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우스가 멸망하는 로마를 집어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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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맨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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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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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편. 인쇄기는 종이와 세트 아이템 아님?

DUMMY

이 시기 교회는 지식의 보급에 앞장서는 역할을 했다.


각종 도서를 수집하는 건 물론 필사하여 복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귀한 물건이었다. 정확히는 책이 아니라 종이가 귀했다.


파피루스는 습기에 취약하고, 강도가 약했다.


반면 양피지는 파피루스에 비해 습기도 강하고, 강도도 강했지만 생산량이 극악했다.


양피지를 만들 때, 새끼 양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양은 꽤 용도가 많은 가축이었고, 성체가 되면 활용도는 더더욱 증가한다.


활용성 높은 가축을 자라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건 한창 성장하는 주식을 먼저 팔아치우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양피지는 비쌀 수밖에 없었다.


또 파피루스에 비해 무게도 많이 나가고, 두꺼웠다.


그리고 양피지에겐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인쇄가 안 된다는 거다.


애초에 양피지에 글귀를 쓰는 방식이 산성 잉크로 양피지를 부식시켜 글자를 새기는 방식이라서 그렇다.


그러니 양피지를 필사할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인쇄기로 복사 붙여 넣기가 안 된다는 건 지식 전파 면에서 생산성 면에서 종이에 뒤쳐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됐다.


더욱이 양피지는 습기를 머금으면 뒤틀린다.


중세의 오래된 책을 보면 표지와 페이지의 끝 부분이 유독 심하게 뒤틀리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뭐 사실 이건 종이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하지만 양피지는 종이에 비해 습기에 더욱 취약했다.


괜히 종이가 파피루스, 양피지를 제친 것이 아니었다.


물론 현대의 종이 기준이다. 루키우스가 만든 종이는 이 시기의 양피지보다 품질이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루키우스는 종이의 압도적인 장점으로 단점을 가릴 생각이었다.


“아시다시피 제 파피루스는 아이귑토스에서만 나는 파피루스와 달리 나무로 만듭니다.”


“그거야 아까 설명하지 않았나?”


“그 말은 나무만 있다면 파피루스가 계속 튀어나온다는 뜻이고요. 특히 이 타라코에서.”


“허참···.”


“아이귑토스의 장사치들이 그걸로 얼마나 많은 폭리를 취했습니까? 그들 중 하나는 그렇게 긁어모은 돈으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죠.”


“나도 다 아는 사실이야. 그러니 설명할 필요는 없네.”


티치아노가 딱 잘라 말하자 루키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렇게 바가지를 씌운 파피루스가 양피지보다 훨씬 더 싸다는 것은 알고 있겠죠?”


“으음···.”


티치아노는 침음을 삼켰다.


루키우스의 말은 반박할 여지조차 없는 명명백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양피지를 만들 때, 새끼 양을 눈물을 머금고 잡아야 하고, 그렇게 잡아 만든 양가죽에 작은 구멍이라도 뚫리면 말릴 때, 아주 큰 구멍으로 바뀐다는 사실은 주교님이 무엇보다 잘 알겠죠.”


“그래.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우리의 파피루스는 그런 문제점이 없습니다. 거기다 활자로 찍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활자?”


티치아노는 ‘활자’ 라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시기 문서와 책은 사람 손으로 일일이 필기하기에 활자로 찍어서 만든다는 건 아예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또 인쇄하기 힘들다는 양피지의 치명적인 단점이 그런 발상을 떠올리지 않게 만들었다.


유럽이 목판 인쇄술을 대대적으로 활용했던 시기는 종이가 시장에 유통되던 시기와 유사했다.


그러므로 루키우스는 이 종이의 가장 큰 장점을 강조할 생각이었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손으로 일일이 쓸 필요 없이 글자를 새긴 활자를 모으고, 그걸 포도 압축기로 쾅! 하고 누르면 순식간에 글귀 가득한 문서 하나가 만들어지죠.”


“허어···. 그야말로 꿈 같은 소리군.”


“꿈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주교님.”


루키우스의 답변에 티치아노는 ‘으음’ 소리를 내며 입을 닫았다.


교회는 주로 십일조와 헌금을 통해 수입을 채우지만 포도원을 운영해 포도주를 담그거나 책을 필사해 파는 방식으로 보조적인 수입을 얻기도 했다.


포도주야 주님의 피라고 했으니 교회가 아니면 누가 담당하겠는가?


