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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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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듬이야

DUMMY

47화












“너클볼을 던지고 나서 일반 구종을 던질 때 저도 모르게 팔로우 스로가 약해지는 습관이 있었어요.”


백건우가 투구 장면을 반복 재생하며 마조니 코치에게 설명했다.


“매덕스 선배가 충고했던 대로에요.”

“그렉이 너에게 충고를 했다구?”

“저한테 투심 그립을 알려주면서 투심이 아닌 투심 패스트볼을 던져야 한다고 했어요. 무브먼트가 약하면 빅리그 타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죠. 당해보니까 그 말대로였어요. 양키스 4번 타자는 존으로 들어온 밋밋한 투심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

“그뿐 만이 아니에요. 바깥쪽 낮은 코스도 문제점을 찾아냈어요.”

“바깥쪽!?”


마조니 코치가 [바깥쪽]이라는 단어에 눈이 커졌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어제 백건우가 바깥쪽 공략을 못 해서 궁지에 몰렸다는 걸 지적하려던 참이었다.


“마이너리그 주심들에 비해 빅리그 주심들이 바깥쪽에 인색하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안 잡아줄 줄은 몰랐어요.”

“어제 그 심판 녀석은 너무 심하긴 했어.”

“지금 당해서 오히려 잘됐어요. 월드시리즈에서 당하는 거보다는 시범 경기에서 당해보는 게 낫잖아요.”

“...”

“코치님 지적대로 앞으로 바깥쪽 낮은 코스 제구를 더 디테일하게 연마할 겁니다. 빅리그에서 통할 수준으로요.”


마조니는 다시 한번 3대의 비디오 분석 화면과 서류를 쓱 둘러보고는 백건우의 등을 두드렸다.


“그래. 잘 해봐. 참. 어제 야구장에서 한국인 기자와는 무슨 이야기를 했지?”

“멀리서 저를 보려고 찾아온 분이라 고마워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제가 못 던지는 바람에 한국에 전송하려던 기사도 날렸거든요. 상대가 지난 월드시리즈 우승팀 양키스니까 제가 잘 막았으면 시범 경기라도 이야기가 될 뻔했는데... 제가 다 망쳤어요.”

“그랬군.”


마조니는 백건우가 패배를 “운이 없었어. 다음에 잘하면 되지.”하며 받아들이는 삼류 투수로 오해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아픈 패배를 당해도 의젓하게 주변 사람부터 챙기고 다음 날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서 자기 패배의 원인을 스스로 찾아내는 투수였다.

아직 실력은 부족하지만 일류 투수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코치님. 커피 드세요.”

“고맙지만 나는 갓 뽑은 에스프레소밖에 안 마셔.”

“...”


누가 이탈리아계 아니랄까 봐.

백건우는 보지 못했다.

돌아서 나가는 마조니가 웃고 있었다는 걸.


***

“건우. 오늘도 1~2이닝 던진다. 출전 준비해.”

“감사합니다!”


오늘은 홈구장에서 뉴욕 메츠와 연습경기를 했다.

나는 경기 전 2번 포수 에디 페레즈와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그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기 때문이다.


“드디어 너와 배터리를 하게 되었구나. 건우.”

“영광입니다. 페레즈.”

“호세 녀석이 항상 나에게 침을 튀기며 너의 칭찬을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빨리 올라올 줄은 몰랐어.”

“저도요. 마이너 팀으로 돌아가기 전에 함께할 기회가 생겨서 다행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나는 주변을 살피고 페레즈에게 속삭였다.


“매덕스와 하는 사인 교환 방식을 저와도 해주셨으면 합니다.”

“뭐? 어떻게 그걸 알았어?”

“매덕스에게 들었어요. 제 공은 빠르지 않으니까 사인 3개로 구별하면 될 거 같아요.”

“...”


매덕스에게 직접 들었다는 건 물론 뻥이다.

전생에서 누군가에게 주워들은 이야기다.

아마도 우리 치킨집에서 밤새 야구 수다를 떨던 MLB 매니아 손님한테 들었을 거다.


“사장님~ 매덕스와 페레즈가 경기 중에 어떻게 사인을 교환했는 줄 아세요? 헤헷. 알면 기가 막힐 겁니다. 로페즈는 그게 안 돼서 매덕스한테 왕따를 당했다잖아요~”


나는 그 손님에게 불맛 콘치즈를 서비스로 주고 사인의 비밀을 듣게 되었다.

