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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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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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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사노라면.

DUMMY

‘요즘 성훈이 형은 뭐 하려나? 대국 시작할 때 안 보이더니 오긴 왔겠지?’


무사히 시드를 수호해 본선 잔류를 마무리 짓고 나니 사람이 그립다. 보통 내 중요대국이 있으면 그는 모르는 척 슬쩍 들러보기도 했었다.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다. 보통 그는 매일 협최에 출근하다시피 나오고 웬만한 대국은 협회 특별 대국실에서 열리니까.


한동안 늘 같이 다녔는데 요즘은 그 늘이 가끔이 되었다.


‘어디에 있을까? 한번 찾아볼까?’


성훈 형은 일반 대국실에 있었다. 쉽게 발견했다. 그런데 좀 곤란하다. 30분 전까지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복기에서 뽕을 뽑으려던 임규진 5단과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둘이 친하나? 에구, 이건 좀··· 다음에 봐야 할 거 같은데···’


“재영아 여기...”


성훈이 형이 입구에서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내가 먼저 봤다고. 이럴 때는 좀 모르는 척 해도 되는데··· 눈치도 없어. 쩝! 할 수 없지.’


여기서 내가 돌아서 나가 버리면 아주 이상해진다. 태연한 척 그 자리로 다가가서 임 5단에게 눈인사를 하고 성수 형 옆자리에 앉았다.


“형. 한동안 못 만났네요. 혹시나 해서 지나다 들러 봤는데 여기 계셨군요.”


“응? 요즘 별다른 일정이 없어. 2단 나부랭이가 바빠야 하는데 이렇게 늘어져서···”


엄살도 심하다.


‘열개 같은 하나를 가졌으면서 왜 이렇게 앓는 소리를 하는 건지···’


“예전처럼 승단대회라도 있었으면 좀 덜 무료했으려나? 내가 성훈이를 위해서 승단대회 재개 하자고 협회에 건의라도 해 봐?”


내가 자리한 이후 좀 머쓱해하던 임규진 5단이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바꾸려 한다.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그런 영양가 없는 말씀하지 마세요. 전 지금이 아주 좋아요.”


승단대회는 2002년까지 따로 열렸었다. 문제는 대국료도 없고 순수하게 승단만을 위한 대회라서 기사들이 몹시 싫어했다. 심지어 몇몇 기사는 대회를 보이콧해 승단하지 않고 아주 오랜 기간 저단 딱지를 달고 있었다.


과거에는 단수에 따라 일반 기전 예선참가에 특혜를 줬다고 한다. 고단진은 2차 예선에서부터 시작한다든지 하는 혜택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것이 없어지고 난 지금에 있어서 고단이라고 해서 특별히 좋은 점은 없는 것 같다.


‘가끔 있는 전체 회의 할 때 고단진의 자리 배치가 앞쪽으로 이루어지긴 하지. 그것 말고는 그다지···’


그래서 2003년부터 규정이 바뀌게 되었는데 지금은 1년에 상위 10개 기전 중 10국을 대국해 승패에 따라 승단 점수를 부여하는 시스템이다. 대국료가 완전 폐지되는 2010년 이후에 다시 규정이 바뀌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사항은 기억에 없다.


‘가만 이 형이 만약 스마일배에서 준우승을 하면 특별승단 규칙이 적용되는 건가? 아직은 그런 게 없나?’


“그나저나 너 마침 잘 왔다.”


성훈이 형이 그렇게 말할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얼핏 생각해 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왜요?”


“여기···”


그가 앞에 놓인 바둑판을 가리켰다. 그곳엔 조금 전에 끝난 임규진 5단과의 대국에서 나온 형태로 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거 말이다. 너 백이 이렇게 받았으면 어떻게 응수하려고 한 거야?”


흑의 중앙 침입 장면이다. 침입을 했는데 삭감처럼 된. 괜히, 김 3단의 눈치가 보인다. 슬쩍 눈만 돌려 살펴본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이 형님이 아까 복기할 때 시간을 너무 끄는 것 같아 미안해서 미처 이걸 못 물어 보고 복기를 끝냈다고 해서··· 여기서 나하고 좀 놓아 봤는데··· 좀 애매하네. 실전 중이 아니라 집중력이 안 생겨서 그런지 잘 모르겠어. 대국 당사자 수읽기가 제일 정확하겠지. 네가 생각한 수순을 한 번 보여줄래?”


