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아포칼립스 속 구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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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가로수
작품등록일 :
2024.08.01 13:41
최근연재일 :
2024.08.0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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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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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조직(1)

DUMMY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거 아니에요. 어려운 사이끼리 서로 돕고 사는 거죠.”


대장으로 보이는 여성이 냉랭한 목소리로 인사를 받았다. 여인의 키는 170 후반대인지 나보다 키가 컸으며 마나가 여유로운 모양인지 그녀의 몸 주위로 둘러진 마나 역장이 실시간으로 터져나가는 좀비들의 혈흔을 막아준다.


근육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여리여리한 몸은 겉보기에 전장과 어울리지 않았으나, 여인에게서 모종의 압박감이 느껴진다.


이 압박감은 내 정신적인 요소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여인은 겉보기에 평범한 각성자처럼 보였으나, 내 목숨을 수도 없이 살려준 직감이 속삭인다.


무리에서 가장 위협적인 건 폭탄을 던지는 여자도, S급 이능이라 여겨지는 중력 능력자도 아닌 저 여자라는 사실을.


보통 직감이 위험하다고 외칠 때 왜 그런지 짐작할 법한 요소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더욱 소름이 끼쳤다.


직감이 틀리지 않은 이상 여인은 자신의 경지를 완벽하게 속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니.


경지를 완벽하게 속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실력의 격차가 심하다는 걸 의미했다.


특히 나 같은 경우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마나 감응력이 장점이었으나, 그런 마나 감응력을 가진 나조차 여인의 경지를 짐작할 수 없었다.


이런 적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동료들을 몰살시킨 뱀파이어조차 어느 정도 경지를 짐작할 수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물론 경지를 감추는 것에 특화된 능력일 수도 있으나, 등에 식은땀이 맺힌 내 직감은 그녀가 뱀파이어보다 위험하다 외치고 있었다.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고.


다른 이들과 달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것도 긴장감에 한 몫했다.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게 마치 나를 살릴지 죽일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저승사자를 실제로 보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물론 좀비 떼 사이에서 구출해준 걸 보면 나를 다짜고짜 죽일 확률은 높지 않겠지만, 그녀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빛은 나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품고 있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래서 저에 대해 알아낸 게 있나요?”

“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와중, 여인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당황해 되물었다.


“저를 빤히 쳐다보셨잖아요. 뭔가 알아내려고 쳐다본 거 아닌가요?”


아뇨. 잔뜩 긴장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고개를 젓고 싶었으나, 육신과 심신 모두가 긴장된 상태여서 그런지 몸이 내 말을 잘 따라주지 않는다.


대신 여인의 옆에 있던 동료 중 주근깨가 특징적인 여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언니. 언니는 언니가 얼마나 예쁜지 인지해야 해요. 언니가 지나갈 때마다 남자 새끼들은 항상 음흉한 눈빛으로 언니를 쳐다본다니깐요?”


이어 경멸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 애새끼 눈빛도 똑같았어요. 나만 그렇게 느꼈어?”


그녀는 주위 동조를 구하려는 듯 옆의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말에 호응해주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쓴 중년 남성은 여자가 뭐라 하든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양새였고, 곰돌이 인형을 쥐고 있는 소년은 주근깨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밑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하여튼.”


기분이 좋지 않은 듯한 주근깨 여성은 혀를 차며 나를 향해 뭐라 말하려고 할 때였다.


“지연아. 그만.”

“하지만···.”

“판단은 내가 해. 가만히 있어.”


단호박 같은 여인의 말에 주근깨 여성은 입을 달싹거리다 입술을 꾹 깨물며 나를 노려보았다.


주근깨 여성의 기분은 상당히 좋지 않아 보였고, 그 원인이 나라는 사실은 자명해 보였다.


내 입장에서는 오해였으나, 막상 당사자인 나는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평소에 눈매가 나쁘다고 무수한 오해와 배척을 받아왔던 나로서, 이런 일은 익숙했고 나만의 해결법도 있었다.


저런 오해는 무시하면 된다. 오히려 저런 거에 일일이 매달리면 오해가 더욱 커지거나 설령 해결된다 한들 상대가 나를 만만하게 본다.