책을 필사하는 건 주님의 말씀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티치아노는 고민이 됐다.


‘주님의 말씀을 멀리 퍼뜨리는 게 먼저일지 아니면 돈을···. 하. 제길. 내가 무슨 생각을···.’


티치아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러니까 마치 돈 벌려고 성경을 팔아먹는 장사치가 된 것 같다.


책 아니 성경은 상류층에게 있어 값비싼 사치품이다.


특히 책을 쓸 때, 혹여 한 글자 한 글자 틀리게 쓰지 않을지 삐뚤삐뚤하게 쓰지 않을지 또 바르게 쓰지 않을지 고민하면서 쓰는 노고를 고려하면 결코 싼 값에 팔 수 없으리라.


이건 정당한 고생에 대한 보답이지. 결코 재물을 탐하는···.


‘제길···. 저 빌어먹을 자식이 날 시험에 들게 하다니. 오. 주여.’


티치아노는 마음 속으로 주님을 찾으며 이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허나 그럴수록 악마(?)의 유혹은 더더욱 강렬했다.


“성경을 바라는 사람은 꽤 많습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집에 성경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제가 가슴이 다 아픕니다.”


“자네 양심은 있는 건가?”


“아니 제가 왜 양심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하죠? 전 성경이 없는 시민을 안타까워 하면 안 됩니까?”


“네 눈동자 안에 ‘돈을 갈퀴처럼 끌어모아 주마!’ 라는 의지가 명백히 서려있는데. 어디서 뻔한 거짓말을 내놓는 건가?”


“돈을 버는 게 그리도 잘못된 행동입니까?”


그 말에 티치아노는 ‘미친 사람 다 보겠네.’ 라는 시선으로 루키우스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태복음에서 주님이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이르는 것보다 쉽다.’ 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 말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그건 주님께 질문을 던진 이가 천국으로 갈 때, 자신이 번 돈을 함께 짊어지고 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오호. 공부 좀 했나 보군.”


티치아노가 사뭇 감탄하는 어조로 그렇게 말하니 루키우스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주님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부자가 돈을 벌 때, 사람들의 눈물을 삼키며 돈을 벌기 때문입니다.”


“그걸 잘 아는 놈이 재물을 탐하는 건가?”


“재물을 탐하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재물을 위해 사람들의 눈물을 삼키는 게 잘못입니다.”


“뭐?”


티치아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루키우스를 바라보는데도 루키우스는 끝끝내 자신의 주장을 거두지 않았다.


“재물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병자에겐 약을 줄 수 있고,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줄 수 있습니다. 배가 고프고, 목 마른 이에겐 빵과 물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재물을 바라는 거구요.”


“계속해보게.”


“주교님은 제가 그 재물을 얻고자 사람들을 해치지 않을까? 라고 걱정하기 때문 아닙니까? 그렇다면 전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나눠주면서 재물을 얻는 건 과연 그른 일인가?”


“······.”


루키우스가 말하는 건 지금으로부터 천년 뒤 프랑스에서 태어났던 존 칼뱅의 청부론이었다.


이 청부론이 자본주의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두 말 할 것도 없다.


“주교님께서 성경을 필사하여 재물을 얻는 건 그 재물로 사람들에게 자선을 하기 위함입니다. 맞습니까?”


“그래. 그렇지.”


“저 역시 주교님과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한다면 그냥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으면 됩니다. 마을에 교회를 세우려면 신부도 있어야 하지만 성경도 있어야 합니다. 아닙니까?”


“······.”


“성경을 찍어낸다면 지금까지 세울 수 없던 교회를 대폭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


“거기다?”


“지금까지 성경을 필사하느라 우선 순위에 밀려있던 다른 지식들도 찍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순간 티치아노의 눈은 커졌다.


“그릇된 주장이 담긴 책을 이곳에 비치할 순 없네!”


“아니 비치해둬야죠. 이게 뭐가 문제인지 왜 이걸 그릇되었다고 하는지 사람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만들고, 올바른 가르침으로 이끌어야죠.”


“너···.”


“전 사람이 세상을 알고자 하는 걸 긍정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알아보는 게 결국 주님의 신성을 증명한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사제 오로시우스에게 이미 듣지 않았습니까? 주교님도 수학을 좋아하고, 파고드는 행위는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게 아닌 오히려 주님의 신성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티치아노는 그 말에 입을 꾹 닫아버렸다.


