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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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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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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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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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DUMMY

우진태의 생각지도 않은 발언에 초장부터 분위기가 많이 싸해졌다.

그냥 그럴 일 없을 거라고만 하면 되는 걸.

굳이 혀 깨물고 자살한다는 표현까지 쓰는 이유가 잘 이해가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발언 말미에 무슨 구국의 결단이라도 하는 듯한 결연한 표정까지 지어보였다.


‘‘아! 그,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자! 그럼, 두 분 다 확실히 정치 쪽은 떠나신 걸로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희 코너 취지와도 잘 맞네요. 정치인 불러놓고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거요, 하하하.’’


그래도 언제 정치 이야기가 튀어나오게 될지 여전히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래 정치판에서 지나치게 강한 부정은 더더욱 의심이 가게 되는 법.

또 혀 깨물고 자살했다느니 보다 더 한 표현도 은근슬쩍 뒤집는 건 일도 아닌 곳이 저 바닥이기도 하다.


‘‘자! 그러면 두 분께 정치 외적인 질문들 하나하나 본격적으로 해 보도록 하겠는데요. 지난주는 제가 따로 준비를 해 왔는데, 이번에는 인공지능이 선별한 질문이니까요. 혹시나 불쾌한 질문이시더라도 저한테 화 내지 마시고요, 하하하.’’


인공지능은 무슨.

내 말은 완전 뻥이었다.


책임 회피와 더불어 분위기 좀 재미있게 하려는 농담이었는데,

두 사람 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쨌든 여러모로 불편한 손님들임에는 틀림없다.


‘‘자! 그럼, 첫 번째 질문은요, 김용국 의원님께 여쭤보겠는데요. 정계은퇴하신 지 10년이 되셨는데 그 동안 어떤 일에 가장 행복감을 느끼시고 계신지.’’

‘‘음 ......’’


김용국이 바로 즉답하지 않고 잠시 고심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찾기 힘드신가요?’’

‘‘아니요, 고르기가 힘들어서요.’’

‘‘고르기가 힘들다면, 그만큼 많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요, 하루하루가 행복이고 천국이죠, 허허허.’’


평소 김용국의 딱딱하기 그지없는 이미지에는 잘 안 맞는 레토릭과 표정이었다.


‘‘하루하루가 행복이고 천국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렇죠?’’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무도 내 말에 신경 안 쓰고 관심 없어 하니까. 그러니까 하루하루가 행복이고 천국이지, 허허.’’

‘‘예에?’’


내가 고개를 한 번 더 갸웃거렸다.


‘‘사실 행복이니 천국이니 전부 상대적인 거잖아요. 어떤 의미에서 지금이 행복이니 천국이 아니라 그 전이 불행이나 지옥이었던 거지, 허허허.’’

‘‘그 말씀은, 정치하시던 때를 후회하신다는 말씀인가요?’’

‘‘에이, 그건 또 아니지. 방금 내가 말했잖아요. 모든 게 상대적이라는 거라고. 지금보다 그때가 좀 더 힘들었다 그 정도 의미의 이야기지, 허허.’’


10년의 세월의 힘 탓일까?

확실히 기존 알던 김용국이 아니었다.

뭐든 직설적인 어조에 수사법 같은 것도 전혀 쓰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표현하는 법이 없던 그였는데.


그런데 이전과 공통점이 또 없는 건 아니었다.



- 저 양반 이전이나 지금이나 재미없는 건 똑같네

- ㅋㅋ 컨셉 바꿨는데 그래도 여전히 잼 없음

- 왜 저래? 혼자 뜬 구름 잡고 있는 소리만 하고 자빠졌네

- 차라리 예전이 그립다.

- 나도 그럼. 예전에는 너무 답답하고 말 안 통하는 소리 하는 바람에 패러독스하게 종종 빵 터지는 부분 있었는데.



‘‘하하하. 두 분!’’


게시판 분위기를 보다 못한 듯 최웅이 끼여 들었다.


‘‘한 가지 유의사항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큰 돈 들여서 특별히 도입한 기술이 있는데요. 생방송 도중이지만 재미없는 부분은 편집하는 기술입니다.’’


최웅의 위트로 그제야 코너 시작 후 첫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어지는 김용국 반응이 또 좀 의외였다.


‘‘아휴, 너무 죄송합니다. 내가 이 젊은 사람들 방송 나와서 괜히 민폐만 끼치고 있는 것 같네요.’’


