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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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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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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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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름이 낯익지?

DUMMY

40화












따아아악!


로스가 너클볼을 기어이 때려냈다.

좌측에 파울.


“너 제법이다. 너클볼을 건드릴 줄도 알고.”

“나한테 함부로 말 걸지 마.”


로스는 포수 호세를 쳐다보지도 않고 일축했다.

그가 타석에서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파아아앙- !

“볼!”


두 번째 너클볼은 빗나갔다.

세 번째 너클볼도 볼.

3볼 1스트라이크.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존으로 공을 집어넣어야 했다.

내 사전에 볼넷은 없으니까.


쒜에에엑- ! 따악!

“어! 크다!”


가운데로 몰린 스크류볼을 로스가 잡아당겼다.

타구가 1루 외야 라인을 살짝 벗어났다.

풀 카운트.


‘어설픈 공을 던졌다가는 빅리그 타자들에게 난타당한다. 투심이 아니라 투심 패스트볼을 던져야 해.’


매덕스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스탠 로스가 대단한 유망주는 맞지만 그렇다고 배리 본즈, 켄 그리피 주니어, 마크 맥과이어, 세미 소사는 아니었다.

내가 여기서 스탠 로스도 잡을 수 없다면 빅리그에 가서 괴물 타자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꾸욱-

글러브 속에서 야구공을 잡았다.

검지와 중지로 실밥을 나란히 잡고 엄지의 감각에 집중했다.

셋 포지션에서 스트라이드하며 글러브에서 공을 뽑았다.

팔을 아래에서 위로 휘두르며 공을 뿌리는 마지막 순간.

엄지에 걸리는 감각.


휘이잉- ! 뻐어어어엉!

“타자! 삼진 아웃!”


스탠 로스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마운드에서 나는 보았다.

그의 놀란 표정을.


짝- 짝- 짝-

“방금 공 엄청나지 않았어?”

“박찬오에 이어 굉장한 한국인 투수가 또 등장했네.”


일부 다저스 팬들이 박수를 보냈다.

마이너 팀들의 경기이고 이곳이 스프링캠프였기에 가능한 분위기였다.


따아아악- !

“유격수! 다이빙 캐치! 아웃!”


충격받은 듯했던 스탠 로스는 이후 수비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고 활약하며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나는 더그아웃에서 미션스 선발 에드가의 버릇을 잡아내는데 몰두했다.

강속구와 커브 투 피치 투수였는데 강력한 직구에 비해 커브는 밋밋했다.


“저건... 너무 티 나는데.”


타순이 6번까지 왔을 때 나는 에드가의 버릇을 찾아냈다.

바로 시선이다.


“커브를 던질 때 공이 빠지지 않았나 글러브를 한 번 더 쳐다보는 버릇이 있어. 본인도 커브가 약하다는 걸 아는 거야.”

“정말이야!? 건우. 너 진짜 날카롭구나.”

“투수 마음은 투수가 잘 아는 법이지.”


나는 하위 타선 타자들에게 에드가 공략법을 알려주었다.

이 친구들은 중심 타선 선수들에 비해 방출 가능성이 커서 타석 하나 하나에 생사가 달려있었다.


2회초가 무득점으로 끝나고 2회말 내가 마운드에 올랐다.

미션스 4번 우타자에게 초구를 던졌다.


따아아아악- !


바깥쪽 낮은 코스를 밀어쳐서 파울이 되었다.

파울이 되었지만 배트 중심에 맞춘 걸 보면 레벨이 있는 타자였다.

2구로 같은 코스에 스크류볼을 던졌다.


뻐어어엉- !

“스트라이크! 투!”


빠졌다고 생각한 공이 마지막에 들어오자 타자가 당황했다.

투 낫싱.

보통 이런 경우에는 유인구를 던지는 게 정석인데 나는 그런 게 싫었다.

상대를 구석에 몰았다면 단번에 심장을 찔러야지.


뻐어어엉- !

“삼진 아웃!”


라이징 커브가 스트라이크 존 상단에 꽂혔고 타자는 배트를 내밀지도 못했다.

다음 좌타자에게는 너클볼을 던져 2구 만에 3루 땅볼을 만들었다.

다음 좌타자도 너클볼 1구로 포수 뜬공 아웃.


백건우가 공 6개로 이닝을 끝내고 마운드를 내려오자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커졌다.