“전 사람들에게 세상을 아는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생한 노고를 받는 건 덤에 가깝죠.”


“에라! 이 빌어먹을 녀석아! 덤은 무슨! 그게 본심이잖아!”


“이런 주교님 앞이니까 저도 모르게 본심을 내뱉었네요.”


루키우스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티치아노는 키득키득 웃었다.


“하. 그래. 자네의 뜻은 잘 알겠네. 한번 자네가 생각한 바를 만들어보게. 그렇게 만들어본 결과물을 나에게 한번 보여주게. 그럼 자네의 제안을 고려해보겠네.”


“역시 주교님밖에 없습니다.”


루키우스는 웃으면서 자리에 일어나며 티치아노에게 인사를 하고, 휘파람을 불면서 정자 밖으로 걸어나간다.


티치아노는 그런 루키우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하···. 진짜 마귀에게 홀린 기분이군. 주님도 마귀에게 유혹을 받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티치아노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로시우스가 말했지. 세상을 알고자 하는 인간들의 의지는 결국 주님이 새겨 준 본능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본능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만물의 영장으로 자리 잡지 않았는가? 아니. 이건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그래···.’


사람이 배고프면 밥을 먹는 것처럼.


졸리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것처럼.


목이 마르면 물이나 동물의 젖을 마시는 것처럼.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있어야 할 당연한 본능이라고.


티치아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결코 수학을 알아보는 행위가 주님의 가르침에서 어긋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


인쇄기의 원리는 무척 간단하다.


판에 활자를 집어넣고, 활자에 잉크를 묻힌 뒤 그걸 종이에 쾅! 하고 박으면 된다.


결국 이 3가지만 해결하면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기가 튀어나온단 거다.


첫째, 활자를 어떻게 만들 건가?


둘째, 활자에 묻힐 잉크는 뭐로 할 건가?


셋째, 활자에 묻힌 잉크를 종이에 어떻게 칠할 것인가?


그리고 루키우스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걸 알고 있었다.


‘첫째의 경우는 납과 주석, 안티몬이 필요해. 납과 주석이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문제라면 안티몬인데···. 이건 간단하네.’


로마의 연회에서 위를 꽉 찰 때까지 먹어대다가 더 이상 못 먹을 때, 위를 게워내 줄 필요성이 있었다.


한 마디로 구토제가 필요하다는 건데, 루키우스가 알기론 이 구토제는 포도주에 안티몬 화합물을 섞는 걸로 안다.


저번에 아비투스를 대접했을 때도 이 포도주 구토제를 사용했으니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얼마든지 내어 줄 것이다.


‘둘째는 뭐 간단하네. 건성유와 흑연을 섞으면 돼.’


흑연이야 강철을 만든다고 사용해봤으니, 문제 없다.


그리고 건성유도 딱히 문제는 없다.


‘아마인유. 정확히는 아마씨를 짠 기름이 바로 건성유다. 없으면 들기름을 써도 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의 경우는.


‘주교님에게 말했다시피 이건 포도 압축기 아니 올리브 압축기를 개조해서 사용하면 끝이지.’


그야말로 초스피드로 난제 해결.


이래서 미래 지식이 좋다.


“메투스.”


“예. 부르셨습니까?”


루키우스는 메투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니까 구토할 때 쓰는 포도주랑 납과 주석이랑 아마씨로 짠 기름, 그리고 포도 압축기를 이곳에 가져와 달라는 거죠?”


“그거 말고, 정확히는 구토제를 만들 때 쓰는 돌 있잖아. 그걸 구해와.”


“그 돌이 뭔지 모르는데···.”


“저택 주방장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다.”


“아. 그렇죠. 그럼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메투스는 루키우스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갔다.


루키우스는 메투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루키우스의 시선 끝에는 방아가 절구를 찧는 것이 보였다.


바로 펄프를 찍을 때 쓰는 절구였다.


작업장을 만들 때, 루키우스는 이 절구 찍는 과정을 자동화했다.


이 과정이 단순 반복 작업이라 자동화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하상계수가 높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물레방아를 쓰는 건 어림도 없었겠지.’


봄엔 강바닥이 보이고, 여름엔 장마와 홍수가 쓸어가고, 가을에 또 마르다가 겨울에 꽁꽁 얼어붙는 그야말로 이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마경 한반도.


그야말로 수레바퀴를 쓰지 말라고 신이 점지해 주신 땅과 같다.


