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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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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덕스와 하이킥을

DUMMY

38화












“건우야. 매덕스 씨가 너를 만나러 왔어.”

“저를요?”


매덕스가 특유의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엉겁결에 그 손을 잡았다.


“꺼언~ 우. 만나서 반가워.”

“만나서 영광입니다. 마스터.”

“마스터는 무슨~ 그냥. 편하게 불러.”

“싫습니다. 마스터는 저의 우상이거든요. 한국에 있을 때부터 마스터의 피칭을 동경하며 야구를 해왔습니다.”

“한국? 너 한국 사람이야?”

“그런데요.”

“너 왜 이렇게 영어를 잘해? 나는 네가 당연히 미국인인 줄 알았어. 한국도 우리처럼 영어를 쓰나?”

“...”


역시 뭔가 비범한 면이 있는 남자였다.

일반인들과는 발상이 달라.


“한국에서는 한국어를 씁니다. 저는 미국에서 야구를 하려고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뭐. 좋아. 너와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음.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까 일단 밖으로 나갈까?”


나는 매덕스를 따라 클럽하우스를 나왔다.

아직도 그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스윽-

뒤를 돌아보니 호세가 나를 쫓아왔다.

저 녀석.

설마 내가 매덕스에게 끌려가서 맞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는 건가.

스윽-

호세에 이어 빌 에반스까지 따라붙었다.

그동안 스테이크를 사준 보람이 있구나.


“껀우. 네가 진짜 존 로커를 하이킥 한 방에 때려눕혔어?”

“예. 로커가 저를 인종적으로 모욕하더니 난데없이 주먹을 날리더군요. 저는 반사적으로 피했고 정당방위로 반격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태권도를 배웠거든요. 검은 띠입니다.”


설마 빅리그 투수진을 대표해서 나에게 경고하러 왔나?

천하의 돌아이 매덕스가?

아니면 존 로커와 친분이 있었나?


“그러니까. 내 말은 정말 발차기 딱 한방으로 로커처럼 커다란 덩치를 쓰러트리는 게 가능하냐. 이 말이야.”

“아~”


역시 그랬구나.

매덕스는 인종 모욕이고 빅리그 투수진이고 관심 없었다.

교수님이라는 별명답게 정말 [발차기 한방으로 사람을 기절시킬 수 있는가.]가 궁금해서 찾아온 것이다.


“제가 어떻게 했는지 시범을 보여드리죠. 야! 호세! 이리 와봐.”

“예스! 마스터~~! 헉!”


호세가 나를 마스터라고 불렀다가 페레즈의 충고를 떠올리며 당황했는데 매덕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직 나의 다리만 유심히 관찰했다.

나는 호세를 세워두고 한 동작씩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로커는 왼손잡이니까 왼손 펀치가 날아올 줄 알았어요. 타자가 투수를 상대할 때와 똑같아요. 역시 예상대로 펀치가 날아오더군요. 그래서 상체를 젖혀 역방향으로 피하면서 무릎을 걷어찼어요. 그러자 로커의 하체가 무너지며 상체가 앞으로 접혔죠. 그때 턱이 여기까지 내려온 겁니다. 호세. 굽혀봐. 더. 더. 아래로. 스톱! 이 정도 높이였어요.”

“오~ 그렇군.”

“여기서 오른발을 들어 올리며 골반을 틀어서 원심력을 이용해 발등으로 쾅! 때린 겁니다.”

휘익- !


내가 태권도 하이킥을 보여주자 매덕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아이처럼 행복해했다.


“그랬구나. 이제 의문이 풀렸어. 태권도 하이킥은 굉장하군. 불곰 같은 로커를 한 방에 쓰러트리는 위력이라니!”

“만족하셨다니 다행이네요. 마스터.”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예. 교수님.”


매덕스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따라 스텝을 이리저리 밟아보았다.

당장 하이킥을 시도해보고 싶은데 타고난 완벽주의자라 후배들에게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긴 싫은 모양이다.


“멋진 친구야. 자넨. 하이킥도 잘하고. 설명도 잘하고. 포지션은 어디지?”

“...”


