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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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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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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

DUMMY

올 여름은 특히 더웠다고 한다. 그런데 난 전혀 더운 줄 모르고 지냈다. 그런 환경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마음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국기전의 본선 1국의 어이없는 패배 이후 곧바로 3연승. 아마도 인터뷰를 하는 등 어느 인생에도 없었던 주목을 받았고 편안한 심리상태를 유지하게 한 가족 간의 유대가 심기일전을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그때까진 참 좋았다.


반등을 만들어 내는가했던 내 성적은 그대로 유지 되지 못했다. 긴장이 늦춰지면 여지없다. ‘이거 할 만한데’라고 느낀 순간부터 내리막이 시작 되었다. 국수전 3연승 후 2연패. 다른 기전들도 예선에서 다 탈락하고 말았다


알지 못하는 사이 마음의 빈틈이 너무 커져 있었나 보다. 새카맣게 타버린 속마음과 상관없이 현실은 냉엄했다. 딴 생각 좀 했더니 여지없이 패배의 기운이 닥쳐와 날 삼켰다.


‘정말 쉽지 않네. 이건 네 실력이 아니잖아. 기본을 지켜야 해.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스스로 먼저 안정되고 나서 공격을 해야 한다)인데 그 동안 너무 기본을 잊고 있었어. 내 기본은 바둑 기사야.’


반성을 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려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바둑은 계속 되어야 해.’


국기전 본선 최종국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내년 시드 확보를 위해서는 꼭 이겨야 했다. 경우의 수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정쩡한 마음으로 승부를 이길 수 없다.


‘지금이 2008년. 한 3년만 지나면 기전에 상금제가 도입되기 시작해 도전기 형식의 기전은 급속하게 사라지게 되지.’


시대의 변화를 현재의 나로선 어쩔 순 없다. 그러나 본선 멤버만 되면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현행 제도의 수명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알고도 아무 대비를 하지 않을 순 없다.


‘어떻게든 이겨서 빨 수 있을 때까지 꿀을 빨아야··· 에고고, 또 잡념이 들어갔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각오가 아니면 이 세계의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없다.


‘이 기전 하나가 끝이 아니야. 기전은 계속 이어진다고.’


이 대국은 다음 계단을 밟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며 마음을 다졌다. 이기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하지 않기로···


‘무리하지 말자. 어차피 운빨이 대부분 아니야? 일이 이렇게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대운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에고, 갑자기 신 것이 먹고 싶네.’


때때로 약한 마음이 들어와 머리를 어지럽히고 또 다시 의지를 다지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때로는 너무 간사하다.


돌을 가리고 흑번으로 시작했다.


‘꼭 이기라는 계시가 내려온 거야.’


프로가 되어서도 내 흑번의 승률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징조가 아주 좋네. 이 기세를 몰아서···’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 좋은 것은 그대로 좋게 생각하면 된다.


바둑기사들에게는 낙관파와 비관파가 있다. 난 낙관파에 속한다. 둘 다 장단점이 있는데 보통은 슬럼프 극복에는 낙관파가 낫고 승부에는 비관파가 유리한 면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낙관파는 승부 중에도 긴장의 끈이 가끔 늦춰지기 해 곤란해질 때가 있다. 그건 성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임의로 조절이 잘 안 되는 부분이다.


이런 성향은 사람만의 특징이 아니라 동물도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일테면 돼지도 적극적인 돼지와 비관적 성향의 돼지가 있는데 적극적인 쪽이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좋다더군. 그렇듯이 이건 원초적인 거야. 내 평소 모습을 생각해 봐. 내가 바둑에서 낙관파인 것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그 사실은 내가 이 대국의 시기나 분위기와 같은 환경적인 부분의 영향을 덜 받고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과 연결된다.


‘그리고 이렇게 흑번이라고 하는 버프를 받았지.’


마인드 컨트롤이 시작되었다. 나의 심리적인 부분은 바둑 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상대가 비관파라고 알려진 기사라 우세해진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다른 기전인 천원전에서 한 판만 더 이겼어도 상대와 손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초면이다. 바둑판 앞에서는


대국 상대와의 첫 만남은 언제나 껄끄럽다.


‘그건 비관파인 상대가 더하겠지.’


