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드라마

새글

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최근연재일 :
2024.09.20 14:15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5,226
추천수 :
190
글자수 :
331,590

작성
24.08.13 14:15
조회
142
추천
4
글자
13쪽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DUMMY

[야! 너 이 달에 리그전에서 전승했다며···]


[그런 일이 있긴 했는데··· 알잖아. 나 3조로 내려온 거··· 거기서야 별거 아니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어느 조에서든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연구생 생활하면서 몇 년간 들은 적도 없었던 일이다.


[미친 놈. 9조나 10조에서 그랬어도 ‘우악’ 했을 텐데··· 그걸 말이라고··· 암튼 올해 잘해봐. 역시 터질 놈은 기다리면 언젠가 터진다니까.]


성훈이 형에게까지 어떻게 말이 전해졌는지 아침부터 폭풍 전화질이다.


[걱정하지 마. 내가 이번 대국 중에 생사현관을 타동했거든. 환골탈태에 이르진 못했는데 곧 그것도 될 것 같아. 그렇게만 되면 그게 바로 오기조원(五氣朝元)이 아니겠냐구. 곧 천하는 새로운 절세고수를 만나게 될 거야.]


[에라이. 이 인간은 좀 띄워주면 안 된다니까. 좋아도 정신은 차리고 기뻐해야지. 정신 줄 놓으면 이 동네에선 한방에 가는 거야. 2조에 다시 올랐으니 잘 해봐.]


농담을 가장했지만 정말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아 한 이야기였는데 너무 쉽게 흘려버린다. 갑자기 흥이 식어 버렸다.


[아! 됐어. 나 학교 가야 해. 시간 되면 오후에 도장으로 오던지···]


[한동안 못 갈 것 같아. 이제 곧 스마일 배 4강전이 있잖아. 이제 준비 들어가려고 해. 그런데 너 방학 중 아니니? 웬 학교?]


곤란한 말에는 모른 척 하는 것이 상책이다. 바로 말을 돌렸다.


[응. 그런 일이 있었어. 수고해. 잘 될 거야. 형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잖아. 다른 기전 다 떨어졌는데 그거라도 결승까지 갈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지.]


[흐흣. 참고하지. 결승이라···]


내 기억에 의하면 성훈이 형의 반짝 활약이 나온 대회가 이 대회가 맞다. 과연 어디까지 올라 가려는 지 두고 볼 참이다. 의례 하는 조만 간에 보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어제 그게 뭐였을까? 집중을 열심히 하면 의도적으로 다시 그 상태에 들어갈 수 있는 건가?’


어제부터 계속 시도 해보고 있지만 전혀 반응이 없다. 신중하게 알아볼 생각이다. 여전히 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너무 흥겹다.



###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至心歸命禮 三界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길잡이이시자 자비로운 아버지이시며, 스승이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

(지극한 마음으로 온 세계 항상 계신 부처님께 절하옵니다.)


은은한 독경 소리와 함께 일천 배를 시작했다. 특정 종교에 애틋하게 쏠린 마음은 아니었지만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은 언제부터인가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천 배는 믿음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지.’


거듭되는 특별한 경험을 가지게 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나의 능력이 아님을 믿는다. 그렇다면 성취를 위해선 당연히 누군가의 힘을 빌려야 한다. 이게 합리적인 생각이다.


‘운명의 추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제 곧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일의 끝은 나로 말미암아 평안하리라.’


나의 깨달음은 근원은 정신이다. 나에게 숨겨진 절세비급은 없다. 그래서 정신수양에 좋다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을 택했다. 길을 모를 땐 알만한 이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막 해 보기라도 해야 한다. 우리는 보통 그것을 노력이라고 부른다.


헉- 헉-


기세 좋게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겁나게 힘들다. 하지만 누구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무조건 해내야 한다.


“야! 너 갑자기 미친 거냐? 다짜고짜 이런 델 끌고 오면 어쩌자는 거야? 나 곧 중요한 대국 치러야 해. 지금 이렇게 무리한 걸 하면···”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은 언제나 나와 공존한다. 사회생활이란 늘 그렇다. 그리고 멀리 온 것도 아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도심 한 가운데에도 이런 곳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아침에 조만간 보자고 했었잖아. 좋다며··· 그래서 점심 때 만났어. 뭐가 이상해? 그리고 큰일을 하려면 정성이 중요한 거야. 그리고 이런 거 저런 거 안 믿는다 해도 이거 한다고 손해 날 일이 있겠어?”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스타나 한판 하자고 불러서 이러면···”


‘거 참! 말 많네. 아직 대국 하려면 한참 남았잖아. 이게 다 당신 잘 되라고 하는 내 정성인데 그걸 모르고··· 요즘 아이들은 정신력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서···’


내가 이해해야 한다. 아직 세상의 경험이 적어서 이런다.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일도 이 나이 땐 거부감이 들고 그러는 거다.


