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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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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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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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응전

DUMMY

“재국아. 오전 결과 물어봤니?”


고성훈은 출근하기 무섭게 득달같이 진재국에게 대답을 독촉했다. 이곳은 협회의 일반 대국실이다. 소속 기사들의 전용실이 있긴 하지만 기사들의 취향에 따라 나오면 주로 머무는 곳이 곧 기사 대기실이 된다.


“예. 형. 그런데 졌다는군요.”


연구생들 끼리 하는 대회 결과를 일반에 공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은 협회소속 프로기사였다. 당연히 대회를 주관한 관계자들과 연결이 있었다.


“뭐? 그거 상대가 최 머시기라는 2조 하위권이었다며”


진재국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그 소식부터 알아보곤 고성훈이 알면 좀 시끄럽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승부에 대해 알만큼 아는 사람이라도 마음이 편중되면 판단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랭킹은 참고자료일 뿐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상위 랭커가 하위 랭커를 이기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나 승부의 세계에선 아래쪽이 위를 잡아내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바둑에서 전승으로 은퇴하는 랭킹 1위 기사 같은 건 현실에 없다.


“어? 형은 최현우 잘 몰라? 별로 안 친했었나?”


말을 이어가기가 살짝 곤란해진 진재국이 일단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난 그런 애 몰라. 전에 물어봤을 때도 안다고는 안 했었는데···”


“그래요? 하긴 생각해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내가 막 입단하려고 할 때 원생으로 들어온 친구라서 나도 오래 알고 지내진 못했어요. 어려요. 나이가 아마 재영이 하고 비슷할 겁니다. 전에 다음 상대가 최현우라고 했을 때 형이 고개를 끄덕이길레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었죠.”


“뭐? 그럼 최 뭐시기가 원생 2년 차란 말이야? 그런데 벌써 2조?”


진재국이 피식 웃는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나도 2년 차에 2조에 들었었는데··· 형도 좀 절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마음 다잡고 나서는 쭉 1, 2조 아니었어요?”


입단에 성공한 연구생들 치고 원생 때 그 정도 성적을 못 냈던 기사는 거의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이 예외적이라 여겨질 정도로 그들은 싹이 올라올 때부터 남다름을 자랑했다.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아무튼 재영이가 그 친구 상대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 한두 판이 아니고 1년 종합 성적이 그 정도라는 건 상성이든 뭐든 무조건 유리한 요소가 있다는 건데 왜 하필 이런 중요한 대국에서···”


“글쎄, 그걸 저에게 물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게 제가 알 수 있는 일이겠어요?”


고성훈은 답답함 때문이었는지 너무 멀리 가 버렸다.


“험. 험. 그게 네가 뭘 해결하라는 건 아니라고. 에이, 재영이 이 자식은 이겨야 할 때 못 이겨서··· 이게 뭐야.”


“걱정하는 건 좋은데 좀 적당히 하세요. 아무리 그래봐야 본인 대신 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프로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증명해 나가는 과정인 거잖아요.”


이건 진재국의 진심이었다.


“거참! 재국이 넌 이럴 때 보면 완전히 성인군자의 표본처럼 말을 해. 애초에 안타까움 뭐 이런 감정이 안 생기는 거냐? 아님 그런 마음이 좀 있기는 한데 중립적인 관점을 우선해서 지금처럼 말하는 건가?”


말투가 뾰족해졌다. 지금 진재국의 반응이 고성훈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 감정 과잉은 기사 생활에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저 역시 가끔 바둑 두면 그런 상태에 빠지긴 하는데 되도록 그러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허헛. 그래? 그럼 넌 언제 그런 순간이 오지? 상대가 모르는 통렬한 수단을 성공시켰을 때? 주로 그런 건가?”


“그런 순간일 수도 있겠네요. 그건 지금까지 솔직히 잘 의식하지 못 했었네요. 보통은 어이없는 헛손질을 하고 자책을 하는 순간 가장 뚜렷하게 느껴지더군요,”


고성훈은 조금 놀라고 있었다. 프로기사로서 대외적으로 알려진 진재국은 친절함과 부드러움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한재영과의 인연으로 가까이서 바라보게 된 그의 실체는 바둑계에서 가장 메마른 감정의 원칙주의자라고나 할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자책은 누구나 다 하는 거잖아. 기사도 사람인데 당연히 실수가 나올 수 있지. 극단적으로 말하면 잘 둬서 이기는 바둑이 얼마나 되겠어? 대부분 대국에서는 그런 실책들 때문에 승패가 결정 나는 거잖아,“


온실 출신인 주제에 야생화의 기질을 가졌다 일컬어지는 고성훈라면 당연히 할 만한 말이었다.


