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록 (죄를 지운 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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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c
작품등록일 :
2024.05.26 13:32
최근연재일 :
2024.09.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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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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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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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사자 3

DUMMY

인은 퇴근하며 한에게 들러 선이 해준 심장이 없는 허수아비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한은 직접 듣지 못했다며 아쉬워 했습니다.

인은 한과 헤어진 후 강한나 망자에게 갔습니다. 강한나 망자는 망원경으로 인이 오는 걸 보고 있다가 노크를 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아! 사자님 오는 거 보고 문 연 거에요.”

“이제는 잔소리를 하기도 전에 막네요······ 그나저나 능력을 업그레드 한다는 건 뭐에요?”

강한나 망자는 신난다는 듯 씨익 웃었습니다. 하지만 손은 내밀지 않았습니다. 손을 내미는 척 하더니 팔짱을 끼었습니다. 인은 어리둥절 했습니다.

“제대로 업그레이드 해야죠. 언제까지 손 잡고 기억을 볼 거에요?”

“네?”

“아! 살았을 때 영화 같은 거 안 봤어요? 찐 능력자는 손 대지 않고 능력을 발휘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강한나 망자는 한 손을 앞으로 펼치더니 눈을 반쯤 감고 초능력이라도 쓰는 시늉을 했습니다. 인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선도 손을 대지 않고 생각을 읽을 수 있으니 인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목격자를 찾고, 나쁜 놈을 찾아도 손을 잡지 못하면 다 의미가 없잖아요. 그러니 손 안 잡고 기억을 볼 수 있게 업그레이드 해야죠!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 그 때 일을 물어보면 생각하기 싫어도 떠오를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사실 지난 번에 망자님이랑 연습할 때 한 번 더 업그레이드 했거든요.”

강한나 망자는 두 눈을 반짝이며 뭘 업그레이드 했냐고 물었습니다. 인은 강한나 망자의 여러 기억을 한 번에 본 일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와! 대박! 아니, 왜 그 때 얘기 안 해줬어요?”

강한나 망자는 인의 등을 탁 쳤습니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사과했습니다.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아, 아니에요. 하하. 그 때는 망자님 기억을 한 번에 많이 본 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 때 본 거 말씀드릴까요? 뭘 봤는지 알고 계셔야······”

“아! 괜찮아요. 어차피 다 보여드릴 거 각오하고 하는 걸요. 그러니 무엇을 보더라도 신경 쓰지 마세요. 히히.”

인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강한나 망자가 신기했습니다.

“저 살아서 회사 다닐 때 일만 하는 바보였어요. 일을 잘 해놓고 성과를 뺏긴 적도 있어요. 찌질하게 누명 쓴 적도 있구요······”

강한나 망자가 인을 멀뚱히 쳐다보았습니다.

“아······ 그게 망자님 만큼은 안 되겠지만 기억을 보여주는 답례로 제 이야기를 가끔, 조금 해 드리면 어떨까 해서요.”

“아, 진짜 부담 갖지 마시라니깐······ 하지만, 사자님이 저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강한나 망자는 씨익 웃었습니다.


손을 잡지 않고 기억을 보는 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마에 땀이 맺힐 만큼 집중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은 강한나 망자와 함께 한참을 애쓰다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심장 생각을 했습니다. 인은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살면서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을 가졌던 것이 무엇이 있었나 떠올려 보았습니다. 해야 하는 일이기에 공부도, 일도 그저 했을 뿐이었습니다. 특별히 좋아했던 친구도 없었습니다. 연애를 안 해 본 건 아니었지만 당장 생각나는 여자가 있지도 않았습니다. 무언가 아끼는 물건도 없었습니다.

“하······”

인은 괜히 한숨이 났습니다. 뭘 하며 살았던 것일까 싶었습니다.

부스럭. 어디선가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인은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신령님 망자였습니다.

“저기······”

인이 조용히 불렀습니다.

“으헉!”

신령님 망자는 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주저앉았습니다.