수순이 점점 진행되면서 평온하던 반상에 전투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초반부터 축적한 힘들이 여기저기서 부딪칠 듯 말 듯 기회를 엿본다.


‘쉽게 두어 주진 않겠다는 건가?’


이 상황이 고착화되는 건 싫다. 변화를 모색했다. 여기 저기 가벼운 응수타진으로 도발 아닌 도발을 해보았지만 상대는 일단 웅크려 계속 힘을 비축했다. 이것도 거슬린다.


‘차라리 나서서 싸워주면 좋을 텐데···’


상대가 웅크린 탓에 이 대국을 위해 미리 준비했던 후속 수단들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상대가 이렇게 요소를 지키고 공격을 자제하면 준비한 것들은 대개 무용지물이 된다.


불리하진 않지만 우세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국면이다. 무엇이라고 딱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왠지 말리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설마 나도 이젠 분석되고 있는 건가? 너무 빠른 것 같은데···’


내가 프로 기사로 데뷰한 해가 이제 절반 조금 넘게 지났을 뿐이다.


‘난 그렇게 강자도 아니잖아. 아니겠지.’


오늘 상대인 임규진 5단은 소장파라 할 수 있는 젊은 기사이다. 나와 굳이 묶는다면 젊은 기사들이라는 것아 공통점 일뿐 기풍도 다르고 나와는 그동안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이 사람이 그렇게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었나? 갓 등장한 어린 기사 기풍을 분석해? 그럴 리가···’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요 근래 내 성적이 널뛰듯 하면서 주목 받았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


반년의 시간은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날 상대하는 상대의 바뀐 대응 방식에 인정받았다는 기분 좋은 느낌과 함께 앞으로 머리 아파질 것 같다는 걱정이 엇갈린다.


이대로라면 장기전이 되는데 그건 가급적 피라고 싶다. 성훈이 형과의 겨울 대국 이후로 난 달라졌다. 닦으며 상대의 진땀을 빼던 과거의 내가 아니다.


‘혹시 다른 기사들도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상당히 곤란한데··· 아주 곤란해.’


이런 상대를 대상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진짜 큰 도발이 필요할 것 같다.


‘발끈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꼭 장기전을 해야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일단 그건 요즘 내 기풍과 맞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길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상대가 나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무엇이 있다고 가정하면 더 그렇다.


‘길옆에 복병이 있을 수도 있고 그 뒤에 또 뭐가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


나는 일당백의 장비도 아니고 여기가 장판파일리가 없다.


‘기만과 유인은 내가 해야지 당하는 건 재미없지.’


적진 한복판으로 장수를 하나 보내 일기토를 청했다. 응수하려던 상대의 손길이 방향을 바꿔 찻잔으로 향했다. 흐르는 찻물을 따라 은은한 차향이 내게로까지 전해졌다.


‘은근하지? 참나? 참을 건가요? 어떤가요? 조금 애매했나? 한 칸 더 갔어야 했나? 아니, 그건 너무 깊어. 이 정도가 적당했어. 일단 기다려 보자.’


상대가 찻잔을 놓고 돌을 집었다. 착수 하려던 유려한 손길이 한순간 멈칫 하더니 돌은 다시 바둑통으로 돌아갔다.


'결단이 어려운가 보네.'


대개 이러면 참는다. 그리고 일단 한번 참으면 대국 심리는 강력한 응징 보다 온건한 타협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당신은 어떨까요?’


한참을 망설이더니 역시 물러나 참는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나 보다.


‘오호! 역시 좋은 사람이었어.’


그 동안 보류 시켜 두었던 선수 권리들을 바로 행사해 침입한 한 점에게 간접적으로 응원군을 보냈다. 그리고 보내 놓았던 중앙 한 점에 한수를 더 가일수 해 자리를 잡았다.


‘집의 경계를 여기서 부터 정할 거라면··· 저야 감사하죠. 흐~’


내가 즉각적으로 이렇게 나올 줄 상대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지 오랫동안의 인내를 깨고 경계를 허물려 급히 병력을 보냈다.


‘좀 더 참아보지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는 내가 굳이 맞싸워 줄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상대의 대응은 한발 늦었다.