“최현우에게 재영이가 잡힌 판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요.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겠죠. 아직 초반인데 이런 일로 영향 받지 말아야죠.”


“그렇지. 전승을 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잖니. 누구든 어차피 물고 물리는 판들이 나오게 되는데··· 재영이도 이왕 이렇게 되었다면 한 판 진건 빨리 잊고 다음 판이나 잘 준비해야겠지.”


“일반 입단 대회도 취소하고 이번 결정전에 올인 한 건데 호랑이든 고양이든 뭐라도 그려내려고 하지 않겠어요?”


“이왕이면 호랑이여야 할 텐데···”


아직 한제영은 큰 바람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최후의 승자가 되어 입단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아직 그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현실을 너무 잘 알아서 기대 섞인 관측마저 조심스럽다.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조차 잘 되었으면 좋겠다 정도의 막연한 응원이 오고 갈 뿐이었다.


한재영 2006년 연구생 2조. 전체 랭킹 13위로 입단자 결정전 참가. 현재 4승 1패.



###


제 6국을 둬야 하는 상대는 정일범이란 1조의 고인물 중 하나다. 그와는 3년 전인가 5조 쯤에서 두 판을 둬본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그는 상위조로 난 하위조로 밀렸었다.


‘그동안 나도 놀고 있지는 않았어요. 늦었지만 자격을 갖춰서 올라왔어요. 다시 한 번 해보시죠.’


꼭 잡아내야 하는 타겟 중의 하나다. 초반은 잘 풀렸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AI가 열어 젖힌 새 길을 의심 없이 밟았다. 귀의 화점을 협공하는 정석에서 보통은 2선을 이어두는 곳을 두 점으로 늘어서 진행을 살짝 비틀었다.


조그만 파탄에서 벌어진 변화가 곧 전체로 번져나간다. 만족한다. 폭탄은 심어졌다. 이제는 기다린다. 이렇게 모양이 짜이면 조만간 상대의 헛손질이 나올 수밖에 없다.


‘♩ ♬ ~ ♪ ♫’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표면적으로 중반의 판세가 팽팽하게 보이지만 나에게는 심어 놓은 폭탄이 있다. 상대는 그 위험도에 대해 어떤 찜찜함조차 느끼지 못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네 생각이 눈에 보여. 1조와 2조라는 절대적인 전력의 차이가 있는데 비슷하게만 초중반을 짜면 종반으로 갈수록 무조건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지? 크큿. 과연 진짜 그런 것일까?’


“♩ ♫ ♬ ♪ ♫ ~”


갑자기 반상 너머 상대에게서 중얼거림이 시작됐다. 소름이 짝 돋았다.


‘이거 뭐야. 당신 진짜 지금 판세가 좋다고 생각하는 거야? 가만 이게 무슨 장면이지? 좀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하나?’


이제까지의 내 형세 판단에 대한 의심이 피어오른다. 기본적으로 상대 정일범은 1조 고인물들 중의 하나다. 이건 무척 바둑이 세다는 거다.


내가 외우고 있던 AI 포석을 이용해 훗날에는 무조건 우세하다 말해질 판세를 만들어 놓았지만 사실 그것을 몇 집 우세라고 AI가 말하는 대로 실현하기 위해선 그에 걸 맞는 수준의 수읽기와 판단력을 대국 끝까지 유지해내야 한다.


‘상대의 흥얼거림은 현재 유불리는 불확실하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내가···’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른다.


‘어이, 그만큼 여유가 있어?’


숨겨진 노림을 배제하고 현재 판세를 분석하면 과연 상대가 즐거워할 만큼 유리한 것일까?


‘내가 유리한 형태로 판이 짜여 진 건 맞지. 문제는 그게 50수까지 라는 건데 내 지금 역량이 그 뒤를 연결해낼 만큼 성숙해졌나?’


무조건 편안해 하기엔 정일범은 너무 강한 상대다. 그는 몇 년 간 실적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형세를 판단하는 자신만의 관점이 있을 것이다.