상대 팀 투수 에드가와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에드가도 무실점이었지만 제구가 불안했고 도망가는 피칭을 했으며 투구리듬이 느렸다.

한 마디로 지켜보기 지루한 투수였다.

반면 백건우는 보는 맛이 있었다.

구속은 에드가보다 한참 느렸지만 빠른 투구리듬으로 타자를 사냥했다.


따아아악- !


에드가가 3회부터 얻어맞기 시작했다.

미션스 배터리는 투수의 버릇이 간파되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사 1, 2루에서 나의 타석이었다.


휘이익~ 휘익~

“저 동양 친구. 빳따도 좀 치나?”

“우투좌타네. 자세는 좀 나오는데?”


관중들이 휘파람을 불며 나를 응원했다.

미션스 감독과 코치들은 이런 분위기에 좀 놀랐다.

아무리 마이너 경기라도 상대 팀 선수인데 이 정도로 관심을 끄는 일은 없었다.

저 한국인 투수가 그만큼 스타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척-

나는 타석에서 자세를 잡았다.

좌중간을 가르는 시원한 2타점 적시타를 때리고 싶었으나.


“어!”

투우우웅- !


나는 감독의 지시대로 보내기 번트를 댔다.

사인 거부는 나중에 거물 빅리거가 되면 하기로 했다.


“번트 성공! 1사 2, 3루!”


3루와 2루에 주자가 있자 에드가가 흔들렸다.

투수란 워낙 예민한 동물이라 언제 갑자기 약점을 드러내며 무너질지 몰랐다.


“포볼!”


결국 1사 만루까지 몰렸다.

그러나.


따아아아악- !

“유격수!”


투수 뒤에는 7명의 야수가 있었다.

유격수 땅볼을 로스가 침착하게 병살타로 연결하며 무실점 이닝을 만들었다.


“저 유격수. 눈에 계속 띄네. 언제부터 이 팀에 있었지?”

“저런 실력이면 금방 메이저 올라가겠는데?”

백건우와 스탠 로스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각자 팀에서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다.

그런 백건우를 관중석에서 유심히 지켜보는 중년의 한국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인태.

[한국 스포츠]에서 미국으로 파견을 보낸 메이저리그 야구 전문기자였다.

그의 담당은 물론 코리안특급 박찬오였다.

오늘은 박찬오의 휴식일이라 숙소에서 쉬다가 우연히 마이너 경기 구경을 왔는데 놀랍게도 앳된 한국인 투수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것도 언더핸드로.

조인태는 기자답게 백건우의 투구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기자 특유의 촉이 발동했다.


“이건 엄청난 특종이 될 수 있겠어. 저런 한국인 투수가 미국에서 뛰고 있다는 걸 왜 아무도 몰랐지?”


조인태가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백건우는 공격적인 투구로 타자들을 다그치며 3회도 삼자범퇴로 끝냈다.


따아아아악- !

“솔로 홈런~!”

[그린빌 1 대 0 미션스]


4회초.

선두 타자로 나온 호세가 에드가의 직구를 받아쳐 가운데 담장을 넘겨버렸다.

백건우와 스탠 로스로 양분되어있던 사람들의 관심이 호세에게로 쏠렸다.


“저 친구 첫 타석에서도 잘 쳤지?”

“덩치가 엄청난 포수네. 잘 성장하면 이반 로드리게스 같은 선수가 되겠어.”


백건우는 더그아웃에서 유격수 스탠 로스를 지켜보며 웃었다.

호세가 홈런을 날리며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뺏어가자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호세의 홈런을 시작으로 그린빌 타자들이 에드가의 공을 배트 중심에 맞추며 추가 득점을 올리자 미션스는 구원 투수를 올려보내 대량 실점을 막았다.


[그린빌 3 대 0 미션스]


4회말.

약속된 마지막 이닝.

백건우가 마운드에 올랐다.

타순이 한 바퀴 돌아서 이제는 타자가 유리한 상황.

그린빌 감독과 투수 코치, 미션스 감독과 투수 코치가 백건우를 유심히 관찰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언더핸드 투수는 선발로 불가능하다는 평이 미국 야구계의 고정관념이었다.

백건우가 이 고정관념을 깨려면 압도적 결과가 필요했다.


“어!”

