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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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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국

DUMMY

2007년 한국바둑협회 연구생 입단자 결정전.


출전자 한재영의 인생이 걸린 제 8국이 시작되었다.


‘좀 거창한 표현이었나? 그래도 대부분 진실이라고. 진짜 그렇게 생각해. 과장은 안 했어.


바둑을 접나 계속 하나의 배수진을 치고 벌이는 대국들인데 인생을 걸었다고 말해도 크게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십 대 초반 몇 년 간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간 기간. 이제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이번 대국은 초반이 잘 풀렸다. 이번 대회에 임하면서 준비한 컨셉은 두 가지였다. 일반 모드와 특별 모드. 이건 발동 조건이 좀 다르다, AI 정석으로 함정을 판 특별 모드가 실행하기 좀 더 까다롭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왜냐하면 아무리 준비한 형태로 상대를 유도해 함정에 빠트리려고 해도 흑백의 초반 선택지는 아주 많다. 즉 내 의도대로 상대가 응수해주지 않는다면 초반 50수 계획은 초반에 부분적으로 조금 득이 있을 뿐 계획한대로 상대를 묶어두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런 특별한 상황이 만들어내기 위해선 내가 포석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흑번이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진행한다고 해서 100이면 100 모두가 따라와 주지도 않는다.


내가 파악한 지형은 20국이라는 좁다면 좁고 50수라고 하는 아주 한정된 공간의 일부분일 뿐이다. 바둑 한판은 계가 하는 것을 전제로 하면 보통 200~300수 정도는 두어야 끝이 난다. 이건 만약 특별 모드 계획이 성공적으로 실행된다고 하여도 50수 이후 그 몇 배의 기간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라는 의미다.


결국 내가 절대로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하며 오래 추진한 이 계획도 그 성립 조건의 가장 기본은 내 기초 실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요 몇 년 간의 연구생 생활은 이것을 하기 위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조 4명 2조 4명. 이건 지금 두고 있는 판을 포함해 이 대회에서 지금까지 상대한 연구생들의 내력이다.


1조 4명 모두 이겼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몇 년간 진보한 내 실력은 초반 특별 모드로 조금의 우세만 확보하면 누구든 이겨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냥 평소처럼 상대한 2조 연구생들에서 생겨났다.


상대적으로 신경을 좀 덜 쓴 건 맞다. 아주 잘 알고 늘 이겨오던 상대들이였으니.


이번 대국은 일반 모드로 시작했다. 즉 상대가 2조였다는 거다. 그것도 나보다 랭킹이 떨어지는···


‘으음. 왜 이렇게 2조 애들만 만나면 판이 꼬이는 거야? 얼마 전에 현우도 그러더니’


편안하게 이겨 내어야 체력을 보존하면서 다음 판에 좋은 영향이 미칠 텐데 지금까지는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이 판도 잘못하면 극단적인 승부로 내몰리게 생겼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조금 유리했던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로의 대마가 두 집이 없는 상태로 엉킨 상태에서 한 수 한 수 줄여가는 싸움을 수상전이라고 한다. 이런 형태는 타협이 불가능하다. 누군가 죽어야 끝이 난다. 러시아 룰렛과 같다.


지금 상황은 패를 지면 끊어져 수상전 형태가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더라도 판세가 불리해 지진 않을 것 같다. 패감은 내가 더 많다. 상대가 패를 만든 것은 판단 착오다.


패를 이기면 무조건 유리. 만약 진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더 큰 보상을 받으면 된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괜찮은 일종의 꽃놀이 패인가? 일단은···‘


확실한 패감을 하나 썼다. 차단된 내 대마가 죽었을 때 보다 집의 가치가 큰 곳을 다음 수로 위협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가 받아주면 패를 다시 따내면 되고 응수하지 않고 패를 잇던지 해서 해소하면 다음 수로 위협한 곳을 잡을 수 있다.


죽은 내 돌보다 잡은 돌이 많으면 이익이다. 이런 것이 패감이다.


패감을 사용하면서 대국 시 기본으로 주어진 시간을 절약 할 수도 있다. 한판의 바둑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무한정 있는 건 아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서 반상의 문제를 해결해 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패가 있다면 상대가 내 수에 대한 응수를 생각하는 시간에 그것과 상관없이 내 수순을 생각해도 된다.


상대가 착수를 하면 잇달아 패감을 사용한다. 그렇게 한다면 제한 시간이 여유롭지 않더라도 남은 패감의 개 수 만큼 여유 시간을 만들 수 있다. 내 시간을 쓰지 않고 상대의 시간을 빼앗아 시간 손실 없이 새로운 형세 판단 같은 것도 할 수 있다.


'그것이 자투리 시간의 효율적 이용이지.'


이기면 좋고 져도 다음이 있으면 콧노래가 나오게 된다. 그래서 이런 장면을 일명 꽃놓이 패라고 부른다.


몇 번의 패감 사용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이루어졌다.