나름 마이너 캠프에서 잘 던지고 있고 방금 어릴 때 우상이었다고 까지 말했는데...


“투수입니다. 언더핸드 투수요.”

“언더핸드? 아래로 이렇게 던지는 거?”

“그렇습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백. 건. 우.입니다.”

“그래. 좋아. 자네는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하는군. 나에게 던지는 걸 보여줄 수 있어?”

“지금요? 물론이죠!”


나는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매덕스가 나의 투구를 봐준다니.

지금 병원에 누워있을 존 로커에게 초콜릿이라도 보내주고 싶었다.

클럽하우스로 돌아가서 스파이크를 다시 신고 불펜으로 갔다.

코치들은 모두 퇴근했고 이용 시간 외에는 불펜 출입이 금지되었는데 매덕스가 원했기에 당직 직원도 막지 못했다.

나는 에반스와 배터리를 맞췄다.

호세는 입이 삐쭉 나왔다.

천천히 공을 몇 개 던져보고 본격적인 투구에 들어갔다.


뻐어어어엉- !

“오우! 멋진 궤적이야. 이것이 언더핸드로군.”


매덕스의 칭찬을 듣자 평소보다 오버하게 되었다.

포심, 하드 슬라이더, 라이징 커브에 스크류볼까지 던진 다음 너클볼을 던지자 매덕스가 무척 즐거워했다.

서커스에서 쇼를 구경하는 표정이랄까.

매덕스의 언행을 보며 순수함과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느꼈다.


“이게 다야? 더 보여줄 건 없어?”


매덕스가 눈을 반짝였다.

나는 이렇게 분위기를 최고조로 띄운 후에 준비했던 작전을 실행했다.

[매덕스에게 투심 패스트볼 전수 받기]


“딱 하나가 남았습니다. 저의 필살기 투심 패스트볼입니다.”

“...”


매덕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순수한 어린아이 같던 표정에서 베테랑 투수의 엄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뻐어어어엉- ! 뻐어어어엉- !


나는 전력으로 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매덕스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나중에는 무표정해졌다가 마침내 하품까지 했다.


“하암~~ 이게 마지막이라구?”

“예. 교수님. 혹시 저의 투심 패스트볼에 문제가 있나요?”

“...”


매덕스가 손짓으로 공을 달라고 했다.

그리곤 내가 서 있던 마운드로 올라왔다.

내가 공을 건네자 잡아서 그립을 보여주었다.


“지금 너의 공은 그냥 투심이야. 투심 패스트볼이 아니야. 마이너 타자들에게는 통하겠지만 빅리그 타자들에게는 두들겨 맞을 거야. 엄청나게.”

“아...”

“내 손을 봐봐. 투심 그립 잡을 때 중요한 건 엄지야. 엄지로 브레이킹을 줄 수 있어야 투심이 비로써 투심 패스트볼이 된다. 포수. 받아봐.”

“아. 예!”


에반스가 신이 나서 포수 마스크를 썼다.


쒜에에엑- ! 틱!


매덕스가 내 앞에서 투심 패스트볼을 가볍게 던졌다.

투구 동작이 너무 깔끔했다.

그런데도 투심 패스트볼에는 강력한 무브먼트가 걸려있었고 에반스가 제대로 포구를 못 할 정도였다.


“교수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다른 구종들도 문제점을 알려주시면...”


그때였다.

매덕스의 개인 일정을 관리해주는 매니저가 달려와서 그를 끌어냈다.


“그렉!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한참 찾았잖아! 제발 전화 좀 받아!”

“젠장. 귀신처럼 쫓아왔군. 한참 재밌었는데.”

“지금 기자와 마케팅 간부가 기다리고 있어. 오늘 미팅 일정을 잊은 거야?”

“알았어. 알았다구. 또 보자. 하이킥~”

“고맙습니다! 마스터!”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나는 한국식으로 모자를 벗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렇게 매덕스는 매니저에게 끌려갔고 나의 꿈같은 시간도 끝났다.

척-

나는 매덕스가 알려준 투심 그립을 까먹지 않으려고 야구공을 꽉 잡았다.

그동안 투심을 던지며 검지와 중지에만 신경을 썼다.