‘슬슬 방어만 해도 내가 유리하지 않나? 쯧쯧. 칼을 뽑으시려면 한 수 빨리 뽑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대등한 위치에서 싸울 수도 있었을 텐데···’


백과의 몸싸움은 싫다. 굳이 맞상대해 줄 필요를 못 느끼겠다. 회피했다.


현재 가진 중앙의 자원으로 요새를 지을 수는 없다. 일단 참호를 팠다. 굳이 백병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참호를 중심으로 방어하면서 상대의 전열을 저지 한다면 승리가 눈앞이다. 바둑은 잘 싸운 쪽이 이기는 게 아니라 집이 많은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잠깐의 우여곡절 끝에 흑백 간에 적지만 격차가 생겼다. 이제는 백의 원래 전략이 무엇이었는지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상대는 다시 그 길로 돌아갈 수 없다. 그건 바로 지는 길이다. 적게 진다해도 확실하게 지는 길을 택할 바보는 없다. 조금 전의 작은 전우로 입은 손해를 메워야 승리로 향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안정적인 수 보다는 모험적인 수가 나오기 마련이지.’


바둑에서 정수란, 공수의 조화를 이룬 그 장면에 가장 적합한 수를 말한다. 이런 수를 유불리의 비율로 말하면 5:5이다.


내게만 유리한 수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상대가 먼저 잘못 두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상대가 올바르게 두었다면 그에 대한 응수에 유리함은 없다. 물론 불리함도 없다.


이런 생각들을 종합해 보면 바둑 한판을 정수만으로 확실히 이기기는 몹시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승패는 대개 실수 때문에 드러난다.


‘정수로 이길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묘수를 둬야 하나?’


바둑 한판에 묘수 세 번이면 필패란 말이 있다. 이래서 바둑이 어렵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국면이 기본적으로 불리해지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에 제한이 많이 생긴다.


이런 생각들을 상대도 했었나 보다. 갑자기 백의 과감한 수들이 연달아 나왔다. 더 참고 이 형세를 유지해 나가면서 기회를 엿볼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나에 대해 분석을 했다면 내가 딲기에 능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을 지도 모르지. 그래서 밀리는 판세가 굳어지면 점점 더 뒤집기 어려워진다고 판단했나?’


뒷날 걱정은 이 판이나 끝내놓고 해야 할 것 같다. 과감이라 부르고 무리수라 쓰는 상대의 공격이 한바탕 진행되고 있다.


‘무리하면 응징해야지.’


유리하다고 물러서면 그건 올바른 응수가 아니다. 무리수에 대한 응징은 정수로 해야 한다. 무리수란 균형이 깨어진 수다. 공격과 수비가 5:5가 아니라 6:4, 7:3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수를 말한다.


백은 과감한 돌격으로 흑의 참호를 넘었다.


흑은 참모로 진지를 구축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백의 작전은 성공했다. 그러나 백의 사상자가 너무 많았다. 백은 흑 진영의 일부분을 무너트리고 점령했지만 더 이상 전투를 이어나갈 병력이 없었다.


여기서 백은 투료했다. 무리수에 대한 정수의 응징은 은근하지만 치명적이다. 대국의 목적은 부분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겼다. 그리고···


‘아! 힘드네. 대국도 힘들었지만 복기가···’


돌을 던진 뒤 상대는 굳은 얼굴이었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복기까지 꼼꼼히 마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규진 5단이라 기억해둬야겠네. 난 저런 사람이 제일 무서워.’


오늘의 분함을 억누르고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이 산뜻해 보였다. 쓰러지듯 대국장에서 나와 열이 오른 얼굴을 세수로 식히고 나서야 평정심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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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한계돌파를 위해 24.09.18 61 3 12쪽
57 각자의 어려움은 다르다. +3 24.09.17 66 3 12쪽
56 좌충우돌(左衝右突) 24.09.16 73 3 12쪽
55 미쳐 사는 사람들 +2 24.09.16 73 4 12쪽
54 사노라면. 24.08.28 107 2 12쪽
» 열전 24.08.27 118 3 12쪽
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8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6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5 4 12쪽
49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24.08.23 1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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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트라우마 24.08.21 13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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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5 3 13쪽
44 제 8국 24.08.18 142 4 13쪽
43 위기와 응전 24.08.17 14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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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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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위기 관리 24.08.09 15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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