하지만 의지의 한국인은 늘 그랬듯이 방법을 찾아 한반도에 물레방아를 썼다.


그때, 루키우스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바로 이 종이 작업장의 주인이자 메투스의 아버지 ‘세쿤두스’였다.


“오늘도 이 방아를 보러 오셨습니까?”


“잠깐 보는 것이오. 오늘은 다른 일로 여기에 왔소.”


“다른 일이요?”


세쿤두스가 호기심을 보이자 루키우스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 사업이 잘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오. 메투스가 물건을 구하러 갔으니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


“저에게 알려 줄 수 없는 내용입니까?”


“그건 아니오. 뭐 말하자면 저 방아가 펄프를 찍어 종이를 만들어내듯 이번엔 책을 찍어내 볼까 하오.”


“책을요? 그건 성당에서···.”


“그 부분은 주교님과 미리 이야기를 나눴소. 책을 찍어내는 건 교회에게 맡기기로 했소.”


“아 그렇습니까?”


세쿤두스는 살짝 아쉽긴 했지만 바로 납득했다.


“하지만 책을 찍어낼 때, 종이가 많이 필요하니 그 말은 곧···.”


루키우스는 세쿤두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세쿤두스 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루키우스 도련님이야. 이런 일은 참 깔끔하지.’


어릴 때부터 비범한 구석이 있다는 걸 직접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지만.


‘요즘은 그 비범함이···.’


자신이 인지하는 한계를 넘어버린 느낌이었다.


루키우스는 과연 자신과 같은 사람일까?


‘그 어느 누구도 나무로 파피루스를 만드는 방법을 몰랐지. 오로지 루키우스 도련님만이 알고, 나에게 이런 선물을 줬어. 그저 이 집안에 충성을 다한다는 이유로.’


보잘 것 없는 자신에게 주기엔 이건 너무 과한 선물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이 작업장은 루키우스가 다 한 것이 아닌가?


생산 비법, 시설, 그리고 판매망까지 루키우스가 홀로 다 해냈지만 정작 과실을 먹는 건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세쿤두스는 얼떨떨했다.


‘내가 도련님의 공로를 훔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번 돈은 도련님에게 돌려드려야 하지 않을까?’


세쿤두스가 그런 생각에 잠길 무렵.


“도련님! 돌아왔습니다!”


메투스가 물건을 가지고, 여기로 돌아왔다.


루키우스는 얼른 메투스에게 다가가 물었다.


“압축기는?”


“그건 너무 커서 직접 들고 갈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아저씨가 물건을 들고, 여기에 올 거에요.”


“그래. 잘 했다.”


루키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세쿤두스는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설마 내 아들 때문에 이런 과분한 선물을 주는 건 아니겠지?’


자신도 모르게 정답을 맞춰버린 세쿤두스였다.


*****


시간이 지나 필요한 준비물을 모두 챙긴 루키우스는 한 사람을 더 불렀다.


바로 강철을 만들 때, 같이 일을 했던 아시두우스였다.


그는 여기로 올 때, 철판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루키우스에게 건넸다.


“도련님. 주문하신 주조 틀입니다.”


바로 활자를 찍어낼 주조 틀이었다.


루키우스는 이 주조 틀을 상하좌우앞뒤 육 면을 골고루 살펴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완벽해.”


“도련님의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이걸로 뭘 할 생각입니까?”


“활자라는 걸 만들어볼 거야.”


루키우스는 그렇게 대답한 뒤 주조 틀 안에 납과 주석, 안티몬(순수 원소가 아닌 화합물)을 집어넣은 뒤 그걸 화로에 집어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납과 주석, 그리고 안티몬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루키우스는 주조 틀을 돌리며 납과 안티몬을 적절하게 섞었다.


대충 시간이 됐다고 여긴 루키우스는 주조 틀을 빼내고, 주조 틀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주조 틀이 식자 루키우스는 주조 틀을 개방했다.


“됐다.”


역사 교과서에서 보던 금속 활자가 루키우스의 눈앞에 드러났다.


루키우스는 이 활자들을 챙기고, 미리 만들어둔 인쇄기에 다가갔다.


그리고 활자 조립 부분에 활자를 넣어 고정시킨 후 미리 만들어둔 잉크를 발랐다.


고소한 냄새가 루키우스의 코를 찔렀지만 루키우스는 휘파람을 불며 인쇄기에 종이를 끼워 고정시킨 뒤 그대로 손잡이를 돌렸다.


