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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2024.09.04 14:00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4,389
추천수 :
150
글자수 :
175,431

작성
24.07.26 14:00
조회
48
추천
2
글자
7쪽

제6 장 학살(2) - 할아버지와 다섯 아이!

DUMMY

와룡동의 마을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학교, 집 할 것 없이 모든 건물들은 불에 타 무너져 있었다.

군데군데 참혹하게 살해된 시신들이 보였다.

서둘러 아버지의 집으로 뛰어갔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미친 사람처럼 마을 곳곳을 뒤지다 학교 창고로 보이는 반쯤 타서 무너진 건물에서 한 무더기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마치 한 곳에 몰아넣고 학살을 당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한 구 한 구 시신을 살폈다.

완전히 타버려서 누군지조차 알아볼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

모두 여섯 구였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죽음을 체념이라도 한 듯 손을 잡은 채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죽음의 고통을 오롯이 맞으며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다섯 아이를 감싸 안은 한 사람.

아이들보다 조금 더 큰 한 사람.

마지막 아이들이 가는 길을 지켜주는 듯한 한 사람.


“아. 아아아!”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이 내 목구멍을 타고 나왔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외쳤다.


완전히 타버려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였다.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지키고 싶어 한 그 마음이 그대로 내 심장으로 들어오는 듯하였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할아버지 옆에 누워 있었다.

이대로 일본군에 발각되어 죽는다 한들 상관없었다.

시연이와 같이 바라봤던 별이 쏟아지던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대낮이어서 별이 없어진 건가?

아님 이제 나는 더 이상 별을 볼 수 없는 존재가 된 건가?

알 수 없는 생각을 하며 한참을 누워 있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린 느낌이었다.

그 어떤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난 잠에 들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밤 보이던 수많은 별들 역시 보이지 않았다.

별이 없어진 건지 아니면 내가 단지 안 보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가 떴다.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상실에 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치 않게 맞이한 해를 보며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

아직 아버지와 시연이의 소식을 모른다.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야 한다.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근처 야산에 아이들과 할아버지를 묻어줬다.

작지만 봉분을 만들었다.

그들에 대한 나의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의지였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할아버지와 못다 한 글공부를 하기를···’



* * *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마음으로 삼킨 채 길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한동안은 그저 발걸음이 옮겨지는 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똑같은 참혹한 모습뿐이었다.

마치 만주 전역이 그들에게 유린된 것처럼 희망이란 걸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동민 형의 말이 떠올랐다.


‘백두산 동쪽에 한두 사람이 머무를 만한 군영이 있다. 백서농장으로부터 동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나오는 곳으로 계곡을 끼고 있어 식수를 해결할 수 있고 근처 산나무의 열매와 작은 짐승들을 사냥해 식량을 얻기에도 좋은 곳이다. 혹여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잠시 머물 수는 있을 것이야. 서로 생사를 알 수 없는 위기 상황이 생기면 이곳에서 만나도록 하자.’


봉오동 전투를 앞둔 어느 날 동민 형은 백서농장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가 만들어놓은 군영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주었다.

북간도에 도움을 얻으러 다녀오고 나서 추후 또 생길지 모르는 북간도에서의 임무를 위하여 백두산 동쪽 북간도 방면에 그만의 비밀 장소를 만들었다고 했다.

북간도의 여러 지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깊은 산속이라 안전이 보장된 곳을 찾고 또 찾아 그 장소를 발견하였다.

거듭된 전투와 일본군이 곧 쳐들어 올 거라는 긴장감이 계속되던 시절 동민 형은 나에게 그 장소의 자세한 위치를 가르쳐 주었고 우리 가족 모두는 무슨 일이 생기면 그곳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래 그곳으로 가서 아버지와 시연이를 찾아보자.’


동민 형의 세심함에 감동을 했었지만 정말로 그곳이 쓰일 상황이 올 줄은 몰랐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백두산 자락으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근방까지 가는 길은 익숙한 곳이었다.

봉오동 시절 북간도의 여러 지역을 정찰하느라 대부분 북간도의 지리에 익숙해져 있었다.

예전에 정찰할 때와는 너무도 다른 폐허가 된 풍경을 여러 번 지나고 나서야 산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몇 가구가 안 사는 작은 마을이 있던 자리지만 지금은 완전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산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한 무리의 일본군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급하게 근처 숲 속으로 몸을 숨기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다섯 명의 정찰조 같은 그들은 근처 마을을 약탈하고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부대로 복귀하는 것 같았다.

장교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가 말에 탄 채 선두에 있었고 대오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도적 같은 그들의 사이에 누군가 보였다.

포승줄에 두 손이 묶인 채 끌려가고 있던 그 사람을 본 순간 난 뒤통수에 내 모든 신경이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탕’하고 내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시연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과 초점 없는 눈동자는 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소상히 알려 주었다.


“탕탕탕탕탕탕!”


난 내가 움직였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아무런 의식도 없었다.

어느새 내 손에는 나의 분신과 같은 저격총이 연기를 뿜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4명의 병사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고 말과 함께 장교도 쓰러져 땅바닥에 너부러졌다.

장교의 오른쪽 발목과 손목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그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장교를 내버려 둔 채 난 외투를 벗어 시연이에게 둘렀다.

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이 날씨에 발가벗겨진 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그녀의 몸은 마치 얼음덩이 같았다.

얼음덩이가 된 건 그녀의 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총소리가 들린 순간부터 내가 다가오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시연이는 고개를 돌려 보지 않았다.

그 어떤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시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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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제8 장 유럽(4) - 개인의 삶 24.08.16 35 2 8쪽
37 제8 장 유럽(3) - 새로운 시작 24.08.14 41 1 8쪽
36 제8 장 유럽(2) - 사격의 본질 24.08.13 44 1 8쪽
35 제8 장 유럽(1) - 신세계 24.08.12 37 1 8쪽
34 제7 장 의열(7) -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라도··· 24.08.09 43 2 9쪽
33 제7 장 의열(6) - 침략에 굴하지 않는 민족의 경고 24.08.08 33 2 8쪽
32 제7 장 의열(5) - 악귀 들린 제비 24.08.07 42 2 7쪽
31 제7 장 의열(4) - 경성 피스톨 24.08.06 35 2 7쪽
30 제7 장 의열(3) - 의열단의 거사 24.08.05 42 2 8쪽
29 제7 장 의열(2) - 산속의 두 사내 24.08.02 40 2 7쪽
28 제7 장 의열(1) - 백두산의 악귀 24.08.01 48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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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6 장 학살(3) - 믿을 수 없는 잔인함 24.07.29 55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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