그래도 방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주근깨 여성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저승사자가 목소리에서 감정이 느껴지는 평범한 인간과 함께하지는 않을 터이니.


덕분에 긴장이 풀리며 머리가 돌아간다.


“희나리 소속. 맞으시죠?”


이들의 소속은 보자마자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정도로 뛰어난 각성자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전국에 세 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 중력 능력자를 가지고 있는 조직.

근방에 그런 조직은 세종시 대형 캠프인 희나리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있어요?”


천안에서 세종으로 가는 길목에 베드로의 영지가 가로막고 있어 희나리와의 교류가 직접적으로 있어본 적은 없으나, 커뮤니티에서 이들의 평은 나쁘지 않았다.


일신의 무력이 제일시 되는 세상임에도 각성하지 못한 이들도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받아들여주며 투표라는 민주적인 수단으로 우두머리를 뽑는 집단.


때문에 국내에서 비각성자가 수장인 유일한 집단이다.


커뮤니티의 이들은 비각성자의 명령에 따르는 희나리의 각성자들을 병신같다고 욕을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는 그만큼 안정적인 조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주어진 상황의 파편들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조립된다.


눈앞의 이들의 목적.

이건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중력 각성자, 폭탄마, 그리고 기억 속의 선글라스 남자는 신체능력만으로 혼자서 좀비 떼들을 뚫어내는 능력자. 그리고 경지조차 짐작하기 힘든 여인.


이들 존재 하나하나가 비대칭전력이다.


다른 캠프나 영지에 전쟁을 걸어도 무방할 전력이 뭉쳐서 이곳에 온 이유는 명확했다.


“베드로를 사냥하러 오셨죠?”

“맞아요.”

“당신에 대해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희나리의 상황에 대해서는 대충 알 것 같네요.”


이어지는 내 말에 내내 무미건조한 여인의 얼굴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오른쪽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간 것이었다.


“그래요? 어떨 것 같은데요?”


내가 무어라 대답할지 궁금해하는 여인의 질문에 나는 어떤 말을 꺼낼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베드로를 사냥하러 온 이유. 이 이유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군벌들이 득세하는 멸망해가는 세상 속에서 희나리는 보기 드문 민주주의 체제를 따르고 있으며 그 중에서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기에 행정수반은 유권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현재 세종의 상태는 전국 어느 조직보다도 유례없이 평화로운 상태이다. 주위 괴생명체들은 이미 거의 다 정리된 상태였으며, 자원도 넉넉하게 축적된 상태였다.


최전방에서 싸우는 각성자들은 목숨의 위협을 감내하면서까지 위험한 곳을 탐험할 생각이 없을테고, 비각성자들은 그들을 지켜야 할 각성자들이 위험한 곳으로 정찰을 떠나 본대의 전력이 약해지는 걸 선호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각성자를 비롯한 비각성자 유권자 모두가 불필요한 영지의 확장을 바라지 않을 터.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는 베드로의 영역을 저들이 신경 쓸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베드로의 부하들은 전부 좀비. 좀비는 생명체가 아니기에 마석을 떨구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도 비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희나리는 베드로의 영지를 방치해 놓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상당했다.


그러나 눈앞의 각성자 조직의 존재는 베드로의 사냥을 예고하고 있었고, 내 머리속에서 한 가지 게시글이 떠올랐다.


대전에서 열린 대형 게이트에 이레귤러가 나타났는데, 그 괴생명체가 대전 연합을 전멸시키고 위쪽으로 북상했다는 게시글이었다.


대전 연합에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각성자가 있기에 다들 헛소문으로 치부했으나, 만약 그 게시글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 소식이 희나리의 민간인들에게까지 유출되었다면?


이레귤러. 괴수들을 통솔하며 일반적인 괴수들과 궤를 달리하는 무력을 가진 괴생명체.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으로 꼽히는 각성자가 이끄는 조직을 소멸시키고 올라온다는 건 이레귤러가 이례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했고, 특출나게 뛰어난 각성자가 없다 알려진 세종의 민간인들은 불안에 떨 터.


이들은 정부에 적극적으로 피난을 요구할 확률이 높았으며, 이를 수용하는 세력도 분명 존재할 터이다.


