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록 (죄를 지운 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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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c
작품등록일 :
2024.05.26 13:32
최근연재일 :
2024.09.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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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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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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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1

DUMMY

한도 업무 내용을 보더니 인이 가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인은 강한나 망자에게 갔습니다. 인이 문을 두드리자 강한나 망자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 인이 말을 꺼냈습니다.

“망자님 덕분에 큰 일이 해결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고맙다는 인사는 많이 받았으니 그만 하세요. 쑥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진짜 큰 일들은 사자님들이 다 했잖아요.”

강한나 망자가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보는 것도 너무 많이 도와주셨구요.”

“뭐, 손을 잡지 않고 보는 건 아직 미완이잖아요. 그거까지 다 되면 그 때······ 아······”

강한나 망자는 무언가 잠시 생각하더니 박수를 짝 하고 쳤습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49일!”

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와······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벌써 49일 이라니······”

“네. 일이 참 많았죠.”

“지금 결정해야 하는 거는 아니죠?”

인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강한나 망자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환생하지 않을래요.”

“와······ 엄청 빨리 결정하시네요. ”

인은 강한나 망자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해버려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환생을 미뤄도, 환생하고 싶으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죠······”

“그럼 뭘 고민해요. 지금 환생할 거 아니면 미루는 게 답이죠.”

인은 역시 강한나 망자 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서는 아팠던 덕에 뭘 해볼 생각을 못했는데······ 이렇게 아프지도 않고, 너무 쌩쌩하니까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막 드는 거 있죠. 그리고······ 살아서 해보지 못한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어요. 아직 그게 무언지 모르지만······ 그래서 조금 더 머물고 싶어요. 히히.”

인은 두 팔을 들어 기운 센 모습을 보여주는 강한나 망자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네. 환생은 언제든 하고 싶으면 그 때 해도 되니까. 그렇게 하세요.”


인은 강한나 망자의 환생을 보류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불만 켜고 소파에 앉아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강한나 망자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문득 환생하지 않고 지내는 망자들은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모를 환생을 하기 전에 자신들이 살고 싶은 삶을 살아보기 위해 머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떨결에 사자가 된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이끌리듯 지금에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저런 생각이 들자 지내고 있는 이 공간을 너무 무심하게 둔 것 같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인은 부장 사자, 한의 집도 떠올랐습니다. 인은 언제 환생을 결정할 지 모르겠지만 이 집을 자신의 공간으로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르르. 테이블 위에 놓인 펜이 또르르 굴러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인은 살짝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몸이 안 좋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 지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은 테이블을 잡고 다음 진동이 오지 않을까 긴장했습니다. 다행이 더는 진동이 없었습니다. 인은 밖으로 나왔습니다. 인처럼 밖으로 나온 망자들도 몇 있었는데 잠시 후 모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인은 전화기를 들어 혹시 연락이 온 것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없었습니다.


인은 아침 일찍 사무실로 갔습니다. 부장 사자가 있었습니다. 인이 들어오자마자 한이 뒤따라 사무실로 들이 닥쳤습니다. 한은 인이 부장 사자에게 인사를 하기도 전에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밤에 그거 뭐였어요? 잠깐이긴 했는데······”

인도 부장 사자를 쳐다보았습니다.

“나도 지금 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밤에 여기저기 연락했는데 다들 답이 없네······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라······”

때르르. 부장 사자 전화기가 울렸고 란 부장이었습니다.

“어, 알았어.”

부장 사자는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지진······ 아무래도 죄의 무덤 쪽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부장들 소집이야······”

“죄의 무덤요? 거기 선 사자님 있잖아요.”

한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러게······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일단 업무들 보고 있어. 망자들 챙기고. 갔다 와서 보자구.”

부장 사자는 사무실 밖으로 나갔고 한과 인은 선 생각에 초조해 졌습니다.

“죄의 무덤에 무슨 일이 있길래 여기까지 지진이 난 걸까요?”

“그러게······ 아주 먼 곳인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한 사자님······ 이 일이 다 해결되긴 한 걸까요?”

한이 눈을 끔뻑이며 인을 쳐다보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죄 지은 망자 셋을 찾아내서 죄의 무덤에 보냈고······ 이 일을 벌인 경 사자는······ 뭐, 그렇게 됐고. 경 사자를 도운 선 사자님은 징계를 받았고······ 그럼 된 거 아닌가?”

“그런 거겠죠?”

인은 밤에 느꼈던 지진이 죄의 무덤과 관련 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드르르. 작은 물건들이 흔들렸습니다. 인과 한은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어제보다 좀 더 세 진 것 같지?”

한이 물었습니다. 인은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진은 점심쯤 한 번 더 있었고 불안해진 망자들이 사무실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인과 한은 부장 사자들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돌려보냈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강한나 망자도 사무실에 왔습니다.

“사자님!”

인은 문을 열어 강한나 망자를 맞이했습니다.

“지진이죠? 어제 밤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네, 그런 것 같아요.”

인이 의자를 내어주며 대답했습니다.

“여기도 지진이 원래 있는 거에요?”

강한나 망자가 한을 보며 물었습니다. 한은 대답은 않고 못 들은 척 했습니다.

“아니구만. 무슨 일이 있는 거구만······”

강한나 망자가 새초롬한 눈으로 한을 쳐다보았습니다. 한은 헛기침만 하고 강한나 망자의 눈길을 피했습니다.

“아들!”

밖에서 서진옥 망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한은 벌떡 일어나 서진옥 망자를 맞이했습니다. 강한나 망자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습니다. 인도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습니다.

“아이고! 어머니. 이렇게 반가울 때가······ 그런데 어쩌지? 부장님, 아니 아들 없는데요.”

