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아포칼립스 속 구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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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가로수
작품등록일 :
2024.08.01 13:41
최근연재일 :
2024.08.0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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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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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1)

DUMMY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대부분 넘어가 사물들이 흐릿하게 보이는 시간대였다.

날씨조차 먹구름이 잔뜩 낀 채 비만 주룩주룩 내려 시야에 방해되는 요소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싸움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으나,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 강행군을 주장하며 먼저 달려나갔다.


그리고 강행군에 이유가 있었다는 듯.


콰앙!!!


핵이라도 떨어진 것 마냥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한순간 주위가 밝아졌고 산 전체를 진동시키는 거대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다들 괜찮아?!”


다행인 건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폭발이 발생한 모양인지 동료들에게 큰 피해는 없다는 점이었다.


동료들이 멀쩡한 걸 확인한 강지연은 이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은 사이가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해 온 전우였다.


무수히 많은 전투들을 함께 해 온 결과, 어지간한 소통은 눈빛만으로도 가능했고, 서로의 눈빛을 알아들은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앞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으니 좀비들을 무시하고 일행과 합류하자는 것.


신입의 전투력은 자세히 알지 못하나, 최수범과 그녀의 팀장의 전투력은 희나리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히는 LV 5이다.


그 둘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드나, 저 폭발은 규격 외였다.


어쩌면··· 팀 내 첫 사상자가 나왔을 지도···.


불길한 상상을 머릿속에서 떨쳐내며 강지연은 몸 안의 마나를 쭉쭉 배출하며 서둘러 뛰어갔다.


마나 제어력이 뛰어나지 않기에 다른 이들처럼 민첩하게 달릴 수는 없으나, 막대한 양의 마나를 품고 있는 그녀는 마나를 무식하게 배출하며 그 반동으로 투박하게 달릴 수는 있다.


물론 금방 체력이 소진되어 결국에 뒤처지긴 하나,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그녀의 마나 때문에 접근해오는 좀비들이 감전되어 떨어져 나간다.


“먼저 가요···! 제 몸은··· 제가 알아서 챙길 수 있으니깐.”


헐떡거리는 숨을 내몰아쉬며 다급하게 말했으나, 오히려 장태식은 뜀박질을 멈추더니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어지간히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장태식은 팀원과 의사소통을 일절 하지 않는다. 그런 장태식이 무언가를 가리킨다.


시선을 돌려 장태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허공을 가르는 한 줌의 재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무릅쓰고 덤벼들던 좀비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좀비들이 재로 변하고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은 단 한 가지를 의미했다. 조종체의 죽음.


먼저 간 이들이 구울의 제거에 성공한 것이다.


감각을 곤두세우니 사방을 둘러싼 사기도 한층 옅어진 게 느껴진다.


임무의 성공을 확인하자 온몸에서 힘이 풀린다.


지구에 게이트라는 악몽이 발생한 지 어느새 오 년이 지났다.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했으나, 베드로 같이 별칭이 붙은 네임드 괴수를 제거하는 임무는 성공률이 극도로 낮았다.


네임드 괴수는 괴수 주제에 별칭이 붙은 괴수. 그만큼 까다롭기에 별칭이 붙은 것이었다.

제각기 가지고 있는 특수 능력은 상대하기 까다로웠으며, 심지어 영악함은 인간 이상이었다.


네임드 괴수답게 베드로도 마찬가지였다.


귀신 같이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상대가 있으면 좀비만 보내고, 본인은 숨어버리곤 했다.


극에 달한 베드로의 은신술은 아무도 간파해내지 못했고, 토벌하러 온 이들은 시간만 허비한 채 제 영지로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그런 식으로 베드로는 주위 영지를 사기로 잠식시켰고, 끝내 세종과 천안을 잇는 영지 대부분이 베드로의 손에 떨어졌다.


베드로와 영지를 맞닿는 천안 캠프를 제외하곤 베드로를 토벌하려 했던 조직들은 전부 손을 뗐다.


희나리도 마찬가지였고, 이게 벌써 삼 년 전 이야기였다.


베드로에 관한 문헌은 인간으로 변장을 할 수 있는 구울이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말 말고는 별 이야기가 없었다.


베드로라는 존재가 다른 구울과 다르게 불사라는 정보도 없었으며 우연히 만난 소년, 정다온이 없었다면 토벌에 실패했겠지.


강지연은 기이할 정도로 피부가 창백하며 눈의 다크서클이 특징적인 소년 정다온을 떠올렸다.


정다온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실례일 정도로 이다인을 빤히 쳐다보는 소년의 모습은 본인의 욕망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남자의 표정이었다.