‘이 패는 형이 안 되는 패잖아. 그만 물러서세요. 더 버티면 패감이 점점 더 커진다고··· 나도 좀 편안하게 이기고 싶다구요..’


패감 사용에는 원칙이 있다. 작은 것에서 부터 큰 것의 순서로 쓴다. 그래서 패감이 모자라는 상태에서 진행을 길게 끌고 나가면 점점 더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패를 지면서 입게 되는 손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초반에 어떤 결정이든 빨리 내려야 다음이 있다.


‘크큿. 어휴! 쫄았었네. 당신은 이제 갔어.’


승세를 확실하게 잡았다. 상대가 물러나지 않고 있다.


‘이젠 물러서기도 어렵겠어. 이걸로 끝···’


“마지막입니다. 하나, 둘··· 일곱, 여덟, 따악.”


긴박한 초읽기에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던 상대가 내 패감을 받지 않고 그대로 패를 이어 버렸다. 그 결과로 중앙의 백돌들이 수상전에 걸려버렸다.


‘엉? 이게 뭐래? 왜 안 받았지? 분명히 이 쪽이 더 큰데? 착각인가? 혹시 대마가 사는 수가 있나?’


혹시나 해서 상대의 입장에서 다시 이리저리 수 계산을 해 봤지만 아무 수도 없다. 하변을 보고 또 봐도 한 수 더 놓으면 이 돌들은 확실히 죽는다.


‘오호! 이보세요. 아무래도 형이 착각했나봐. 아무리 불리해도 이런 패감을 안 받으면 어떻게 해.’


다음 수로 가만히 대마의 안형을 없앴다.


‘잡을 건 일단 잡고···’


흑이 기다렸다는 듯이 차단한 돌의 아래쪽 2선에 붙여온다.


‘무슨 수가 있어? 안 되는 거 같은데···’


슬쩍 곁눈질로 대국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결단을 해야 한다. 여기서 시간을 더 써서 수를 다시 확인하던지 아니면 미리 해 놓은 수읽기 대로 두던지···.


‘더는 시간을 쓸 수 없어. 유리할 때 여기서 끝내는 것이...’


젖히고 느는 수순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상대에게 한 집이 후수로 날 수 있는 모양이 생겼다. 일선으로 젖혀 눈을 없앴다.


‘이제 죽었··· 응? 이게··· 후절수가 있었나?’


후절수는 돌을 따낸 자리에 넣어 다시 돌을 잡는 것이다. 끊어서 바로 따내지는 않고 잡는 형태를 만든다.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보인다. 이러면 기존의 내 계가는 모두 엉터리였다는 뜻이 된다. 내 수 읽기에 문제가 있었다.


‘아··· ! 이게··· 이렇게 되면···’


갑자기 어질어질 현기증이 온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깨어지는 순간의 심리적 타격은 이루 말하기 어렵다. 그래도 억지로나마 현재 상황을 다시 정리해 봤다. 내가 아무리 바보 같이 느껴져도 아직 승부를 포기할 순 없었다.


‘잡았다고 계산한 상대 돌이 살아나고 오히려 내가 죽은 건가? 방법이 없나?’


흑이 가만히 2선 백의 옆구리에 붙였다. 후절수를 피하려고 3선으로 이으면 1선에 모로 가만히 내려 서서 좀 전에 흑 대마의 눈을 없애기 위해 젖혀 놓은 1선에 패 모양이 생긴다. 패를 이어 패 모양을 없애면 포위한 백도 두 눈이 없다. 이러면 백도 미생이 된다. 그럼 수상전이 되는데 이건 후절수 때문에 대궁소궁으로 백이 안 된다.


‘아! 패를··· 계속 패를 할 수 밖에 없네. 선택의 여지가 없어. 어쩌다가···’


다시 패가 났다. 흑이 패를 이기면 죽었다고 생각했던 흑 대마가 일선으로 연결해서 살아간다. 패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좀 전에 만들어 졌던 패와 다르게 앞 대마의 사활을 추궁하면서 패감을 몇 개 써버려 패감이 모자랄 지도 모른다.


‘헐! 이젠 패감이 모자라네. 졌어.’


사석통에서 흑돌을 하나 집어 1선에 올렸다. 무덤덤한 표정을 가장하면서···


‘아프네. 이젠 많이 겪어서 별로 못 느낄 줄 알았는데···’


상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날 배려하는 듯 가볍게 인사를 하고 복기 없이 일어섰다. 난 너무 맥이 빠져서 일어설 기운조차 못 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눈이 옆으로 돌아갔다. 이곳에서는 총 아홉 판의 대국이 동시 진행 중이다. 늘 그래서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지만 지금은 느낌이 좀 다르다.


옆 테이블에서도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양쪽 다 수북한 사석들이 산을 이룬다. 저 대국도 대마의 사활이 승부다. 승패가 한 수, 한 수에 들썩인다.


양 대국자 모두 주어진 시간을 모두 소모해 초읽기에 목을 매고 있었다. 점입가경이다 이제는 진행 요원들조차 숨을 죽였다.


