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아포칼립스 속 구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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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가로수
작품등록일 :
2024.08.01 13:41
최근연재일 :
2024.08.0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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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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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뒤틀다(2)

DUMMY

괴수들이 몰려온다.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칼을 뽑아야 한다.

하지만 중추신경계가 말을 듣지 않는다. 분명 나의 눈은 뇌에 적이 들어왔다는 신호를 보냈으나,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말을 듣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같은 막사의 동료들은 아예 움직이지조차 못했다.

신경이 마비되었는지 그저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릴 뿐이었다.


이 같은 현상은 생화학무기가 분명했다. 대체 누가?


천안을 장악한 괴수, 좀비한테는 이런 능력이 없다.

마찬가지로 최근 우리가 적대하던 뱀파이어 무리한테도 이런 능력은 없었다.


이 개 같은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은 여러 개 있으나, 내 직감이 외쳤다.

막사 안에 배신자가 있다고.


방어 체제가 해제되었기에 막사 내를 괴수가 헤집고 다녀도 아무 소리가 울리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괴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생화학무기가 막사 내에 풀어져 동료들이 맥없이 죽어 나간다.


당연히 생화학 무기는 철저한 보안 속에 관리되고 있다. 생체 인식을 하지 않고 억지로 들어갈 시 설치된 마나 광선이 생화학 무기를 넘보려는 이들을 갈갈이 찢어발긴다.

틈 하나 없이 설치된 마나 광선은 공간 자체를 부수지 않는 이상 뚫는 건 불가능했다.


머리가 빠르게 굴러간다. 신경이 마비되었으나, 위급 상황이어서 그런지 두뇌가 평소보다 빠르게 돌아간다.


최근 수상쩍은 행적을 보인 몇몇 인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이 중 생화학 무기에 접근하고 살포할 수 있는 인원은···.

금세 결론이 나왔다. 황혜나. 그 미친 년이 이런 개짓거리를 저질렀을 확률이 상당했다.


그녀가 배신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그녀가 주장한 의견들, 약탈자들을 상대로 생체실험 한다든가 적대 조직을 상대로 생화학 무기를 풀어버리자는 주장, 평소 동료들과 상당한 갈등을 겪는 등 심증은 많았다.


무엇보다 생화학 무기를 만든 장본인이 그녀였다. 살포하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마음만 같아선 배신자를 색출해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으나, 지금 중요한 건 배신자의 처단이 아니다.


배신자가 누구든 간에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경이 마비된 동료들의 구명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가까스로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낸 나는 단숨에 허벅지를 내리찍었다.


있는 힘껏 찔렀음에도 그렇게 큰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마 신경이 망가진 까닭이겠지.


그래도 다행히 효과가 있는 모양인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까보다 비교적 손발이 자유로워졌다.


이제 뭘 해야 되지?


막사에 있는 동료들을 지키는 것?


시선을 돌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움직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노력의 결과는 고작 손가락 끝마디의 꿈틀거림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입을 뻐끔거린다.


“다...ㅣ···자..ㅇ. 도···마···.”


혀의 신경도 마비된 모양인지 발음이 뭉개진 상태였으나,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동료들이 무슨 말을 할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무력한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치라는 뜻이겠지.


그럴 순 없다. 싸우는 데 걸리적 걸린다는 이유로 전우를 버렸다면 진작에 그랬다.


두 눈이 충혈된 상태로 칼을 빼든 나는 문 밖의 어슬렁거리는 뱀파이어들을 노려보았다.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당장에라도 검을 떨어트릴 것만 같았다. 과연 이 상태로 검을 휘두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며 체내의 마나로 신경의 마비를 막아냈으나, 신경 마비는 시간문제였다. 이미 체내로 침투한 독은 내 쥐꼬리만한 마나로 막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신력으로 몸이 마비되어가는 고통을 버티며 그저 신경의 마비를 최대한 늦추는 것뿐이었다.


생명력과 연관되어 있는 마나를 끌어내려 해도 신경의 마비 때문에 진기조차 끌어낼 수 없었다.


그래도 내 상태는 동료들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움직이지조차 못하는 동료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실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내가 지키지 않는 한, 이들의 죽음은 확정적이었다.

내가 이들을 지켜야 한다. 나는 뒤에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흘깃 바라보았다. 같은 막사를 사용하고 있는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형과 아저씨들.

저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나이 어린 내가 상사임에도 최대한 내 의견을 존중해주며 군말 없이 따르는 이들이다.

다른 소속의 각성자들이 나를 비웃는 일이 생기면 자신의 일처럼 화를 내던 이들이 바로 저들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 나보고 도망치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자신의 목숨이 최우선되는 이 험악한 세상 속에 찾아보기 힘든 전우들이다.


