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우스가 멸망하는 로마를 집어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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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맨형님
작품등록일 :
2024.07.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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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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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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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6편. 너는 여기서 루키우스랑 같이 죽는 거야.

DUMMY

히포 레기우스 반달 부족 측.


공성전은 무척 지루한 싸움이다.


특히 성을 공략하려는 쪽에선 더더욱 지루했다.


병법에서도 성을 공략하려면 공격측의 병력이 수비측의 병력보다 최소 3배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최소다. 최대가 아니라.


병력만 준비했다고 하면 끝인가?


그것도 아니다. 성을 공략하려면 공성 장비가 따로 필요했다.


돌을 쏘아 성벽을 깨뜨리는 투석기 ‘오나거’는 당연히 있어야 했고.


성문을 깨뜨리기 위해선 충차도 있어야 했다.


물로 가득 찬 해자도 넘어야 했고, 성벽 위로 올라 갈 사다리도 있어야 했다.


한편, 성을 끼고 방어하는 수비측은 공격측보다 상당히 유리했다.


오나거? 돌을 날려 성벽을 깨뜨린다?


한번 던져봐라. 그게 맞춰 지나 안 맞춰 지나?


어라? 맞췄다고?


어. 그래. 그럼 민간인들을 동원해서 곧바로 수리할게.


아 참 그리고 그쪽에 바위는 남아나시나? 크크크.


오호라. 성문을 깨뜨리기 위해 충차를 동원하시겠다?


뭐해? 불화살 날려서 태워버려.


응? 철판을 덧대어 불이 안 붙는다고?


하핫. 저 새끼들은 철이 안 아깝나?


그럼 무거운 돌을 떨어뜨려서 망가뜨리면 그만이지.


해자를 넘겠다고? 크크크. 넘어봐. 넘어봐.


옷이 젖으면 무거워지는 거 잘 알지?


이야. 그러고도 해자를 넘었다고? 근성 있네! 우리 친구들!


어허. 사다리를 대시겠다? 그럼 막대기로 사다리를 밀어버리면 그만이지.


성벽 밑에서 사다리를 붙잡으시겠다?


뭐해? 화살 쏴서 죽여 버려.


그만큼 수비측이 유리하기에 공격측 입장에서 공성전은 그야말로 피와 살이 떨리는 전투였다.


그리고 군대는 물자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와 같았다.


그건 공격측이나 수비측이나 둘 다 다를 바 없었다.


허나 병력 숫자가 많은 쪽이 물자 소모가 더 빠른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히포 레기우스는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 도시.


여차하면 배를 통해 물자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 항구 쪽도 틀어막아야 했다.


그래도 이 부분은 크게 문제는 없었다.


반달 부족은 배를 잘 다루는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항구 봉쇄도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어쩌면 항구를 통해 성을 함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항구 쪽에도 성벽이 있었다.


항구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 또한 방어 시설과 온갖 장애물로 틀어막았다.


결국 가이세리크는 정석적으로 히포 레기우스를 공략할 수밖에 없었다.


정석적인 공략 법이 무엇이냐고?


그건 바로 현대까지 내려오는 비법 ‘존버’다.


수비 측이 지쳐 나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항구까지 틀어막고, 도시에 물자를 공급할 농촌들을 불살랐으니 로마군은 히포 레기우스에 남아있는 물자로 버틸 수밖에 없다.


만약 그 물자가 떨어진다면?


그럼 수비측의 사기는 대폭 꺾이고, 도시의 시민들은 항복하자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사절을 보내 항복을 종용하든 혹은 총공격을 가하면 히포 레기우스는 자신의 손아귀에 떨어지리라.


물론 이 방법에도 약점은 있었다.


현재 로마군보다 반달 부족 쪽이 물자 소모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반달 부족의 병력이 로마군보다 몇 배는 더 많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가이세리크는 이 약점을 극복할 방안을 가지고 있었다.


물자가 없다면 물자를 훔치면 그만이다.


반달 부족이 자랑하는 건 해적.


지중해 연안을 습격해 필요한 물자를 가져온다.


거기다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녀석을 식별하고, 처리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다.