그 비밀은 불맛 콘치즈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


오늘의 상대 뉴욕 메츠는 브레이브스와 같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팀이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와는 달리 전혀 라이벌 의식이 없었다.

내셔널리그 동부지구를 장기 집권하고 있는 브레이브스 왕조에게 메츠는 그냥 영지 구석에서 힘들게 사는 농노들에 불과했다.

가끔 어메이징한 반란을 벌일 때도 있지만 곧 진압되곤 했다.


“건우. 저 일본 선수랑 서로 몰라?”

“일본이면 한국이랑 이웃 국가잖아. 건우. 나 아시아에 대해 많이 알지?”

“둘이 친해? 말이 통하지 않아?”


브레이브스 선수들은 메츠보다 오히려 선발 요시이 마사토에 관심을 보였다.

요시이는 일본 프로야구출신 베테랑 투수로 작년부터 메츠에서 뛰고 있었다.


“무식한 미국놈들 아니랄까 봐. 말이 왜 통하냐!? 장난해!?”

라고 버럭하고 싶었지만 이곳은 빅리그이고 나는 막내였기에 담담하게 사실을 알려주었다.


“한국과 일본은 각자의 문명이 있는 국가입니다. 당연히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답니다.”

“그렇구나. 나는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로 생각했어.”

“그럼. 미국과 멕시코 같은 관계인 건가?”

“오~ 버그먼~ 너 좀 똑똑한데?”

“...”


나는 빅리그 동료들이 마음대로 떠들게 놔두었다.

이곳은 야구장이었고 나는 야구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상대가 일본인이다?

그럼 싸워서 반드시 이기고 싶을 뿐.


“플레이 볼~!”


1회초.

브레이브스 선발은 케빈 밀우드.

팀의 4번째 선발 투수로 지난 시즌 겨우(?) 17승밖에 못 올린 신인이었다.

매덕스 – 글래빈 – 스몰츠 다음 시대를 책임질 차세대 에이스였는데 이번 캠프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았다.


뻐어어어어엉- !!

“삼진 아웃!”


밀우드가 자신의 구위를 과시하며 살아있는 ‘전설의 도루왕’ 리키 헨더슨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저 영감님은 언제 메츠로 온 거야?”

“제발. 내 이닝에는 걸리지 마라.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


불펜에서 투수 동료들이 수다를 떨었다.

나도 야구 역사책에서나 보던 선수가 앞에서 왔다갔다 하니까 신기했다.

참고로 리키 헨더슨은 58년생이다.


“그나저나 밀우드 오늘 볼 진짜 죽인다~”

뻐어어엉- !


밀우드는 폭주 기관차였다.

강속구와 싱커, 커터를 앞세워 타자를 넉다운 시켰다.

간간이 커브와 체인지업도 섞어 던지며 완급조절도 잊지 않았다.


“이것이 에디 페레즈의 리드인가...”


로페즈와 마이어스에게는 미안했지만 페레즈의 리드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었다.


[압도적 투구를 보여주는 밀우드. 이번 시즌도 브레이브스 선발진은 정말 무시무시하네요. 4선발이 이런 공을 던지면 다른 팀은 어떻게 합니까?]


1회말.

선발 요시이 마사토가 포수 마이크 피아자와 배터리를 맞췄다.

요시이는 구속은 빠르지 않았지만 정확한 제구력으로 브레이브스 타자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필살기를 썼다.


[치퍼 존스! 헛스윙! 삼진 아웃! 요시이의 포크볼을 크게 헛칩니다. 공수 교대!]


일본 투수 특유의 빠른 포크볼은 사실 스플리터였는데 지금 시대 미국에서는 통칭 포크볼로 불렀다.

직구처럼 날아오다가 뚝 떨어지는 포크볼에 브레이브스 타자들이 당했다.


[경기 초반 팽팽한 투수전이 벌어집니다. 밀우드와 요시이가 상대 타선을 일축하고 있습니다.]

“아니야. 틀려.”


나는 밀우드와 달리 요시이의 투구가 점점 몰리고 있음을 느꼈다.

원인은 포수에게 있었다.


4회말.

0대0 상황에서 치퍼 존스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첫 타석에서 굴욕의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따아아악- ! 터어엉!

[존스의 타구가 우측 담장을 직격 합니다! 2루타!]

“볼 배합이 안일했어.”


상대는 치퍼 존스였다.

2회차 승부는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야 했다.


따아아아악- !