그런 이들을 어떻게 버리겠는가? 친누나와 다름없는 민주 누나가 걱정되기기는 했으나, 민주 누나는 나와 달리 고위 이능을 각성한 재능 뛰어난 각성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녀는 멀쩡할 것이기에 몰려드는 뱀파이어들을 전부 처리하고 합류하면 된다.

애써 불안함을 감추고 검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슈슝.


내 뒤편, 쓰러져 있는 동료들 사이에서 푸른 빛이 솟아오른다. 잇따라 신경이 마비되어 있던 동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손에 쥔 검 손잡이를 잡는 힘이 자연스레 강해진다.


저 파란색 광선은 순간이동. 천안 캠프의 부대장이자 내게 있어 친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인 김민주의 능력이다.


누나는 타인을 특정 지역으로 순간이동 시키는 능력을 각성했다. 언뜻 듣기에 이보다 사기적인 능력은 없어 보이나, 당연히 능력에 제약이 있었다.


일단 타인과 신체의 부위가 맞닿아야 능력이 발동되며 능력이 한 번 발동할 때마다 거리에 상관없이 상당한 마력이 소모된다.


아무리 몸 상태가 좋아도 3명 이상 순간이동 시키는 건 무리이며 그녀와 몸이 닿지 않는 이를 순간이동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능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이는 누나 뿐만 아니라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모든 이들에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마나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아는 이들은 본인의 생명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마력을 느낄 수 있는데, 무협 속 진원진기라는 용어가 딱 어울리는 이 마력은 사용할시 평소 능력을 뛰어넘는 과도한 힘을 한순간 얻을 수 있다.

다만 그 대가로 사용한 힘에 따라 생명력이 깎이는 반작용이 발생한다.


인류는 생명의 근원에 쌓여있는 마나 일명 진기를 이용해 허공에 게이트가 열리는 악재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물며 약한 각성자라도 진기를 사용한다면 강력한 존재가 되는데 재능이 특별한 각성자가 진기를 몸에 받아들인다면 그 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누나가 진기를 사용했을 시, 신체 부위가 맞닿지 않더라도 타인을 순간이동 시킬 수 있었으며, 지금 발생하고 있는 푸른 빛이 그 결과물이었다.


예전에 한 번, 누나는 생명력을 깎아 능력을 발현시킨 적이 있었다.


당시 고작 두 명만을 순간이동 시켰으나, 진기를 발현한 대가는 참혹했다. 머리에 새치가 나기 시작했으며, 주름 하나 없던 얼굴에 주름살이 깊게 파였다.

20대였던 누나는 50대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폭삭 늙어버렸다.


천안 캠프는 규모가 50명 가까이 되는 중형 세력.


모든 이들의 생명이 귀중하다 생각하는 그녀이기에 모두가 안전해질 때까지 능력을 끊지 않을 게 자명했다. 설령 그 결과에게 자신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한들 말이다.


그런 미래는 납득 못한다. 캠프의 인물 모두가 소중했으나, 나에게 있어 캠프 인물 중 가장 소중한 인물은 누나였다.


고아원 시절부터 같이 지내온 누나는 나에게 있어 어머니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천애고아였던 나에게 사람의 정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것이 그녀였다.


아직도 모두의 배척을 받던 나에게 손길을 내민 누나의 왜소한 손바닥을 잊지 못한다. 아직도 열이 펄펄 끓어 일주일 동안 침상에 누워있을 때 누나가 끓여준 죽의 맛을 잊지 못한다.


문 밖 복도로 향한 나는 다가오는 뱀파이어들을 전부 베어냈다. 베어내고 또 베어내고.

신경의 마비 때문에 움직임이 느려졌으나, 그렇다면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면 그만이다.


치명적인 공격만 피하고 나머진 맞아준다.


그저 무아지경으로 뱀파이어 무리를 뚫고 가까스로 가스로 잠식된 실내를 벗어나 외부로 탈출했다.


신선한 공기가 폐 안으로 흡수된다. 동시에 갑작스러운 기온 저하에 온 몸을 감싸고 있던 아드레날린이 떨어진다.


밤은 칠흑 같이 어두웠으나, 유독 빛나는 별빛 때문인지 눈앞의 광경이 훤히 보였다.


사방에 동료들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으며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이 모든 광경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다리를 절뚝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야 보인다. 민주 누나. 그리고 캠프의 대장이자 괴수들이 민주 누나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발버둥치는 상무 아저씨.


둘의 머리는 새치가 왔다 못해 새하얀 색이었다. 그것도 윤기 넘치는 백발이 아닌 곧 있으면 숨이 넘어갈 듯한 푸석푸석한 머리카락.


누나의 결연한 눈빛과 마주치자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누나는 이곳을 묻힐 장소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뛰어난 마나 감응력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려주었다. 진기에 쌓인 모든 마나를 사용한 누나는 설령 순간이동을 사용해 여기서 벗어난다 한들 죽는다는 사실을.


