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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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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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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의 3월 하늘

DUMMY

33화










“오히려 좋아.”


나는 연습용 배트를 골라잡았다.

고딩 때 나는 팀에서 투수 겸 4번 타자였다.

우투좌타로 홈런타자는 아니었지만 타고난 동체 시력과 유연한 몸, 협응력으로 컨텍에 특화된 타격을 했다.

특히 밀어쳐서 좌측 외야 라인 안쪽에 아슬아슬하게 타구를 떨구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문제는.


띠이이익- !


그때는 알루미늄 배트를 썼고 지금은 생전 처음 나무 배트를 써본다는 거.

둘의 차이는 컸다.


띠이이익- !


오랜만에 배팅 케이지에 들어가 배팅볼을 때리니까 빗맞은 타구만 나왔다.

다른 선수들이 배꼽을 잡고 비웃었다.


“껀우! 너희 고향에서 타격은 안 가르쳐줘?”

“크하하. 못 봐주겠군.”

“껀우는 아메리칸 리그로 가야겠어.”

그러나.

나는 배팅볼을 계속 때리며 감을 잡아갔고 점점 배트 중심으로 공을 맞춰 나갔다.

알루미늄 배트에 비해 나무 배트의 스윗 스팟이 좁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난이도가 상당했다.

하지만.


따아아아악- ! 따아아악- !


나는 곧 적응했다.

30번 만에 타구를 밀어서 좌측 외야로 보냈고 점점 배팅 포인트를 당기며 좌측에서 중앙으로 또 중앙에서 우측으로 타구를 보냈다.


따아아아악- !


나는 39번째 배팅볼을 때려 우측 담장을 넘겼다.

10킬로의 몸무게 증량이 타격에서도 비거리를 늘린 모양이다.

배팅 케이지를 둘러싸고 나를 비웃던 선수들이 조용히 흩어졌다.


“오랜만에 빳따를 쳤더니 재밌네. 이게 진짜 야구지.”


부상 위험이니 뭐니해도 야구는 투수도 하고 타격도 하는 게 재밌었다.

스프링캠프 첫 연습경기를 앞두고 나는 깜짝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


“지금까지는 몸풀기에 불과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너희들의 승격과 강등이 가려질 거다.”


첫 연습경기 직전.

더블A 팀 수석 코치가 선수들을 독려했다.

‘요다’ 맥스 팜 디렉터가 파라솔 그늘에서 음침하게 뭔가 메모하고 있었다.

그의 볼펜 질에 마이너 선수들의 생사가 갈렸다.


“자! 가자! 풋내기 놈들 엉덩이를 걷어차 주자~”

“렛츠 고!”

휘이익~


따스한 플로리다의 3월 하늘.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마이너리거들이 초록빛 그라운드로 뛰어나갔다.

나는 4회부터 6회까지 던지라는 지시를 받고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브레이브스 싱글A 대 더블A]


호세가 싱글A팀 주전 포수를 맡았다.

에반스는 후보로 밀렸다.

한 등급 높은 리그에서 뛰었고 호세보다 수비가 좋았지만 역시 타격이 문제였다.


“결국. 포수도 빳따가 좋아야 살아남을 수 있어.”


마이크 피아자가 수비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포수로 뛰며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이유가 있었다.


따아아아악- !

“좋았어! 루키들에게 매운맛을 보여주자!”


1회초.

더블A 타자들이 시작부터 싱글A 선발 투수를 두들겼다.


“이 정도 차이인가.”


한눈에 보기에도 레벨 차이가 컸다.

중학생과 대학생이 붙은 느낌.

그동안 미국 야구에 도전했던 많은 한국인 아마추어 선수들이 싱글A에서 더블A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실패했던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경험해보니 아마추어와 프로 선수만큼 차이가 컸다.

1사 1, 3루에서 더블A 포수 제프 혼이 타석에 들어섰다.


따아아아악- !


스리런 홈런.

투수의 유인구에 속지 않고 기다렸다가 카운트 잡으러 들어온 공을 정확하게 때려냈다.

[더블A 3 대 0 싱글A]

게임이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따아아아악- !


1회말.

호세가 3번 타자로 나와서 솔로 홈런을 때리며 반격했다.

이 녀석은 수 싸움이고 뭐고 바깥쪽 볼을 냅다 후려갈겨 담장을 넘겨버렸다.

전형적인 배드볼 히터.


“바깥쪽을 밀어쳐서 저 비거리가 나와?”

“파워 하나는 미친놈이네.”


더블A 선수들도 감탄했다.

