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아포칼립스 속 구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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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가로수
작품등록일 :
2024.08.01 13:41
최근연재일 :
2024.08.0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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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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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뒤틀다(1)

DUMMY

선두에 앞장선 나는 포션으로 회복한 대부분의 마나를 하체에 집어넣었다.


베드로가 무슨 개짓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어째서 미래 예지라는 특수한 능력이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괜히 미래를 알려주는 게 아닐 것이다. 미래를 바꾸라고 알려주는 것일 터.


지구에 마나라는 새로운 원소가 생기며 나는 단 한 번도 달리기에서 밀려본 적이 없다.

흔히들 비각성자가 각성자보다 절대 강해질 수 없는 이유로 이능의 여부를 비롯해 마나의 3요소라 불리는 마나 감응력, 마나 제어력, 마나 흡수력이 밀린다는 점이었는데 나는 일반적인 비각성자들과 달랐다.


마나 흡수력은 형편없으나, 나머지 두 가지 요소는 대부분의 각성자들보다 뛰어났다. 그 중에서도 타고난 마나 제어력은 나이가 어린 비각성자인 내가 천안 캠프의 정찰조를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여태껏 다양한 각성자들을 접해왔으나, 나보다 마나를 섬세하게 제어할 수 있는 이는 본 적 없을 정도로 마나 제어력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허곳날 비각성자들을 무시하던 각성자들조차 내 앞에서는 감히 그러지 못했다.


마나로 육체를 컨트롤하는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자신하며, 달리기도 그 중 하나였다.


종아리를 비롯한 하체에 혈도의 마나를 집중시켜 강화했고, 뛸 때마다 흙길에 발자국이 선명하게 패이며 흙먼지가 생겨난다.


전 동료들은 내가 진심으로 뛸 때마다 따라오기 벅차했었기에 새롭게 알게 된 팀원들은 내 페이스에 맞춰 따라올 수 있을지 걱정되었으나.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대부분이 여유로워 보였다.


하긴. 저들은 정으로 뭉친 천안 캠프와 달리 실력으로 선별된 대형 캠프의 정예 중의 정예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오직 강지연 만이 얼굴이 붉어진 채 겨우겨우 따라오고 있었다.


오기로 어떻게든 따라붙으려 하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더욱 뒤처진다.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대부분의 좀비들이 달라붙지 못하는 것과 달리 갈수록 느려지는 강지연의 속도에 좀비들이 목표물을 강지연으로 변경해 죄다 달려들기 시작했다.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여유롭게 후미에서 따라오던 이다인은 단숨에 도약하더니 내 옆으로 붙었다.


순간적으로 위치를 놓칠 정도로 폭발적인 가속이었다. 분명 저런 속도를 내기 위해서 막대한 에너지를 썼을 터인데, 그 정도는 그녀한테 큰 문제가 되지 않는지 심호흡 한 번으로 숨을 정리한 그녀가 물었다.


“급한 상황이야?”

“네.”

“지연이가 뒤처지고 있어.”


여태까지와 달리 진지한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잠시 속도를 줄이며 따라오는 이들의 상태를 살폈다.


배서연은 제트팩을 이용해 내 가속을 따라올 수 있었으나, 제트팩으로도 감당 안 되는 속도에 연료가 달한 모양인지 점차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고, 장태식은 여유 있어 보이는 마나 상태와 달리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모양이다.


“슬슬 뒤처지기 시작하는 인원들, 장태식, 배서연을 강지연에게 붙이죠. 조급하게 따라오지 말고 각자 페이스 대로 좀비들을 처리하면서 따라와달라고 해주세요.”


내가 강지연의 능력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었으나, 그녀가 어느 정도의 각성자인지는 대충 느낄 수 있었다.


현 팀원들 중에서 가장 마나 제어에 능숙하지 못한 듯했으나, 그건 이다인의 팀 수준이 괴물 같은 것이고, 강지연 또한 내가 본 각성자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각성자였다.


천안 캠프였다면 바로 총괄책임자 중 하나의 역할을 도맡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많은 좀비 떼들을 데려와도 이다인의 피부에 흠집 하나조차 내지 못할 터.


그러나 의외로 이다인은 조원들에게 정이 많은 모양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그녀가 모를 리 없다.

