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아포칼립스 속 구원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벚꽃가로수
작품등록일 :
2024.08.01 13:41
최근연재일 :
2024.08.08 19:29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81
추천수 :
0
글자수 :
74,231

작성
24.08.02 15:22
조회
16
추천
0
글자
19쪽

참혹한 미래

DUMMY

“확실히 여기에 뭔가 있긴 하나 보네.”


가파란 비탈길에 토악질 나올 정도로 우글거리는 좀비 떼들과 갖가지 함정이 배치되어 있다. 비탈길을 올라가는 도중 난데없이 산 더미만 한 바위가 굴러 떨어진다든가, 비탈진 산 옆면에서 산사태가 일어나든가 같은 인위적인 사태가 번번이 발생했다.


동시에 근방의 좀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우르르 달려든다.


그러나 최수범이 그저 손을 흔들자 우리를 향해 밀려드는 것들의 궤도가 바뀌거나 바닥에 찌그러졌다.


역시 중력계 능력자.


천안 캠프의 동료들과 함께였다면 하나같이 고전할 법한 상황들이었으나, 현재 팀원들은 소수정예였다. 고작 이 정도 역경으로 곤란에 처할 일은 없었다.


이 멤버라면 여태껏 뚫지 못했던 좀비 떼들을 뚫고 이번에야말로 베드로의 목숨을 취할 수 있겠지.


사실 고작 베드로 따위를 상대하기에 넘치고 넘치는 전력이었다.


베드로는 특수능력이 까다로운 것이지, 대인전이 강한 이레귤러는 아니니.


“내가 알기로 베드로는 상대가 자신보다 강해 보이면 털끝 하나 드러내지 않고 자신보다 약해 보이면 모든 전력을 동원해 학살을 즐기는 걸로 유명하단 말이지.”


한동안 말없이 따라오던 이다인이 나를 응시하며 물었다.


“아무리 봐도 우리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건 알 텐데. 어째서 좀비 떼들을 동원하는 거지?”


이다인의 질문에 강지연도 내심 궁금했는지 나를 흘긋 쳐다보며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야. 전력을 드러내지 않으면 모든 전력을 잃어버릴 테니깐 당연한 일이죠.”

“지금 향하는 곳에 베드로의 약점이 있으니 필사적으로 지키는 거다?”

“그렇죠.”


이다인은 두뇌회전이 상당히 빠른 편에 속했다. 개떡같이 말했음에도 그녀는 단번에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궁금하네. 무슨 약점이길래 이렇게 필사적으로 지키는지.”


전혀 궁금해 보이지 않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저런 말을 하니 나를 놀리는가 싶었으나, 여태껏 그녀를 지켜본 결과 그녀의 말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좋아보였다.


직설적인 성격인 듯했으며, 설령 말에 의도가 있다 한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었다.


“알려드릴까요?”


내 물음에 이다인은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지금 알면 재미가 없어.”


그래도 생판 남인 내 계획을 들어보지도 않고 따르는 행위는 무모한 행위가 아닌가?


내 계획이 단순하기 그지없었으나, 이다인은 그걸 모르지 않던가?


의외로 새로운 상사는 즉흥적인 성격인 모양이다.


계획의 하나부터 열까지 납득해야 작전을 따르는 나와는 정반대의 유형이었다.


물론 모두가 이다인처럼 생각하는 모양은 아니었다.


“나한테는 알려줘.”


강지연이 뒤에서 나를 쿡쿡 찔러댔으나, 나는 그녀를 무시했다.

팀장인 이다인이 계획을 굳이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 말했으니, 알려주지 않아도 상관없을 터.


강지연 외에 다른 인원들도 내 계획에 크게 관심 없어 보이는 모양새였다.


다른 이가 궁금해했다면 몰라도 나한테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대던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게. 처음부터 싸가지를 장착하고 말하지 그랬니.


