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호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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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형
그림/삽화
장수형
작품등록일 :
2024.07.21 02:05
최근연재일 :
2024.09.12 16:3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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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6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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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1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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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 한 마리의 범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DUMMY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절했던 성호가 눈을 떴다.

딱딱한 메트리스 때문에 등이 아프고 눈앞이 뿌옇다.


동시에 꿉꿉한 곰팡내가 난다.


“일어났냐?”


성호가 눈을 뜨자 먼저 보인 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가연의 뒷모습이었다.


“너 10시간 넘게 잤어.”


10시간을 넘게 잤다는 가연의 말을 듣자, 성호가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성호의 머리가 핑 돌았다.


“윽···뭐야 이거..”


성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짚고 고개를 저었다.


그때 큼지막한 노트북을 들고 푸른 안광을 띄운 태하가 성호에게 다가왔다.


“크롬을 얼마나 썼나 확인해 봤더니···”


“가속장치를 쉬지 않고 8시간을 사용했다고? 그것도 3단계로? 진짜 미쳐버린 거야?”


가속장치의 강도에는 총 3단계가 있다.


1단계는 운동선수보다 조금 빠른 정도, 2단계는 운동선수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 3단계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정도였다.


흑호부대는 항상 3단계를 유지했지만, 2시간에 한 번 휴식 단계를 가져야 했다.


가속장치 크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크롬은 일정 시간을 사용하면 휴식을 가져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부하로 인한 내상을 입기 때문이었다.


태하가 성호 앞에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털썩 앉았다.


“일어났으니까 잘 들어, 현재 상황을 간단히 정리해서 말해 줄 테니까”


자기 몸 상태를 인지한 성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태하가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현재 흑호부대의 모든 정보가 유출되었고 유출된 정보는 일부 군인에게도 공유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


둘째 흑호부대 대원들의 정보를 유출한 범인은 분명 내부에 있을 거라는 것


셋째 글리치들을 이용해, 인명피해를 일으키고 있고, 빨리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것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호가 더 이상 못 듣겠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그 정도는 초등학생도 알겠어··· 그딴 이야기 하려고 여기에 붙잡아 둔 거야?”


성호가 말하자 태하가 진지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만졌다.


“너의 안구 카메라에 저장된 기억 데이터를 추출해서 리플레이를 돌렸어, 나랑 가연 둘이 살펴봤지”


“···그 장면만 봤을 땐 나도 분명히 죽은 것처럼 보였어.”


“근데···”


“근데?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민영이랑 민주의 위치가 계속 바뀌고 있어”


“뭐···?”


민영이와 민주의 위치가 계속 바뀌고 있다는 말을 들은 성호가 태하에게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방금 막 시스템 구축을 끝내고 애들 크롬에 신호를 보내봤지 근데 반응이 오는 방향이 매번 달라”


“살아는 있어?”


“반응이 오긴 하는데···. 생사 까진 알 수가 없어···. 지금 장비로는 힘들 것 같아”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는 거야”


태하가 말해준 자그마한 희망에 성호는 두 손을 꽉 쥐었다.


성호가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수희는..”


“이곳 시스템 환경이 관리가 안 돼서 속도가 너무 느려···. 아직 더 시간이···..”


그때 수희의 크롬에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며 위치를 파악 중이던 가연이 벌떡 일어나 성호 쪽으로 소리쳤다.


“수희 씨 위치 방금 확인했어!”


수희의 위치가 확인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성호가 매트리스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자, 성호의 머리가 다시 한번 핑하고 돌며 눈앞이 흐려졌다.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지만, 성호는 천천히 모니터 앞으로 걸어갔다.


“수희 씨 위치는 움직이지 않아···. 어딘가에 미동도 하지 않고 있어”


“크롬의 신호 반응도 느려”


성호가 온전치 않은 몸을 이끌고 손을 떨며 모니터를 살펴봤다.


“여기가···어디야”


“위치는 정확히 모르겠어 하지만··· 반응이 오기까지의 시간으로 봤을 때 거리가 있는 것 같아”


그때 태하가 빠르게 자신의 차 열쇠를 챙겼다.


“밖에 차가 있어, 타고 빨리 가자”


움직이려는 성호의 팔을 가연이 잡더니 성호를 부축했다.


"네 마음 이해하는데 몸 좀 챙기라고···"


"···"


그때 뒤에서 튀어나오는 예은을 보고 태하가 오지 말라며 손을 뻗었다.


"밖엔 글리치들이 있어 너도 봤잖아, 지금은 가족이랑 여기에 있어"


예은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이내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 꼭 데려와 수희"


그렇게 성호, 태하, 가연이 희망을 품은 채 차에 올랐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녀가 살아있기를 바라면서 신호가 오는 방향으로 달렸다.


해가 질 때까지 신호가 오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달렸다.


성호는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은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장시간 운전을 하던 태하가 허리가 아픈지 자세를 고쳐 앉으며 가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연! 얼마나 더 가야 해?!"


그때 레이더를 살펴보던 가연이 소리쳤다.


“잠깐! 신호가 강해졌어 이 근처야”


신호의 방향과 강도가 바뀌자, 근처에 있다는 걸 직감한 가연의 말에 태하가 차를 멈춰 세웠다.