“아, 죄송해요.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인이 신령님 망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 괜찮아요. 그나저나 그 손 잡아도 되는 거에요?”

신령님 망자는 장갑 낀 인의 손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인은 천천히 내민 손을 거두었습니다. 신령님 망자는 허허 웃으며 툭툭 털고 일어났습니다.

“내 뭘 좀 찾고 있었는데······ 도와주시겠소?”

“아, 네. 도와드릴 게요.”

신령님 망자가 찾고 있는 건, 신령님 망자가 관리하는 신수라고 했습니다. 생긴 건 뱀과 같다고 했습니다. 인은 뱀과 같다는 말에 살짝 소름이 돋긴 했지만 같이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인은 신령님 망자와 한참을 수풀을 뒤졌습니다. 하지만 뱀처럼 생겼다는 신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령님 망자는 잔뜩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펴고는 끙 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허리 뒤쪽을 주먹으로 통통 쳤습니다.

“오늘은 그만 찾읍시다. 하필 기척을 숨기는 놈이 도망을 쳐서 찾기도 힘드네요.”

“기척을 숨겨요?”

“네. 신수들은 보통 동물들과 달리 각자의 재주가 있어요. 쉽게 말하면, 사자님들처럼 능력이 있는 거죠. 그런데 이 없어진 녀석은 자기 기척도 숨기고, 흔적도 남기지 않는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며칠 째, 틈날 때마다 이리 저리 찾아 돌아다니고 있는데, 아직도 못 찾았네요. 누굴 해칠 녀석은 아니라서 큰 걱정은 안 하지만 그래도 신경은 쓰이네요. 어떻게 도망친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죠······”

신령님 망자가 인을 보고 눈을 찡긋했습니다. 신령님 망자는 신수를 찾아 다니는 일이 즐거운 것 같았습니다.

“조금 신나 보이십니다.”

인이 슬쩍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허허. 들켰나요? 늘 평온한 곳이다 보니······ 이런 작은 말썽이 되려 기운이 나게 하네요. 아무튼, 늦은 밤에 찾는 거 도와줘서 고마웠습니다.”

인은 혹시 뱀 비슷한 것을 보면 잡아두겠다고 하고 신령님 망자와 헤어졌습니다.


부장 사자는 갑자기 부장 회합이 생겨서 갑자기 사무실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인이 업무 정리를 하고 있는데 한이 드르륵 의자를 끌며 다가왔습니다.

“이상하지 않아?”

“네? 뭐가요?”

“부장님이야, 갑자기 회합이 생겨서 그렇다치고······ 선 사자님은 왜 이렇게 조용할까? 오늘도 출근하더니 외근 있다고 나가버렸잖아. 우리 지금 굉장히 중요한 사건을 파헤치고 있는 거 아냐?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는게 나만 답답한 거냐고?”

한이 눈을 부릅뜨고 인을 바라보았습니다. 인은 한의 눈에서 불이 이글거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긴 한데······ 중요한 사건이니까, 성급하게 하지 않는 게······”

“됐고. 인 사자는 왜 조용한 건데? 그동안 뭐, 더 알아낸 거 없어? 강한나 망자가 인 사자한테만 몰래 뭐 알려준 거 없어?”

“하하······ 없어요······”

“그래······? 그럼······ 오랜만에 순간이동이나 해보자.”

한이 아무래도 무료하고 심심해서 뭐라도 하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인은 신령님 망자가 신수를 찾으며 즐거워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인범진 망자의 사건은 오랫동안 평온하기만 했던 일상에 모든 것이 멈춰진 사자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인은 그런 생각이 들자 한에게 맞춰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군소리 없이 한을 따라 사무실 밖으로 나와 그동안 갈고 닦은 순간이동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오! 많이 좋아졌는데······ 이제는 뭘 더 알려주지 않아도 되겠어.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

“아, 정말요?”

한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어딘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저거······ 뱀 아냐?”

