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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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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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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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혼례를 치루다

DUMMY

“인사 올립니다. 막란의 아내 최윤서라 합니다.”


막란이 당황해 넓죽 엎드린다. 다른 화적들도 죽었다는 심정으로 막란을 따라 엎드린다. 재상의 딸이 화적의 아내라니........ 천지가 놀랄 일이다.


윤서는 막란의 아내가 되기로 했다. 산채 식구들을 살리는 길이다. 백부 최이척은 반정이 성공하면 화적들을 가만 둘리 없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이다. 윤서를 중전으로 만들려 하였고, 인목대비를 움직여 반정을 일으키고 있다. 화적을 배신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뭐라 했느냐? 니가 화적의 아내라니!”



최이척의 얼굴은 거의 사색이다. 일국의 국모로 만들려 했던 조카이다. 그런 윤서가 화적의 아내로 나타난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윤서로 인해 그동안 쌓아 왔던 명예와 사대부 가문이 통째로 날아간 기분이다.



“니가 이 나라를 욕보이려는 구나!”


“백부님이 임금이라도 되신 것입니까? 나로 인해 나라를 욕보이다니요?”


“이 화적 놈들을 당장이라도 요절낼 수 있다.”


“백부님의 하시려는 일에 이 분들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너를 잃느니 차라리 대사를 그만 두겠다.”



사실이 아니다. 최이척은 조카를 잃는 한이 있어도 화적을 동원해 반정을 일으키고 싶다. 성공하면 자기의 공이고 실패해도 문제가 없다. 그렇게 일을 꾸며야만 한다. 어쩌면 윤서를 화적에 심어 놓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화적을 움직이기 쉬우니까. 그럴려면 윤서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백부님은 그럴 분이 아니지요.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일이 끝나면....... 니 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그 뿐이다.”


“이분들과 함께 돌아가겠습니다.”



윤서도 만만찮다. 화적들과 운명을 같이 할 작정이다. 시간이 별루 없다. 교서를 돌려 본 조정의 신료들이 반정에 동참하기로 했지만, 그에 앞서 윤호산과 같은 정적들을 없애는 조건이다.



“알겠다. 니 뜻이 정 그렇다면....... 이들과 약조한 것은 지킬 것이야. 그러나 일이 틀어지면 내가 너희들을 모두 죽이겠다.”



어차피 각오한 일이다. 누구한테 죽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윤서가 걱정하는 것은 일이 성사될 때 산채식구들의 신변문제다. 자신이 화적들과 있으면 감히 건드리지 못하리라.......



“백부님이 약조한 것만 지키면 됩니다. 만약 지키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전부 까발릴 것입니다. 제가 증거니까요.”



알았다는 듯 최이척이 미소를 흘린다. 윤서도 여기 온 목적을 이루었다. 적어도 자신이 있는 한 산채식구들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최이척이 엎드려 있는 꺽쇠에게 다가간다.



“자네가 이 사람들의 두령이고 꼽추의 아비 꺽쇠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아들을 잘 뒀네. 명석하기는 제갈량과 같고 민첩하기는 따를 자가 없어. 신분이 질녀와 같지 않은 것이 애석할 따름이야. 일이 끝날 때 까지 잘 부탁하네.”



협박이다. 막란을 조카사위로 맞을 수 없다는 뜻이다. 반정이 성공하면 윤서를 털끝 하나 건들지 말고 있던 자리에 뒤 돌려 놓으라는 소리다. 꺽쇠는 윤서를 며느리로 맞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최이척의 협박은 싫었다.



“아씨를 돌아가라 마라하고 제가 함부로 말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산에 있는 동안은 별탈이 없을 것입니다. 그 점은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자네만 믿겠네.”



최이척은 씁쓸한 미소를 남기고 부하들과 함께 절터 뒷숲으로 사라진다. 남겨진 화적들이 일제히 윤서와 막란을 본다. 언제 합의를 해서 부부가 되기로 했는지 무지 궁금하다.



“막란아 어떻게 된 거여?”


“너 미쳤냐! 어떻게 양반집 규수를.......”


“너 설마....... 한겨? 했어? 했구만.......”


“했대?”


“했댜.”


“막란이....... 겁 대가리 없이 어떻게 자빠트렸대?”



꺽쇠는 판단했다.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윤서가 거짓으로 막란의 아내라 말한 것을....... 막란은 헷갈린다. 윤서가 그동안 자신을 수시로 놀려 호감을 갖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좋아하는 감정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정말 자기를 다르게 생각하는 걸까.......