“전화할 때 생각은 그랬는데 마음이 변했다고. 스타 보다는 이게 스트레스 해소와 집중력 강화에 좋을 것 같았거든. 우리가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조금 생소하지만 다 이러면서 알아가는 거야. 대국에서 신수(新手) 사용하는 기분이잖아. 그··· 음.”


운동으로도 괜찮다는 말을 덧붙이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일천 배 같은 걸 하기엔 몸과 마음이 다 준비가 안 되었잖아. 이러다 정작 중요한 대국 준비에 소홀해질 것 같다고··· 지금 어깨, 허리, 무릎 아무튼 관절이란 관절은 다 삐걱대는데···”


“겨우 1박2일 짜리 템플 스테이 한다고 준비에 무슨 지장이 가겠어?”


불만이 구구절절하다. 더 들어주지 않고 그냥 말을 끊었다.


“방구석에서 용 써 봐야 한 주일에 뭐가 그렇게 달라질 거라고. 우린 공부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능률이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긴장 풀고 이 순간을 즐겨.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것만 좋은 게 아니라니까.”


큰일을 위해서라면 약간의 반대쯤은 무시해도 된다. 원래 내 생각은 좀 달랐지만 앞서 이 길을 걸었던 선현들이 발자취가 경우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입단하고 나서 하면 딱 어울릴 것 같은 말인데··· 유감이네.”


진재국님의 돌직구가 팍하고 가슴에 꽂힌다. 기껏 내 깨달음을 나눌 생각으로 데리고 왔는데 앙탈이 심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즉흥적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미리 알려줄 순 없었다. 절에 1박 2일 같이 놀러 가자고 했으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절대로 따라왔을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이 형은 어울리지 않게 왜 이렇게 공격적으로 말을 뱉지?’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참가할 대회도 적었고 그나마 참가한 대회에서도 두는 족족 초반에 꺾어져 한가해진 반백수 한 명을 지루한 일상에서 구원해 줬더니 과거에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준다.


'설마 그 때 내 말을 지금껏 가슴에 품고 있었던 거야?'


정말 내향적 성향이 극에 달한 인간이다. 이런 성향은 사람 좋은 얼굴로 항상 허허거리지만 참고 참다가 한번 폭발하면 후폭풍이 심각해진다. 재국이 형이야 말로 오늘 정말 잘 온 거다. 이렇게 한 번씩 끓어오르는 울화를 풀어줘야 일상이 편안해진다.


“흐흐흣. 재국이 형. 예전에 내 말을 가슴에 사무치도록 인상 깊게 들어서 고이 간직하고 있었나 보네.. 그래서 형은 이제 입단했다 이거야?”


“꼭 그런 건 아닌데··· 조금 자극이 되었었고 지금은 내가 조금 더 자격을 갖추긴 했지.”


강하게 부인하지 않은 걸로 봐서는 그 때 표현하지 않았을 뿐 꽤 상처를 받았나 보다.


“왈가왈부 할 거 없어. 이왕 왔잖아. 기분 좋게 절 한번 하고 가자고 절밥도 맛있다고 하더라.”


일일이 이 사람들 의견을 들어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야! 이··· 절 한번? 그랬으면 내가 이런 말 꺼내지도 안 했어. 지금 내 무릎이···”


“몸이 힘들면 마음이 평안하다 이런 말 몰라요? 모르면 그냥 넘어가. 암튼 나도 힘들지만 이게 지나면 정신적 안정이 오게 된다니까. 내가 이런 거 아주 싫어하는 거 잘 알잖아. 그런 나도 한다고. 나 믿고 한 번만 해봅시다.”


앞뒤가 전혀 안 맞는 말이지만 이런 게 우격다짐이다.


“이 인간에게 무슨 바람이 불어서 물귀신처럼 우리까지···”


“성훈이 형. 어쩌겠어요. 재영이가 우리와 하고 싶다잖아요. 한 번 해줍시다. 여기 밥 맛있다는 얘긴 나도 어디서 들은 것 같아.”


마음이 비단결 같은 재국이 형이 결국 중재에 나섰다. 그 응원에 힘입어 하다 너무 힘들어 잠시 중단했던 일천배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런 빌어먹을···”


“살살 좀 말해. 다른 사람 듣겠다.”


“아! tlqkf. 듣던지 말든지···”


절 한 번 할 때마다 신성한 법당에 비속어가 난무한다.


‘어휴! 성질머리 하고는··· 그런데 생각보다 체력 좋네.’


성훈이 형이야 원래 그런 사람이니 무시하면 되고 재국이 형이 너무 조용해 불안하다.


“형은 할 만한가 보네.”


“헉··· 헉··· 힘들어. 말 시키지 마.”


“어?”