강지연이 고작 이런 미물들 따위에 당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런데도 그녀는 강지연을 걱정한다.


괜히 강지연을 혼자 내버려뒀다간 이다인에게 좋지 않은 인식을 심을 수 있었으며 미래 예지에서 참혹하게 죽은 강지연의 모습을 떠올리니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되면 눈치 보지 않고 진심으로 달려도 된다.


사실 내심 이렇게 되길 바랬다. 현 상황은 전투 인력의 증원보다 한시라도 빨리 돡해 베드로의 꿍꿍이를 저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


“그래.”


고개를 끄덕인 이다인은 허공에 내뿜은 약간의 마나를 배서연과 장태식에게 전송시켰다.


무슨 능력을 발동한 건지 알 수 없으나, 마나가 전달되자 장태식과 배서연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늦춰졌다.


뭐. 미래 예지에서도 봤듯이 이다인이 있다면 나머지 두 전력은 크게 의미가 없겠지. 그녀의 능력은 알지 못하나,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건 틀림없다.


그 해골하고도 맞붙으며 전혀 밀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미간이 일그러진 것도 동료의 죽음 때문이었지, 부상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만 있다면 소환 의식을 막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중력 능력자인 최수범이 있는 이상 화력도 밀리지 않을 터이고.


나, 최수범, 이다인. 이렇게 세 명이면 충분하고도 넘쳤다.


“그럼 시간이 지체된 만큼 속도를 더 내볼게요.”


이제 더는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여태껏 진심으로 달리긴 했으나, 강지연을 비롯한 배서연, 장태식이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여지는 남겨두고 뛰었다.


적어도 그들이 길을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손속을 남겨두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팀원 중에서도 최정예만 남은 상황. 이들은 내가 얼마나 힘을 쥐어짜내 달리든 나를 충분히 추월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달리기는 전신을 이용하는 운동 중 하나. 전력으로 달리기 위해선 당연히 모든 몸의 부위를 강화해야 한다.


잠시 달리는 걸 멈춘 나는 몸을 보호해주는 역장의 마나까지 해체시키며 전신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피부가 달궈지기 시작하며 점차 붉어진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방울들이 내 몸에 닿자 증기가 되어 주위에 연기가 발생한다.


이게 내 최선이자 최후의 무기. 마나 제어력을 비롯한 마나에 관한 내 모든 재능을 쏟아부은 결과물이다.


비록 1분이라는 제한시간이 있으며 사용 가능한 모든 마나를 신체강화에 쏟아부었기에 이후 마나 탈진으로 쓰러지나, 이 상태의 나는 상대가 누구든 운동능력으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쿵!


전신의 강화가 이루어진 나는 땅을 박차 오르며 베드로가 있는 산 꼭대기로 몸을 내던졌다.


***



흥미롭다. 미친듯이 흥미롭다.


처음에 소년을 보았을 땐 그저 흥미로운 장난감 정도로만 생각했다. 보기 흔치는 않으나, 그렇다고 마음먹고 찾으면 대용품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각성자.

반사신경이 뛰어나지 않아 한계가 명확한 각성자 정도였다.


그저 굳은 심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다가오는 재앙에도 마음이 꺾이지 않을 것 같기에 키워볼 만하다. 고작 그 정도의 마음가짐이었다.


소년이 천안 캠프 출신인 건 알고 있었다. 불과 사흘 전, 천안 캠프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고 천안 캠프의 위치와 베드로의 영지는 맞닿아 있었으니.


천안 캠프에서 꽤 영향력 있는 각성자였겠지. 단순히 그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그녀의 생각이 틀렸다.

소년은 그저 그런 각성자가 아니었다. 저런 퍼포먼스를 지닌 소년이 그저 그런 존재일 리 없다.


피부가 빨갛게 변한 소년이 지나간 주변에는 나무 뿐만 아니라 그를 향해 접근하던 좀비들의 사체들도 재로 만들었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에 공기 마찰로 인해 그와 맞붙는 모든 것들에 불이 붙었다.


소년의 몸에 닿는 빗물은 소년이 방출하는 에너지 때문에 닿자마자 모조리 기화된다.