눈이 뒤집힌다. 온 몸을 엄습해오는 온갖 고통을 무시하고 본능적으로 뱀파이어 무리를 향해 달려들어 갖가지 방법으로 생명줄을 끊어냈다.


어느새 정신 차리고 보니 누나의 앞이었다.


나를 본 누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자글자글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매만졌다.


“다온아. 누나가 항상 널 사랑하고 있는 거 알고 있지?”


너덜너덜해진 피부에 입가에 주름이 가득했으나, 누나의 처연한 웃음은 내가 본 웃음 중 가장 아름다웠다.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다 못해 온몸의 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불길한 웃음이었다.


“누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네가 살아남았으면 해. 상무 아저씨.”


누나의 말에 뱀파이어와 그 주위의 괴수들을 염동력으로 억누르고 있던 상무 아저씨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든 생명력을 사용해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얻은 모양인지 상무 아저씨의 눈을 비롯해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천안 캠프를 이끄는 수장답게 청명하고 확고했으니.


그런 그가 나를 향해 팔을 뻗으며 말했다.


“속박해.”


순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민주 누나의 눈빛을 보자마자 그들이 뭔 짓을 하려는지 눈치챘다.


“안 돼! 안된다고! 나도 여기서 죽을 거야!”


온힘을 끌어내 발버둥쳐 몸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는 염력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내가 발버둥치면 칠수록. 아저씨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아저씨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에 순간 나는 발작을 멈췄다.


그리고 그 약간의 망설임 사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런 못난 누나를 둬서. 꼭 행복해야 돼.”


흐느끼며 내 몸을 꽉 껴안는 누나의 체온이 느껴진다. 파란색 입자가 내 몸을 감싸 안는다.


아. 이미 늦었구나. 능력은 발동되었고, 전신에 마비독이 스며들어 이미 한계에 다다른 내가 누나의 능력에 저항할 방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 같아선 누나와 여기서 죽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후회가 남지 않도록···.


“미안할 필요 없어. 모두를 구하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가짐 덕분에 나 역시 구원받았으니깐.”


이승에서 보는 마지막 순간이다. 지금 말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없다.


“누나는 죽지 않아. 남들은 다 까먹어도 내가 기억할게. 웃을 때 코를 바들바들 떠는 누나의 습관, 우유 마실 때 눈을 찡그리는 귀여움, 모두가 절망을 외칠 때 혼자서 희망을 외치는 누나의 당당함, 사소한 것까지 모두 내가 기억할게.”


누나의 눈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고이기 시작한다. 그녀는 물기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심히 떨렸다.


“그···래. 다음 생애는··· 우리 꼭··· 평범한, 화목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평범하게···.”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곤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그녀의 뺨을 어루만져주려 할 때.


입자가 화함과 동시에 시야가 새파랗게 물들었다.


그리곤.


나는 온갖 기물들이 부서진 대형 마트 안으로 전송되었다.


그 안에는 좀비들이 게걸스럽게 정육점 안의 고기를 뜯어 물고 있었다. 뜬금없이 나타난 나와 좀비의 눈이 마주쳤고.


그으으을.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내며 좀비들이 달려들었다.



***



회상이 끝나고 칠흑의 어둠이 나를 감쌌다. 복수 이외의 감정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갖가지 감정들이 휘몰아친다.


분노, 슬픔, 후회, 그리움. 갖가지 감정들이 뭉쳐 가슴을 짓누른다.


민주 누나였다면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감정을 다스렸을까?


적어도 과거에 얽매어 현실을 도피하진 않았겠지.


주위에 굉음이 울려 퍼진다. 전보다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은 내 의식의 각성을 촉구했다.

눈을 뜬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나는 공중에 둥둥 떠 있었고, 옆에는 최수범이 있었다. 최수범의 이능으로 인해 둥둥 떠 있는 모양이다.

그 앞에서는··· 미래 예지에서 본 이레귤러, 두피에 왕관을 쓴 해골이 손가락을 까닥이고 있었다.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일 때마다 공간이 일그러진다. 미래 예지에서 봤던 장면과 일치했다.


암흑으로 가득 찬 구가 생겨나 근방의 모든 것들을 미친듯이 흡수한다. 공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암흑만이 공간에 넘실거릴 뿐이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공간이었다.


결국 막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점은 헛된 발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미래 예지처럼 해골의 장비가 완전하지 않았다.

미래 예지와 달리 해골은 지팡이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형체도 완전하지 못했다.

뼈의 부분 부분이 비어 있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해골의 기술도 그 규모가 미래 예지에서 본 것처럼 위력적이지 않았다.