임 5단은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지만 급격하게 얼굴이 빨개졌다. 나만 대국당사자가 아니라 그도 대국당사자였다. 이건 살짝만 비켜들으면 앞에서 대놓고 욕을 한 거다.


‘참! 눈치가 없는 건지··· 신경이 굵은 건지···“


이럴 때 보면 성훈이 형이 정말 대단하다. 사람 무안하게 기분상할 말을 하면서도 너무 태연하게 한다.


‘나 참! 에이, 모르겠다,’


분위기가 급격하게 싸늘해지려는 것 같아 모르는 척 바로 말을 받아 이어나갔다.


“그건 일단은 응수타진이었어요. 백이 이렇게 차단하면 손 빼죠. 그리고 여기부터 손질해서 등을 두텁게 한 다음에 이렇게 밭 전자로 나가면··· 5대5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이렇게 붙여서 머리를 누르면···”


이럴 때 성훈이 형은 이것저것 가리는 것 없이 직진이다. 물음에 거침이 없다.


“그건 일단 젖혀야죠. 그리고 어떻게 받나 봐야죠. 만약 맞 끊으면 이렇게··· 따라 나와서 늘고 젖히면 같이 늘어나가다가 여기서 맞 끊고···.”


“필연적으로 전투가 벌어지게 되는 건데 현재 형세가 나쁘지 않은 흑이 굳이 그래야 할 이야가 있을까요? 결과를 떠나 그건 기리에 맞지 않은 발상인 것 같은데요.”


붉어진 얼굴로 지켜보던 임 5단이 참전했다.


“글쎄요. 싸워야 하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더 기리에 역행하는 게 아닐까요? 이 아래쪽에 흑이 선수로 언제든지 벽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놓으면 이 전투를 아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전 이런 장면에서 전투를 회피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한참 동안 열띤 공방을 벌였지만 끝내 그 모양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 세력이냐 실리냐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같은 수에도 판단의 차이가 생긴다.


“고마워요.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해줘서···”


“아니에요. 아까 복기 때 말씀하셨어도 괜찮았을 텐데 다음에는 그런 거 미안해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가리지 말고 말씀 주셔도 좋습니다.”


“그럴게요. 그런데 그땐 결과가 오늘 같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임 5단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끝까지 나에게 말을 놓지 않고 공대를 한 아주 반듯한 사람이었다.


“형이랑 친해요? 저 분.”


“아! 규진이 형. 예전 같은 도장에서 좀 길게 보던 사이야. 청운으로 옮기기 전···”


‘“그랬군요.”


“한동안 교류가 없었는데 요즘 공동으로 공부를 같이하면서 자주 만나게 되었지.”


처음 듣는 소리다.


“공부요? 같이 뭘 연구해요?”


“저 형이 XX고 출신이거든. 거기 출신인 친한 기사들끼리 모여서 같이 공부하는 모임이 있어. 주로 근래에 두어진 주요 대국의 기보를 보면서 의견을 내고 그러는 거야. 우연찮게 거기 참석하게 되었는데 괜찮더라고.”


뭔가 살짝 찝찝해지기 시작했다.


“그걸 왜 굳이 같이해요?”


“혼자서 하면 아무래도 자기 기풍이나 이런 것 때문에 호불호가 생기기 마련이잖아. 나에게 기존의 너와 원장님이 있었지만 이젠 너무 익숙해진 것 같아서··· 새로운 관점이 필요했지. 여러 사람이 같이 분석하면 아무래도 편견 같은 것이 줄어들어. 보는 눈이 다양하니까.”


공동연구가 활성화 된지는 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왜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세상사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니까.’


갑자기 관심이 생겼다.


“그거 좋네요. 언제부터 한 거예요? 그래서 요즘 얼굴 보기가 힘들었구나.”


“한지 좀 됐지. 너도 불편하지 않으면 같이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살짝 구미가 당긴다.


“저야 다들 잘 모르시는 분들인데 끼워 주겠어요?”