“그래서 오아메르는 타라코로 갔다고?”


“예.”


“현재 그놈들의 위치는?”


“타라코 자경단과의 전투에서 패배해 현재 포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


가이세리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져버렸다는 거다.


현재 반달 해적의 위상은 강력함과 흉폭함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즉 오아메르와 그놈을 따르는 놈들 때문에 반달 해적의 위상이 깎였다.


“폐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함대를 타라코로 보내겠습니까?”


그 물음에 가이세리크는 생각에 잠겼다.


“타라코에 함대를 보내면 분명 고트 놈들이 발작하겠지. 아에티우스도 마찬가지일 거고. 히포 레기우스를 공략하는데, 오아메르 따위에 힘을 쏟는 걸로 대계를 그르칠 수 없지.”


지금처럼 히포 레기우스에 힘을 쏟는 상황이 아니라면 가이세리크는 타라코에 보복을 가했을 것이다.


반달 해적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타라코쪽 상황은 어떻지? 우릴 물리쳤다고 으스대던가?”


“그런 낌새는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교회 측에서 오아메르 일당을 노예로 부리더군요.”


“교회가 노예를 부린다고?”


가이세리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정확히는 교회에서 그들을 고해성사한 뒤 보속으로 일을 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예로 부린다는 소리를 하는 건가? 흐음···. 흥미롭군.”


“사실 타라코 쪽 상황은 믿기 어려운 말들이 쏟아져서 말씀드리기 좀 그렇습니다.”


“믿기 어려운 말들? 그게 뭐지?”


그 말에 남자는 가이세리크에게 자경단의 활약을 들려줬다.


특히 폼페이우스 일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가이세리크의 얼굴은 흥미로움으로 가득했다.


“솔직히 믿기기 힘들군. 거리에 흩어진 아군을 수습하고, 매복한 적들을 한순간에 꿰뚫어보다니. 이건 성경에서 나올 법한 기적이 아닌가? 게다가 그런 활약을 보인 게 폼페이우스 일족의 차남이라고?”


“예. 듣기로는 그 카이사르와 맞붙었던 폼페이우스의 직계 후손이라고 합니다.”


“허···. 그런가? 이거 참···.”


가이세리크의 눈빛이 변했다.


“직접 한번 보고 싶군. 타라코에 이런 소문을 던지게.”


“내용을 말씀해 주십시오.”


“타라코에서 우리의 코를 뭉갠 이를 찾는다. 만약 그들이 가이세리크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타라코 전역을 폐허로 만들겠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하기 그지없는 소문이었다.


“타라코의 시민들이라면 벌벌 떨 소문이군요. 아마 그들이 앞장서서 폐하께 사람을 바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야. 아주.”


가이세리크는 살기를 숨긴 미소를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라코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


로마는 알다시피 도시 국가로부터 시작됐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이후로 7명의 왕이 로마를 다스렸지만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라 불리는 희대의 강간마가 설치는 바람에 왕정에 온갖 정이 다 떨어진 로마의 귀족과 시민들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꾼다.


그야말로 영어 섹스에 걸맞는 행적이었다.(라틴어에서 섹스투스는 성적인 단어가 아닌 여섯째를 의미한다.)


하여튼 공화정으로 체제를 바꾼 로마 공화국은 왕정 시기부터 강력했던 군사력으로 로마 주위의 땅들을 집어삼켰다.


헌데 로마는 도시 국가라서 그런지 다른 도시를 점령하고, 지배했을 때 그들의 자치권을 인정해줬다.


그 대신 로마가 전쟁을 일으켰을 때, 복속된 도시로 하여금 군대를 편성해 로마를 도우라는 계약을 맺었다.


그 군대가 바로 로마 보조군이라 불리는 군대다.


기원전 3세기, 피로스가 남부 이탈리아를 집어 삼키려고 이탈리아 반도로 직접 건너가 로마군과 맞붙었을 때 로마군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로마군은 히드라와 같다.’


피로스는 선지자이자 진정 유능한 군주였다.


로마군에 숨겨진 ‘하이드라’의 위험성을 바로 간파했다.


