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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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최근연재일 :
2024.09.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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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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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복기의 이면

DUMMY

“너 요즘 밥은 잘 먹고 다니냐?”


복기를 하던 송 6단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네? 아··· 예. 밥··· 잘 먹죠.”


“놀래긴···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오며 가며 많이 봤잖아.”


“아··· 예. 그렇죠.”


그런 식이면 난 협회 사람들 모두와 친분이 있다.


“어린 애가 딱딱하게 왜 이러냐? 그냥 형이라고 해. 그 정도는 부담 없을 거잖아.”


“아··· 예. 그렇긴 하죠.”


송 6단은 85년 생이다.


“별일 없으면 오늘 저녁이나 같이 할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휴! 바둑 지고 밥 생각이 나겠어요? 더러운 타이밍에 말을 하시네. 이런 완패를 당했는데··· 댁이 너무 기분 좋게 이겨서 그러시나?’


“다른 일 없습니다. 그러시죠.”


“그럼···”


이 사람이 왜 갑자기 친한 척을 하는지 궁금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느라 복기는 뒷전이었다. 송 6단도 그다지 복기에 열심이진 않았다.


대충 형식적인 복기를 마치고 잠시 개인적 시간을 가지다 만나기로 한 시간에 조금 앞서 협회 정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잠깐의 기다림 후 제 시간에 맞춰 송 6단이 나타났다.


“많이 기다렸니?”


“아뇨. 저도 금방 왔어요.”


“이리로···”


그의 손짓 따라 갔더니 XX옥이다.


‘꼭 어디 근사한 곳으로 데리고 갈 것처럼 하더니, XX옥이야?’


이곳이 좋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그 동안 점심 때 수시로 이용하던 곳이라 그렇게 신선하지는 않다.


“으음... 불고기 참 맛있네요.”


“천천히 먹어라. 음료수도 좀 먹을래?”


“옙”


여기서는 주로 점심 때 냉면만 먹었는데 불고기가 이렇게 맛있는 줄은 몰랐다.


“참 씩씩하네. 나는 지금도 지면 밥을 잘 못 먹는데···”


“이기신 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송 6단이 슬슬 본심을 드러낸다,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에이! 성질나게··· 밥 한 끼 사면서 생색은···. 확 안 먹어 버릴까 보다. 음! 그래도 불판에 남아 있는 건 다 먹어야겠지. 음식 남기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럼.’


약간의 반발과 조금의 찌푸림으로 이 장면을 끝냈다. 아직 음식이 많이 남은 관계로 긴장감을 길게 끌고 가기가 어려웠다.


“푸하하. 지나면서 볼 때마다 어린애가 온갖 인상을 다 쓰고 다녀서 졔는 참 세상에 불만이 많은가 보다 했었는데 이렇게 만나니까 밥도 잘 먹고 말도 잘 하고··· 크크큭. 이젠 다 컸네. 그래 아까 성질 좀 나던?”


“그거야···”


대답을 하려는데 목이 멘다. 입안의 음식 때문에.


‘하 참! 한 번에 하나씩만 합시다. 난 멀티가 안 된다고.’


“나도 좀 실망스러웠어.”


“네? 무슨···”


급하게 물로 입안을 헹구어 냈다.


“그 동안 뭘 했기에 오늘 바둑이 그 모양이야?”


갑작스러운 나무람이라니··· 좀 당황스럽다.


‘오늘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았던 건 이 말을 하기 위한 사전준비였을까?’


그리고 내용 역시 이상하다. 내가 오늘 바둑을 잘 못 둔 건 맞지만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날 잘 알지 못할 것 같은데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니 색깔이 없어졌잖아. 반짝반짝 하던 그 색깔 말이야.”


“네?”


점점 모를 말이다.


‘아저씨! 바둑이 언제 컬러였던 적이 있었어요? 흑과 백. 말 그대로 흑백의 세계죠. 반짝이긴 개뿔··· 무슨 이야기인지 좀 알아듣게 해줬으면 하는데...’


송 6단은 내가 못 알아듣는 듯하자 바로 이어서 말을 덧붙였다.


“넌 판을 짜는 구도가 남달랐던 애야. 승패를 두고 이야기 하는 게 아니야. 난 상당히 오래 전부터 보고 있었어. 그런데 지금의 넌 어때. 남들 다하는 것처럼 두고 있잖아.”


분명히 하고 있는 건 나무람인데 전혀 그렇게 들리지가 않는다.


‘지금 이야기가··· 내가 나쁜 쪽으로 달라졌다는 뜻인 건가?’


