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드라마

새글

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최근연재일 :
2024.09.20 14:15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5,235
추천수 :
190
글자수 :
331,590

작성
24.08.21 14:15
조회
131
추천
2
글자
12쪽

트라우마

DUMMY

“넌 대단한 놈이야.”


“예?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차분한 진재국에게 고성훈은 참 대하기 힘든 선배였다. 그 과정을 짐작하기 어렵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생각의 편린들을 맞춰내는 것이 아주 어려웠다. 즉 대화가 잘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한재영을 대국장에 내려주면서 바로 다음 목적지로 향할 것처럼 말했었지만 사실 오늘 두 사람에게는 이후 스케쥴이 없었다. 집으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다음 행선지는 자연스럽게 대국장 근처의 커피숖이 되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향의 두 사람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면 굉장히 거북해진다. 일단 진재국은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고성훈이 이상한 말을 던져 왔다.


“어떻게 조금 전 그 상황에서 안 웃을 수가 있지? 티 안내고 태연하게 잘 넘기던데··· 대국 하면서 그 스킬로 여러 놈 죽였을 거 같아.”


“아! 제가 티를 좀 덜내긴 하죠. 그리고 그게··· 그 장면에서 다르게 행동하기가 어려웠어요.”


어떤 의도로 한 말인지 비로소 느낌이 왔다.


“제 행동이 이상했나요? 곧 큰 승부해야 하는 사람에게 무안함을 줄 수야 없지 않겠어요? 사실 저도 웃음이 나긴 했었죠. 단지 참은 것뿐이에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잘했어. 다만 좀 놀랐다고. 난 도저히 못 참아서 재영이를 배웅하면서도 피식거리고 있었거든. 그 자식 평소에 엄층 쿨한 척 굴더니 그냥 아직 애는 애다 싶기도 하고.”


“저 역시 조금 놀랐어요. 큰 승부를 앞두고 잠깐 긴장의 끈을 놓치고 졸 수는 있죠.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런 잠꼬대 할 정도로 큰 압박감을 느낄 줄은 몰랐어요.”


진재국의 얼굴에 살짝 웃음기가 나타났다.


“크크큭. 아무리 그래도 신이시여 제가 마지막 바둑을 둘 수 있게 도와주소서는 좀 심하지 않았니?”


“하핫. 그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기는 한데 전 그냥 기억에서 지우려고요. 다들 어릴 때는 잠자리에서 잠깐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잖아요. 다 불가항력적인 거랍니다.”


고성훈의 얼굴에서도 얄궂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난 그래줄 수가 없겠는 걸. 아까는 대국 전이라 그냥 넘겼지만 이번 대국만 잘 끝나면 두고두고 놀려 먹을 생각이야.”


“형의 그 희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재영이가 오늘 꼭 이겨야겠네요.”


“이길 거야. 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걔 기재(棋才)가 어떤 기잰데··· 음.”


. 그렇다. 일단은 이겨야 한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 그러다 갑자기 대화가 끊어져 버렸다. 보통 전업 바둑장이들의 대화에서는 승패에 대한 이야기가 본론이고 결론이다. 이미 이겨야 한다고 결론이 나버렸는데 더 이상 어떤 할 말이 있겠는가!


어색한 침묵이 불편한 듯 진재국이 억지로 말꼬리를 붙들었다.


“재영이는 잘 하겠지요. 저는 입단 때 그럭저럭 무난하게 통과한 편이라고 다들 그러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죽을 것처럼 가슴 졸인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런 것들이 외부엔 잘 드러나지 않나 봐요.”


진재국은 모르겠지만 고성훈은 그가 입단하는 순간 그 현장에 있었다. 절대로 무난하지 않았다. 동률 재대국에 재재대국까지 치러야 했던 인고의 행진이었다.


“무난? 그런 게 무난한 거야? 허헛. 뭐 주변 사람들 이야기는 그냥 덕담 같은 거였겠지. 어쨌든 그렇게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은 거야. 본인이 그렇다는데 더 할 말이 없네, 난 내 입단 때 겪은 우여곡절이 아직도 가끔 악몽으로 떠오른다고.”


“형은 그 정도였어요?”


고성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건 어쩌면 아주 부끄러워 한 때 숨기고 싶었던 기억의 한 조각이었다.


“그때 나도 재영이처럼 마지막 판이 입단결정국이었어 그 중요한 대국을 시작하자마자 그 무게감에 짓눌려 가지고 멍해져 뭘 하는지도 모르고 무엇인가를 하려다 망해버리고 말았어.”


“그 비슷한 이야기를 어디서 좀 들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랬겠지. 이 좁은 동네에서··· 너무 순화해서 말 안 해도 돼. 그 일로 나 욕하는 애들 있는 거 아니까. 나도 귀는 있다고.”