[이번에는 브라이언 조던의 배트가 돌아갑니다! 좌중간을 가르는 안타! 존스는 여유 있게 홈으로~ 홈인!]

[메츠 0 대 1 브레이브스]


나는 보았다.

요시이가 포수 피아자에게 짜증 내는 모습을.

볼 배합을 두고 둘 사이에 의견대립이 있는 게 분명했다.

타순이 한 바퀴 돌 때 미리 대책을 세웠어야 했는데 초반에 잘 통했다고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문제였다.


따아아악- !

[잘 맞은 타구가 우익수 세데뇨에게 잡힙니다! 그 사이에 3루 주자는 홈까지~~ 홈인!]

[메츠 0 대 3 브레이브스]


요시이는 후속 타자들에게도 두들겨 맞았는데 타구가 운 좋게 야수 정면으로 가며 3실점으로 막아냈다.


[브레이브스도 불펜을 가동합니다. 좌투수 브루스 첸이 마운드를 넘겨받습니다.]


5회초.

밀우드가 시즌 개막을 앞두고 4이닝 퍼펙트 피칭을 하며 기분 좋게 캠프 일정을 종료했다.

그런데.

구원 브루스 첸이 시작부터 불안한 투구를 하더니 볼넷을 남발하며 1사 2, 3루 위기에 처했다.


“타임!”


포수 페레즈가 경기를 중단하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지난 회에 한 번도 경기를 끊지 않았던 메츠의 포수 피아자와 비교가 되었다.


따아아아악- !

[오도녜즈! 쳤습니다! 우중간을 가르는 안타! 루상의 주자가 모두 들어옵니다! 1점 차까지 추격하는 메츠!]

[메츠 2 대 3 브레이브스]


그런다고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건우. 올라가라.”

“옙!”

결국 브루스 대신 내가 이닝을 마무리하러 마운드로 올라갔다.


[우리 브레이브스의 루키 백건우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어제 양키스전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데릭 지터를 병살타로 잡아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보는 맛이 있는 투수에요.]

“팩~~ 팩~~”

“건우~ 팩!”


관중 20여 명이 나의 이름을 외치며 브레이브스의 상징 스펀지 도끼를 흔들었다.

2경기 만에 나도 애틀랜타 현지 팬이 생긴 모양이다.


“계획대로 가자.”

“오케이.”


페레즈와 나는 긴말이 필요 없었다.

1사 2루에서 세데뇨가 타석에 나왔다.

척-


[어. 2루 주자의 리드가 매우 큰데요. 동점 주자거든요. 투수가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초구를 던집니다!]

뻐어어어엉- !

“스트라이크! 원!”


바깥쪽 낮은 코스로 초구가 깨끗하게 들어갔다.

세데뇨가 언더핸드 궤적에 당황한 표정.

척-

[즉시 2구를 던집니다! 세데뇨! 스윙!]

따아아악- !


라이징 커브가 빗맞아 백네트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2스트라이크.

척-

나는 글러브 낀 왼손으로 포수의 공을 받으며 오른손으로 벨트를 만졌다.

이건 다음 공으로.


뻐어어어엉- !

[룩킹! 삼진 아웃! 포수가 2루로 송구~~~~ 주자 걸렸어요! 태그 아웃! 더블 플레이!]


스크류볼을 던지겠다는 사인이었다.

나는 포수의 송구를 받으며 오른손으로 사인을 보냈다.

이렇게 하면 내가 원하는 빠른 리듬으로 투구할 수 있다.


벨트를 만지면 스크류볼과 패스트볼 계통.

모자를 만지면 라이징 커브.

아무것도 만지지 않으면 너클볼이었다.


[공 3개로 2아웃을 잡아내며 역전 위기를 막아내는 백건우. 초 공격적인 투구를 보니 어제 홈런 맞은 후유증은 없는 모양입니다.]


“나이스. 포수.”

“좋은 리듬이야. 건우.”

“다음 이닝도 네가 던져라.”

“알겠습니다. 코치님.”


나는 마조니 코치의 지시를 받고 전광판을 확인했다.

‘그렇다는 건 이번 회에 나의 타순이 온다는 뜻이지.’


나는 마운드로 올라가는 요시이를 빤히 보며 배트 보관함으로 갔다.


플로리다 메이저리그 캠프에서 한일 투타 대결 성립.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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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로커와 세탁소 +10 24.09.05 10,415 29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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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마이너리그의 법칙 #3 +6 24.09.03 10,635 28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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