원래 재국이 형은 힘들다 이런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그냥 웃으며 묵묵히 참고 버티는 스타일이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머리가 가까워지는 바닥 쪽이 흥건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사람 원래 몸이 좀 약했다.


“많이 힘든 것 같은데 그만 할까?”


“야! 시끄러! 지금 700개가 넘었는데 지금 와서 뭘 그만 둬,”


“헐! 눈이···”


이거 역린을 건드린 것 같다.


‘입단할 때 봤던 그 독기의 원천이 이것이었나?’


그 퍼런 서슬에 성훈이 형의 투덜거림도 멎었다.


“더 이상 말 하지 마. 빨리 하고 끝내자.”


무릎을 꿇으며 숨을 들이쉬고, 엎드리면서 내쉬고, 고개를 들면서 들이쉬고, 일어서면서 내쉰다. 일천 배는 법당 분합문에 햇살이 번져올 때쯤 시작해서 추녀 끝에 그늘이 드리울 무렵에야 끝낼 수 있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고 저녁 공양을 억지로 마치자마자 모두 그대로 쓰러졌다. 밥 맛 있다는 소문이 왜 났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떻게 누웠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었는데 눈 떠 보니 아침이다.


아득한 느낌에 마음이 내려앉아 급하게 몸을 살폈다. 아직 어린 소년의 몸이다. 가끔 이렇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잘 모를 때가 있다. 한숨이 나왔다. 옆에 누운 형들은 죽은 듯 미동조차 없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는데 걷기가 불편하다. 확실히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만성적인 운동부족이다. 정말 일어나기 싫었지만 생리작용이 나를 이끌었다.


“오늘 늦게나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용케 일어나셨구려,”


어제 우리를 안내하며 얼굴을 익혔던 스님 한 분이 인사를 건네 왔다.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도 이렇게 말하는 게 기본이다.


“허헛. 편하게 하세요. 특별히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 다들 비슷하세요.”


“아··· 예. 성불하십시요.”


비슷하면 안 된다. 난 깨달음은 얻은 환골탈태 직전의 특별한 존재인데 맨 땅에 헤딩한 꼴로 보여 지는 건 곤란하다.


‘음. 옛 말에도 대현(大賢)은 대우(大愚)라고 했지.’


큰 현명함은 어리석어 보인다는 뜻이다.


‘그럼 그렇게 보이는 지금이 정상인 거네.’


상황에 딱 맞아 떨어지는 아주 좋은 논리다.


‘특별한 상황에 특별한 사람. 좋다 좋아.’


근육이 뭉쳐져 무릎을 굽히고 펴기조차 힘들었지만 허리를 세워 억지로 걸었다. 화장실을 들르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는데 하늘이 노랗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라는 말을 믿고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방에 다시 눕는데 신음이 절로 나온다.


‘아이고 죽겠네. 내가 아무래도 뭐에 씌었나? 어울리지 않는 짓을 이렇게나··· 지금은 소주천(小周天)으로 만족해야 되나? 아! 경지가 눈앞에 있는데 아쉽도다.’


대주천(大周天)은 아직도 멀고 먼 길이었다. 모양새는 좀 빠지지만 지금은 우선 쉬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번 주말(토,일)은 쉬어갑니다. NEW 23시간 전 3 0 -
공지 어제 입원했습니다. +2 24.08.29 50 0 -
공지 연재시간 변경 매일 14시 30분에 올리겠습니다. 24.07.15 225 0 -
60 복기의 이면 NEW 6시간 전 29 1 12쪽
59 승리의 통쾌함과 패배의 허탈함. 24.09.19 49 3 13쪽
58 한계돌파를 위해 24.09.18 61 3 12쪽
57 각자의 어려움은 다르다. +3 24.09.17 65 3 12쪽
56 좌충우돌(左衝右突) 24.09.16 72 3 12쪽
55 미쳐 사는 사람들 +2 24.09.16 73 4 12쪽
54 사노라면. 24.08.28 106 2 12쪽
53 열전 24.08.27 117 3 12쪽
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7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5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5 4 12쪽
49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24.08.23 143 2 12쪽
48 승리자의 권리 24.08.22 143 3 12쪽
47 트라우마 24.08.21 131 2 12쪽
46 마지막 한 걸음 24.08.20 135 3 13쪽
45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5 3 13쪽
44 제 8국 24.08.18 141 4 13쪽
43 위기와 응전 24.08.17 139 4 12쪽
42 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24.08.16 144 3 12쪽
41 준비 완료 24.08.15 140 3 12쪽
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38 도(道)를 아십니까? +2 24.08.12 147 3 12쪽
37 실마리 24.08.11 150 2 12쪽
36 우울한 날 보험 증서를 꺼내다. +2 24.08.10 154 2 12쪽
35 위기 관리 24.08.09 155 3 12쪽
34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24.08.08 165 4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