로마군 머리 하나를 자르면 로마군과 보조군이라는 머리 두 개가 다시 나타난다.


아무리 머리를 잘라도 계속 머리가 불쑥 튀어나오는 로마 하이드라군의 물량에 지친 피로스는 결국 자신의 본거지 에페이로스(현대 그리스 이피로스 주)로 튀어버린다.


이때 나온 단어가 바로 피로스의 승리였다.


로마군이 하이드라를 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마디로 도시 자치를 인정해두되 그 도시에 사는 시민들을 보조군이라는 명목으로 끌고 가는 데에 있었다.


이런 로마군의 물량은 카르타고의 ‘영원히 고통 받는 자’ 한니발과 대결했을 때도 효용성을 드러냈다.


한니발은 ‘오버 디 알프스’라는 전설 등급 스킬을 사용해 자신의 군대를 이탈리아로 텔레포트하는 데 성공했고, 이탈리아에 잔존했던 로마군들을 줄줄이 깨뜨리면서 영원히 빛나는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1승만 하라고 했더니 딱 1승만 한 트롤들 때문에 영원히 고통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로마군의 물량에 밀려 카르타고 본진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펼쳐진 건 자마 전투.


전투의 결과는 2차 포에니 전쟁, 카르타고 또 패배.


하지만 이 로마군 물량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보조군은 시간이 지나자 갈등의 원흉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느그만 해쳐먹으면 다냐?!’


‘뭐래? 우리가 너희들을 끌고 갔어도 전투에서 이기면 전리품을 반반 딱 나누는데.’


‘지랄 마라. 그리스, 아이귑토스, 트리키아, 아나톨리아 땅도 너네가 홀라당 집어삼켰잖아.’


‘꼬우면 너네도 로마 시민으로 태어나던가?’


‘그래. 그 말 잘했다. 이 개자식아. 그럼 로마 시민권 신규 발행은 왜 금지하는데!’


이런 식으로 불만과 갈등이 고조됐고, 그 결과 터진 게 바로 동맹시 전쟁이었다.


동맹시 전쟁에서 로마 정확히는 옵티마테스(원로원이 다 헤쳐 먹는 걸 노리는 정치 세력)가 승리했지만 나중에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서로 대결을 가할 때, 동맹시들 대다수가 카이사르 편에 서는 걸로 옵티마테스(폼페이우스도 여기에 속해 있었다.)에 엿을 먹였다.


이후로 로마는 제국이 되고, 동맹시는 로마 제국의 도시가 되어 비로소 로마 시민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로마가 제국이 되었어도 각 도시가 자기 스스로 운영하는 건 여전했다.


이곳 타라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보통 로마 제국의 도시가 그러하듯 시의회의 의원으로 선발되는 건 그 도시의 기득권층이었다.


그 말은 곧 타라코에서 어깨를 쫙 핀다는 인물들이 타라코 의회에 모인다는 소리였다.


“참으로 흉맹하기 그지없는 소문입니다. 그 가이세리크가 자존심을 위해 이곳 타라코를 불태우려 하다니.”


“단순한 소문이지 않습니까? 거기다 가이세리크는 히포 레기우스 공략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인데, 우리 타라코에 힘을 쏟을 여력이 있겠습니까?”


“지금 히스파니아 동부 해안가를 휩쓸고 다니는 해적들을 잊으셨소? 그들이 타라코로 흘러간다면 자경단으로 그들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소?”


“그들이 이곳을 친다면 고트 부족과 아에티우스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의원들이 각자 의견을 내뱉으며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당연히 타라코의 전통 유지라 할 수 있는 퀸투스 폼페이우스도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의원들의 의견을 들으며 여론의 방향을 살피고 있었다.


그 흐름이 자신에게 불리한 길이 아니기를.


하지만 시의회에 유력자가 모인다는 건 퀸투스에게 적대적인 유지도 여기에 온다는 걸 의미했다.


노예가 건네주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요안네스도 여기에 있었다.


마치 자신이 이곳 타라코의 왕이라도 되는 듯 그는 편안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우며 자신을 바라보는 의원들을 바라봤다.


