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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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9 10: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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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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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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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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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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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백숙이 먹고 싶다

DUMMY

윤서가 기절한다........


윤서를 흔들지만 깨어나지 않는다. 움막으로 옮긴다. 팔다리를 주물러 근육을 풀어낸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윤서가 가늘게 눈을 뜬다. 피투성이 막란의 얼굴이 보인다. 다시 혼절하려는데 막란이 급히 흔든다. 겨우 윤서의 정신이 돌아온다.



“아씨 정신차리세요!”



그런 막란을 밀쳐낸다. 그러나 팔에 힘이 없어 허공에 헛손질을 한다. 이 순간만큼은 막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 막란의 얼굴에 닿은 윤서의 손에 피가 묻는다. 그녀가 피를 털어내려 손을 흔든다. 막란이 윤서의 손을 잡는다. 몸부림치는 윤서....... 그때서야 막란이 눈치를 채고 윤서의 손과 자신의 얼굴에서 피를 닦는다. 그러나 잘 닦여지지 않는다.



“서방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요.”



확실했다. 윤서는 피를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람 죽이는 막란을 싫어하는 것이다. 막란은 윤서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녀가 몸을 틀어 막란이 보이지 않는 반대편으로 돌아눕는다. 막란이 움막에서 나와 온 몸의 핏자국을 지운다. 얼굴과 손에 묻은 피를 지우려 박박 문지른다. 벌겋게 닳아 오른 막란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른다.


막란을 키워준 백정 모작은 막란에게 사람을 향해 칼을 쓰지 말라고 했다. 그때는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짐승 이외에 개미 새끼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모지리 아저씨의 성품이라 여겼다.


그러나 막란이 문제였다. 그가 칼을 쓸 때는 잔인하고 매정했다. 때문에 실수하는 법이 없었고 언제나 정확했다. 모지리는 감정이 없는 막란의 칼을 걱정한 것이다. 누구든 죄책감 없이 막란은 죽일 수 있었다. 칼을 잘 쓰는 칼잡이 여인도 그래서 막란이 좋아 한 것이다.



“제가 죽일 년입니다. 서방님의 하시는 일에 치를 떨었습니다. 소박을 맞아도 달게 받겠습니다.”



윤서가 어느새 감정을 정리하고 힘들게 막란을 위로해 준다. 그러나 막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고개는 땅을 향해 있다.



“아씨를 탐내는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숟가락도 제 짝이 있다는데.......”


“아씨라 부르지 마세요. 서방님의 지어미입니다. 이름을 부르기 어려우시면 부인이라고 불러주세요.”


“.......”



작은 목소리지만 윤서는 힘주어 말한다. 사람을 해하는 막란은 싫지만 지아비로서의 막란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네 알겠습니다. 부인.......”


“그리고 숟가락이 아니라 짚신입니다.”


“네?”


“숟가락이 아니라 짚신도 짝이 있다 입니다.”


“그건....... 농입니다. 부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한 번 웃기려구 그런 겁니다.”


“서방님....... 좀 전의 그 자에게 무엇을 알아내셨습니까?”



윤서는 이제 막란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말한다. 싫어도 내 서방이다. 생명보기를 돌같이 아는 놈을 지금은 어쩔 수 없어도 나중에 사람 만들어 살기로 했다. 그 전에는 결코 살을 섞을 일은 못할 것 같다.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 같습니다.”



놈의 숨통을 끊기 전 알아낸 사실은, 윤서에게 천삼을 줘서 밀매를 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추행해서 감시하라는 개성 관찰사의 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관찰사는 최이척의 그늘에 있는 사람이다. 동시에 형조판서인 윤호산의 지배에 놓여 있기도 하다. 이중 첩자이거나 급변하는 정세에 양다리를 걸치려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다. 윤서는 똘망한 눈으로 생각에 잠긴다.



“잡것들이 판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들의 패를 봐야겠습니다. 천삼이 있는 주막으로 돌아가시지요.”


“부인의 몸이 성치 않습니다. 어떻게 그 먼 길을 가려하십니까?”


“엎드리세요.”



막란이 엎드리자 윤서가 업힌다.



“가세요.”


“네.......”



막란이 사람을 무지막지하게 죽일 때는 무섭고 싫어도, 그와 말을 주고받으면 기분이 풀린다. 마치 닭대가리를 비틀어 죽이는 모습을 보면 몸서리를 쳐도, 백숙을 먹을 때는 환장하게 맛있는 것처럼.......


“부인 이젠 제가 무섭지 않습니까?”


“백숙 같습니다.”


“네?”


“그런 게 있습니다. 앞을 보세요....... 좌로 도세요. 어여 바라쉬!”



가마꾼이 하는 추임새를 놓으며 막란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막란을 생각하는 윤서의 마음이 이쁘다.