대국이 끝나면 대국자가 복기를 하거나 감정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누구도 퇴장을 재촉하지 않는다.


그러나 테이블에서 일단 일어나면 무조건 대국장에서 퇴실해야 한다. 그럼 다음 대국이 시작할 때까지 다시 입장할 수 없다.


그냥 멍하니 앉아서 옆 테이블의 대국을 지켜봤다. 타인의 대국을 보는 것인데도 감정이 이입이 되어서 인지 별 생각이 다 든다.


옆 테이블은 1조끼리의 대국이다. 5승1패와 4승 2패가 붙었다. 나중에 서로 물고 물린 형태가 되어 동률이 나오면 승자승 원칙도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겨야 좋다.


‘나중에 그런 것에 밀려 떨어지면··· 아하!’


2패의 대국자가 여기서 더 밀리면 안 된다는 듯 맹렬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제 나도 2패인데···’


순간 몰입이 깨어졌다. 누구나 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간다.


‘그래,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타인의 불행을 보며 힘을 얻는 내 정신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이제 자리에서 일어설 기운을 얻었다.


‘빌어먹을··· 꼭 2조에서 걸리네. 이것들이 단체로 내 앞길을 막으려고. 에잉.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


투덜거리며 대국실을 빠져 나왔다. 그 때까지도 여전히 두 대국자의 열기가 방을 불태울 듯하다.


“어? 성훈이 형이 어떻게 여길···”


성훈이 형이 대국실 문 밖에 서 있었다.


내가 못 올 곳에 온 것에도 아닌데 왜 그래? 나도 한 때 여기서··· 크큭 그보다··· 안에서 울었냐?”


“뭐? 미쳤어? 내가 애야?”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성훈이 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 안다라는 눈빛으로 사람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밥이나 먹자.”


‘나 참! 신경 굵기가 남다른 당신은 이럴 때 밥도 잘 먹고 하겠지만 난 보통 사람이잖아. 이 판국에 밥이 넘어가겠냐?’


“뭐 사줄 건데”


생각과는 다른 말이 불쑥 튀어 나왔다.


“너 먹고 싶은 대로 먹어.”


‘······’


“맨 처음 일반 입단대회 나갔을 때 한 번에 본선에 올라갔었지. 한 6년 쯤 전이었어. 제법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는 건 많이 졌다 정도인데··· 기억이란 게 참 이상해 좋은 것 보단 나쁜 게 오래가거든.”


토너먼트의 개미지옥을 뚫고 리그전 멤버까지 올라갔었다는 건 그때 기본적인 실력은 이미 갖춰져 있었다는 거다.


“형도 참! 입단대회 본선멤버가 연구생으로 돌아와 9조를 들락거렸던 거야?”


“그러게나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이 판데기가 꼭 실력으로만 돌아가는 건 아니잖니. 내가 입단하기 위해서 본선 오르고 나서 4년이 더 걸렸네.”


“흐흣.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야? 아무래도 악담 같은데··· 너도 이번에는 안 될 거다 뭐 이런 뜻으로···”


“미친 놈! 말하는 꼬락서니가 아직 기운 빠지진 않았네. 더 이상 할 말은 없고··· 잘해라.”


말하는 데 두서가 없는 건 여전하다. 앞뒤 안 맞는 그것에 이상하게 웃음이 나고 안심이 된다.


“아! 나 참! 성훈이 형 스타일 안 맞게 왜 그래? 좀 웃고 그래요. 난 괜찮으니까.”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 마음이 아려 온다.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고 마음은 아프고 이상한 기분이다.


밀려오는 생각들의 파도에 맞아 허우적거리다 창밖이 밝아올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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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승리의 통쾌함과 패배의 허탈함. 24.09.19 49 3 13쪽
58 한계돌파를 위해 24.09.18 61 3 12쪽
57 각자의 어려움은 다르다. +3 24.09.17 66 3 12쪽
56 좌충우돌(左衝右突) 24.09.16 72 3 12쪽
55 미쳐 사는 사람들 +2 24.09.16 73 4 12쪽
54 사노라면. 24.08.28 107 2 12쪽
53 열전 24.08.27 117 3 12쪽
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7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5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5 4 12쪽
49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24.08.23 143 2 12쪽
48 승리자의 권리 24.08.22 143 3 12쪽
47 트라우마 24.08.21 131 2 12쪽
46 마지막 한 걸음 24.08.20 136 3 13쪽
45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5 3 13쪽
» 제 8국 24.08.18 142 4 13쪽
43 위기와 응전 24.08.17 140 4 12쪽
42 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24.08.16 144 3 12쪽
41 준비 완료 24.08.15 140 3 12쪽
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38 도(道)를 아십니까? +2 24.08.12 147 3 12쪽
37 실마리 24.08.11 150 2 12쪽
36 우울한 날 보험 증서를 꺼내다. +2 24.08.10 154 2 12쪽
35 위기 관리 24.08.09 155 3 12쪽
34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24.08.08 165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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