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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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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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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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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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마리

DUMMY

“어? 뭐라고?”


몇 주간 너무 시달린 나머지 노이로제 증상이 생겼다. 이젠 보통의 말소리가 잘 안 들릴 지경이다.


‘모처럼 한 판 이겼는데도 이 꼴이라니··· 4연패를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위로라도 해야 할 것 같잖아.’


이번 주에 3조로의 강급이 확정되어 버렸다. 지난주에 이어 다시 1승 3패다. 총전적 5승 11패 패수가 승수의 두 배가 넘어섰다.


‘3승 1패를 해도 시원찮았을 것 같은데···’


지난 한 주 동안 나름 대비를 한다고는 했는데 그게 일주일 노력해서 개선될 정도로 간단한 문제였다면 애초에 이런 위기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긴 1/4 집이잖아요. 여기부터 먼저···”


잘못들은 게 아니었다. 상대는 또렷하게 자기 의견을 다시 주장했다. 오랜만에 한 판 이기고 복기 중이었다. 순조롭게 복기가 진행 중인데 이상한 곳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승부처도 아니고 다 둔 바둑에서 웬 수순 타령이야? 살다 보니 별··· 반 집도 아니고 1/4집? 가만 이 비슷한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봤는데···’


“이곳과 이곳의 차이가 뭔데? 어차피 다 똑같은 후 수 한 집 끝내기잖아.”


짐작 가는 바가 없진 않지만 모르는 척 하며 다시 물었다.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이름값이 좀 걸려서···’.


원생 3년차 조원이다. 가끔 이렇게 후대에서 이름을 알린 연구생을 만날 때면 묘한 기분이 든다. 그동안은 조가 달라서 그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달에 처음으로 2조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들어 상위조에서 약진 중이다.


“이곳은 패가 났을 경우 패감이 유발될 수 있는 곳이잖아요. 그 권리를 집으로 환산하면 저쪽과는 확실히 다르죠. 물론 이제 종반이라 이게 사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까. 저쪽에서 마무리를 시작했을 경우와···”


이런 머리에 쥐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니 괜히 물었다.


이거 소신산(小神算)의 계가법 같다. 듣기만 해도 골치 아프다는 뜻이다. 그는 돌부처 이후 최고의 형세판단 능력을 가졌다는 기사다. 지금 현역이며 세계대회 우승도 하는 등 아주 잘나가고 있다.


그는 반상에 가상의 돌로 직선을 그은 다음 분할해 그 절단면의 넓이로 계가를 한단다. 흑백이 놓인 그 넓이의 차이가 우세한 만큼이라고 하는데 그것에서 어떻게 그런 추론이 나올 수 있는지 나로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보통은 1/16집 단위의 계가를 하고, 승부처에서는 반상을 더 잘게 쪼개 1/32집 단위로 집 계산을 한다는데 예전에 호기심으로 좀 들어보다가 대낮에 별을 보는 경험을 했다.


조원의 계가법이 그것과 동일한 건지 아닌 지를 굳이 알고 싶지 않다. 어차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에겐 똑같다. 감히 더 물어볼 엄두를 못 내겠다.


최고의 기재들을 모아 놓았다고 하는 이곳에서도 이런 식으로 계가를 하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이다.


거의 모든 기사들이 반상에 놓인 돌 내부의 칸 수를 직접 센다. 직관적이고 아주 좋지 않은가! 그것에서는 일반인의 바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집 세는 속도와 미확정된 곳의 가치 측정 기준에서는 차이가 있다.


‘얜 나하고는 종 자체가 다른 인간이야.’


서너 살 때부터 숫자가 좋아서 아무 이유 없이 1부터 1000까지 써보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구간별 거리를 다 더해보거나 전화번호부를 펴서 무작위로 숫자를 더하고 식당 차림표의 가격 합계가 궁금한 건 레인맨에 나오는 더스틴 호프만이나 할 만한 일이다.


“그게 맞겠지. 다음부터는 나도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봐야겠네.”


반발을 포기하고 얌전히 동의를 알렸다.