의원들은 불편한 얼굴로 요안네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요안네스는 그런 의원들의 기분 따위는 자신이 알 바냐는 듯 여전히 행동을 고치지 않는다.


현대인들이 보기에 요안네스는 그야말로 오만 그 자체로 보일 것이다.


허나 이 시대에서 요안네스는 그렇게 해도 된다.


타라코를 먹여 살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리라.


그렇기에 의원들은 불편한 얼굴을 숨기며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 것도 아닌 새끼들.’


요안네스는 이런 의원들의 모습이 참 같잖게 보였다.


도시에서 힘을 가진 저 의원들조차 요안네스의 눈엔 벌레처럼 보였다.


요안네스의 시선이 의원들의 얼굴을 지나치다 이내 한 사람에게 고정한다.


‘이곳에 가장 오래 틀어박힌 식초.’


폼페이우스 일족.


그의 선조는 한때 지중해를 정복할 만큼 대단한 활약을 펼쳤으나 결국 카이사르라는 걸물에 패배하고, 그의 자비를 받아 이곳 타라코에 정착한 일족.


이미 썩어 문드러져 흔적조차 남기지 말아야 마땅했지만 그들은 식초가 되어 이곳에 숨을 쉬고 있었다.


쉰 냄새가 자욱하다.


요안네스는 코를 벌렁거리며 노예의 도움을 받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천천히 퀸투스에게 다가간다.


퀸투스를 내려다보는 구도, 참 마음에 든다.


“우리 징세청부업자께선 조용하십니다?”


요안네스의 입에서 조롱이 담긴 비아냥이 흘러나온다.


“스파르타 인이 말하길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고 했지.”


“크하하. 그 말은 곧 자신이 금 같다고 말하는 것인가? 하기야 자네의 집 창고에 수백년 동안 쌓인 화폐들이 있겠지. 그 화폐들 중엔 번쩍이는 금화가 있을 테고. 그 금화에 둘러싸이면서 생활하다 보면 자신이 금과 같다고 생각할 법 해.”


“콜로나투스를 라디푼디움처럼 운영하는 놈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그리고 자네가 체납한 세금은 내 집 창고에 있는 재물보다 수 배 아니 수십 배나 더 많지. 자네가 진정 로마의 애국자라면 그 체납한 세금으로 로마의 황제 아니 아에티우스에게 보내는 건 어떤가? 아에티우스라면 그 세금을 잘 써서 잃어버렸던 땅을 되찾을 것 같거든.”


“흐흐. 아에티우스가 내 콜로나투스를 지킨다고 약속하면 내 생각해보도록 하지.”


요안네스는 거만하게 웃었다.


그는 오만에 도취되듯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양 팔을 벌리며 음성을 높인다.


“모두들 한 가지 빼먹은 것이 있지 않소?! 애초에 이 사태가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다들 잘 알지 않소?!”


그 말에 순간 의원들의 시선이 요안네스에게 모인다.


“타라코가 가이세리크의 코를 뭉갰소. 아니 정확히는 타라코의 자경대와 어느 가문 덕분에 그렇지. 화가 난 가이세리크는 복수를 위해 타라코에 함대를 보낼 것이오.”


그 말에 한 의원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항변한다.


“그럼 타라코는 스스로 지키지 말아야 하는 것이오?! 반달 해적이 쳐들어오면 쳐들어오는 대로 저항하지 않고, 시민들이 일군 재산을 빼앗겨야 하는 것이오?!”


요안네스는 마침 잘 걸렸다는 얼굴로 그 의원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가이세리크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이 아름다운 타라코가 폐허로 변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소?”


“이익······.”


“자비롭게도 가이세리크는 조건을 말했소. 자신의 코를 뭉갠 이를 이쪽으로 보내라고. 그럼 이 아름다운 타라코를 사랑하는 우리 의원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아시리라 믿겠소.”


요안네스는 그렇게 폭탄 선언을 던지고는 자기 자리로 되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는 노예들이 거대 부채를 힘들게 흔들며 나오는 바람을 편안히 맞은 채 퀸투스를 바라봤다.


의원들의 시선이 퀸투스를 향했다.


