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록 (죄를 지운 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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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c
작품등록일 :
2024.05.2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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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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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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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사자 2

DUMMY

“선 사자, 그런데 좀 이상한데······ 뭔가, 내가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 드네······”

선이 경의 이름을 듣고 잠시 멈칫하는 사이 율이 이상함을 감지했습니다.

“에이, 그럴 리가요. 너무 오랜만에 목소리 듣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런 거겠죠······”

“그래, 그렇겠지?”

그 때 수화기 너머로 급하게 율을 찾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율은 선에게 조만간 다시 전화해서 제대로 못한 뱃사공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선은 파견으로 이승에 갔다가 만난 경을 떠올렸습니다.

경의 첫 인상은 희로애락에 무딘 사자도 마음이 흔들릴 만큼 아름답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알면 알 수록 경은 외모적인 아름다움 보다 착한 성품과 지혜로움이 더 돋보였습니다. 선은 선하고 부지런한 이가 곤경에 처하면 도깨비들에게 부탁해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했고, 처리해야 하는 일이 어려운 국면에 직면하면 슬기롭게 대처하고 일을 풀어갔습니다.

경은 또, 필요한 관계가 아니면 소극적이었던 선과 달리 선에게 먼저 친구가 되자고 할 만큼 적극적이었습니다. 사실 경이 그랬던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선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경은 선이 다른 이의 생각을 보는 능력이 자신이 동물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것과 비슷하다고,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번 선에게 동물들의 생각이 보이지 않는지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이 생각을 볼 수 있는 건 선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나 망자들, 사자들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친해진 둘은 일이 끝나면 자주 함께 시간을 보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는 대체로 경이 했습니다. 선은 대부분 듣기만 했고, 경이 물어보는 것에 대답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경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루는 경이 다른 사자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경이 일하는 사무실에 있는 원 사자였습니다. 원은 차분했고, 친절했습니다. 건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다정함이 느껴졌습니다. 원은 오른손을 잘 내놓지 않았는데 큰 상처 때문이었습니다. 손등에서 손목 위까지 이어진 아주 깊은 상처였습니다. 선은 삼도천을 건넜을 원에게 왜 아직도 상처가 있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습니다.

선은 경이 원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원도 그 마음을 알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원이 같은 마음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인이 이승을 떠날 때 경은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선도 그랬습니다.

“이렇게 가면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경은 삼도천 뱃나루까지 선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부장급 사자가 되기 전에는 편히 오갈 수가 없으니······ 이렇게 같이 일 할 기회가 또 생기지 않는 한은 쉽지 않겠지?”

선이 웃어 보였습니다.

“선 사자도 이승에 있으면 좋을 텐데······ 가끔 원 사자님도 같이 어울려 놀고······ 선 사자는 알고 있었지? 내가 원사자님 좋아하는 거······”

선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궁금하지 않아? 왜 좋아하는지?”

“아주 좋은 분 같아 보였어······”

“늘, 죽음과 망자들을 대하는 사자가 이런 마음을 갖는다는 게 이상하지?”

선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끼이끼이, 추르르, 추르르. 뱃사공이 삼도천을 가르며 노를 저어 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 진짜 가는구나······ 선 사자, 자주 전화해. 못 만나지만 연락은 자주 하자.”

경이 선의 손을 잡았습니다. 선도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둘은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좋 은 곳으로 돌아온 후에도 선은 종종 경과 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둘은 통화를 할 때면 어제도 만난 것처럼 즐거웠습니다. 시덥지 않은 이야기만 해도,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하루는 늘 활기찬 목소리로 전화를 하던 경이 힘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없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선이 경에게 물었습니다. 대답대신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습니다.

“경 사자, 혹시 말 하기 어려운 거면······”

“원 사자님이 어떤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대······”

경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선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 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선이 고민하는 사이 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원 사자님이 언제부터 인가 나를 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계속 고민 했어······ 선 사자한테 물어보고도 싶었어. 내 마음은 이런데, 아무렇지 않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서, 다시 예전처럼 지내자고 해야 할지······ 아니면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전해야 할 지······ 그런데, 선 사자한테 물어보지 못 하겠더라······ 고백하지 말라고, 그러지 말라고 할 것 같아서······”

선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경이 물었다면 말렸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내가 사고를 치고 말았어. 아주 용감하게 고백했거든······ 그리고 일말의 여지도 없이 거절 당했어······ 우습지?”

“그렇지 않아. 그런 마음을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선은 진심을 담아 말했습니다.

“고마워······사자가 되고, 이런 마음들은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정말 그랬다면 그럼 지금처럼 마음이 쓰리지도 않을 텐데······”

선은 묵묵히 경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경은 잠시 떨리는 숨을 고른 후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내가 고백했을 때, 원 사자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어. 마치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담담하게 좋아하는 이가 있다고 했어. 나에게는 솔직하게 말해야 할 것 같다고······ 살아서, 우리와는 달리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살아가는 여인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하더라.”