동시에 성호도 얼굴을 들어 올렸다.


한 넓은 옥수수 농장이 보였다. 전쟁 중에도 아직 죽지 않는 시들시들한 식물들로 가득했다.


성호와 가연이 차에서 몸을 내렸다. 태하는 좌석에 앉아 컴퓨터를 만지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계속 신호를 보낼 테니까 레이더 잘 확인해"


가연이 트렁크에 있던 성호의 검을 잡아 성호에게 건네주었다.


"준비해 수희 씨 찾으러 가자"


성호와 가연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태하의 도움으로 수희의 크롬이 보내는 신호를 추적했다.


“저쪽이야···”


신호가 오는 방향인 옥수수 농장으로 발을 옮겼다.


2년간 관리되지 않았을 농장엔 아직도 약간의 비료 냄새가 났다.


그렇게 계속 걸음을 옮기자, 가연의 눈에 저 멀리 언덕 위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찾았다···”


성호는 지친 몸을 이끌고 언덕을 올랐다. 이윽고 언덕 위에서 수희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이게···뭐야···”


주변엔 그녀뿐만이 아닌 얼굴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 주변엔 글리치 두 마리도 서 있었다.


글리치들의 양팔에 부착된 칼날엔 자신이 죽였다는 걸 증명하듯 굳은 피가 묻어있었다.


글리치 두 마리가 붉은 안광을 띄며 성호와 가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키킥 저게 뭐야··· 지루해 미칠 것 같았는데 장난감이 굴러 들어 왔잖아?”


“야.. 저 여자는 내꺼야.. 이 여자처럼 갖고 노는 재미가 있겠어···”


글리치들이 나눈 이야기를 들은 가연이 허벅지에 있는 대인용 단검에 손을 올렸다.


“내가 할게”


상태가 좋지 않은 성호를 대신해 가연이 나섰다.


가연은 허벅지에 있던 대검을 뽑아 들어 올렸다.


자세를 잡은 가연의 모습을 본 글리치 두 마리가 가연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정말 한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가연의 옆을 가로질렀다.


다시 한번 창고에서 들었던 귀를 찢는듯한 파공음과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가연은 성호가 검을 뽑아 드는 순간을 보지도 못했다. 그저 어느샌가 검을 들고 있는 성호와


정확히 반으로 갈려 피를 뿜어내고 있는 한 마리의 글리치만 보일 뿐이었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나머지 한 마리의 글리치가 괴성을 지르며 성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역시 한순간이었다.


다시 한번 파공음이 들려왔다.


휘두르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는데 글리치가 깔끔하게 반으로 잘려 나갔다.


하지만 분명 검을 휘둘렀다는 걸 증명하듯 성호의 검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글리치도 결국엔 인간, 글리치의 잘려 나간 복부에서 피와 내장이 뿜어져 나온다.


가연은 다시 한번 흑호라는 직책을 부여받았던 성호의 강함에 섬뜩함을 느꼈다.


성호는 검을 내팽개치고 수희에게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옆으로 누워있는 그녀의 얼굴에 손을 올린다.


차갑다. 마치 쇳덩이 같다. 성호가 텔레파시를 사용해 그녀의 생체신호를 확인한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그녀의 몸 이곳저곳엔 누군가에게 여러 차례 베인 듯한 절상이 보인다.


성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감싸안았다.


그때 그녀의 희미하게 빛나는 오른손이 성호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손등은 타박상으로 가득했다. 끝까지 저 글리치들과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손을 잡고 돌리자, 손바닥에서 홀로그램 빛이 나오고 있다. 아이들과 바다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보인다.


죽는 순간까지 추억의 빛을 회상했던 것일까? 아니면 지금 남편이 왔다는 걸 느낀 것일까?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보인다.


하지만 이내 그 빛마저 서서히 흐려지더니 깜빡거리다 꺼져버렸다.


이제는 그녀의 크롬에서조차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끝까지 적에게 맞서 싸웠으며, 마지막까지 자신을 그리워했던 그녀를 더욱 감싸안았다.


너무나도 연약한 그녀의 몸, 조금이라도 더 힘을 주면 부서질 것 같은 너무나 약한 몸이었다.


성호의 등이 들썩인다.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그 넓은 등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약해 보이는 성호의 모습에 가연의 마음이 찢어졌다.


전쟁으로 인해 탁했던 하늘이 오늘따라 더욱 어둡다.


하늘에선 그녀를 위한 단 한줄기의 달빛도 단 한 방울의 비도 보내주지 않았다.


그저 점점 더 차갑게 식어가는 그녀를 품은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한 마리의 범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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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 가연은 천천히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24.08.29 6 0 12쪽
10 #9. 낭만 좋지, 잠시 뒤에도 찾을 수 있을지 보자고 24.08.22 7 0 11쪽
9 #8. 살인검(殺人劍) 24.07.31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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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애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24.07.21 18 0 12쪽
» #3. 한 마리의 범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24.07.21 22 0 10쪽
3 #2. 끝나지 않은 전쟁 24.07.21 30 0 15쪽
2 #1. 집으로 24.07.21 35 2 11쪽
1 #0. 우리의 이름은 불명이나, 우리의 행동은 불멸일지니 24.07.21 49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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