그들은 퀸투스를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한순간에 뒤바뀐 여론에 퀸투스는 식은 땀을 흘린다.


그 순간 상석에 앉아있는 주교 티치아노가 나무 망치를 두들긴다.


“잠깐 휴정하도록 하겠소.”


그 선언이 떨어지자 의원들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구는 친분 있는 자와 함께 누구는 노예들의 도움을 받으며.


퀸투스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달마티카를 차려 입은 티치아노가 퀸투스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그놈이 순식간에 흐름을 바꿔버렸군.”


“예. 그렇죠.”


“솔직히 말하지. 난 소름이 돋아. 등 뒤에 식은땀이 흥건하다고. 알아?”


티치아노는 소름이 돋는다는 얼굴로 퀸투스를 바라봤다.


“저도 주교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제 둘째 아들이 특별하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지만 이 상황을 예상할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이 상황을 알았다면 대처 방법도 있겠지.”


“루키우스. 그 아이를 부르겠습니다. 아마 그 아이라면 이 일을 잘 마무리하겠죠.”


티치아노는 그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정 시간이 끝나고, 의원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여기에 의원이 아닌 어린아이 하나도 같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


루키우스는 의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침대에 누워 있는 요안네스에게 다가갔다.


“흐흐흐. 화가 난 얼굴이군.”


요안네스는 루키우스를 조롱하며 그렇게 말했다.


허나 루키우스는 아까의 표정이 연기였다는 듯 순식간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을 사지로 보내려면 꽤 큰 대가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뭐···?”


“요안네스님의 말대로 우리가 타라코를 잘 지켰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했죠? 기분이 참 좆같습니다. 내가 왜 당신의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야 하죠?”


“억울하나? 현실이 이런 걸 어떻게 하나?”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루키우스는 요안네스를 등진 채로 큰 목소리를 냈다.


“의원 여러분! 여러분께선 요안네스의 의견대로 타라코를 지키는 자를 도적에게 팔아넘기길 원하십니까?”


허나 의원들은 동조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루키우스를 바라봤다.


“뭐 팔아 넘길 수 있겠죠. 그렇게 함으로써 이 타라코가 무사한다면 말이죠. 정치라는 건 최악이 아닌 차악을 골라야 하는 법. 허나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누가 타라코를 위해 무기를 들겠습니까?”


순간 의원들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루키우스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루키우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제 한 몸 희생해 타라코가 무사할 수 있다면 언제든 제 몸을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상석에 앉은 티치아노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엇이지?”


“누군가는 제 한 몸 희생해서 타라코를 지키고자 애를 쓰는데, 누군가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타라코를 지킨 자를 도적에게 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도 자신의 주장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간 티치아노의 시선이 요안네스에게 향했다.


그리고 의원들의 시선 또한 요안네스에게 모였다.


‘타라코를 지킨 자를 바깥으로 내보내려면 너 역시 책임을 지는 게 맞지 않느냐?’


라는 강렬한 뜻이 담긴 시선들.


이 순간 오만하고, 여유롭기 그지없었던 요안네스는 처음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작가의말

로마 지방 도시가 어떻게 운영됐는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다만 제가 알기론 로마의 지방 도시는 대개 콜로니아와 무니키피움으로 나눠져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콜로니아는 로마가 직접 세운 도시를 의미하며 그곳 시민들은 완전한 로마 시민권을 받죠.


무니키피움은 로마에게 정복당했지만 시민권과 자치권 부여 면에선 콜로니아와 버금갔습니다.


다만 둘 다 자신의 도시를 알아서 다스릴 자치권은 있을 뿐.


외교와 국방은 로마에게 맡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대의 자치 주와 자치 도시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로마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서 이런 식의 상황으로 묘사했습니다.


보통은 이런 일이 생기면 중앙 정부에게 보고를 하고, 중앙 정부가 이를 대처하는 게 정상이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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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4

  • 작성자
    Lv.99 Dasima
    작성일
    24.08.07 23:24
    No. 1

    그러니까 싸우지도 않앗고 방패세도 지불하지 않앗는데 잘낫다고 이빨털어댄거죠? 무슨자격으로 이빨을털지? 도대체?