서진옥 망자는 사무실에 들어와 여기 저기를 살피며 아들을 찾았습니다. 서진옥 망자 뒤에 차광호 망자도 따라왔습니다.

“종일 아들 걱정만 해서······ 못 보게 하면 저 모르게 밤에 아들 찾아 나갈까 봐 왔어요.”

“네, 잘 오셨어요.”

한이 차광호 망자를 맞았습니다.

서진옥 망자는 한의 등짝을 때리며 아들을 어디다 숨겼냐고 당장 찾아내라고 다그쳤습니다. 한은 한 대씩 맞을 때마다 폴짝폴짝 뛰며 사무실에서 도망을 다녔습니다. 인, 차광호 망자, 강한나 망자가 사무실 구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한 사자님은 은근히 즐기시는 것 같네요.”

강한나 망자 말에 인과 차광호 망자가 웃었습니다.

쿠르르르. 갑자기 천둥이 치듯 땅이 울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곧이어 바닥도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책상에 있던 물건들이 쓰러지거나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사무실에 있던 모두 큰 진동에 몸이 휘청거렸습니다. 한을 쫓던 서진옥 망자가 크게 넘어지는 것을 한이 얼른 몸을 날려 받아주었습니다. 강한나 망자도 벽을 잡고 간신히 버텼습니다. 인과 차광호 망자는 바닥으로 몸을 낮춰 균형을 잡았습니다. 지진은 컸지만 길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멈춘 것 같네요.”

차광호 망자가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어요.”

강한나 망자 말에 모두 밖으로 나갔습니다. 한은 서진옥 망자를 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후아······ 벽에 금이 갔어.”

한이 문 옆으로 길게 간 금을 손으로 어루만졌습니다.

“한 사자님······ 저기 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인이 마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강한나 망자와 차광호 망자가 말을 잃고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차광호 망자는 서진옥 망자와 사무실이 있는 언덕에 남아 있고 인과 한, 강한나 망자는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많은 마을에서 집과 건물이 좀 전의 지진으로 부서지거나 무너졌습니다. 망자들은 건물이 없는 공터에 모여 있었습니다. 부상이 없는 망자들이 다친 망자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인과 한, 강한나 망자도 가서 도왔습니다.

“사무실은 언덕 위라 진동이 덜 했던 걸까요?”

강한나 망자가 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런가 보네요. 그나저나 지진이 또 오면 안 되는데······ 걱정이네요.”

하지만 그 뒤로 몸이 흔들릴 정도의 지진이 두 번이나 더 왔습니다.

그 사이 다른 사자들이 달려왔고 망자들을 살피고 무너진 잔해들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대사자와 다른 사무실의 부장 사자들도 달려왔습니다. 부장 사자는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대사자는 다친 망자들을 순차적으로 삼도천 가까운 곳으로 옮기도록 지시한 후 삼도천 안개를 끌어다 다친 망자들을 치료해주었습니다. 다행이 그 뒤로 지진은 더 없었습니다.새벽녘이 되어서야 어수선했던 마을들이 정돈되었습니다. 망자들은 불안한 마음에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공터와 야외에서 삼삼오오 의지하며 모여 쪽잠을 청했습니다.

아침 무렵 사자들에게 죄의 무덤에서 일어난 일이 정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인은 부장 사자, 한과 사무실로 돌아갔습니다. 차광호 망자가 의자에 앉아서 잠을 청하다 세 사자를 맞았습니다.

“오셨네요. 이제 지진은 멈춘건가요?”

“아, 네. 주무시는데 저희가 깨웠네요.”

부장 사자가 대답하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차광호 망자가 회의실로 들어가 서진옥 망자를 깨웠습니다. 눈을 부비며 나온 서진옥 망자는 부장 사자를 보자 반가워하며 달려가 안았습니다. 부장 사자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인과 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이제 집에 가서 쉬세요.”

부장 사자가 서진옥 망자에게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서진옥 망자는 부장 사자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습니다.

“어, 아들. 엄마 가서 쉴게.”

서진옥 망자는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차광호 망자도 사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서진옥 망자를 따라 나갔습니다.

“부장님 이제 도망 안 가시네요?”

한이 물었지만 부장 사자는 헛기침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밤새 이런 저런 일로 피곤하겠지만 퇴근은 좀 더 있다가 해야 할 것 같아······ 한 사자는 우리가 관리하는 마을들 돌면서 새로운 집이 필요하지 않은 지, 수리해서 지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인 사자는 오늘 좋은 곳에 오는 망자들, 환생해야 하는 망자들 업무 처리 좀 해주고······ 그리고 선 사자는 괜찮다고 연락 받았어.”

인과 한은 안도하며 맡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그 뒤로 지진은 더 이상 없었고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습니다. 그 뒤로 많은 망자들이 환생을 했고, 또 새로운 망자들이 좋은 곳에 왔습니다. 변하는 것이 없었지만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흘러갔습니다.


“이제 선 사자님 돌아올 때가 거의 된 것 같은데······”

한이 책상에 엎드려 인을 멀뚱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게요······ 아! 그러고보니 서진옥 망자님이 사무실에 안 오신지도 꽤 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제 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아······ 내가 깜빡하고 말을 안 했나······?”

“뭘요?”

“지진 나고 우리가 좀 바빴잖아. 그 쯤에 가게 사장님을 만났거든. 서진옥 망자 돌보느라 가게도 못 열고 고생이 많으시다고 했더니 부장님이 저녁에 자주 서진옥 망자를 돌봐줘서 가게를 열었다고 하시는 거야.”

“부장님이요?”

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어.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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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사필귀정 2 24.08.30 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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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확인 5 24.08.16 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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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사라진 사자 3 24.07.17 10 0 12쪽
22 사라진 사자 2 24.07.15 10 0 12쪽
21 사라진 사자 1 24.07.12 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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