윤서가 다가와 막란의 팔을 잡는다. 이번에는 팔을 빼지 않고 윤서의 눈만 멀뚱하니 바라본다. 윤서가 막란을 보고 씩 웃는다. 막란이 눈길을 피해 먼 산을 바라본다.


이런 막란이가 좋다. 쑥스러워하는 막란의 순박함이 윤서는 그동안 좋았다. 막상 신분을 벗어 던지니 못생긴 얼굴도 개성 있는 얼굴로 보인다.



“아씨 이젠 됐습니다. 아씨의 뜻은 충분히 대감께 전달되었으니 이만 하셔도 됩니다.”


“아버님 전 진심입니다. 서방님은 진작에 저를 선택하셨고 전 오늘 선택한 것뿐입니다. 저희....... 부부를 축하해 주십시오.”



윤서가 도망가는 막란을 잡아 꼭 껴안는다. 화적들은 난리가 났다. 아이들을 무동 태우고 막란과 윤서 주위를 돈다. 아낙들은 소리를 지르며 나뭇가지로 땅바닥을 친다. 인적이 드문 천주사 절터에서 화적들이 춤을 춘다.




*




화적들의 산채.......

얼떨결에 막란과 윤서의 혼례가 이루어진다. 비록 물 한사발 놓고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백년가약을 맺는 자리지만 화적들은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 연지와 곤지를 찍은 윤서의 얼굴이 발그레하다.


꺽쇠는 마지못해 혼례의 자리에 섰지만, 윤서를 며느리로써 인정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가 산에 있을 때만 며느리인 것이다. 막란을 위해서 언젠가 윤서를 보내야만 한다. 막란을 잃지 않으려면.......


덴년이가 이들의 혼례 사회를 본다. 서방 모지리가 죽지 않았으면 그가 사회를 봤을 것이다. 덴년이가 눈물을 흘린다.



“교배례!”



신랑으로 맞아들인다는 뜻으로 윤서가 먼저 막란에게 두 번 절한다. 막란의 입이 벌어진다. 답배로 막란도 신부를 맞는다는 의미로 윤서에게 절을 한다. 윤서가 장난으로 메롱 한다.



“합근례!”



표주박에 채운 술을 막란이 조금 마시고 윤서에게 간다. 막란이 마시라며 턱을 올리니 윤서가 남김없이 들이킨다. 마지막으로 성혼이 되었다는 덴년이의 ‘성혼례’를 끝으로 하객인 화적들에게 절을 하는데 윤서가 취해 앞으로 구른다.


밤이 되었고 잔치는 계속된다. 멧돼지 고기와 나물 그리고 산머루를 발효시켜 만든 술이 전부지만, 화적들에게는 충분히 배부르고 취할 수 있는 음식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모닥불은 더욱 활활 타 오르고 화적들의 취한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




막란의 움막.......

갑자기 급조해 만든 움막이라 많이 부실하지만 그래도 화적들이 신혼이라고 동백꽃으로 치장을 해 놓았다. 한 쪽 구석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웅크려 앉아 있는 막란에게 윤서가 다가간다. 막란은 엉덩이를 뒤로 뺀다.



“서방님.......”


“.......”


“밤이 깊었습니다.”


“.......알아요.”


“꼭 내가 나서야 겠습니까?”


“오늘은 모든 게 너무 급작스럽습니다.”


“절 한 번 안아주세요.”


“내일 할게요. 오늘은 그냥 주무세요.”



등신....... 이건 뭐 등신한테 시집온 것 같다. 줘도 못 먹으니.......



“그럼 제가 들어갑니다.”


“뭘 들어가요.......”



하는데 윤서가 막란을 와락 껴안는다. 막란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다. 그의 입을 윤서가 틀어막는다.



“조용해요! 남사스럽게.......”



한참이나 윤서가 막란을 껴안는다. 막란이 발버둥치다 윤서가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그녀의 냄새가 좋다. 목에 난 솜털이 좋다. 조그마한 윤서가 자신을 품는 것이 좋다. 이대로 깨어나지 않는 꿈을 꾸고 싶다.


막란을 껴안았다. 알고 싶었다. 막란의 순박함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 꼽추이며 노비인 처지가 불쌍해서 연민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정네로써 매력을 느껴 막란을 좋아하는 것인지....... 그래서 안았다. 처음에는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꼽추 등 때문에 한 품에 안을 수 없어 힘만 들었다. 그런데 놓고 싶지 않다. 힘만 있으면 영원히.......