위 같은 과정을 통해 베드로를 잡으러 온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기만 없애는 데 성공한다면 이곳은 지형이 험난해 수성하기 좋은 위치였다.


그러나 수뇌부들은 이레귤러와의 전투를 치르기 전부터 인력의 이탈을 반대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격렬한 다툼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즉. 희나리의 상황은 아주 개판일 가능성이 높았다.


가정에 가정을 거듭한 가설이었기에 헛된 망상일 수도 있으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았을 때 가장 가능성이 높다 생각되었다.


“정치 세력 간의 갈등이 평소보다 심화되었을 확률이 높을 것 같네요. 제 말이 맞나요?”


내 대답에 여인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예고 없이 던졌으나, 그 속도는 빠르지 않았기에 여유롭게 받은 나는 그녀가 던진 물건을 확인했다.


유리병 안에 담겨 있는 액체는 영롱하게 일렁인다. 척 보기만 해도 귀한 물건인 티가 났다.


“서울에 비해 전파도 잘 잡히지 않고 설비도 좋지 않은 저희 조직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아시나요?”


고개를 끄덕였다. 희나리가 대규모 세력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특출나게 강한 각성자를 보유하고 있지 않음에도 전국구 규모의 조직이 된 데에는 희나리의 특별함이 한몫 했다.


그건 바로 포션 제조법. 희나리에서 만들어진 포션은 특별했다. 충청 부근에 있던 많은 각성자들을 비롯해 능력 있는 비각성자들이 세종으로 모여들게 할 정도로.


각성한 이의 잠재력을 쉽게 개화시켜주는 포션이 있는가 하면 불치병이라 알려진 질환을 단 번에 낫게 하는 포션도 있었다.

위와 같은 최상급 포션 외에도 희나리에는 뛰어난 품질의 포션이 많았으며, 이는 포션이 생명줄 역할을 하는 지금 시대에 큰 메리트였다.


내 손 안에 있는 포션이 희나리의 최상품인지는 모르겠으나, 병 안에 찰랑이는 파란색 액체 안에는 마나 외에 불순물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걸 봐서는 상등품인 건 분명했다.


먹구름이 잔뜩 껴 어두워진 공간에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내 주위를 훤하게 만들 정도였다. 무협 세계 속에서 등장하는 영약이 이런 느낌이려나?


일단 목구멍 안으로 넘기기 전에 나는 뚜껑을 따려던 움직임을 멈추곤 여인의 눈치를 한 번 살폈다.


이치에 맞지 않은 과도한 보상을 입안으로 넘기면 뒷감당이 쉽지 않았다. 겨우 퀴즈 하나 맞춘 내가 이런 보상을 얻는 게 맞을까? 먹어도 뒤탈이 없는 걸까?


고민되었으나 여인의 표정은 시종일관 똑같았다.


“마셔요. 정황 유추만으로 정답에 거의 근접한 당신한테 주는 선물이니깐요.”


내가 말한 답변이 이렇게 보상을 줄 정도인가?


여인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기에 더욱 고민되었으나, 고민 끝에 나는 뚜껑을 열고 입안에 넣었다.

옛 말에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루종일 과도하게 혹사당한 전신이 비명을 내지른다. 관절 한 마디 한 마디가 부러질 것만 같으며 더욱 심각한 건 마나를 과도하게 사용해 마나 탈진 상태였다.


지금은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와 그럭저럭 버틸만하나, 마나 탈진을 회복하려면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지.


매일마다 전신이 날카로운 침으로 쑤셔지는 고통을 느끼면서 말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비각성자인 나는 육체를 혹사하며 싸우기에 마나 탈진에 걸린 상태가 많으나, 그럴 때마다 이후의 후유증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다.


갖가지 포션을 먹으며 몸을 회복하려 해도 마나 탈진은 일반적인 포션으로 치료가 힘들었다. 그저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역할만 해줄 뿐.


하지만 희나리의 마나 포션이라면 다르겠지. 마나 탈진 회복은 물론이고 신체를 잠식한 마비독까지 치료해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외에도 부수적인 효과가 있지 않을까?


어렴풋한 기대를 품으며 나는 포션을 목구멍 안으로 넘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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