흙으로 이루어진 땅은 소년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움푹 파인 채 먼지를 사방으로 흩날린다.


그제야 이다인은 정다온의 정체를 깨달았다.

천안의 패자(覇者)라 알려진 인물. 천안 캠프의 실질적 무력이자 천안제일검이라 불리어지는 인물이 소년임에 틀림없었다.


천안제일검의 특징은 여러 개 있으나, 가장 주효한 특징은 비각성자라는 점이었다.


하긴. 소년이 각성자라 하기엔 이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각성자라면 무조건 가지고 있어야 하는 마나 보관소의 존재. 정다온한테는 마나의 저장을 해주는 장기가 없었다.


각성자라기엔 형편없이 적은 마나의 양도 내심 걸렸다. 물론 각성자 중에서도 정다온처럼 마나의 양이 선천적으로 적은 이도 있으나,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특히 정다온처럼 뛰어난 전투인력인 경우에 더더욱 말이다.


게다가 마나 탈진에 걸린 게 분명했음에도 회복이 너무 빨랐다. 아무리 희나리산 상급 포션을 마셨다지만, 각성자에게 있어 마나 탈진 상태는 주로 무기를 사용하는 손이 부러지는 것과 동급의 부상이다.

그런 부상을 오 분 안에 회복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나의 양이 적은 비각성자라면 가능했다.


이외에도 단서는 많았지만, 비각성자가 저리 강해질 수 없다는 편견이 이다인의 눈을 가렸다.


그러나 정다온의 진가를 본 순간, 뇌 저편에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합쳐져 편견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천안에서 활동하는 스캐빈저들은 하나같이 비각성자인 소년에 대해 말할 때 허황된 소리를 지껄이곤 했다.


베드로가 영지를 확장하지 못하는 이유로 소년을 꼽기도 했으며 천안에 약탈자가 활개치지 못하는 이유로 소년을 꼽기도 했다.


당연히 천안 출신이 아닌 이들은 그들의 소리를 개소리라 생각하고 무시했다. 이다인도 그 중 하나였다.

그녀는 세상이 어려워질수록 풍문이 얼마나 와전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의 잠재력을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정다온의 소문은 전혀 와전되지 않았다.

소년의 재능은 비각성자임에도 천안의 패자로 지칭될 만했다.


반응속도가 느린 것? 저런 재능과 함께라면 반응속도가 느리다는 약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년의 압도적인 재능이 약점을 지워줄 터이니.


피부가 빨갛게 달구는 과정은 극한까지 다다른 신체 강화 계열 각성자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그들은 신체 내부에 저장한 우월한 량의 마나를 기반으로 피부를 빨갛게 강화시키는 데 다온은 딱 봐도 그 정도의 마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넘쳐 흐르는 마나를 주체하지 못해 주위에 마나가 넘쳐 흐르는 이들만이 피부를 붉게 만들어 극한까지 신체를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다온은 비각성자. 마나를 신체에 저장하는 장소가 없다. 비각성자의 싸움 방식을 생각해봤을 때, 미약한 양의 마나를 혈액과 동화시켜 혈도에 소량 저장해놓는 정도겠지.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다온은 최상위권의 신체 강화 계열 각성자도 해내지 못하는 신체 강화를 힘겹지 않게 해낸다.


남들과 비교를 불허하는 섬세한 마나 제어는 선천적으로 부족한 마나의 양을 극복해낸 것이다.


이 행성에서 그녀보다 마나 제어력이 뛰어난 이를 보는 건 처음이다. 마나 그 자체인 고위 정령 정도 되어야 저 정도로 마나를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의 옆에서 정다온의 뒤를 쫓아가고 있는 최수범도 잠재력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


무려 그 희귀하다는 중력계 각성자였다. 최수범이 나이를 먹을수록 희나리의 전력은 증가한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대로 무난히 크면 국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각성자가 될 인재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단지 그 뿐이었다. 그녀와 동등한 존재가 되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최수범은 언젠가 벽에 가로막힐 것이다. 저 심약한 친구는 그저 운 좋게 최상위 이능을 타고났을 뿐.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며 어지간한 상황에서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고난이 닥치면 회피하는 성격이지, 극복하는 성격이 아니다.