호세는 그사이에 파워가 더 강해진 모양이다.

싱글A 선수들은 호세의 홈런으로 기세가 올라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자 일방적이던 경기 분위기가 팽팽하게 변했다.

분명히 더블A 선수들이 한참 레벨이 높았는데도 말이다.

이것이 야구의 재미였다.


[더블A 5 대 3 싱글A]


4회말.

우리가 2점 차로 쫓기는 분위기에서 백건우가 마운드에 올랐다.

투수 코치들이 관심을 보였다.

지난 마이너 캠프 불펜 피칭에서 가장 눈에 띄던 투수가 백건우였기 때문이다.


“에인절스에서 공식 발표한 백건우 스카우팅 리포트 내용보다 지금 구속이 5km씩 더 빨라. 스카우팅 리포트는 선수를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능력을 과장하기 마련인데 에인절스 버베이시 단장은 오히려 능력치를 줄였어. 이런 시대의 양심 같으니라구. 하하하.”

“이 정도면 선수와 단장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브레이브스 코치들이 낄낄거렸다.

버베이시는 이미 메이저리그 타 구단 관계자들로부터 [시대의 양심]으로 불렸다.

한국에서 [대인배]로 불린 것과 같은 이유다.

한마디로 매번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천하의 개호구라는 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백건우를 멕시코 겨울 리그로 보내 3개월 단기 업그레이드를 시킨 것도 버베이시 단장의 공이었다.

백건우는 애너하임에서 귀인을 만난 것일지도.


***


나는 마운드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름한 연습 구장 주변 잔디 언덕에 사람들이 반쯤 누워서 피크닉을 즐기며 야구 구경을 하고 있었다.

코치들은 나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내가 불펜이 아닌 실전에서도 구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한 모양이다.

불펜 호랑이가 실전 고양이가 되는 케이스는 마이너리그에서 흔했으니까.

척-

포수 제프와 사인을 주고받고 초구를 던졌다.


뻐어어엉- !

“스트라이크!”


우타자 바깥쪽 높은 코스.

따스한 날씨 탓인지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도 넉넉했다.


“타임!”


언더핸드 공을 처음 보는 타자가 놀랐는지 타임을 부르고 타석을 벗어났다.

나는 마운드에서 제프에게 눈짓으로 바깥쪽을 공략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척-

제프가 눈치 빠르게 알아챘다.

그리고.


뻐어어엉! 뻐어어엉- !!


포심 패스트볼 3개로 삼진을 잡아냈다.

[142km]

싱글A 레벨 타자는 바깥쪽에 완벽하게 제구된 코스를 어떻게 때려야 할지 몰랐다.

두 번째 타자가 바짝 긴장해서 좌타석에 들어왔다.

척-

나는 주저 없이 너클볼 사인을 냈다.


파아앙- !


하지만.

여전히 너클볼이 제구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3번 연속으로 너클볼을 던졌다.

3볼 0스트라이크.

3번째는 존에 근접했는데 볼 판정을 받았다.

척-

나는 4구로 좌타자 바깥쪽에 포심을 던졌다.


뻐어어어엉- !

“스트라이크! 원!”


완벽하게 제구된 공이 바깥쪽 낮은 코스에 꽂혔다.

5구도 같은 코스에 던지자 타자가 커트했다.

풀 카운트.

나는 대기 타석에 호세를 슬쩍 보며 6구를 던졌다.


휘이이잉- ! 뻐어어어엉!

“헛스윙! 삼진 아웃!”

“방금 공은 뭐야?”


한가운데로 날아오던 공이 마지막에 바깥쪽으로 달아났다.

좌타자용 스크류볼 궤적에 코치들이 감탄했다.


“제구력에 자신이 있으니까 3볼까지 너클볼을 던진 거야.”

“스크류볼로 좌타자를 잡아내다니. 저런 접근법은 처음 봐.”

“불펜 투구보다 실전 투구가 훨씬 강하잖아!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을 알고 있어.”


그동안 스크류볼은 좌투수가 우타자를 상대할 때 바깥쪽 위닝샷으로 주로 사용했다.

우투수인 내가 좌타자를 상대하며 스크류볼을 던지니까 코치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런 활용법은 없었으니까.


“이건 볼 만 하겠군.”


잔디밭에서 놀던 팬들과 코치들과 동료 선수들이 모두 주목했다.

오늘 2타수 2안타 1홈런을 때린 호세 가르시아와 이번 회에 구원 등판해서 압도적인 투구를 하고 있는 백건우가 붙었기 때문이다.