아직은 그 뜻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이것 하나는 알아야 해. 네가 네 류(流)를 가지지 못하면 최고의 자리에 설 수는 없어. 아류(亞流)로는 안 된다고.”


그와는 별 교류가 없어 친소를 따질 사이조차 되지 못했지만. 왠지 그에게서 나를 걱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음. 그러면···”


진심의 일단을 보여주면서 진지한 충고를 해주는 이런 사람을 사회에서 만나긴 굉장히 어렵다.


‘이 정도의 사람이라면 요즘 내 고민을 조금 털어놔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오늘 대국들에서 느꼈던 위화감에 대해 혼란스러웠다고 표현하자 송 5단이 피식 웃는다.


“좀 쉽게 비유를 하마. 네가 타자인데 패스트 볼을 잘 쳐. 변화구는 그저 그래. 그래서 투수들이 널 만나면 변화구만 던져. 넌 어떻게 해야겠니?”


“그거야··· 음.”


그도 일류가 되는 과정에서 겪었을 일 같기에 조언을 구해 봤는데 갑자기 비유로 야구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웬 야구? 그러고 보니 야구 못 본지도 한참 되었네. 한 때는 참 좋아했었는데···’


요 몇 년간은 바둑 그리고 바둑만으로 내 인생을 요약할 수 있다.


“넌 지금 잘 치지도 못하는 변화구를 노려. 네 강점은 패스트 볼 치는데 있는데··· 가끔 변화구를 때려서 안타도 되고 홈런이 될 수도 있겠지만 네가 패스트 볼을 쳐서 얻어낼 수 있는 것만은 못하겠지. 그렇지 않니?”


“상대 투수가 패스트 볼을 안 던지는데 그걸 어떻게 치나요?”


뻔한 이야기를 아주 복잡하게 한다.


‘좀 구체적으로··· 선문답 같은 얘기를 할 것 같으면 시작도 마시고.’


그래도 조금 더 들어볼까란 생각이 공존한다.


“그럼 다르게 이야기 해 볼께. 네가 투수야. 넌 패스트 볼이 아주 빠르고 정확해. 변화구는 그저 그래. 패스트 볼을 잘 친다고 분석된 타자를 만났어. 그럼 넌 변화구만 던질래?”


“음···”


이제야 쪼끔 그럴 듯하게 들린다. 결국 내 강점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상대에 따라 네 스타일을 바꿔선 일류가 될 수 없어.”


“그렇다고 상대 변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그것도 내 앞을 통과하면 스트라이크가 되는 건 마찬가지라구요.”


송 6단의 얼굴에서 웃음기 같은 것이 슬쩍 보인다. 아주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세상에 패스트 볼과 변화구가 다 좋은 투수는 거의 없어. 그게 다 좋으면 이미 일류지. 피네스 피쳐라고 해서 변화구만 던지는 투수는 더 없고. 말하자면 넌 지금까지 네 약점으로 상대방의 강점을 상대하려고 했던 거야. 머리를 좀 써봐.”


“그럼 상대를 유인해야 한다는 건가요? 패스트 볼을 던지게?”


“휘두르는 자와 휘둘리는 자. 난 그것이 일류와 이류의 차이라고 생각해.”


아주 의미심장한 표현이다.


“오늘 대국 초반 압박이 덜한 것처럼 네가 느꼈던 건 내가 내 본모습을 지키려고 해서라고 생각해. 내가 굳이 너에게 맞춰 내 강점을 버리고 둬야할 이유가 없지 않았겠니? 네가 패스트 볼을 잘 치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내 공은 더 빠르다고.”


“헉!”


눈이 확 뜨이는 것 같다. 이렇게 오묘한···


“감사합니다. 다음번에는 꼭 이기겠습니다.”


“하핫. 이거 내가 괜한 말을 해줬나? 내가 오지랖만 넓어 가지고. 공부 열심히 해. 잘해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이래서 사람은 인덕이 있어야 한다.


‘이 양반이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었나? 그런 이야기는 전혀 못 들어봤었는데···’


무슨 동기에서였든 간에 아무튼 너무 고맙다.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이런 경험을 가질 수 있는 인생을 살게 해준 누군가에게도 정말 감사하고 싶다.


식사자리를 파하고 바로 집에 돌아왔지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긴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기본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 그런데 뭘 열심히 해야 하나? 몰라서 물어? 당연히 내 바둑의 근본이지.“


기억 한편으로 부터 외우고 있던 기보 20개를 오랜만에 꺼내 차례로 복기해 보았다. 한동안 하지 않았던 일이다. 피상적인 답습이 아니라 50수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다른 관점으로 이어보려 노력했다.


