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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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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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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은 어디 있지?

DUMMY

28화












“왜 저렇게 살이 찐 거야?”


백건우는 3달 전에 비해서 눈에 띄게 후덕해져 있었다.

미키 할러가 진짜 놀랄 일은 이제부터였다.


[백건우! 초구를 던집니다! 한가운데에요!]

따아아아악- !


잘 맞은 타구가 외야로 날아갔다.

홈런으로 보였던 타구가 마지막에 아슬아슬하게 담장 앞에서 잡혔다.

엄청난 환호성이 터졌다.


[역시! 한국에서 온 어린 황소답습니다. 그는 상대가 누구라도 절대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오직 정면승부!]


미키는 백건우의 달라진 투구 스타일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구속은 느려도 면도날처럼 예리한 제구력으로 구석을 찌르며 타자를 잡아내는 영리한 투수가 백건우였다.

너클볼로 카운트를 잡고 스크류볼로 위닝샷을 꽂는 패턴은 독보적이기까지 했는데.


따아아아악- !

[타자 알로마가 2구를 쳤습니다! 아! 유격수가 잡지 못했어요! 안타!]


멕시코의 백건우는 무조건 2구 안에 타자와 승부했다.

이런 무대뽀 투구는 백건우의 야구가 아니었다.

백건우는 중남미 출신 강타자들에게 작은 황소처럼 초구부터 정면으로 들이박았고 얻어맞거나 범타로 처리하며 꾸역꾸역 이닝을 먹어치웠다.


[경기 끝났습니다! 우리 술탄네스가 10대8로 1차전을 승리했습니다. 어린 황소 백건우는 4이닝 3실점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냈습니다.]


백건우가 마운드에서 내려와 동료들과 가슴을 부딪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 모습도 낯설었다.

미키는 백건우가 왜 어린 황소로 불리는지는 알았다.

멕시코인들의 우상이자 메이저리그 전설의 투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별명이 황소였기 때문이다.

발렌수엘라의 필살기가 스크류볼이었기에 아마도 같은 스크류볼을 승부구로 쓰는 백건우가 멕시코 사람들에게 더 사랑을 받고 어린 황소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리라.


“꺄아~ 껀우! 언제 나오는 거야!?”


미키는 경기가 끝나자 서둘러 선수 출입구를 찾아갔다.

정말 가관이었다.

멕시코의 다양한 라틴 혼혈 미녀들이 온갖 교태를 부리며 선수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반바지에 비키니 상의.

등이 깊게 파인 붉은 미니 원피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헐벗은 미녀들이 애를 태우고 있었다.


“껀우는 오늘 내가 찍었어. 너희들은 꿈도 꾸지 마.”

“나도 껀우와 놀 거야. 그에게 선택을 맡기자. 왜 너는 자신 없니?”

“이게 진짜!”


미키는 여자들의 스페인어 대화를 알아듣고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잠시 후.

오늘 승리한 술탄네스 선수들이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오자 팬들이 괴성을 지르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백건우도 거기 있었다.

멕시코 선수들은 물론이고 다른 히스패닉 선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스페인어로 낄낄거렸다.

그러던 백건우가 미키를 발견했다.


“어! 미키 할러 수석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출장 오셨어요? 야! 다들 인사드려라. 나를 뽑아주신 에인절스 수석 스카우트님이셔. 너희들도 잘 보여야 해. 이분이 에인절스의 실세니까.”

“오~ 오~ 반갑습니다. 수석님.”

“수석님! 명함 좀 주세요! 지금 엉망인 에인절스 내야진에는 제가 딱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미키 할러였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어버버 하는데 백건우가 스페인어로 상황을 정리했다.


“저녁 안 드셨죠? 제가 친구들과 선약이 있어서요. 수석님도 같이 가시죠. 얘들아~ 미국에서 오신 손님이니까 정성껏 모셔라!”

“예~”


두 미녀가 양쪽에서 미키에게 팔짱을 꼈다.

백건우는 패거리들을 이끌고 야구장 근처 클럽으로 들어갔다.

[클럽 코파카바나]

클럽이라고 해서 지하에 시끄럽고 컴컴하고 EDM이 고막 터지게 나오는 그런 정신없는 곳이 아니었다.