이다인의 외모는 아포칼립스 전, TV에 나오는 연예인 뺨친다 하지만, 초면인 사람을 그리 빤히 쳐다보는 것, 그것도 음침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애초에 자신과 다른 성별을 싫어하는 강지연이다. 남자 중에서 제대로 된 인간은 거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정다온도 그 중 하나라 생각했다. 힘은 없지만, 욕망에 휩싸여 뒤에서 흉계를 꾸미는 음흉한 인간.

그런 하찮은 남자 중 하나라 생각했기에 그를 향한 이유 모를 팀장 님의 호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정다온의 퍼포먼스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소멸되기 전까지 베드로와 부대끼던 천안 캠프 출신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지 그는 누구보다 베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능력도 생각 이상으로 출중했다. 처음 봤을 때 좀비한테 고전하던 그의 모습은 잘 쳐줘봤자 LV 2 수준이었다.


단순 육체 강화 능력을 각성한 듯했으며, 반응속도조차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그녀의 오산이었으니.


물약을 먹고 회복한 정다온은 첫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나를 최대한 뿜어내며 달려도 도저히 그의 그림자조차 따라잡을 수 없었다.


육체 능력 계열 각성자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육체의 출력이었다. 그는 충분히 LV 4, 아무리 못해도 LV 3에 달하는 인재였다.


문득 초면에 그한테 삐딱하게 굴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시대에 한 조직이 소멸되었다는 건 그에 속한 사람의 대부분이 죽었다는 것일 터.

조직이 작을수록 그만큼 조직원들 간의 관계는 끈끈했다. 소년은 그만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터인데, 아무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본인의 사사로운 감정은 가슴 속에 묻어두고 타인에게 화풀이하지 않는다. 본인의 사사로운 편견으로 첫만남부터 함부로 대했던 자신과는 정반대인 소년의 모습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정다온을 보면 사과부터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싸움이 발생했던 장소로 추정되는 장소에 도착했다.


휴. 규격 외의 폭발과 별개로 아무도 다치지 않은 모양인지 모두 멀쩡했다.


최수범은 평소처럼 너덜너덜해진 곰돌이 인형을 만지작대고 있었고, 정다온은 세상 편하게 자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다만, 문제는···.


이다인의 무릎 위에서 편히 자고 있는 정다온을 본 강지연은 속이 뒤집혔다.

어째서 저 새끼가 자신도 받아본 적 없는 대접을 받고 있는 거지? 언니의 무릎에서 잠을 자는 건 자신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인데···.


심지어 이다인은 정다온을 위해서 마나를 운용해 비를 막아 주기까지 했다.


표정관리를 하려 했으나, 찌푸려지는 인상은 뇌의 명령을 거부했다.

자연스레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야. 야. 일어나. 지금이 잘 시간이야? 한시라도 빨리 부대에 복귀해야 하는데.”


심통이 난 강지연이 발로 정다온을 툭툭 건드렸으나, 이다인이 손을 내밀며 그녀를 말렸다.


“고생했으니 그냥 냅둬.”


보호하는 모습에 더 부아가 치밀어 올랐으나, 그렇다고 언니한테 짜증을 낼 수는 없다. 경련이 일어나는 입꼬리를 억지로 들어 올리며 강지연이 물었다.


“얘가 뭐를 했는데요···?”

“많은 걸 했지.”


강지연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이다인은 당시 상황을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평소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로 무미건조한 목소리와 달리 약간 상기된 듯한 목소리였다.


“우리가 라이프 베슬이 위치한 곳에 도착했을 때 말이지···.”



***



“이상 보고를 마칩니다.”

“이레귤러가 이레귤러를 소환한다라···.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한숨을 내쉬며 고영수는 이다인의 보고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다인은 그런 그녀의 상사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상사가 아닌 상사의 머리 상태를 쳐다보았다.


“그래···. 고생 많았다.”


서류 더미에 파묻힌 그녀의 상사이자 희나리의 장을 맡고 있는 고영수는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싸잡으며 이다인을 바라보았다.


육안으로도 셀 수 있을 정도로 얼마 남지 않는 머리카락이 책상 위로 떨어지는 걸 보며 이다인은 잠시 눈을 감고 묵념했다.


“그래서 피난 갈 장소로는 알맞지 않다고?”


추례해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눈빛만큼은 살아있다. 별의별 사건을 겪고도 희나리의 통수권을 쥐고 있는 사람답게 비각성자임에도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할 줄 안다.


고영수의 날카로운 눈빛이 이다인을 속속들이 꿰뚫는다.


“네. 사기를 무시하고 온다면 감염자가 발생할 거예요. 비각성자가 살 정도로 정화되려면 적어도 일 년은 기다려야해요.”