김용국이 정중하게 사과의 말을 전해왔다.


‘‘아, 아닙니다. 민폐는요 무슨.’’


김용국의 의외의 반응에 최웅이 오히려 좀 당황해 했다.


‘‘저기, 김의원님.’‘’


최웅의 위트와 김용국의 사과로부터 틈이 생겨났다.

나는 이걸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그에게 궁금했지만 쉽게 할 수 없는 질문을 하나 던지기로 했다.


‘‘이런 질문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혹시 인터넷 상에 나도는 의원님 별명 아십니까?’’

‘‘인터넷 상에 나도는 내 별명이요?’’

‘‘예? 아, 예.’’

‘‘그럼요, 다 알죠. 수꼴 꼴통의 상징이라고 해서 수꼴상, 보수 꼴통의 상징이라고 해서 보꼴상. 뭐 그런 거 말하는 거죠?’’


막힘없는 그의 답변에 내가 오히려 머쓱해졌다.


‘‘아! 다 아시는 군요.’’

‘‘아이, 그럼요. 정치 한다는 사람이 자기 별명도 모르고 살 수 있었나. 뭐, 그거 외에도 다른 것도 있었지. 말이 안 통한다고 해서 벽용국이니 콘크리트 김이니 하는 것들, 허허.’’

‘‘음, 그럼, 그런 별명 들었을 때 기분 안 나쁘셨어요?’’

‘‘아니. 전혀요.’’


김용국이 정말이라는 듯 힘차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답했다.


‘‘정말요?’’

‘‘그럼요, 강소장님은 울 나라 국회의원이 몇 명인 줄 알죠?’’

‘‘물론이죠. 300명 정도.’’

‘‘그렇죠. 근데 개 중에 몇 명 정도나 이름과 얼굴 외우고 있어요?’’

‘‘글쎄요.’’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 많을 걸요. 특히나 보수 쪽은 경상도 정치인, 진보 쪽은 전라도 정치인. 텃밭에 짱 박혀서 중앙 무대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거의 없는 정치인들 의외로 엄청나게 많죠.’’

‘‘예, 그렇긴 하죠.’’

‘‘강대구 소장도 모르는 정치인들이 한 둘이 아닌데 정치에 별 관심 없는 일반인들은 뭐 더 말 할 것도 없죠. 보통 한 삼사십 명 정도만 알아도 정치 고관여층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그래도 정치 고관여층들은 다 아는 인지도 정치인 아니었습니까? 호감이든 비호감이든 그거면 정치인은 된 거죠, 허허’’

‘‘아! ...... 예.’’


뭐 틀린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정치인들 사이에 아주 유명한 금언이 하나 있지 않은가.

부고 소식만 아니라면 어떤 나쁜 뉴스도 정치인들에게는 꼭 나쁜 뉴스가 아니라는.

그걸로 인지도를 올리면서 자양분 삼아 훗날 다른 일을 도모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용국이 이걸 이렇게 소탈하게 말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정계 은퇴한 지 10년이 지났다고 해도.


‘‘자! 그러면 이번에는 우진태 의원님께 여쭤보겠는데요. 요새 아무래도 불출마 선언을 하시니까 이전보다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으시죠?’’

‘‘아무래도 그렇죠.’’

‘‘요즘 아내가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는 언제신가요?’’

‘‘아내가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요?’’

‘‘예.’’

‘‘음 ...... 내 말 들어줄 때?’’


우진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좌중이 빵, 터졌다.

부연 설명이 이어지지 않아도 무슨 말뜻인지 다들 아는 것 같았다.


평소 진보 꼰대로 유명한 우진태.

국회에서 질문할 때도 질문이 아니라 일장연설이나 설교를 해서 비난 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닌 의원이었다.

한 마디로 자타가 공인하는 여의도 투 머치 토커인 인물이다.


‘‘하하하. 무슨 말씀인지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저기 있는 저희 스태프들 몇 분까지 웃음을 터뜨리시는 것 같은데요. 우의원님! 그럼 아내에게 요즘 무슨 말을 하십니까? 정치 이야기도 좀 하십니까?’’

‘‘아이, 무슨 정치 이야기를 해요.’’


우진태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주로 뭐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나요?’’

‘‘아이, 그냥 뭐 그냥 ...... 그냥 ...... 그냥 이런 저런, 뭐 ......’’