이런 인간형의 특징 중 하나가 엄청나게 자기 주장이 강하다. 별거 아닌 일도 본인이 일단 아니다라고 판단하면 앞뒤 가리지 않는다. 바둑이라는 게임의 특성상 대부분의 연구생들이 그런 면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비상한 기재들은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


“형은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는군요.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반대하고 보는데···”


그건 오해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지만 단지 귀찮은 게 싫었을 뿐이다. 나 보다 한 살 어린애와 드잡이질 하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 판을 이겼으니까. 이기면 웬만한 건 다 용서가 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다 가짜인 건 아니잖아. 네 설명을 이 자리에서 바로 알아들을 순 없는데 그럴 듯하게는 들리니까 조용할 때 한번 검토해 보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


좋은 게 좋은 거다. 후일 조원이 1인자가 되지는 못하지만 그 레벨에서 상당한 기간 존재감을 발휘하게 되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도 괜히 척 질 필요는 없다. 바둑계는 좁은 동네다.


‘확실히 이런 애들은 어릴 때부터 싹수가··· 음. 그런데 얘를 내가 어떻게 이겼지?’


형세 판단이 남다르면 자연스럽게 끝내기와 연계해 선실리 후타개형의 기풍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요즘 내가 시달리고 있는 전술에 가장 최적화된 스타일이다. 조원 역시 벌써부터 그런 느낌을 살짝살짝 풍기고 있었다.


상대의 장기(長技)와 내 약점이 부딪쳤는데 내가 이겼다는 건 상당히 이상한 일이다. 대충 맞춰주다가 되도록이면 빨리 끝내려 했던 복기에 대한 열망이 갑자기 솟아 오르기 시작한다.


“이왕 말해준 김에 좀 자세히 알려주면 안 될까? 계가 방식에 대한 이해도가 얕아서 혼자 놓아볼 때 옳은 방향으로 진행이 될지 잘 모르겠어. 이 때는 형세가 어때? 흑이 우세한 건가?”


“음. 사실 별 건 아닌데··· 기본적인 계가법이 다르니까 서로 형세에 대한 판단이 달랐던 것 같아요. 이 때는···”


보통 이런 기재는 자신에게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다. 그래서 물어보면 생각보다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 장면에서 보면 흑의 패감이 14개, 백이 15개잖아요. 그래서 흑이 당장 패를 결행하기는 어렵고··· 전 수순에 패를 만드는 과정으로···”


물론 그의 생각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때나 그 설명이 친절하게 들린다는 함정이 있긴 하다. 그는 내가 당연히 이 정도는 알았을 거라는 듯 결과를 내기 위한 전 과정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새가 황새 어쩌고 하는 말은 선현의 지혜가 담긴 세상을 꿰뚫는 진리다.


그렇다고 계속 물어볼 수는 없다. 그에게 사람 같아 보이긴 해야 하니까. 한두 번은 몰라도 자꾸 그러면 무시 당하게 된다. 이런 친절은 동급이라는 전제 하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


‘이런 기재에게 내가 한 수 아래의 존재로 평가되면··· 음.’


사람 취급 못 받으면 최소한의 존중도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막 대하진 않겠지만 친절은 동물에게도 베풀 수 있다. 은연중에 일어나는 평가질에서 기준 이하로 판단되면 진짜 대화가 단절되게 된다. 결코 들키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 장면이 나왔을 때는 이미 서로 초읽기 상태였다. 솔직히 난 각자의 패감이 몇 개 인지 정확히 몰랐다. 그냥 패싸움은 만만찮을 것 같네 정도의 직감으로 다음 수를 선택했었다.


‘아! 몰라. 어떻게 하다 보니 이겼잖아. 얘도 아직 바둑이 무르익은 건 아니라서 잘하는 건 잘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는 거지. 이럴 땐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유리하기도 해.’


결과가 증명한다. 이 대국은 내가 이긴 판이다.


“그래서 흐름을 타고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헐! 미치겠네. 흐름이라니···’


접입가경이다. 수순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력에 들어온 상대의 돌이 추궁 당해 곤마( 困馬, 지친 말)가 되었는데 여기에 무슨 흐름이 있다는 말인가! 내가 하수가 아닌 다음에야 곤마에 탄력을 붙여줄 리가 없다. 곤마를 추궁한다는 건 최대한 수가 나는 맛을 없애는 과정이다.