뻐어어엉- !


백건우가 지금까지 안 던지던 하드 슬라이더를 던지기 시작했다.

우타자 몸쪽으로 슬라이더가 예리하게 파고들자 겁을 먹고 움찔했다.


“3구 삼진!”


다음 좌타자에게는 너클볼을 던졌는데 초구를 건드렸다.


따아아악- !

“앗!”


3루 땅볼이 불규칙 바운드를 일으켰다.

3루수 하퍼가 공을 더듬다가 뒤늦게 송구했지만 세이프.

1사 1루에서 스탠 로스가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로스에겐 반드시 때려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우리 마스터는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어. 언제나 여분의 힘을 남겨두지. 너처럼 건방진 녀석을 혼내주기 위해서.”

“...”


로스는 호세를 철저히 무시했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온몸에 냉기가 흘렀다.

백건우는 그를 위해 아껴두었던 선물을 재개봉했다.


쒜에에엑! 뻐어어엉- !

“스트라이크!”


투심 패스트볼이 한가운데 꽂혔다.

로스는 배트를 휘두르지 못했다.

너무 좋은 코스라서 뭔가 속임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뻐어어엉- !

“스트라이크 투!”


속임수는 없었다.

백건우는 그저 무브먼트가 걸린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 존에 자신 있게 꽂아 넣었다.

스탠 로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나를 우습게 보지 마!”

휘이잉- !! 뻐어어어엉!


로스가 느린 커브에 어이없이 헛스윙하며 3구 삼진을 당했다.


“삼진당하면서 뭐라고 한 거야? 흐흐흐.”

째릿-


호세가 비웃자 로스는 그를 죽일 듯 노려보다가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로스의 지나치게 좋은 머리를 역 이용했는데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따아아아악- !


다음 타자에게는 너클볼을 던져 2루 땅볼을 만들어냈다.

공수교대.

4이닝 무실점 달성.


짝- 짝- 짝-


백건우가 마운드를 내려오자 일부 다저스 팬들이 박수로 찬사를 보냈다.

이제 조인태 기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원정팀 더그아웃 앞까지 가서 배트 보이에게 쪽지를 건넸다.


[백건우 선수. 나는 한국 스포츠의 조인태 기자라고 합니다. 경기 끝나고 이야기 좀 합시다.]


백건우가 아이싱을 하고 더그아웃에 앉아있는데 배트 보이가 쪽지를 건넸다.

펴보니 조인태 기자의 메시지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한글을 오랜만에 봐서 기분이 이상했다.


“조인태 기자? 왜 이름이 낯익지? 분명히 어디서 들어봤는데...”


백건우는 전생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분명 기억 어디엔가 조인태라는 이름이...


“아! 그 사람이구나.”


조인태는 대한민국 야구 기자 역사상 최고로 출세한 남자였다.

박찬오가 결혼식에 유일하게 초대했던 한국인 기자였고 KBO 간부로 발탁되어 요직을 역임하다가 나중에는 KBO 구단 사장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나를 찾으면 만나봐야지.”

한국을 떠나온 지 햇수로 2년.

처음으로 [한국의 주류]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경기가 끝나면 우리는 바로 버스를 타고 포트 마이어스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를 만나고 싶으면 지금 원정팀 클럽하우스로 오세요. 제가 감독님께 허락을 받을게요.]


나는 한글로 메모장을 작성해서 배트 보이에게 건넸다.

심부름 값으로 5불을 쥐어주니 녀석이 천사 같은 파란 눈을 반짝이며 고마워했다.


“감독님. 한국에서 기자가 저를 만나려고 왔답니다. 클럽하우스에서 잠시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기자가? 허허. 벌써 스타가 되었군. 알겠어. 가봐. 대신 한국에 감독 자리 있으면 나를 소개해 줘.”

“그러죠.”


감독은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사실 더블A 감독으로 쥐꼬리 월급 받으며 고생하느니 KBO에서 외국인 감독으로 대접받으며 몇 년 편하게 돈을 땡기는 것도 방법이긴 했다.


“안녕하세요. 백건우 선수.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가 한참 어린데 편하게 말씀하세요. 기자님.”

“그럴까?”


나는 조인태 기자와 라커룸에서 만났다.

역시 한국인끼리는 서열 확인하고 바로 반말 까는 게 제맛이지.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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