“아니야. 내가 너하고 두고나서 연구했던 바둑 기보 몇 개 보여주니까 되게 궁금해 하고 열심히 분석 하더라구.”


‘헉! 이런··· 적이 내부에 있었구나. 이 형이 정말···’


나에 대한 약점 파악이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갑자기 감이 왔다.


“흐흣··· 그것 참 좋았겠네요.”


난 성훈이 형처럼 신경이 굵지 못해 이런 일에 태연할 수가 없다. 몹시 짜증스럽다.


언제나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이 더 두려운 것이다.


‘에이! 그놈의 공부방 내가 가나 봐라.’



###.


오래간만에 학교를 갔다. 한 때는 인기인이 될 뻔한 시기도 있었는데 그 후 나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식었다.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


‘별로 섭섭하진 않아. 애초에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애초부터 반 아이들과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중학생이면 웬만큼 머리가 큰 아이들인데 그런 아이들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다. 거기에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을 것 같았다.


입단을 하고 나서부턴 학교에 가는 일이 더 드물어졌고 과거에 나에게 관심 있어 하던 아이들과는 반도 나누어 졌다. 요즘 막 보는 아이들에겐 잊을 만 하면 가끔씩 나타나 기억을 되살려주는 내가 어색한 것 같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재영아 안녕. 왜 요즘 이렇게 안 오니 자주 보고 싶은데···”


“어··· 안녕. 수영아··· 그···”


얘만 빼고.


그런데 얘도 이제는 갑자기 사귀자 이런 말을 막 하진 않는다. 얘도 한두 살 더 먹으면서 가릴 것 가리게 되었나 보다. 조금은 섭섭해지기도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조금의 단맛과 아주 많은 씁쓸함이 있다.


‘에고, 결코 아주 서운하단 뜻은 아니야. 조금··· 음.’


어쨌든 그래도 아직은 학교에 가끔 가긴 한다. 프로가 된 뒤부터 학교에서는 거의 방임하다시피 간섭이 없었다. 출석을 어떻게 해도 말이 없고 심지어 중간에 대회준비를 핑계 삼아 장기간 쉬었는데도 별다른 제지가 없었다.


아무리 출석 일수가 부족해도 학년은 정상적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부분 때문에 내가 예체능을 선택했고 거기에서 작은 성과를 낸 이유이지만 요즘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학교생활에 별다른 애착이 없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은데 무슨 영문인지 이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어메이징한 일이지. 나라도 바로잡아서···’


. 굳이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다. 그 시대에는 거기에 알맞은 룰이 있다.


‘이건 판타스틱한 세상에선 평범한 일일 뿐이라고.’


성과는 미미했지만 올 대부분의 대회에 참가해 열심히는 뒀다. 이제 곧 해가 지나면 초단 딱지를 떼게 된다.


초단은 수졸(守拙)이라는 별칭이 있다. 졸렬하게나마 제 스스로는 지킬 줄 안다라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올 한해가 그렇게 흘러간 것 같다. 아주 초단에 걸 맞는 한해였다.


곧 올라설 이단의 별칭은 약우(若愚)다. 일견 어리석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움직인다란 뜻이란다. 내년의 내가 그렇게 발전할 수 있을 지 의문이지만 기대된다.


‘그전에 나도 연구모임을 하나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다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겠다. 다음 스텝을 위해선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관점의 의견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훈이 형이 하는 곳은 가기 싫어졌고 어디가 좋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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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한계돌파를 위해 24.09.18 61 3 12쪽
57 각자의 어려움은 다르다. +3 24.09.17 66 3 12쪽
56 좌충우돌(左衝右突) 24.09.16 72 3 12쪽
55 미쳐 사는 사람들 +2 24.09.16 73 4 12쪽
» 사노라면. 24.08.28 107 2 12쪽
53 열전 24.08.27 117 3 12쪽
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7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5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5 4 12쪽
49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24.08.23 143 2 12쪽
48 승리자의 권리 24.08.22 143 3 12쪽
47 트라우마 24.08.21 131 2 12쪽
46 마지막 한 걸음 24.08.20 135 3 13쪽
45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5 3 13쪽
44 제 8국 24.08.18 141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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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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