‘이게 무슨··· 이제 와서 무슨 생각을··· 아무리 중립적으로 생각 헤도 내가 두터운 게 맞잖아. 그런데 왜? 아니, 취향의 차이인가?’


정일범의 행마는 빠르다. 그건 돌의 능률이 좋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엷다는 약점을 가지게 된다.


‘물 좋고 바람 좋은데 정자까지 좋을 수가 있겠어? 나는 두터워져 좋다 판단한 것이 당신에겐 둔탁해져 비능률적이라 생각될 수도··· 흐흣, 판이 잘 짜여져서 흡족하시겠군요.’


지금 신무기를 휘두르는 내가 기존의 강자들과의 대결에서 절대 우세할 것이라 판단해 대국을 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난 그동안 보여준 것으로는 철저한 약자다. 몇 년에 걸친 부진은 요 근래 일어난 반등조차 일시적이라는 프레임에 가둬버린다.


‘난 반짝이는 존재가 아니었어. 연구생을 한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위로 향하기보단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 했었지.’


100명의 연구생이 평등한가? 제도 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론 한 줌의 고인물 파티와 당장 그에 못 미치지만 일단 대적은 가능해 보이는 작은 그룹 그리고 나머지 조무래기로 이루어졌다. 난 언제나 조무래기였고 대부분 관계자들은 아직도 그렇다고 바라본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믿어서 여기까지 온 거다. 믿자.


‘여기까지 와서 안 믿으면 별 방법이 있나? 나름 준비도 많이 했잖아. 스스로를 믿어야 해.’


중반을 지나 종반으로 갈수록 상대의 흥얼거림은 줄어들었다.


‘이제는 두터움이 발언권이 세지? 어떨까요?’


둔도(鈍刀)가 그림자를 베다. 너무 무협지스러운 발상인 것 같다. 행마가 즐겁다.


상대가 격렬하게 머리를 털어냈다. 곁눈질로 바라본 반상 너머 그 움직임이 프레임처럼 끊어져 몹시 느리게 느껴졌다.


‘괴롭냐? 후훗. 그런데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원래 이 결정전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설마 정일범은 아니겠지? 만약 내가 그걸 저지하게 된다면, 그건 사회에 어느 정도의 큰 변화로 받아 들여질까? 바둑 정도로 큰 사회 변동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판세가 유리하게 느껴지니까 별 생각이 다 난다.


‘에고, 이놈의 낙관은 아무 때나 이렇게··· 정신 차리자. 아직 라인을 통과한 건 아니야. 코 앞이긴 하지만. 흐흣.’


긴 장고 끝에 나온 한 수에 대한 내 응수를 보더니 상대가 돌 하나를 일선에 내려놨다. 왠지 모르게 한숨이 먼저 나왔다.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손끝에서 시작되어 손끝으로 마무리되는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헐! 이게 뭐야. 이 와중에 복기를 하자고?’


오늘 더 이상의 대국은 없다. 그런 면을 생각하면 가능한 일이긴 한데 하위 조에게 진 상위 랭커의 마음 상태가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왜 졌는지가 그렇게 궁금해? 내 승리는 예정된 수순이었을 뿐이었다고. 허헛. 이제 시작된 거야. 그래도 복기를 하고 싶어?’


굽이치는 감정을 억눌러 보려고 했지만 아주 많이 감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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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승리의 통쾌함과 패배의 허탈함. 24.09.19 49 3 13쪽
58 한계돌파를 위해 24.09.18 61 3 12쪽
57 각자의 어려움은 다르다. +3 24.09.17 65 3 12쪽
56 좌충우돌(左衝右突) 24.09.16 72 3 12쪽
55 미쳐 사는 사람들 +2 24.09.16 73 4 12쪽
54 사노라면. 24.08.28 106 2 12쪽
53 열전 24.08.27 117 3 12쪽
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7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5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5 4 12쪽
49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24.08.23 143 2 12쪽
48 승리자의 권리 24.08.22 143 3 12쪽
47 트라우마 24.08.21 131 2 12쪽
46 마지막 한 걸음 24.08.20 135 3 13쪽
45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5 3 13쪽
44 제 8국 24.08.18 141 4 13쪽
» 위기와 응전 24.08.17 140 4 12쪽
42 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24.08.16 144 3 12쪽
41 준비 완료 24.08.15 140 3 12쪽
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38 도(道)를 아십니까? +2 24.08.12 14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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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위기 관리 24.08.09 15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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