디리리링~ 디링~


사방이 탁 트인 1층 널찍한 홀에 치자 꽃과 야자수가 장식된 본격 라틴 클럽이었다.

산타나를 닮은 콧수염 기타리스트가 9인조 라틴 밴드를 이끌고 [블랙 매직 우먼]을 맛깔나게 연주하고 있었고 청춘남녀들이 몸을 밀착하고 끈적한 춤을 추었다.


“아미고~! 오늘 밤 신나게 놀아보자!”


백건우는 어느새 이들 무리의 대장이 되어있었다.

미녀들의 엉덩이를 토닥이고 테킬라를 병째 들이키고 멕시코식 육포 마차카를 질겅질겅 씹으며 멕시코 마약왕처럼 굴었다.


“수석님. 같이 데킬라 한잔하세요. 마실 줄은 아시죠?”

“장난하냐.”

탁-

백건우가 데킬라를 넘치게 따라주자 미키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한 번에 털어 넣었다.


“크윽! 소금은 어디 있지?”

“에이~ 데킬라 드실 줄 모르시네.”


데킬라를 단숨에 털어 넣은 미키가 인상을 쓰며 소금을 찾았다.

백건우가 턱 짓 하자 붉은 입술에 하얀 소금을 바른 미녀가 미키에게 가볍게 키스해주었다.


“소금은 여기 있어요.”

“라임도요~”

“헉!”

쪽-


소금이 입속으로 들어가고 반대편에 있던 미녀가 라임을 입에 넣어주고 볼에 키스해주었다.

미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백발 아저씨 너무 귀엽다~ 내 스타일이야~”

“좀 즐기세요. 미키. 얼굴 좀 피구요. 오늘 우리가 이겼다구요.”

“건우야. 잠깐 밖에서 이야기 좀 하자.”

“무슨 이야기인데요? 그냥 여기서 하세요. 수석님.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계세요. 미녀들 앞에 두고 실례에요.”

“건우.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예?”

“나는 네가 버베이시 단장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이곳에서 착실히 실력을 갈고닦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따위로 살고 있을 줄이야.”

“수석님~ 이따위라뇨. 저 여기서 열심히 살고 있어요. 이 친구들 덕분에 고급 스페인어도 익혔죠. 호데르~ 뿌따~ 미에르다~ 꼰차~ 꼬뇨~ 까라호~ 쎄르도~ 꼬쵸~”

“꺄하하하! 역시 우리 껀우는 유머 감각이 좋아!”

“완전 내 스타일이야~ 쪽! 쪽!”


라틴 미녀들이 백건우 얼굴 여기저기에 키스하고 난리가 났다.

참고로 백건우가 지금 말한 단어는 모두 쌍욕으로 스페인어권에서 함부로 말했다가는 맞아 죽을 수 있다.


“...”


할 말을 잃은 미키 수석은 입을 다물었고 그냥 구석에서 조용히 술잔만 비웠다.

그렇게 2시간 후.


“다들 늦지 않게 들어가라. 내일 또 경기해야 하니까. 알겠지?”

“걱정하지 마. 껀우. 내일 봐!”

“히잉~ 나도 호텔로 데려가 줘. 껀우.”

“오늘은 손님이 있잖아. 또 보자. 아~ 오늘도 잘 놀았다.”


백건우는 누구보다 신나게 놀고 일행의 술값을 모두 계산하고 여자들을 달랜 후 혼자 유유히 클럽을 나왔다.

동료들이 백건우를 따르는 이유 중 하나가 경제력도 있었다.

그때 서야 미키는 백건우에게 뭔가 계획이 있음을 느꼈다.


“건우야. 네가 버베이시 단장 때문에 힘든 거 알아. 하지만 이렇게 망가지면 안 돼. 더 잘해서 보란 듯이 단장을 엿 먹여야지.”

“수석님. 저는 단장 원망 안 해요. 물론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지만요. 저는 그저 제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 네가 처한 상황?”

“예. 3개월 동안의 멕시코 생활이요. 야구도 하고 돈도 벌고 연애도 하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고 언어도 배우고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상위 리그 타자들과 싸우는 방법을 익혔죠.”

“뭐야!?”


미키는 술이 확 깼다.