본인은 많이 비관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진재국이 들었던 이야기가 무조건 그를 비난한 일방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 건에 대해 제가 들어본 의견은 좀 나눠지던데···”


“그래? 넌 어떤 생각이 들었니? 아니, 어느 쪽 의견이 마음에 들어왔었어? 이렇게 물어봐야겠네.”


이미 스스로 그 사건을 극복해 낸 고성훈에게는 세상 장삼이사의 세세한 의견 보다는 현재 가까이 있는 이의 생각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나야 뭐···”


원래도 타인에게 싫은 소리 하기를 피하는 진제국에게 어느 쪽을 택하든 반대쪽에선 비난이 될 수 있는 이런 질문은 최악이다. 고성훈이 질문을 조금 바꿨다.


“너 인터넷 바둑 두지? 거기서 판이 확 기울었는데 상대가 마구잡이로 뻗대던 경험이 없었니? 그 때 무슨 생각을 하며 마무리를 했지?”


“그거야··· 음.”


때론 진실은 거북하다.


“나도 던지고 싶었어. 그런데 도저히 던질 수가 없는 거야. 돌이 바둑판이 아니라 가슴에 박혔는데 너무 무거워서 뺄 수가 없더라고."


고성훈의 토로는 진재국이 심연 아래로 처박아 끄집어 내길 두려워 했던 어떤 기억과 닿아 있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역전해야겠다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할 수조차 없는 상태였었지. 그냥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눈은 뜨고 있었지만 거의 의식을 잃었고 그 와중에도 습관적으로 바둑판에 돌은 한 수씩 올려야 하고···”


“중요한 한 판은 무게감이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진재국도 그 비슷한 상황을 입단 때 겪었다. 고성훈의 고백에 너무 괴로워 잊고 싶었던 그 희미한 기억이 스멀대고 올라오려 한다. 너무 힘들었는데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마음. 거의 의식이 없이 바둑을 두었던 상황··· 끝없는 터널에 빠져든 느낌이···


“어헛!”


갑자기 진재국의 마음 한구석이 촉촉해졌다.


“재국이 너 되게 어른스럽게 행동하려 하는데 내 눈에는 너나 재영이나 거기서 거기야. 그냥 꼬맹이들이지. 이런 꼰대스러운 말을 하는 나 역시 바둑계의 원로들의 눈에는 너희와 같이 보일 거야. 그냥 젊은 기사들로.”


“음. 형 생각은 어떤 대국이나 단순한 바둑 한판일 뿐이다 이건가요?”


“나도 요즘에서야 느끼는 건데 좀 크게 멀리서 보면 결국 그렇다는 거야. 사실 바둑의 승패는 대국을 하기 전에 거의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왜냐하면 본 실력의 높고 낮음이 대국 전후라고 크게 달라지겠냐고.”


“승부를 업으로 해야 하는 기사님의 의견 치고는 너무 비관적이네요. 형은 대부분의 기사가 대국시 반전무인의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승패가 나눠진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아마도···”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승부사의 길을 걷는 사람의 고뇌가 짙게 배인 생각이었다.


“그걸 어쩌겠어요. 우리 모두 사람인 걸. 어르신들이 보통 하시는 말씀이 있잖아요. 신선은 신선의 바둑을 두고 사람은 사람의 바둑을 두는 것이라고."


고성훈도 많이 들어 본 이야기였다.


"그것의 속 뜻이 말씀하신 내용과 비슷하다 싶군요. 그런데 오늘 저 여러 번 놀랍니다. 하핫. 형이 이런 생각도 할 줄 하는 사람인 걸 처음 알았네요.”


“뭐라고? 내가 뭐···”


“평소에는 유머가 넘치는 유쾌한 프로님이죠. 이런 날 밥 사주는 물주이기도 하고··· 딱 돈 많고 친절한 좋은 동네 형 포지션이었는데··· 지금 보니까 생각도 깊은 것 같네요.”


진재국에게 자연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 생각 없이 걸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늘 승부에 대한 생각을 하지. 대국 전, 대국 중, 대국 후 지금처럼 한가할 때도 제대로 여가를 즐기지 못하고 젊음이 넘치는 몸으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으니 어쩌면 입단국 그 한 판을 이겨서 한심한 인생이 된 건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본인은 후회하시나요? 입단 대회 때 그 한 판을 이겨 이런 인생이 펼쳐진 것에 대해?”


고재국에게서도 진재국의 미소와 비슷한 짙은 웃음이 배여 나오기 시작했다.


“후훗. 절대 그럴 리가 있겠어? 긴 세월 염원하고 노력한 일을 이뤄낸 건데 비록 그 과정이 완벽하게 향기롭지는 못했지만 현재의 나는 과거의 그런 모습들의 총합이잖아. 감내할 건 감내해야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쟁취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굳이 뒤를 돌아보고 싶지도 않고 말이야.”


“그건 그렇죠. 우리가 그 때 이겨냈기에 다음 스토리가 전개되어 여기까지 흘러온 거겠죠. 물론 졌었어도 다른 인생의 장이 펼쳐졌겠지만 내 인생에서 바둑이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싫어요.”