    찬성: 4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8.07 23:37
    No. 2

    로마 말기의 귀족들은 대개 이런 존재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권리는 누리고 싶고, 의무는 집어 던지고 싶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Dasima
    작성일
    24.08.07 23:29
    No. 3

    로마의 시민은 원칙상 공동체를 위한 명예로운 싸움에 기꺼이 챰전함으로써 자신이 시민임을 증명하지 않던가? 피흘리기 싫다면 핏값을 지불하던가!

    찬성: 4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8.07 23:37
    No. 4

    예. 원칙은 그게 맞습니다.

    정녕 그렇게 돌아갔다면 서로마는 망하지 않았겠죠.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Dasima
    작성일
    24.08.07 23:31
    No. 5

    그리고 약탈자를 향해 칼과 창을 들이밈으로써 도시와 내 가족을 지키는 싸움은 명예로운 전투죠. 싸우지도 않고 세금도 내지않은주제에 그런 명예로운자를 약탈자의 협박을 명분으로 팔아먹으려한자는 죽어마땅하구요.

    찬성: 1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8.07 23:42
    No. 6

    루키우스 : 그렇기에 빌미를 잡을 수 있지.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Dasima
    작성일
    24.08.07 23:33
    No. 7

    정말 흔한 이기주의자지만 작가님이 해당 인물에 대한 딥빡을 의도하셧다면 정말 ㅈ같게 잘만드셧네요. 하나하나 빡치지 않은부분이 없어요.

    찬성: 6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8.07 23:39
    No. 8

    폼페이우스 집안 : 우리가 괜히 저놈을 싫어한 줄 아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헬륨섬광
    작성일
    24.08.08 01:29
    No. 9

    동맹시 전쟁 이후 로마시민권 부여해서 카이사르 때는 동맹시 구분이 없는거 아닌가요 카이사르 아빠 아님 큰아빠가 전투 승리 후 법안 발의해서 수습했던거 같은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8.08 01:42
    No. 10

    동맹시 전쟁 이후 이탈리아의 동맹시에 한해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옛 동맹시들은 이 전쟁에 대한 원한을 차곡차곡 쌓다가 카이사르가 내려오자 곧바로 협력을 취했죠.

    솔직히 그들 입장에서 자신들을 탄압한 옵티마테스가 '자. 해달라는 거 다 해줬잖아. 그러니 우리 편 들어.' 라고 말하는데, 과연 그들 편에 끼고 싶을까요?

    그리고 로마 전역의 시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건 서기 212년경 카라칼라 황제가 안토니누스 칙령을 발표한 이후로 알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알아뭐하긔
    작성일
    24.08.08 04:54
    No. 11

    칼 거꾸로 잡는건 안두려운가?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8.08 07:21
    No. 12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양마루
    작성일
    24.08.16 17:28
    No. 13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8.16 17:35
    No. 14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강고리
    작성일
    24.08.20 22:41
    No. 15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8.20 22:45
    No. 16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유정검
    작성일
    24.08.23 18:46
    No. 17

    다 좋은데 10살이 너무 무리수인듯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8.23 18:49
    No. 18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인증용닉넴
    작성일
    24.08.25 19:14
    No. 19

    로마 지방도시가 어떻게 운영됐는가는 당연 모르죠...
    당시 도시들간의 차이는 현대 프랑스의 코뮨과 이집트 어느 시 내부의 행정체계보다 클텐데 그 중 몇몇만 알아도 잘 안거라 생각합니다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8.25 19:23
    No. 20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k5******..
    작성일
    24.08.27 10:34
    No. 21

    넌 여기서 후유랑 죽는거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8.27 10:41
    No. 22

    ㅎ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고강민
    작성일
    24.08.29 09:19
    No. 23

    타라코 평화로운 도시 아니었나 군대 조금만뽑고 대충 도서관 원형경기장 지어주면 클리어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8.29 09:27
    No. 24

    루키우스 : 그건 옛날의 타라코야. 지금 타라코는 다른 곳보단 낫지만 여기도 위험천만한 곳이야! 아 옛날이여!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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