“경 사자······”

“선 사자······ 다른 사자들은 몰라. 원 사자님이 살아있는 여인을 마음에 둔 거······”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아. 그건 걱정 하지마······”

“그래, 고마워.”

선은 경에게 마음을 추스르고, 원 사자에 대한 마음은 잊고 편히 지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차마 말로 뱉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 사자, 다음에 또 연락할게······ 아마 좀 ······ 시간이 걸릴 지도 몰라.”

“나는 괜찮아. 경 사자가 좋을 대로 해······”

그 뒤로 경은 오랫동안 선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은 그저 기다렸습니다. 선은 나중에 그저 기다리기만 했던 자신이 후회됐습니다.

선이 연락이 없었던 경의 소식을 들은 것은 이승의 어떤 사자가 인간의 생사에 관여했다가 삼도천에 던져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였습니다. 이승의 사자가 살아있는 여인을 사랑했고, 그 여인의 죽음을 비켜가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승의 사자는 원이었을 게 분명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경이 이승의 사자들을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선이 연락을 하기도 전에 경은 죄의 무덤으로 끌려갔습니다.


선은 1년쯤 전에 삼도천 기록소의 허수아비가 심장이 사라진 채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부장 사자와 인에게 했습니다. 인은 삼도천 기록소 허수아비 이야기는 한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허수아비 심장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허수아비가 심장이 있어요?”

“아······ 인 사자는 심장에 대해서 모르는구나······ 잠깐만! 아직 심장을 못 찾은 거야?”

선이 인에게 물었고, 부장 사자도 인을 바라보았습니다. 인은 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인은 오른손을 왼손 가슴에 살며시 얹으며 물었습니다.

“사람이라면······ 심장은 여기 있는 거 아니에요?”

“오장육부 중 하나인 심장은 그렇지. 그런데 선 사자가 말한 심장은 그쪽 심장이 아니야.”

부장 사자가 심장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환생을 기다리는 망자가 아닌, 저승을 관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은 각자 하나씩 심장을 갖는다고 합니다. 심장은 보통 이들이 부여 받은 임무와 관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무슨 일이 생겨 넋이 흩어지면, 너무 늦지 않았을 때 심장으로 넋을 다시 불러 몸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 말은 심장을 파괴하면 넋이 흩어지고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집에······ 생각지도 않았는데 특별한 물건이 나타나거나 하지 않았어?”

선은 인에게 물으며 허수아비 같이 애초에 심장이 없는 존재는 심장을 부여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자의 심장은 보통 사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관련된 물건이라고 했습니다. 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집에서 그런 물건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인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보통 한 손에 쥐어지는 작은 물건들이긴 해. 혹시 어떤 물건을 만졌을 때 심장이 쿵! 하거나 두근두근 한 적도 없고?”

선이 물었고 인은 다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인은 다시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갖다 댔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숨이 차게 뛰어도 심장은 안 뛰던데······ 혹시 심장이 없는 게 문제가 될까요?”

“음······ 좋은 곳에는 위험하거나 험한 일은 없으니까 괜찮을 거야.”

부장 사자가 괜찮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 지난 번에 뱃사공 올라온 것 같은 일이 또 있지는 않겠죠?”

인은 불현듯 뱃사공들이 올라왔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아······ 하하하! 인 사자는 그런 상황에서는 절대 나서지 마! 아하하.”

부장 사자가 억지로 크게 웃는 것 같았습니다. 인은 이미 한 번 죽은 자신이 이런 상황을 걱정하는 게 정상인가 싶긴 했지만, 심장이 없다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심장이 없는 허수아비라······ 누군가 그 심장을 가져갔다는 건가?”

부장이 선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선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율 사자님 말로는 심장이 없어진 허수아비에게 특별한 흔적은 없었다고 했어요. 이승에서 조사를 했을 건데, 더는 나온 게 없으니 그렇게 종결된 거 아닐까요? 그래서 삼도천에서도 조용했던 거 같기도 하구요. 어쩐지 저는 이 일이 이승에서 그림자의 기록을 지운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림자의 기록을 관리하는 허수아비 심장이라면, 그림자의 기록에 접근할 수 있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요?”

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부장 사자도 심각한 표정으로 선을 바라보았습니다.

“허수아비들이 그림자와 기록들을 관리하니까······ 그런 허수아비의 심장을 가진 자가 그림자의 기록을 지운다······ 합리적인 추론이야. 다만, 허수아비의 심장을 거두는 일이 간단한 일인지는 모르겠어······ 삼도천을 관리하는 이들은 그들이 가진 소명을 지킬만한 힘이 있는 존재들이니까······”

선은 한이 살아있는 그림자에 발목을 잡혔을 때 허수아비가 살아있는 그림자를 거두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모두 말은 안 했지만 뱃사공을 상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허수아비도 쉬운 상대는 아닐 것이 분명했습니다.

알림음이 두 번 울렸습니다. 인과 선의 노트북이었습니다.

“업무들 보고, 내일 또 이야기 합시다. 인 사자는 퇴근할 때 한 사자한테 들르도록 하고······”

인은 부장 사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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