*




주막집.......

주막집은 불에 타 재가 되어 있다. 점주는 칼에 맞아 죽어 있다. 관원들이 뒤늦게 뒷수습을 하고 있다. 말과 천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혼란스럽다. 관원들에게 물어봐도 아는 바가 없다. 언제나 상인들로 넘치는 주막이다. 그런데 누군가 주인인 점주를 죽이고 집을 불태웠다. 그런데도 목격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많던 상인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막란이가 윤서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곤댄다.



“일단 자리를 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요?”


“목소리 낮추세요. 부인은 남자입니다.”


“그런데요?”



눈치 없는 윤서를 막란이 끌고 간다.



“관원들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윤서가 곁눈으로 보면....... 윤서 일행을 감시하며 정말로 일을 하는 척을 한다. 마치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관원들의 감시를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윤서가 산에서 부상 입은 다리 때문에 한 쪽 발을 절룩인다. 도망갈 수 없다.



“저를 두고 서방님만 내빼십시오.”


“그 무슨 말이십니까? 부부는 일심동체라 했습니다. 잡혀도 함께 잡혀야 합니다.”


“함께 잡혀요?”



무언가 윤서가 골똘히 생각하다 깨달았다는 듯이 막란의 등짝을 때린다.


윤서가 관원들 쪽으로 간다. 막란이 말려보지만 윤서의 행동이 재빨라 그녀를 놓친다. 관원들도 자기들에게 다가오는 그녀를 보고 긴장한다.



“책임자가 누굽니까? 관찰사 어른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막란이 얼른 윤서 앞을 가로 막는다.



“귀띔을 해 주세요....... 심히 당황스럽습니다.”


“호랭이 새끼 굴로 들어가야 겠습니다. 서방님은 이제부터 제 종입니다.”



막란이 혼잣말로 ‘언제는 종이 아니었습니까’ 하고 뱉고는 한쪽으로 물러난다.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앞으로 나선다.



“무슨 일이 십니까?”


“좌상대감 최이현의 여식인 저를 아시지요?”


“.......”


“이젠 그만하시고 관찰사 나리께 안내하세요.”


“천삼을 찾고 있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그놈의 천삼! 내 천삼을 찾으면 그 자리에서 씹어 아작을 낼꺼야! 어서 안내하지 못하겠소!”


윤서의 호통에 관원의 책임자도 흠칫 놀라 눈꺼풀을 깜빡인다. 윤서가 막란에게 눈치를 주자 막란이 엎드린다. 윤서가 올라탄다.



“뭐하세요. 앞장서지 않고!”



관원의 책임자가 앞장선다.




*관찰사의 관청.......



“백부 최이척 대감을 배신하는 겁니까?”


“법과 원칙 공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겁니다.”


“제가 천삼을 밀매했다는 증거를 찾았다는 겁니까”


“주막에 천삼을 맡겨 놨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러니까 목격자를 데려오라니까 그러네....... 말이 통하지 않아....... 귓구멍이 막혔소? 관찰사 나리는!”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윤서는 막나가기로 한다. 보아하니 관찰사 이놈은 윤호산 편에 서기로 한 것 같다. 아버지 최이현 대감이 비명횡사한 후 전국의 관리들은 임금 쪽으로 돌아섰다는 풍문이 있었다. 이놈도 그중의 한 놈이다.


홍삼은 조선무역의 이 할이 넘는 국가산업으로 판매와 관리는 엄격하게 규제된다. 따라서 홍삼의 사무역은 역모와 마찬가지로 엄한 처벌을 받는다. 윤서를 엮어 최이척과 서인들을 몰아넣을 계략인 것이다.


그런데 관찰사가 윤호산과 임금에게 잘 보이려 이러한 일을 꾸몄다면, 주막의 주인 점주는 윤서에게 천삼을 받은 유일한 증인일 텐데, 그를 왜 관찰사가 죽였는지 이해가 안 간다. 천삼도 사라졌다. 이러한 마당에 윤서가 밀매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주막의 주인을 죽인 범인을 찾고 있으니 증거는 곧 나올 거요.”


“증거를 찾든 말든 알아서 하시고 이제부터 내 뒤를 쫒으면 백부 최이척 대감께 고해 관찰사 나리의 앞과 뒤를 요절내겠습니다.”


“.......”


“가도 되지요?”


“반경 오리 안에 계세요. 증거를 찾기 전에는 사정안에 있어야 합니다.”


“참나....... 제가 죄인입니까? 전 팔도유람 중입니다. 제 얼굴이 하도 알려져서 남장을 하고 돌아다니는데, 관찰사 나리가 알아보고 음모를 꾸미는데 환장하겠습니다. 내 발 닿는 대로 떠돌아다닐 테니 또 사람을 붙이면 재미없을 줄 아세요!”