해골이 무의 공간을 남발하는데도 공간의 일그러짐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저 마나를 비롯해 수소 같은 질량이 가벼운 원소들만 빨아들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위협적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적어도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해골의 공격은 이다인을 스치지조차 못했으며, 이다인의 칼질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미래 예지와 달리 아직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사망자가 없다는 건 아직 미래를 바꾸기에 늦지 않았다는 걸 시사한다.


그렇다고 낙관적인 것도 아니었으니, 이다인을 비롯한 최수범의 공격은 해골에게 치명타를 주지 못했다.


해골은 자신의 뼈 사이에 파묻혀 있는 마나 핵만큼은 공격당하지 않도록 방어했고, 이다인과 최수범의 공격은 해골의 견고한 방어를 뚫지 못했다.


주위의 사기가 점점 해골의 몸으로 흡수되는 게 느껴진다. 그럴수록 해골의 형체가 완전해지며 내부에 머금은 마나의 질도 올라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게 자명한 상황이다.


나라도 무언가 해야 한다.


몸을 흔들자 최수범이 잠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나한테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손을 이리저리 흔들었으나, 당연하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벙어리인가? 왜 말로 하지 않지? 의문이 들었으나, 대충 눈치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드러운 기분과 달리 몸상태는 최상이었다. 이보다 몸상태가 좋은 적이 없을 정도였다.


분명 가용 가능한 모든 마나를 불태워 달렸음에도 마나가 가득 차 있었다. 아니. 혈도에 마나가 가득 찬 걸 넘어 마나를 사용하더라도 허공의 마나를 곧바로 정제해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쓰러진 동안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한테 포션을 먹였겠지. 아까 먹었던 상급 포션을 아득히 능가하는 효능이다. 분명 최상급 포션이다.


상급 포션은 치명적인 부상을 눈 깜짝할 사이에 완벽하게 치료한다면 최상급 포션은 그걸 넘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도핑 효과까지 부여해준다.

내가 앞으로 평생을 싸운다 한들 과연 이 정도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경지였다.


압도적인 고양감, 환희, 전능감 같은 감정을 비롯해 세상 모든 걸 할 수 있을 듯한 전율이 온몸을 감돈다. 과장해서 말하면 마치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위 막론하고 희나리의 최상급 포션을 그토록 갈구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포션의 효능은 내 상상 그 이상이었다.


최수범의 손짓을 알아들을 수 없으나, 포션의 효능을 맛본 나는 그가 어떤 말을 하려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분명 포션 값하라고 말하는 것이겠지.

최상급 포션을 마시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포션을 먹인 의미가 없으니.


나한테 기대가 있으니 최상급 포션을 먹였을 테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해줘야 한다.


다행히 나한테는 기술이 있었다. 여태껏 구현에 실패한 상상 속의 기술이었으나··· 비각성자의 고질적인 문제인 마나의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지금이라면··· 최상을 넘어선 지금의 컨디션이라면 할 수 있다.


저들의 부족한 공격력을 내가 보완해줄 수 있다.


쥐뿔도 없는 마나로 몸을 불사르는 건 내 특기이고 다시금 나는 모든 마나를 손에 집중시켰다.


텅 빈 손에 날이 다 상해 뭉툭해진 검이 아닌 청명한 검 손잡이가 생겼다. 마나로 구성된 푸른 검 손잡이에 살이 붙어 검신이 만들어지고, 푸르른 검이 손에 쥐어진다.


허공의 마나들이 내 검에 덕지덕지 붙는다. 최상급 포션 덕분인지 평상시보다 많은 게 느껴지며 많은 걸 제어할 수 있었다.


자연에 떠도는 마나는 달라 붙어있는 불순물들이 많으나, 전보다 향상된 마나 제어력은 마나의 불순물을 하나하나 제거해 마나의 결정체를 검신에 달라붙게 만들었다. 검신에 달라붙은 마나들은 길들여진 마나가 아님에도 내 통제를 쉽사리 벗어나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레 검이 완성되었다. 어둠을 가를 정도로 청명하게 빛나는 마나 검.


하늘에 반짝이는 별조차 가를 수 있을 것만 같은 검이었다.


선선히 마나 검을 들어올린다. 주위가 환해지며 모두의 시선이 나한테로 향한다.


옆에 있는 최수범을 비롯해 이다인, 심지어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던 해골까지.


잠시 모든 공방이 멈췄고,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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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생존자들(2) 24.08.07 7 0 15쪽
8 생존자들(1) 24.08.06 9 0 19쪽
7 미래를 뒤틀다(3) 24.08.05 9 0 15쪽
» 미래를 뒤틀다(2) 24.08.04 13 0 19쪽
5 미래를 뒤틀다(1) 24.08.03 16 0 20쪽
4 참혹한 미래 24.08.02 16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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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로운 조직(1) 24.08.01 28 0 13쪽
1 미래 예지의 발현 24.08.01 51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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