저런 성격으로는 아무리 타고난 이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녀와 같은 존재들을 상대로는 맥없이 무너질 뿐. 최수범 개인은 심심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정다온은 달랐다. 비각성자인 그는 아포칼립스가 발생한 이래부터 지금까지 인생의 대부분의 길목이 벽이었을 터. 그러나 정다온은 벽에 낙담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갈고 다듬어 극복해냈다.


물론 본래부터 재능이 없었다면 극복해내지 못했겠으나, 재능이 없으면 도태되는 세상이다. 뛰어난 재능인 필수인 세상이며 그 재능을 만개시키는 역량이 서로의 값어치를 가르는 차이이다.


마냐의 양이 절망적으로 적은 문제만 어떻게든 보완할 수 있다면 유례없는 비각성자가 될 정다온이 최수범보다 훨씬 잠재력이 높다.


아직 그녀보다 한참은 약한 존재였으나, 제대로 된 지원만 받으면 그녀의 곁에 설 자격이 충분한 아이였다.


이 년 만에 발견한 가능성이었으며 이 행성에서 발견한 인재들 중 가장 큰 가능성을 품고 있는 아이였다.


이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도 이 정도의 인재가 나오는데 인구가 많은 다른 지역에는 얼마나 많은 인재가 있을까?


어쩌면 그녀의 목표가 그저 허황되지만은 않을지 모른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렸으나, 숨을 가라앉히며 흥분을 가라앉힌 이다인은 주위를 바라보았다.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한 모양인지 정다온은 현저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주먹을 꽉 쥔 채 그는 베드로가 쥐고 있는 어떤 물건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콰앙!


굉음과 함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마법진이 그려진 땅이 움푹 파였으며 충격파로 인해 바람이 휘몰아쳤다.


바람으로 인해 이다인의 머리카락이 공중에서 날카롭게 일렁인다.


주위에 먼지가 자욱하나, 고작 시야가 가려진다고 감각이 둔해지진 않는다.


손을 이용해 먼지를 걷어내며 이다인은 먼지 사이로 다가갔다.


정다온이 온 힘을 다해 때린 물건, 라이프 베슬로 추정되는 물건은 정다온의 전력에도 흠집이 거의 나지 않았다.


오히려 충격이 가해지자 불길한 기운을 머금기 시작한다.


지형이 변할 정도의 괴력에 휘말린 베드로는 신체 부위가 반절 날아가 복부를 비롯한 피부 가죽이 덜렁거렸으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미친듯이 웃어댔다.


“낄낄낄낄. 늦었어! 주문은 이미 완성됐다···. 종말이 강림한다! 숭배하거라.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이다인조차 온 몸에 소름돋을 정도로 끔찍한 불길함이었다. 이 정도 급이면···. 대재앙 급은 아니지만, 재앙 급 정도는 될 법했다.


그리고 아직 인류는 재앙급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약하기 그지없었다.


약간의 초조함이 이다인의 미간을 감쌌다. 이래서 전력으로 달리려 했던 거구나.

자신조차 느끼지 못한 불길함을 정다온은 느낀 모양이다.


구울의 비웃음에 정다온은 미친듯이 두 손을 라이프 베슬에 내리쳤으나, 내리칠수록 힘만 빠질 뿐. 오히려 라이프 베슬을 감싸는 불길한 기운이 늘어날 뿐이었다.


신체 강화의 시간 제한도 다 된 모양인지 피부가 본래의 색깔로 돌아가기 시작하나, 정다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최대한의 힘을 뽑아내려 한다.


정다온의 눈을 보니 살짝 맛이 가 있었다. 라이프 베슬이 매개체가 된 소환진의 존재가 아무 이상 없이 소환된다면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모양이다.


그녀가 숨긴 힘을 개방한다면 재앙급 존재 정도는 막아낼 수 있겠으나, 힘을 개방하면 여태껏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힘을 개방한다면 그녀의 흔적을 맡은 대재앙들이 그녀를 죽이기 위해 패널티를 감수하고 지구에 강림할 것이다.


다행히 생명력을 태워 베드로의 꿍꿍이를 저지하려던 정다온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라이프 베슬의 곳곳에 틈이 생겨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불길한 마나들이 주변으로 새어 나간다.