그녀의 아버지 최이현이 죽은 후 서인들 세력이 약해져, 나라가 뒤집힐 경우는 없다고 판단해 임금 쪽으로 돌아선 관찰사였다. 오랜 한직을 접고 조정의 내직으로 한양에 입성하려 했다.


그래서 최이척이라는 대어를 낚으려 했다. 그런데 미끼로 이용한 천삼 마저 행방이 요원하다. 개성무역 일 년치의 절반이 없어진 거다. 천삼을 찾아야 하고 윤서를 엮어야 한다. 관찰사의 인생이 걸린 문제다.



“알겠습니다. 최이척 대감께 고하십시오. 이 마을을 떠난다면 그 즉시 전국에 수배령을 내리겠습니다.”



이놈은 사생결단이다. 아무리 윤서라도 죽자 덤비는데 같이 불구덩이에 들어갈 수는 없다.



“관찰사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팔도유람도 중요하지만 나랏일을 하시는 나리에게 협조하는 것도 백성된 자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마침 저의 다리가 불편하니 근처에서 며칠 요양을 하겠습니다.”



갑자기 공손해진 윤서의 태도에 관찰사도 헷갈린다. 소문처럼 윤서가 천방지축인 것은 알게 되었으나 관찰사 자신에게 협조한다니....... 최이척의 정적인 윤호산의 명만 있어도 그녀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최이척과 엮으라는 모종의 암시가 있었다. 기회를 노리려면 그녀를 곁에 두어야 한다.



“요양하실 때 필요한 것은 대 드리겠습니다. 말씀 하시지요.”


“뭐....... 별다른 건 없고 백숙이 먹고 싶습니다. 최근 많이 구르기도 하고 가슴도 벌렁벌렁 거려 대추 넣고 푹 고운 백숙이 그립습니다.”


“암 닭으로 푹 고아 드리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고맙습니다. 열 댓 마리 부탁합니다.”


“어디서 요양하시는데........”


“대추나무 골 과부집이라고 하면 다 압니다. 그 집에서 신세를 져야 하는데 그 집 과부가 오랜 세월 가슴이 허해서 보답 좀 할 겸, 저도 오랜만에 괴기 맛도 보려구요.”


“내일 아침 이 십여 마리 푹 고와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주막의 주인인 점주를 관찰사가 죽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윤서에게서 천삼을 받은 증인이다. 구태여 그를 죽여 그녀에게 덮어씌우려던 밀매의 증거를 없앨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음모가 숨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주막집 점주가 살아있으면 안될 그 어떤 이유가.......


막란의 등에 업혀 과부 집으로 가는 길에도 윤서의 머리가 무겁다. 아무리 추리를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점주는 누가 죽였을까? 관찰사의 수하가 이들의 뒤를 몰래 쫒아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막란 서방은 좋겠다. 산채식구들처럼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니까.......


하는데....... 갑자기 생각이 스친다. 솔개 서방님이 혹시....... 솔개는 머리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라면 윤서에게 불리한 증거를 없앨 수 있는 사람이다. 천삼은 솔개가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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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8 0 12쪽
43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21 0 11쪽
42 무인도 함박도에서 꿈을 꾸다 24.08.19 19 0 11쪽
41 남자들의 세계는 다 그런 겁니다 24.08.18 17 0 12쪽
40 심청이와 흥부 그리고 가시덤불 24.08.17 14 0 11쪽
39 천으로 세상을 덮다 24.08.16 17 0 11쪽
38 고구마와 감자 24.08.15 20 0 12쪽
37 여인들은 춤을 추고 사내들은 노래를 한다 24.08.14 22 0 11쪽
36 주머니 속의 송곳 24.08.13 20 0 12쪽
35 숟가락과 젓가락 24.08.12 19 0 12쪽
34 꿀물 찾는 임금님 24.08.11 23 0 11쪽
33 몸 하나로 두 임금을 섬길 수는 없다 24.08.10 26 0 11쪽
32 아버지를 죽인 아버지 24.08.09 17 0 12쪽
31 딸이 죽어 원수가 슬픔을 토해내다 24.08.08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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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도롱이가 비를 맞다 24.08.05 2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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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도적, 산적, 화적 중에 으뜸은 화적이라 24.07.31 41 0 11쪽
22 과부의 대추가 맛있는 사연 24.07.30 47 0 12쪽
» 백숙이 먹고 싶다 24.07.29 33 0 12쪽
20 칼잡이 여인을 사랑하다 24.07.28 34 0 11쪽
19 아기에게 노리개를 주다 24.07.27 39 0 12쪽
18 혼례를 치루다 24.07.26 4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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