고재국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재영이는 이길 거다. 그래서 내년 공식대국에서 우리와 만나게 될 거야. 좀 괴롭긴 하겠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재미있을 거라고 믿어.”


“ 그럴 거라고 저도 믿어요. 적어도 오늘 대국에서 실력의 고하는 승패를 결정짓는 작은 요소일 뿐이죠. 그렇다면 오늘 승부의 포인트는 배짱싸움인데 재영이가 그런 부분에서 상대에 비해 모자랄 거 같지는 않아요,”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지금 문제가 되는 건 동률로 지금까지 버터온 한 명에 마지막 역전이 가능한 한 명이네. 어차피 이런 결정대국에서 2등은 소용없고 무조건 이겨내야 살아남는 단두대 매치라 할 수 있는데. 이 애들 모두 똥줄 타겠네. 제정신 아닐 거다.”


‘어휴! 좀··· 교양 있는 말도 많은데 저속하게스리··· 형도 왕년에 그 고생 끝에 입단 했었으면서 지금 대국자들 마음이 어떨지 잘 알 텐데··· 쯧쯧. 이젠 남의 일이라 이겁니까? 아주 취향이 고상하시네요.“


“하핫. 뭘 그렇게 따지고 들어. 재영이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에 좀 오버했어. 됐냐? 내겐 남의 고통을 보고 즐거워하는 그런 취향 같은 건 없다고.”


두 사람은 믿었고 그 믿음은 그 하루가 가기 전에 보상 받았다.



###


“원장님. 정말 감사함다. 제가 평생 형님으로 모실게요. 꺼억!”


“흑흑··· 이제 내가 원이 없어. 그놈의 프로에 한이 지려고 했는데··· 성훈이에 이제는 재영까지··· 흐흑,”


‘애고, 오늘 완전히 어르신들 날이네. 크큿. 그렇게 좋으실까.’


. 이미 재영이의 아버지와 원장님은 축배에 취해 인사불성이다.


“한재영 고생했어. 믿고 있었다고. 재국이도 여기 오고 싶어 했는데 아직 어려서··· 이런 자리엔 좀···”


당연하다. 미성년의 프로기사가 구설수의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이런 술자리에 같이 어울릴 필요 없다.


“재국이 형이야 내일 만나면 되죠. 대국에서 별다른 고생은 안 했어요. 각오를 다지고 간 거에 비하면··· 히힛.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상대가 스스로 넘어진 상황이라 뭐 우여곡절이 나오고 그럴 일 자체가 없었어요. 아싸. 나도 이제 프로다.”


“흐흣. 재영아! 아까 말이다. 점심 먹고 나서 차 안에서 내가 왜 웃었는지 아니? 너하고 헤어지려고 했을 때.”


고성훈의 말이 은근하다.


“예?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형이 울었던 웃었던 뭘 했었는지 그런 기억이 없어요.:


“오호! 그래? 그럼 신실한 기도 이런 것도 기억에 없겠네.”


“기도요? 갑자기 무슨 소리를··· 전 종교도 없는데 그런 걸 하겠어요?”


“하핫. 곧 다시 하고 싶어질게다. 형이 찬찬히 다 알려주마.”


인간에게는 다양한 특성이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번 주말(토,일)은 쉬어갑니다. NEW 23시간 전 3 0 -
공지 어제 입원했습니다. +2 24.08.29 51 0 -
공지 연재시간 변경 매일 14시 30분에 올리겠습니다. 24.07.15 226 0 -
60 복기의 이면 NEW 6시간 전 29 1 12쪽
59 승리의 통쾌함과 패배의 허탈함. 24.09.19 49 3 13쪽
58 한계돌파를 위해 24.09.18 61 3 12쪽
57 각자의 어려움은 다르다. +3 24.09.17 66 3 12쪽
56 좌충우돌(左衝右突) 24.09.16 72 3 12쪽
55 미쳐 사는 사람들 +2 24.09.16 73 4 12쪽
54 사노라면. 24.08.28 107 2 12쪽
53 열전 24.08.27 117 3 12쪽
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7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5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5 4 12쪽
49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24.08.23 143 2 12쪽
48 승리자의 권리 24.08.22 143 3 12쪽
» 트라우마 24.08.21 132 2 12쪽
46 마지막 한 걸음 24.08.20 136 3 13쪽
45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5 3 13쪽
44 제 8국 24.08.18 142 4 13쪽
43 위기와 응전 24.08.17 140 4 12쪽
42 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24.08.16 145 3 12쪽
41 준비 완료 24.08.15 140 3 12쪽
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38 도(道)를 아십니까? +2 24.08.12 147 3 12쪽
37 실마리 24.08.11 151 2 12쪽
36 우울한 날 보험 증서를 꺼내다. +2 24.08.10 154 2 12쪽
35 위기 관리 24.08.09 155 3 12쪽
34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24.08.08 165 4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