윤서의 팔에 점점 힘이 빠진다. 막란이 그녀의 팔을 가만히 모아준다. 윤서의 고개가 자꾸 꾸벅인다. 자리에 조심스럽게 누인다. 색색거리며 잠든 윤서의 얼굴이 아기처럼 맑다. 조금 더 진전이 있었으면 마다않을 작정이었는데 많이 아쉽다. 덴년이 아줌마가 준 명주천도 오늘은 쓸모가 없다.




*




다음날 아침.......

사람들이 분주하다. 최이척의 명대로 무기를 만들고 만들 수 없는 것은 함경도 국경에 까지 가서 명이나 후금의 무기를 사갖고 와야 한다. 조선의 무기창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었고, 통제가 확실해 설사 구입하더라도 인적사항이 정확해야 한다. 그래서 그동안 실패한 정변이 조선의 무기창에서 무기를 조달받아 뒤를 밟힌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이다.


최이척도 무기는 공급해 주지 못한다. 사병을 엄격히 통제하던 시기라 호위무사가 지닌 무기도 나라에 허가를 받고 반출이 허용되었다. 만약 불법으로 반출하다간 정변이 실패한 후 그 책임은 온전히 최이척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해야 했다.


국경에서 무기를 조달하는 책임은 윤서가 맡았다. 한자를 아는 사람이 윤서 이외에는 없었고, 명과 후금의 사신들을 담당했던 최이척의 영향으로, 윤서는 조금 이들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함경도 회령 출신의 솔개가 길을 안내하고 막란도 따라가기로 한다. 산채에서는 화살 같은 비교적 간단한 무기를 만든다. 거사일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서둘러야 한다. 막란과 윤서의 혼례도 급하게 치룬 이유도 거사일 전에 하기 위해서 였다. 혹시 이승에서 치루지 못할 수도 있기에.......


최이척이 준비해 준 말 세 마리를 나누어 타고 국경으로 출발한다. 남장을 한 윤서는 신났다. 원래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세상을 돌아다녀야 숨을 쉬는 것 같다. 막란도 같이 있으니 무서울 것이 없다.




*




개성 어느 길 위.......

하루 반나절을 쉼 없이 꼬박 걸어 개성에 도착했다. 막란과 솔개야 워낙 산속 생활에 익숙해 이정도 노고야 참을 수 있지만 윤서는 죽을 것 같다. 말을 타는 것도 익숙지 않아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다. 몸에서 풍기는 짠 내도 싫었고, 먼지와 때를 온몸에 겹겹으로 두른 것 같아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다.



“서방님 쉬었다 가면 안 됩니까? 이러다 궁둥이가 무너져 길에서 죽겠습니다.”


“솔개 형님도 있는데....... 말을 가려서 하세요.”


“괜찮다. 아씨 그렇게 힘드십니까?”


“허벅지 안쪽에서 골이 패인 궁둥이까지 진물이 터져 흥건합니다.”



주막과 집은 일부러 피해 다녔다. 혹시 모를 정적들에게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숙하며 국경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윤서의 상태가 좋지 않다. 아무래도 주막을 잡아야 겠다.


개성상인으로 인해 주막은 빈방이 없다. 그렇다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 도움을 청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산골이야 모르지만 민가들이 모여 있는 곳은, 임진년 왜란 이후 낮선 방문객은 반드시 관아에 신고해야 한다. 겨우 알아낸 것은 멀지 않은 곳에 과부 혼자 산다는 집이 있다는 정도이다.


솔개의 재능을 발휘할 때다....... 그의 혀에 넘어가지 않은 여인네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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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천으로 세상을 덮다 24.08.16 17 0 11쪽
38 고구마와 감자 24.08.15 2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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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주머니 속의 송곳 24.08.13 20 0 12쪽
35 숟가락과 젓가락 24.08.12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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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몸 하나로 두 임금을 섬길 수는 없다 24.08.10 26 0 11쪽
32 아버지를 죽인 아버지 24.08.09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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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원수의 집을 찾아 가다 24.08.06 29 0 12쪽
28 도롱이가 비를 맞다 24.08.05 2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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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남산에 본래 집이 있다네 24.08.03 3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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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례를 치루다 24.07.26 4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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