고영수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다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고영수와 함께 한 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그만큼 고영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고영수의 예기 어린 눈빛은 적대의 표시가 아닌 집중을 기울일 때 짓는 습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에휴···.”


긴 한숨을 내뱉으며 고영수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너희 조 말고는 전부 실패했다. 그래서 임무를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하나 줄었다 생각했건만···. 오히려 생각할 거리만 늘어버렸네.”

"다른 곳 탐사하고 올까요?”


또 한 올 더 떨어졌다. 이러다 두피에 머리카락이 없어지는 건 금방일 터. 시선은 머리카락에 간 채 이다인이 물었다.


“아니. 대전을 괴멸시킨 이레귤러가 북상하고 있어. 일주일 안에 도착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그렇다는 건?”

“선택지가 없어.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민간인들의 대피는 없다.”

“반발이 심할 텐데요?”

“연임 욕심을 버리니 지지율 같은 건 무섭지 않더라.”

“그래요? 그런 것 치고는 되게 열심이시던데?”

“그래도 선출된 이상 임기는 안정적으로 마쳐야지.”


어느새 담배를 다 피운 고영수는 담뱃재를 재떨이에 털며 이다인을 응시했다.


“그래서 나한테 말하고 싶은 게 뭐지?”


남의 생각을 읽는 데 특화되어 있지 생각을 읽혀본 적은 드물었다. 무기질적인 목소리와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그녀의 생각을 읽어내는 인물은 거의 없었으나, 고영수는 예외였다.


천생이 정치인이기 때문일까? 비각성자임에도 고영수는 이다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눈치채곤 한다.

그렇기에 이다인은 그 어떤 괴수와 싸울 때보다 고영수의 집무실에 들어갈 때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들어간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감이야. 너도 늙으면 알게 될 거야. 나이 먹을수록 유일하게 좋은 점이 눈치가 빨라진다는 점이지.”


글쎄. 사실 고영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이다인의 입장에서 그다지 공감되지 않는 말이었다.


고영수의 귀신 같은 직감은 단지 고영수 개인의 재능일 뿐. 나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잡생각을 떨쳐내며 이다인은 품 안에서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를 건네받은 고영수는 하품하며 대충 서류를 훑어보았으나, 서류의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눈이 점점 커지며 서류를 붙잡고 있던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이게 전부 사실이냐?”

“그럼 제가 거짓을 담았겠어요?”


서류에는 한 인물에 대한 활약상이 담겨 있었다. 희나리의 소속이 아닌 인물이나, 베드로의 토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의 활약상이었다.


이다인이 올린 보고서에는 단순한 사실만 들어갔을 뿐, 개인의 활약상에 대해선 다루지 않았다. 그저 여태까지처럼 이다인의 통제 하에 임무를 해결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다인이 건넨 서류에 의하면 이번 임무에서 이다인이 한 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새로 합류한 인물의 도움이 없었다면 기한 내에 베드로를 토벌하지 못했을 것이며 베드로가 소환한 이형의 존재를 역소환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건.


“이 활약을 펼친 게··· 비각성자라고···?”


솔직히 쉽사리 믿기 힘들었다. 나이가 어린 것도 어린 것이지만, 이능이 존재하지 않으며 마나 다루는 능력도 각성자보다 떨어지는 비각성자가 각성자를 뛰어넘는 무력을 지닌 건 불가능하다 여겨진 일이었다.


신체능력을 비롯해 마나를 다루는 능력 등 종합적인 모든 능력이 각성자에 비해 뒤떨어졌으며 심지어 각성자들은 개인마다 특수한 이능이 존재한다.


훈련받은 각성자는 비각성자가 아무리 용을 써봤자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 세상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실력이 뛰어난 인물들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이다인이 굳이 이런 일로 거짓말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영감도 소문 한 번 들어봤을 걸요? 천안제일검이라고.”

“천안제일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이름 그대로 천안에서 가장 무력이 강한 인물을 의미했다.


다만, 소문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것이 천안제일검이라 불리는 인물이 나이가 고작 14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그것도 이능을 각성하지 못한 비각성자라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와전된 소문이라 모두들 생각했으나, 이다인이 건넨 서류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모두의 생각과 달리 오히려 소문이 사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격이었다.


“나한테 이런 정보를 공개하는 이유는···. 팀원으로 영입하려는 모양이구나?”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정보를 이다인이 공개한 이유는 명확했다. 인재에 대한 욕심이 큰 그녀는 외부적으로 심각한 결함이 있더라도 뛰어난 실력만 존재하면 팀원으로 영입했다.


그녀가 보기에 정다온은 낚아채야 할 인재라는 것이겠지.


이다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영수는 흔쾌히 이다인의 부탁을 승낙했다.