“둘이 싱글A에서 배터리를 했었다는군.”

“그럼 백건우의 공을 잘 알겠네.”


마운드에서 호세를 보니까 괴물 고릴라였다.

만화가 허영만 옹의 괴작 [미스터 고]가 떠올랐다.

190이 훌쩍 넘는 키에 세 자리대 몸무게.

유난히 발달한 우람한 상체 근육과 긴 팔, 거대한 엉덩이.

호세가 우타석에 바짝 붙으니까 던질 곳이 없었다.

녀석은 내가 바깥쪽을 노릴 거라는 걸 알고 대비했다.

‘그렇다면.’


뻐어어엉- !

“헉!”


1볼.

나는 초구로 라이징 커브를 던졌다.

공이 눈높이로 솟아오르자 호세가 당황했다.

그래도 타격자세가 무너지지 않았다.


“제법인데. 저 녀석 타격에 눈을 떴나?”


못 본 사이에 호세의 타격이 부쩍 늘었다.

파워는 원래 대단했는데 전에는 없던 인내심이 생겼다.

투수를 상대하는 요령도 생긴 듯했다.

영어를 익힌 속도를 봐도 머리가 나쁜 놈은 아닌가 보다.

그냥 외모가 잘생긴 고릴라일 뿐.


쒜에에엑- ! 뻐어어어엉!

“헉!”


2볼.

하드 슬라이더를 옆구리에 붙였는데도 피하지 않았다.

타자보다 관중들이 더 놀랐다.

씨익-

호세 녀석이 새하얀 건치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의 제구력을 믿는다는 뜻일까.


“이봐. 루키. 다음번에는 머리통으로 날아오니까 조심해라. 참. 영어를 못 알아듣나?”

쓰윽-


포수 제프가 약을 올리자 호세가 말없이 배트를 뻗어 헤드로 포수 마스크를 툭 쳤다.


“이 루키 새끼가 뭐 하는 거야!?”


제프가 발끈하자 호세가 실수였다며 사과했다.

전에는 볼 수 없던 여유였다.


“성장했구나. 호세. 하지만 나는 너를 잡아야겠어.”


나는 포수 제프에게 닥치고 앉으라는 손짓을 하고 3구를 던졌다.


파아앙- ! 휘이이잉- !

“어! 어!”

“스트라이크!”


나는 3구로 너클볼을 던졌다.

뒤늦게 휘두른 호세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내가 우타자에게는 너클볼을 안 던진다는 걸 아는 호세의 허를 찔렀다.

2볼 1스트라이크.

여기서 내가 던질 공은 하나뿐.


따아아악- !


한가운데로 직구가 날아오자 호세가 배트를 휘둘렀다.

임팩트하는 순간.

투심 패스트볼이 무빙하며 배트 밑에 맞았다.


“아웃!”


나는 투수 앞 땅볼을 잡아서 침착하게 1루로 던졌다.

삼자 범퇴.

호세에게는 미안했지만 승부는 승부였다.


짝- 짝- 짝-

“건우. 좋은 투구였다.”

“피칭의 정석을 보여주었어.”


코치들이 경기 중에 이례적으로 나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렇게 나는 주어진 3이닝 동안 9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무안타, 무실점 퍼펙트를 기록했다.

단 하나 아쉬웠던 건.


띠이이익- !

“백건우. 3루 땅볼 아웃!”


나의 타격이었다.

배팅볼을 때리고 감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실전 타격은 달랐다.

나의 3이닝 퍼펙트로 싱글A 팀의 추격 의지가 꺾였고 우리는 그 틈에 점수 차를 벌렸다.

첫 연습경기는 더블A 팀이 12대 6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경기 후 더블A 동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


다음 날.

우리 더블A 1팀은 싱글A 2팀과 경기를 했다.

빌 에반스가 2팀 주전 포수로 나왔다.

에반스는 안정적인 수비와 준수한 타격을 뽐내며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승부는 더블A 팀의 13대6 대승으로 끝났다.

나는 전날 3이닝을 던진 관계로 구경만 했다.


“건우. 내일은 네가 1회부터 4회까지를 맡아라.”

“옙! 저는 더 던져도 상관없습니다.”

“안 돼. 무조건 4회까지야.”


마이클 투수 코치가 내일 경기 선발 출전을 지시했다.

내일 상대는 브레이브스 트리플A 팀이다.


“건우. 네가 트리플A 타자들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주면 이번 시즌에 더블A를 생략하고 바로 트리플A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코치님.

제가 무슨 대답을 할지 아시잖아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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