“제가 언제 이렇게 마음 편하게 더블A, 트리플A급 타자들을 상대해보겠어요? 마이너리그 정규 리그에서는 저도 부담스럽죠. 저의 공식 기록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멕시코 겨울 리그는 교육리그니까 저도 다양한 실험을 해봤어요. 그 결과 나름대로 해법을 찾았죠.”

“그래!?”

척-


백건우가 미키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미키 삼촌. 저의 기록을 자세히 안 보셨군요. 3개월 전체를 보지 마시고 최근 5경기만 딱 잘라서 보세요. 그럼 제가 해답을 찾았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리고 투심 패스트볼을 정식 레퍼토리에 넣었어요. 스크류볼과 비슷한 궤적이라 우타자들이 괴로워하더군요.”


미키는 이제 좀 민망했다.

20살짜리 녀석이 이런 깊은 생각을 하며 본인의 경력을 경영할 수 있다니.

그러면서도 즐길 거 다 즐기고...

원래 금욕보다 어려운 게 쾌락을 탐하다가 일정 시점에서 자신의 의지로 멈추는 것이다.

이제는 칭찬을 해줘야 했지만 미키는 오기가 생겼다.


“그럼. 살은 왜 이렇게 찐 거야? 그것도 계획이 있어서는 아니잖아.”

“무슨 소리에요. 이것이야말로 멕시코가 나에게 준 행운이에요.”

“뭐야?”

“저는 원래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에요. 그래서 투수치고는 마른 체형이었죠. 미국에서 매일 스테이크를 먹어도 체중 변화가 없었어요. 그런데 마성의 멕시코는 그런 저도 살찌게 만들더군요. 매일 카브리또(새끼 염소 통구이)를 먹고 치차론(바싹 구운 삼겹살) 타코와 틈틈이 간식으로 부리또도 먹어주고 저녁은 소 양지 스테이크, 과카몰리에 토르티아를 찍어 먹는 것도 별미죠. 하여튼 이렇게 먹다보니까 어느 순간 육체의 리미트가 해제되며 살이 찌더군요. 3개월 만에 10kg가 쩠어요. 기분 탓인지 키도 좀 큰 거 같아요.”

“이제 어쩌려고?”

“겨울 리그가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모두 근육으로 만들어야죠. 벌써 LA에 야구선수 전문 피트니스 강사를 예약해 두었어요. 상위 리그 타자들을 상대해보니까 지금 구속과 구위로는 한계가 있겠더군요. 근육량을 늘려서 좀 더 무거운 공을 만들기로 했어요.”

“...”


미키는 이제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했다.

완패를 인정했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내가 바보처럼 굴었어.”

“무슨 소리에요. 미키 삼촌. 덕분에 이렇게 얼굴 봐서 좋잖아요.”

“그런가. 후후.”


미키는 사비로 멕시코에 왔다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호텔로 돌아간 미키는 포켓 위스키를 홀짝이다가 취해서 백건우에게 장황한 충고를 해댔다.


“... 건우야. 이제부터가 진짜야. 더블A부터가 진정한 미국 프로야구란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해. 그렇다고 너무 서둘러서도 안 돼... 횡설수설...”


진짜 삼촌처럼.

백건우는 단 한 모금의 술도 더 마시지 않고 미키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 후 자기 방으로 가서 잠을 잤다.

등판한 후라 좀 피곤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멕시코에서 미키 삼촌의 잔소리를 듣겠는가.


다음 날.

백건우는 이미 아침 일찍 야구장으로 출근했고 미키는 안심하고 멕시코를 떠났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해서 며칠 후 애너하임 구단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멕시코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르던 백건우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


일주일 후.

백건우는 LA로 돌아왔다.

멕시코로 떠날 때와 똑같이 짐은 가방 하나뿐이다.

술탄네스는 플레이오프 파이널에서 탈락했다.

백건우는 그날 밤 멕시코 친구들과 진탕 술을 마시고 아름다운 미녀 팬들에게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다음 날 미국 LA행 비행기를 탔다.

환상적인 3개월이었다.

멕시코에서 받은 봉급과 승리 수당을 1페소도 남지 않고 모두 멕시코 땅에 뿌리고 몸만 나왔다.


“건우야~~ 오랜만이야! 어머 새카맣게 탔네. 살은 또 왜 이렇게 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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