우진태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꼬리를 흘렸다.

이것 역시 우진태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질문 하나 하면 부연설명 정황설명 서브플롯 설명까지 해서 혼자 마이크 잡고 5분 10분 장광설을 늘어놓는 게 그의 전매특허였는데.


무엇이 이 두 사람을 이렇게 변하게 한 걸까?

정계 은퇴가 이다지도 사람을 바꾸게 한 걸까?

거꾸로 정치판이라는 게 사람의 본래 성정을 그렇게 망가뜨렸던 걸까?


이어지는 계속된 질문.

취미, 음식, 스포츠 뭐 이런 잡다한 주제를 특별한 맥락 없이 던지고 받고.


그런데 확실히 지난주에 비해 반응은 별로 안 좋았다.

김용국 우진태 두 사람이 의정활동 시절에 비해 맥 빠진 모습을 보인 탓도 있겠지만,

지난주 학교 후배 데리고는 그렇게 거칠게 다루던 내가 원로 정치인들 앞에서는 기를 못 펴는 것에 대한 비난도 많았다.


채팅창 반응이 별로 안 좋아 중간에 잠깐 정치 이야기를 할까 운을 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과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해 관두었다.

뭔가 상황에 활력소나 반전을 줄 수 있는 프롬프터도 딱히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방송 시간 막바지에 이르게 되었다.


‘‘자! 마지막 질문일 것 같은 데요. 혹시 두 분 가장 좋아하는 노래 추천 좀 해주시겠습니까? 먼저 우진태 의원님이요.’’

‘‘아! 나는 요즘 님은 먼 곳에 정말 많이 듣고 있습니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듣고 있어요.’’

‘‘그 노래 나온 지 되게 오래 된 노래 아닌가요.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뭐 그러면서 시작하는 노래 맞죠?.’’

‘‘그러게요. 근데 예전에는 그 노래 진가를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드니까 인생을 아니까 좀 알 것 같네요.’’

‘‘뭐 그런 노래 있죠. 저도 얼마 전 비틀즈 노래 정말 간만에 들었는데 진짜 가사가 새롭게 들리더라고요. 왜냐면 그 전에는 가사를 전혀 몰랐는데 이번에는 너튜브에서 가사 자막과 함께 들었거든요.’’


나의 시 덥지 않은 농담에 몇몇 사람들은 빵 터졌다.

반면 당사자인 우진태는 희미한 미소만 슬쩍 지어보였다.


‘‘자! 그러면 김의원님께서는 어떤 노래를 추천하시겠습니까?’’

‘‘나는요. 요즘 그 노래 많이 들어요.’’

‘‘무슨 노래요?’’

‘‘애국으로 가는 길이요.’’

‘‘애국으로 가는 길이요? 그런 노래가 있나요?’’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었다.

최웅 쪽에 슬쩍 시선을 던져보니 그도 모르는 눈치였다.

한소라는 더더욱 그렇고.

십여 명의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아는 듯한 눈치였다.

김용국 말고 다른 한 사람.

우진태는 그 노래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니, 김의원님! 그 노래 설마 윤만석이가 작곡한 그 노래 말하는 거예요?’’

‘‘예. 그 노래. 윤만석이 작곡한 애국으로 가는 길. 내 요즘 그 노래에 흠뻑 빠져 있어요.’’

‘‘아니, 김의원님 ......’’


우진태가 잠시 말을 못 잇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머! 이 노래 운동권 노래라고 되어 있는 데요.’’


그 사이 재빨리 검색을 마친 한소라가 말했다.


‘‘그러네. 와! 이 노래 골수 운동권 노래네요. 가사가 이게 뭐야? 식민지, 미제, 핏자국, 최루탄 ...... 아유 무서버라.’’


한소라가 건넨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최웅이 말했다.


‘‘김의원님! 이 노래를 김의원님이 왜 좋아하시는 거예요?’’


우진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김용국에게 물었다.


‘‘멜로디가 정말 좋더라고. 아이, 물론 가사는 안 좋아해. 가사는 내 삶과 애초 너무 안 맞지. 근데 얼마 전 우연히 들어봤는데 멜로디가 입에 딱딱 너무 잘 붙더라고. 그리고 또 제목이 너무 좋잖아. 애국으로 가는 길. 그때는 애국이 운동권 애들이 많이 떠벌리고 다니지만, 지금 애국은 우리 보수 쪽 애들 거잖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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