입 밖으로 내뱉고 싶은 말을 삼키며 나는 선두에 서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자신을 무시하자 강지연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다시 내 등을 찔러댔다.


“왜요.”

“우리는 네 작전에 따르는 사람이잖아. 네 작전이 합리적이지 못하면 우리의 목숨까지 위험해. 그러니 너는 우리한테 작전의 개요를 설명할 의무가 있어.”


보아하니 적당한 핑계거리가 생각나 찌른 모양이다.


초면에 적대적인 언행으로 봤을 때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가는 인물인 줄 알았으나, 의외로 강지연은 생각이라는 걸 하고 말하는 모양이다.


억지를 부리면 절대 알려주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나름 합리적인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펼쳤기에 나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이다인을 바라보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이다인도 잠시 멈추더니 근처 바위에 기대며 내 시선에 대답했다.


“상관없어. 신입의 계획을 듣는 겸, 잠시 쉬는 시간을 갖자."


이다인의 말을 들은 팀원들은 물을 마시거나 편히 쉴 자리를 각자의 능력을 활용해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는 동시에 다들 내심 나를 향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어떤 성향이 인간이며 믿고 따를 만한 인간인지 확인하려는 것이겠지.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정보가 하나도 없는 외부인. 이들은 내가 어디에서 온 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이다인이 내 계획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기에 내 말을 따르는 것일 뿐, 이다인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이들은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선 증명을 해야 한다.


그 시작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구울의 토벌이기에 나한테 있어 현 상황은 꽤나 마음에 드는 상황이었다.


근처에 있는 바위에 앉은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베드로라는 구울은 여러 특수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 중 가장 까다로운 능력이 있어요.”

“탁월한 조종 능력?”


확신이 담기지 않은 강지연의 답변에 고개를 저으며 나는 다른 의견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시 한 손을 턱에 갖다 대며 고민하던 배서연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답! 인간으로 변신하는 능력!”

“그것도 주의해야 하는 능력이죠. 하지만 아니에요.”

“그럼 뭔데?”

“불사 능력. 그 능력 덕분에 베드로는 이레귤러치고 형편없는 교전력으로도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죠.”


내 말에 모두 믿지 않는 듯 불신이 얼굴에 띄워졌다. 심지어 여태껏 무표정이었던 장태식조차 눈썹을 들어올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생명체란 존재하지 않아. 아무리 이레귤러라고 해도.”


강지연은 내가 자신들을 농락하려고 꺼낸 말로 생각한 모양인지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으며.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 베드로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해야겠는걸?”


이다인은 짐작하는 바가 있는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빤히 응시했다.


“이런 말을 꺼내는 건 죽일 방법을 안다는 거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말을 이었다.


“올바르게 죽이지 못할 시 불사라는 얘기예요. 베드로의 비밀을 알고 나면 베드로를 죽이는 난이도는 오히려 내려가죠.”


물을 마시며 잠시 목을 축인 나는 이어 말했다.


“판타지 소설에 많이 나오잖아요. 불사의 왕 리치를 죽이는 법. 베드로도 똑같아요.”

“라이프 베슬? 그게 진짜였다고?”


배서연의 감탄에 고개를 끄덕여주며 나는 비탈진 언덕 너머 산 꼭대기를 가리켰다.


“그 물건은 저기 있어요. 그러니깐 저희는 좀비 떼들을 뚫고 저 너머에 있는 베드로의 비밀만 부수면 쉽사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죠.”


내 계획이 타당성이 충분한지 혹시 놓친 점이 없는지. 혹시 모르나, 허무맹랑한 것 같은 소리를 내뱉는 내가 사실 베드로의 스파이가 아닌지.


내 말을 들은 대부분의 이들이 믿기 힘들다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오직 이다인만이 처음과 똑같은 전혀 읽을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이방인인 내 말을 믿어줄까 아니면 다른 선택지를 고를까. 내 말을 믿어주면 좋겠지만,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신뢰야 천천히 쌓으면 된다. 첫만남부터 신뢰를 쌓으려고 조급해봤자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믿어주지 않으면 믿어주지 않은 대로 협력하면 된다.