나무 당기는 소리와 함께 종이와 활자는 서로 부딪쳤고, 다시 손잡이를 돌려 종이와 활자 사이를 떨어뜨렸다.


루키우스는 인쇄기에서 종이를 빼내 결과물을 확인했다.


“몇몇 개가 안 찍힌 게 보이네. 딱 보니까 활자가 뭉개졌고.”


“이럴 때는 어떻게 하죠?”


“활자를 다시 만들면 돼. 이번에 조성비를 바꿔서 말이지.”


루키우스는 비율을 배분하면서 활자의 강도를 높였다.


그런 행위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알맞은 강도를 지닌 활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그 활자로 인쇄기를 다시 한번 찍어 결과를 확인했다.


“오! 이번엔 다 찍혔네요.”


메투스는 밝은 얼굴로 소감을 말했고, 루키우스는 그런 메투스에게.


“축하한다. 앞으로 너네 부자는 이걸로 떼돈을 벌 거다.”


“그럼 이제 저는 꿀 바른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입니까?”


“넌 어째 바라는 게 그것밖에 없냐?”


“저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도련님.”


메투스의 소박한 소망에 루키우스는 미소를 흘렸다.


그렇게 지금으로부터 1000년 뒤에 등장해야 할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인쇄술이 서기 430년 타라코에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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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편. 루키우스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38 24.08.26 4,113 215 18쪽
34 34편. 싸울 마음을 품게 하는 방법. +32 24.08.25 4,051 193 18쪽
33 33편. 수에비 족은 전쟁을 선택했다. +30 24.08.24 4,192 191 17쪽
32 32편. 갈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이득을 보고 간다. +38 24.08.23 4,236 185 17쪽
31 31편. 로마군에 없던 새로운 전술과 훈련법. +26 24.08.22 4,351 193 18쪽
30 30편. 훈련 대장(?) 루키우스. +22 24.08.21 4,346 188 17쪽
29 29편. 누군가는 희망을 누군가는 절망을 그리다. +20 24.08.20 4,440 172 18쪽
28 28편. 1년이 지났으니 성과가 나왔어요! +22 24.08.19 4,467 196 18쪽
27 27편. 이 범선은 도착점이 아니라 시작점. (내용 추가) +54 24.08.18 4,685 170 17쪽
26 26편.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선박. +20 24.08.17 4,655 199 16쪽
» 25편. 인쇄기는 종이와 세트 아이템 아님? +30 24.08.16 4,627 199 18쪽
24 24편. 종이를 발명했다! +30 24.08.15 4,751 208 18쪽
23 23편. 운명의 동반자. +22 24.08.14 4,875 201 17쪽
22 22편. 세상을 아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 +18 24.08.13 4,929 191 16쪽
21 21편. 여기선 씨앗 막 뿌리기가 전통. +38 24.08.12 5,173 216 18쪽
20 20편. 누군가는 계약하고, 누군가는 계승한다. +20 24.08.11 5,218 207 18쪽
19 19편. 넌 결혼하지 마라. 내 꺼니까. +34 24.08.10 5,428 234 17쪽
18 18편. 가이세리크와 대면하다. +12 24.08.09 5,080 197 18쪽
17 17편. 이것조차 계획. +22 24.08.08 5,281 188 18쪽
16 16편. 너는 여기서 루키우스랑 같이 죽는 거야. +24 24.08.07 5,565 212 18쪽
15 15편. 교회 자작농 연합. +16 24.08.06 5,674 198 18쪽
14 14편. 서로마의 곡창지대를 훔치려는 자. +6 24.08.05 5,898 214 19쪽
13 13편. 꼴 받게 만드는 놈을 망하게 하는 방법. +42 24.08.04 6,082 218 14쪽
12 12편. 에덴의 뱀보다 더 사악한 녀석. +30 24.08.03 6,457 215 14쪽
11 11편. 반달 해적이 타라코로 쳐들어 간 이유. +36 24.08.02 6,806 249 19쪽
10 10편. 루키우스의 사람답지 않은 활약. +34 24.08.01 6,708 276 18쪽
9 9편. 호흡이 느껴진다. +22 24.07.31 6,947 245 15쪽
8 8편. 파멸적인 미래를 막기 위한 열쇠. +36 24.07.30 7,333 248 16쪽
7 7편. 충성의 상대와 절대. +24 24.07.29 7,782 27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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