쫓기는 말은 능동적일 수가 없다. 그렇게 하도록 상대가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곤마와 동행하라는 말이 있긴 있잖아..아! 여행은 동행하란가? 아무튼···’


그러나 그건 너무 심하게 몰아붙여 극단적 상황이 되면 쥐도 고양이에게 덤빈다. 그래서 그것도 방지할 겸 적당히 도망갈 길을 열어주면서 우회적 공격으로 실리를 당기라는 의미다.


설혹 흐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큰 물줄기가 되지 못하게 방해했었는데 상대가 여기까지 흐름을 타고 왔다고 해버리면 그 과정에서 난 헛손질만 한 것이 되어 버린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거 아무 말이나 막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조화로운 눈을 가졌다면 왜 그 대마가 죽어 나갔냐구. 승부에 진 녀석에게 별 소릴 다 들어 보겠네.’


짜증은 나지만 더러워도 참아야 한다. 한신은 불량배의 다리 아래를 기기도 했다는데 이 정도 굴욕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려워도 배울 건 배워야 발전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 이거 나한테 지긴 했지만 잔류 확정이네. 참! 세상사 아침, 저녁이 다르다고 하더니 이제 나 이 녀석과 처지가 바뀌게 되는 거야?’


그렇다면 이건 굴욕도 아니다. 상위 카스트에게 머리 숙이는 건 당연한 거다. 여긴 센 놈이 다 가지는 세상이다.


“여기서 실수가 나왔어요.”


“그 대마가 사는 수가 있었어?”


당연히 난 그런 것 보지 못했다.


‘봤다면 곤마를 몰아가는 과정이 달랐겠지.’


어떤 묘수가 있었는지 기대된다.


“그게 아니라 잘 죽였어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사는 수가 보여서 애초에 계획대로 실행을 못했죠, 그게 실수라는 겁니다.”


‘엉? 이게 무슨···’


사석작전을 하려 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아예 이해가 안 된다.


사석(死石) 아니다. 이럴 때는 사석(捨石)이라 쓴다. 죽은 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돌이다. 여기서 버리는 돌이라는 것은 이미 그 쓰임이 다했거나 잡힌 돌 즉, 폐석(廢石)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활용의 가치가 남았거나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행마를 한 돌이란 뜻이다.


세력에 침입을 했다는 의미는 그렇게 두지 않으면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하는 고육지책이다. 불리하지 않는데 애초에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그런 침입을 왜 한단 말인가! 그럴 땐 외각에서 온건한 방법으로 상대의 집을 깎아내는 것을 택한다. 이것이 삭감(削減)이다.


‘이렇게 응수타진을 하고···’


돌이 휙휙 이곳저곳 날아다닌다.


“이렇게 수를 늘어놓고 끊어서 수상전을 유도했으면 공배를 메우면서 대마를 잡아야 하잖아요. 그렇게 죽였으면 제가 1과 1/4집을 남겼을 거예요. 보통 계가로 하면 1.5집 승이죠,”


갑자기 허탈해진다. 솔직히 지금 하는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조차 모르겠다.


난 그런 계산 자체가 안 된다. 충분히 시간을 주고 연구해 보라고 하면 비슷한 결론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건 기본 30분에 30초 초읽기 3회인 바둑이었다. 초읽기 와중에 상대가 이런 것까지 보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때 내 머리 속에는 무조건 대마를 잡아야 한다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


‘정말 할 말 없게 만드네. 지긋지긋한 재능 타령을 또 해야 하나?’


“잘 배웠습니다.”


복기를 마무리하는 통상적인 인사지만 진심을 담아 깊게 머리를 숙였다.


굴욕감에 머리는 멍하지만 그래도 하나는 알았다. 같은 무기를 들고 싸워서는 이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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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각자의 어려움은 다르다. +3 24.09.17 66 3 12쪽
56 좌충우돌(左衝右突) 24.09.16 72 3 12쪽
55 미쳐 사는 사람들 +2 24.09.16 73 4 12쪽
54 사노라면. 24.08.28 10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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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7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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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위기와 응전 24.08.17 140 4 12쪽
42 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24.08.16 145 3 12쪽
41 준비 완료 24.08.15 140 3 12쪽
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38 도(道)를 아십니까? +2 24.08.12 147 3 12쪽
» 실마리 24.08.11 151 2 12쪽
36 우울한 날 보험 증서를 꺼내다. +2 24.08.10 154 2 12쪽
35 위기 관리 24.08.09 155 3 12쪽
34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24.08.08 165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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