한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습니다. 인은 고개를 돌려 한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습니다. 수풀 사이로 희고 길쭉한 꼬리가 나와 있었습니다. 꼭 뱀 같았습니다. 인은 신령님 망자가 이야기 한 뱀을 닮은 신수가 생각났습니다.

“왜 뱀이 돌아다니는 거지? 동물들은 바로 환생할 텐데······”

“아! 며칠 전 밤에 영감님을 만났어요. 그 때 뱀을 닮은 신수를 찾고 있다고 했었는데······ 그 신수 아닐까요? 완전히 잊고 있었네요. 찾으면 알려드린다고 했는데······”

“그래? 그럼 잘 됐네. 우리가 잡아서 영감님한테 데려다 주면 되겠다······ 어! 마침 인 사자가 장갑을 끼고 있으니 인 사자가 잡으면 되겠다.”

인은 인상을 찡그리며 한을 쳐다보았습니다. 한은 ‘뭘보나, 어서 잡게.’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인은 오만상을 찡그리고 조심스럽게 꼬리가 보이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한도 인의 뒤를 살금살금 따라 걸었습니다. 인은 몇 걸음 앞두고 쭈그려 앉아 기다시피 하며 꼬리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한은 더는 따라가지 않고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인은 두 손을 엉성하게 들고 심호흡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고 꼬리를 향해 손을 덮쳤습니다. 제발 도망가서 잡히지 않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인의 두 손에 분명하게 느낌이 왔습니다. 잡혔습니다.

“오! 잡았다, 잡았어! 인 사자 대단한데. 하하.”

한은 박수까지 쳤습니다. 인은 천천히 눈을 뜨고 손을 바라보았습니다. 잡힌 꼬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동물이라면 몸부림을 쳐야 할 것 같은데, 너무나 얌전했습니다. 인은 신수가 어디 다치거나 아픈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인은 한 손으로는 도망가지 않게 꼬리를 잡고 다른 손으로 수풀을 살살 헤쳤습니다. 하얀 뱀이 또아리를 틀고는 잠든 것 마냥 얌전히 있었습니다. 인은 조심스럽게 또아리 튼 몸 전체를 들어 안았습니다. 인의 품 안에 꽉 차진 않았지만 꽤 묵직했습니다.

“와! 백사야? 완전 하얗네······”

한은 아까보다 더 멀찍이 떨어져서 인이 안고 있는 뱀 같은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상자 같은 건 없을까요?”

“상자는 무슨······ 보니까 얌전하네. 인 사자가 안고 가면 되겠다. 자자, 나를 따라 와. 저만치 떨어져서······ 가만······ 어? 그런데 신수라면 내가 기척을 느꼈을 건데······”

“아, 맞다. 기척을 숨기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능력이 있다고 했어요. 영감님이 말한 신수가 맞다면요······”

한은 눈이 크게 뜨고 인을 쳐다보았습니다. 인은 말 없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둘은 선이 말한 기척을 숨기는 신수가 맞지 않겠냐는 의미로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인은 뱀 같은 것을 안고 한의 뒤를 따랐습니다. 한은 마을이 아닌 숲 쪽으로 인을 안내했습니다. 숲 입구는 울창한 나무로 꽤 어둑했습니다.

“어, 영감님은 마을에 안 살고 숲에 살아요?”

“마을에 영감님 집이 있는데······ 아마 지금은 숲 쪽에서 신수들 살피고 계실 거야. 그리고 어차피 신수는 숲으로 데려가야 해서······”

“아, 네.”

“여기부터는 신수들도 있고, 아무튼 여러 기운들이 느껴질 거야. 안 좋은 기운도 느껴질 거고······”

한이 인을 걱정하며 말했지만 인은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 그런 걸 느낄 만큼 능력이 출중하지 못하니 걱정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조심하자. 그리고 내가 같이 가니까 괜찮겠지만 절대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 이 숲에서 길을 잃으면 흔적을 쫓기가 어려워······ 숲에 기운이 워낙 많아서, 자네가 길을 잃으면 자네의 기운은 묻혀 버릴 거야.”

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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