혼자 독야청청 하는 독창적인 수가 있을까? 어떤 수에 이어지는 독창적인 변화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수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수가 특별한 것이 아니고 그전에 상대가 잘 못 두었기 때문이다.


바둑 신에게 묘수 따위는 없다. 정수와 악수가 있을 뿐이다.


단번에 무엇인가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감이란 게 추상적인 것이라 한순간에 잡아지기도 한다.


‘뭔가 좀 느낌이 있는 건가?’


잘 모르겠다. 감이란 허공에 있는 연기와 같다. 빤히 보여서 움켜 잡아보려고 하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가 버리고 손안에 남은 것은 없다.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창밖이 밝아올 무렵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


“본선에 하나 더 올라 갈 수 있을 거라고 좋아하더니··· 어때? 송 6단은 좀 다르지 않았어? 너무 실망하진 마. 또 기회가 있을 거야.”


민호 형이다. 이게 위로인지 놀림인지 구별이 안 간다.


“그럼요. 난 아직 십대 중반이라서 아주 많은 시간이 남아있죠. 이십대 중반으로 들어서는 누구와는 좀 다르지요.”


“크! 그렇구나. 그런데 다 늙어가는 그 기사가 초일류를 잡아내고야 말았구나. 어린 기사는 아직 경험부족으로··· 쯧쯧. 여긴 의욕만으로 다 되는 세상이 아니라서···”


“크큿. 언제부터 그렇게 잘 비꼬았어요? 차라리 그냥 대놓고 악담을 하게요. 전 이제부터 후퇴는 없어요. 다 이길 겁니다.”


이런 농담 따먹기와 같은 대화를 길게 끌고 가기 싫었다.


“그게 그렇게 니 마음대로 되는 거였어? 그리고 이번 시즌 네 마지막 대국까지 다 치렀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이길래?”


“그거야··· 어휴! 아무튼 어떤 형식의 대국이라도 무조건 다 이길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형 방내기 한판 어때요?”


“뭐? 흐흣. 네가··· 아주 바둑 두고 싶어 죽겠지?”


슬쩍 한번 찔러본 말이었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다. 정말 그렇다; 새로운 힘을 시험해보고 싶어 몸이 뒤틀릴 지경이다.


‘이거 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데 진검승부를 하면 민호 형과 승률이 어떻게 될 지는···’


“내가 말이다. 누구와 달리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어요. 한국 바둑의 일인자를 잡아내는 센세이션한 사건을 일으키며 본선에 진출하고야 말았단다. 쓸데없는 일로 힘 빼고 싶지 않아. 아직은 때가 아니란다.”


미꾸라지처럼 싹 빠져나간다.


“적당히 좀 하세요.”


민호 형은 최고위전 본선에 오르면서 기고만장이다. 그 과정에서 현재 일인자를 잡아내기도 했으니 아주 엄청난 성과이긴 하다. 그래도 어떨 땐 꽤 얄밉데 말을 한다. 악의 없는 것은 알지만 좀 열 받게 된다.


‘면호 형이 결국 본선행을 확정지었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성훈이 형, 민호 형 등 20대 형들의 약진에 자극받아 함께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언제쯤 난 가능할까? 그전에 공부한 걸 한 번 써 먹어 봐야 하는데 상대가 재국이 형밖엔 없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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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기의 이면 NEW 6시간 전 29 1 12쪽
59 승리의 통쾌함과 패배의 허탈함. 24.09.19 49 3 13쪽
58 한계돌파를 위해 24.09.18 61 3 12쪽
57 각자의 어려움은 다르다. +3 24.09.17 65 3 12쪽
56 좌충우돌(左衝右突) 24.09.16 72 3 12쪽
55 미쳐 사는 사람들 +2 24.09.16 73 4 12쪽
54 사노라면. 24.08.28 106 2 12쪽
53 열전 24.08.27 117 3 12쪽
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7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5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5 4 12쪽
49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24.08.23 143 2 12쪽
48 승리자의 권리 24.08.22 143 3 12쪽
47 트라우마 24.08.21 131 2 12쪽
46 마지막 한 걸음 24.08.20 135 3 13쪽
45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5 3 13쪽
44 제 8국 24.08.18 141 4 13쪽
43 위기와 응전 24.08.17 139 4 12쪽
42 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24.08.16 144 3 12쪽
41 준비 완료 24.08.15 140 3 12쪽
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2 4 13쪽
38 도(道)를 아십니까? +2 24.08.12 14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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