 없이 또 시치미는, 히히. 에이,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무슨 공직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귀하 프로는 절대 배신 안 때린다니까. 내 태반 같은 프로인데 내 어찌 매몰차게 등을 보이겠소, 푸하하하.’’

‘‘이거 완전 미쳤네, 미쳤어. 야! 뭔 소리인지 모르겠고, 아니, 관심도 없고, 본론 들어갈게.’’

‘‘아이, 본론 들어가기 전에 서론 좀 오늘은 길게 하자. 와! 진짜 사람들 아우라가 다르더라. 연예인 아우라랑은 또 다른 아우라야.’’

‘‘아이 새끼, 진짜.’’

‘‘진짜라니까. 얼굴에 기름이 좔좔 흐르는 게 진짜 우리랑 다른 세계 사는 사람 같더라.’’

‘‘야! 너 진짜 뭔 이야기하는 거야? 짜증나게 시리. 피곤해 죽겠는데.’’


최웅이 버럭 화를 냈다.

물론 쇼인 것은 바로 티가 났다.


‘‘형! 진짜 오늘 아침에 못 봤어? 아니면 다시보기로도 못 봤어?’’

‘‘뭘 못 봐, 인마. 캠핑 갔다가 방금 전에 집에 돌아왔는데.’’

‘‘뭐? 캠핑?’’

‘‘그래, 인마.’’


캠핑 갔다 왔다라.

그럼 좀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다.


‘‘아하! 캠핑? 주말에 형네 캠핑 갔다 왔구나!’’

‘‘그럼, 인마! 나 같은 유부남이 주말에 처자식 데리고 이런 봉사활동 안 하고 어떻게 이 험한 세상 살아남을 수 있냐, 인마! 이 시키, 장가도 안 가서 저출산 국가 재앙의 밀알이 되는 시키가 짜증나게 못 알아듣는 소리나 계속 하고 있고, 쯧쯧.’’

‘‘미안, 미안! 그럼, 사전에 미리 말을 좀 하지.’’

‘‘뭐야? 인마, 우리 집 캠핑 가는 걸 너한테 왜 사전에 이야기해야 되는데?’’

‘‘하긴, 그것도 그러네. 나도 뭐 일요토론 출연한 거 사전에 이야기 안 했으니까, 으흐흐흐흐.’’

‘‘뭐? 일요토론?’’


최웅이 깜짝 놀라는 투로 되물었다.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으며 내가 말을 이어갔다.


‘‘으응. 나 오늘 오전에 일요토론에 잠깐 갔다 왔거든요. 아이, 확실히 고관대작들 때깔이 우리 일반인이랑 좀 다르더라고. 얼굴에 기름기 좔좔 흐르는 게 연예인 아우라랑 또 좀 다르더라고요. 이제야 내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이해가 가시죠, 최엠씨님? 푸하하하하.’’

‘‘난 또 뭐라고. 고작 그거 빌드업이었냐? 출연진이 누구였는데?’’

‘‘문창섭, 박태호, 민동호. 뭐 시사팩폭쇼 사회자님이니 그분들 이름만으로 됐죠? 따로 그분들 직책이나 이력 부연설명 또 필요 없겠죠? 하하하.’’

‘‘으이그. 난 또 뭐라고. 으이그, 유치한 시키.’’

‘‘전화 끊고 바로 다시 보기 콜?’’

‘‘다시 보기는 무슨. 요즘에 누가 그런 수면제 방송을 보냐. 시청률 요즘 뭐 1프로는 나온다냐?’’

‘‘어허! 어찌 이런 천민자본주의 화신 같은 말씀만 하시는지. 일요토론 같은 격조 높고 역사 깊은 방송이 어디 시청률로 함부로 평가 재단할 방송인가?’’

‘‘야! 됐고. 격조 없고 역사 없는 울 방송 내일 비정치토론 게스트 정해졌다. 나 그것 때문에 또 전화한 거야.’’

‘‘아이, 진짜.’’

‘‘뭐가 인마.’’

‘‘솔직히 그렇잖아. 전직 국정원 차장, 전직 국회부의장, 전직 여당 원내대표. 이런 사람들이랑 방송한 몸인데 하루 만에 또 어디 선거 때만 되면 출현하는 정치 조무래기들이랑 방송 하라는 거야. 다운 그레이드도 적당히 해야 다운 그레이드지. 내일은 그냥 다른 거 하자.’’

‘‘푸훗!’’


핸드폰 너머에서 뭔가 회심의 미소의 기운이 느껴졌다.


‘‘왜 웃음?’’

‘’내일 게스트 출연자 명단이 누구인지나 알고 지금 지껄이고 있는 거냐?’’


느닷없는 협박조다.


‘‘누군데?’’

‘‘두두두두둥 ......’’


이런 게 초현실적인 육감인 걸까?

갑자기 두두두두둥 하는 환청이 들려오고, 등과 어깨 쪽에 소름의 기운이 쭉 뻗쳐왔다.


‘‘...... 임민정과 방용섭.’’

‘‘뭐, 뭐야? 이, 임민정과 바, 방용섭?’’

‘‘응. 니가 지난주에 중구난방에서 김여중 정원택과 같이 두 사람 엄청 까댔지? 임민정은 그동안 방송에서 편파적으로 진보 쪽 유리한 이야기만 하더니 얍삭하게 그 당 비례대표 신청했다고 까댔고, 방용섭은 개인방송에서 양아치 조폭 마냥 남 뒷조사 하고 협박하고 그러는 놈이 보수 쪽에 공천 신청 했다고 또 까댔고. 그래서 너한테 복수하는 장 마련해 주려고 비밀리에 두 사람 섭외에 들어갔지롱, 푸하하하하.’’

‘‘니, 니가 정녕 인간이냐? 세상에 뭐 이런 악마 새끼가 다 있어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83화를 끝으로 잠정 휴재에 들어갑니다 +2 24.07.29 56 0 -
84 83화 +3 24.07.29 90 5 12쪽
83 82화 24.07.28 104 2 12쪽
82 81화 24.07.27 118 5 12쪽
81 80화 +2 24.07.26 119 2 12쪽
80 79화 +1 24.07.25 117 4 12쪽
79 78화 +1 24.07.24 112 3 12쪽
78 77화 +2 24.07.23 127 3 12쪽
77 76화 24.07.22 130 4 13쪽
76 75화 +2 24.07.21 124 3 12쪽
75 74화 24.07.20 135 4 12쪽
» 73화 24.07.19 131 4 13쪽
73 72화 +1 24.07.18 130 5 12쪽
72 71화 +1 24.07.17 135 3 12쪽
71 70화 24.07.16 139 2 11쪽
70 69화 +2 24.07.15 143 7 12쪽
69 68화 +1 24.07.14 145 4 12쪽
68 67화 +1 24.07.13 144 5 12쪽
67 66화 24.07.12 178 4 12쪽
66 65화 +1 24.07.11 159 3 13쪽
65 64화 24.07.10 167 3 12쪽
64 63화 +1 24.07.09 170 4 12쪽
63 62화 24.07.08 180 7 13쪽
62 61화 24.07.07 174 6 12쪽
61 60화 +2 24.07.06 179 7 12쪽
60 59화 +1 24.07.05 166 6 12쪽
59 58화 +1 24.07.04 164 7 12쪽
58 57화 24.07.03 167 5 13쪽
57 56화 +1 24.07.02 179 6 12쪽
56 55화 +2 24.07.01 179 5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