설사 강림에 성공한다 한들 그 존재의 격은 불완전할 터. 그 정도면 진심을 드러내지 않고도 제압이 충분히 가능하다.


재수없게 웃어대는 베드로를 손가락 하나로 단숨에 짓뭉갠 최수범과 눈을 마주친 이다인이 명령을 내렸다.


“내가 처리할 테니 기절시켜. 그리고 내가 준 포션을 먹여.”


힘이 다 빠진 정다온의 공격은 라이프 베슬에 흠집조차 내지 못하나, 계속해서 주먹을 내리친다. 이미 다 까진 정다온의 주먹에서 피가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저러다 근원의 마나까지 꺼내려 할지도 모른다.


근원의 마나까지 꺼낸다면 라이프 베슬은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겠으나, 평생의 후유증이 남는다.


오랜만에 발견한 원석을 고작 이런 데서 망가트릴 순 없다.


정다온을 가리키자 최수범은 고개를 끄덕이곤 베드로를 한순간에 뭉갰던 중력을 정다온에게로 뻗었다.


당연히 그 수위는 베드로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몸에 상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조절해 압력을 가했다.

같은 팀원을 다치게 하는 것도 찝찝했으며, 저 사람은 이다인이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 다칠 정도로 제압했다가 괜히 한 소리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정다온은 신체에 남아 있는 마나의 마지막 한 줌을 쥐어짜내 최수범의 중력을 극복해낸다.


중력의 힘을 무시한 채 팔을 들어올린 정다온은 다시 라이프 베슬을 향해 내리친다. 중력을 극복해내며 내리치는 일격이었기에 위력이 형편 없었지만, 정다온은 포기할 기색이 없어 보였다.


‘뭘 위해서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


생명력과 직결되어 있는 근원의 마나까지 끌어쓰려 하자 최수범의 눈이 동그래진다. 황급히 마나를 끌어모아 제대로 능력을 사용하자, 그제야 정다온은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다.


기절했음에도 집념이 남아있는 모양인지 위로 들어올렸던 주먹이 라이프 베슬 위로 힘없이 떨어진다.


그 독기에 기가 질린 최수범은 몸을 부르르 떨며 품 속에서 가죽 주머니 안에 고이 모셔놨던 최상급 포션을 꺼냈다.


불길한 존재가 강림할 거라는 건 그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왜 저렇게까지 몸을 불태워서 없애려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길 수 없는 존재라면 그저 도망치면 될 뿐.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최수범은 잠시 최상급 포션을 바라보았다.


꿀꺽.


침이 절로 넘어간다. 최상급 포션은 언제나 봐도 황홀했다. 기분 좋지 않은 날, 이 영롱한 마나 집약체를 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실제로 먹어본 적 있기에 최수범은 알고 있다. 마약 같은 걸 먹고 느끼는 황홀감은 가짜라고.


최상급 포션은 중독되지 않음에도 압도적인 황홀감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단지 포션을 먹었을 뿐임에 불구하고 신체 능력을 비롯해 약점으로 생각되었던 부분들이 알아서 보완된다.


그러나 처음 먹을 때만 압도적인 효능을 보이지, 그 이후로 다시 복용하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직접 복용해본 최수범은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보스인 이다인은 최수범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두려운 존재였다.


저 여자는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그의 조원 전부를 혼자서 제압할 수 있는 괴물이다.

뛰어난 실력 뿐만 아니라 그녀의 적이 된 이들의 최후를 생각하면 등에서 절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이다인이 싱글벙글 웃으며 약탈자를 고문하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꾸고 있는 악몽 중 하나였다.


악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오른다.

최수범은 그의 영혼의 단짝, 테디를 매만지며 심신을 안정시켰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지만, 저 여자와 적대하는 미래는 상상할 수도 상상하기도 싫었다.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저 여자의 말에는 절대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아쉬움을 감추며 최수범은 정다온의 입을 벌렸다. 일 년에 두세 개밖에 제작되지 않는 최상급 포션을 남한테 줘야 하다니···.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으나, 아까움보단 이다인을 향한 두려움이 더 컸던 최수범은 정다온의 목구멍 너머로 포션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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