나름 구속도 나오고 땅볼 유도도 잘되어 우쭐했었는데 빅리그 타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니.

충격이었다.


“엄지를 쓰는 건 생각도 못 했어.”

“건우. 너의 투심도 굉장하다고 생각했는데 매덕스의 투심을 잡아보니까 확실히 차이가 나더라. 매덕스의 투심 패스트볼은 공이 오다가 한번 멈추는 느낌이야. 무브먼트가 미쳤어.”

“나도 반드시 그런 투심 패스트볼을 던질 거야.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미지는 확실하게 잡혔어.”


이렇게 [로커의 세탁소 사건]도 일단락되었다.

브루스 첸은 내 덕에 빅리그에 자리를 얻었고 나는 투심 패스트볼 업그레이드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아. 맞다. 봉정근.”


다 좋은데 나 때문에 애너하임으로 팔려간 정근이를 잊고 있었다.


***


“건우야. 도대체 캠프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너 문제로 보라스 대표가 슈어홀츠 단장과 한참 통화했어.”

“지능이 떨어지는 못 배운 인종 차별주의자를 따끔하게 교육시켜줬을 뿐이에요. 미키 삼촌. 저는 미국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자기 방위권을 행사한 겁니다.”

“존 로커 같은 괴물을 한 방에 때려눕히다니... 너란 녀석은 정말...”

“알고 보니 유색인종 직원들이 로커에게 일상적으로 모욕을 당하고 있었더군요. 그런데 무서워서 뭐라고 하지 못했대요. 제가 모두를 대신해서 쓰레기를 치운 거죠.”

“그래도 폭력사건은 피해라. 혹시라도 다치면.”

“알겠어요. 미키 삼촌. 하지만 미국에서 사는 동양인으로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야 동양인을 우습게 보는 관념도 바뀔 테니까요.”

“하아. 그래 알았다.”

“잔소리는 그만하시고 봉정근 선수 연락처나 주세요.”

“알았다구~”


나는 미키를 통해서 봉정근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는 애너하임 에인절스 산하 마이너 캠프에 참여하고 있었다.

나는 시차고 뭐고 당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뚜- 뚜뚜- 뚜뚜-

“헬로~ 봉정근 전화입니다. 누구시죠?”


한국인이 어설픈 영어로 말하는 걸 들으니까 뭔가 짠했다.

이 녀석도 혼자 고생이 많겠지.


“봉정근 선수. 나는 백건우라고 합니다. 나 알아요?”

“리얼리? 예? 한국인이세요?”


내가 한국어로 말하자 봉정근이 당황했다.

한국어와 영어가 꼬이는 상황.


“어... 저와 트레이드된 한국인 투수이신가요?”

“맞아. 내가 그 한국인 선수야. 오랜만에 한국어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나도.”

“하하. 저두요.”


봉정근이 수줍게 웃었다.

목소리에서 외로움이 묻어났다.

나도 몰랐는데 오랜만에 한국어를 하니까 나도 꽤 외로웠나 보다.

이런 푸근한 기분이 될 줄이야.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반말할게. 그래도 되지?”

“당연하죠! 선배님!”

“선배는 무슨. 그냥. 형이라고 불러.”

“예... 형.”

“캠프는 좀 어떠니? 힘들지?”

“아. 그냥. 새로운 팀에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형은 좀 어떠세요?”

“알잖아. 브레이브스 투수진 빡센 거. 여긴 경쟁이 장난 아니야.”

“저는 루키 레벨에만 있어서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 나는 오늘 매덕스랑 같이 훈련했는데~”

“진짜요!?”


뭐랄까.

그냥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도 너무 행복했다.

한국 사람과 한국어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이었다니.

나는 정근이와 한참 수다를 떨었다.

팀 이야기, 선수 이야기, 계약 이야기, 식사와 운동...

슬슬 친밀도를 쌓고 정근이의 생각을 쭉 들으며 제안을 던질 타이밍을 잡았다.

내가 정근이에게 전화를 건 목적은 이거였다.


“정근아. 너 투수 말고 타자로 전향해보는 게 어때?”

“예!? 제가 타자를요?”


내가 봉정근의 이번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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