“그래. 그렇게 하지.”


이다인의 팀에 전력이 편중되어 있다는 논란이 있기는 했으나, 새롭게 추가되는 인원은 표면 상으로 비각성자로 알려져 있다.


누구도 비각성자가 이다인이 올린 보고서처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터.


실력만 감춘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이다인의 말에 고영수의 표정은 굳었다.


“경연에 참석시킬 생각이에요.”


그녀가 말하는 경연이란 한 가지를 의미했다.

명목 상으로는 희나리를 이끌 차세대 각성자들을 가려내는 프로그램이며 실제 목적은 각성자들의 실력을 보여줘 다가올 재앙에 민간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만든 TV 프로그램이다.


어찌되었든 경연에서 빼어난 실력을 보여준 이들은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터.


이다인의 보고서에 담긴 정다온의 행적이 절반이라도 사실이더라도 모두가 주목할 법했다. 차세대 각성자 중에서 이 정도로 빼어난 실력을 가진 이는 거의 없었으니.


정다온이 실력을 드러낸다면 비각성자라는 프레임은 벗겨질 것이고, 모두가 정다온을 각자의 팀에 영입하기 위해 손을 쓸 것이다.


그런데 정다온이 이미 이다인의 부대에서 낚아챘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고영수는 고민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이다인의 팀에 전력이 편중되어 있다는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상태이다.


희나리에는 4개의 특수부대가 있는데, 누가 봐도 이다인의 부대가 타 부대의 전력보다 압도적이었다.

여태껏 이다인의 팀원들은 하나 같이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외면 받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기에 여태껏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여기서 모두가 탐낼 법한 전력이 하나 더 추가된다면 각 팀 팀장들의 거센 반발이 눈에 선명했다.


흐음.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고영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각 소속에 속한 이들이 지랄할 미래가 뻔히 보였다. 잘못하다간 희나리의 주된 권력을 쥔 길드들과 적대하게 될 터.


선택의 시간이다. 여태까지처럼 길드들의 눈치를 봐야 할지 아니면 독자적인 길을 나아가야 할지.


희나리의 특수부대는 희나리라는 조직의 직속이 아닌 희나리에 속한 길드의 직속인 형태였다.

각 특수부대는 각 길드의 후원을 받곤 했으나, 유일하게 그렇지 않은 형태가 있으니 그게 바로 이다인의 부대였다.


책상을 두드리던 고영수의 손가락이 멈췄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그는 전화기를 매만졌다.


“어어. 나야. 이번 경연에 새로운 인원이 참가할 거야. 이름이 뭐냐고? 정다온. 그래. 고맙네.”


전화를 마친 그는 이다인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러면 되겠나?”

“네. 고마워요.”

“그래. 오늘 일을 잊지 말라고. 무리해서 네 부탁을 들어준 거니깐 말이지.”

“명심하죠.”


믿어도 되겠지. 다른 이들과 달리 의중을 전혀 읽을 수 없으나, 그래도 한 번 한 말은 무조건 지키는 여자이다.

고개를 까닥인 이다인이 집무실 밖으로 나가자 고영수는 의자를 뒤로 제치며 다시 담배를 꺼냈다.


오랜만의 살 떨리는 결단이었기 때문일까? 담배를 꺼내는 그의 손에 땀이 축축했다.


애써 땀을 닦으며 그는 길드를 적대하는 선택을 한 이유를 뇌까렸다.


희나리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길드를 등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다인을 그의 쪽으로 끌어들인 건 큰 성과이다.


이다인과 그의 조원들 개개인의 강력함도 그의 선택에 한 몫했으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다온의 특수성이었다.

비각성자이지만, 각성자보다 월등한 실력을 지닌 소년의 특수성은 그의 정치 인생을 송두리 바쳐 도박 걸 만했다.


아무리 희나리가 비각성자들에게도 기회의 장을 열어준다지만, 분명히 각성자와 비각성자 사이의 암묵적인 신분 차이가 존재했다.


날이 갈수록 비각성자들의 불만은 쌓여갔으며 그 도화선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각성자를 뛰어넘는 비각성자가 등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각성자는 정다온의 존재에 열광할 것이며 희나리 인구의 2/3을 담당하는 비각성자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길드들의 지지 없이도 연임이 가능할지 모른다.


일단 그러기 위해선 이다인 뿐만 아니라 정다온 개인과도 연을 만들어 필요가 있어 보인다.

소년이 어떤 성정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해 나갈 수 있다.


다행히 천운이 따라준다랄까? 그한테는 정다온과 친밀해질 계기가 있었다.

다시 전화기를 매만진 고영수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래. 나야. 천안 캠프 생존자 있지? 최대한 정중하게 집무실로 모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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