침묵을 깬 인물은 강지연이었다. 그녀는 내 근처로 다가오며 나무에 기대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정보들을 알고 있는 거야?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괴수들의 상대법을 대부분 꿰고 있단 말이지? 그런데 네가 말한 정보들은 처음 듣는단 말이야.”


첫만남부터 나를 향해 적대적인 태도를 내비친 강지연은 의외로 내 말을 믿기로 한 모양이다. 목소리가 한결 풀려 있었다.


나를 싫어하던 게 아니었나? 개인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은 따로 분리해놓는 건가?


어찌되었건 강지연에 대한 내 안의 평가가 크게 상승했다. 적어도 팀원으로서 발목 잡을 인간이 아니라는 건 분명해보였다.


그녀의 목소리 안에 미약한 의구심이 섞여 있긴 했으나, 그것만 해결된다면 더는 작전에 딴지를 걸지 않을 터.


어지간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으나, 내가 천안 캠프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밝힌다면 의구심을 벗어 던지겠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대답했다.


“그야. 저는 천안 캠프 소속이었으니 당연하죠. 베드로와 부대낀 경험은 저희 캠프가 가장 많을 테니 말이죠.”


내 말에 강지연의 얼굴이 어색하게 변했다. 그녀의 두 동공이 사방으로 굴러가며 초점을 잡지 못했다. 보아하니 그녀도 아는 모양이다.

천안을 주름잡던 캠프가 전멸했다는 사실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끝내 갈피를 못 잡는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해 땅에 눈을 내리꽂았다.


“그 일에 대해선··· 안타깝게 생각해.”


괜히 분위기가 어두워지기 전에 나는 입가를 올리며 대답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앞으로가 중요하죠. 앞으로가···.”


최대한 감정을 죽인 채 대답하려 노력했으나, 절로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한동안 우리와 대척했던 뱀파이어가 내부자와 협력해 캠프의 동료들을 도륙내던 그 날의 광경.


최대한 웃으려 노력하나, 웃을 수가 없었다. 얼굴 근육이 통제가 되지 않아 입가가 파르르 떨린다.


아직까지 내리는 빗방울이 마치 내 감정을 대변해주기라도 하는 것마냥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덕분에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여태까지 행동으로 보았을 때 분위기 곱창내지 말라고 쓴 소리를 내뱉을 강지연은 그저 내 눈치를 볼 뿐이며, 남들과 소통이 미숙해 보이는 다른 팀원들조차 각자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 모양인지 이 순간만큼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오로지 팀장인 이다인만이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박수를 치며 주위의 시선을 모았다.


“자자. 집중!”


모든 시선이 그녀를 향해 모이자 이다인이 말을 이었다.


“요 앞에 우리의 목적이 있어.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서 쉬자고.”


내 상태를 확인하려는 모양인지 이다인은 나한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다온? 라이프 베슬 위치를 알고 있는 네가 앞장서야 하는데. 괜찮겠어?”


슬픈 건 슬픈 것이고 임무는 개인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고개를 끄덕이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며 몸이 내 의지를 따라주지 않는다.

동시에 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으나, 생각해보니 좀비 떼에 둘러싸였을 때 봤던 미래 예지 때도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내 생각이 맞다고 말하듯 뿌연 안개가 걷어지며 눈 앞에 무엇보다 생생한 동영상이 재생된다.


내 신변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나?

의문을 가지며 나는 영화보듯 장면을 응시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둠 속, 피부가 여기저기 벗겨져 있고 피골이 상접한 구울, 베드로가 미친듯이 웃어댄다.


낄낄낄낄.


마치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기괴한 웃음소리였다. 베드로가 행복해하는 걸 보니 배알이 꼴린다.


몸만 움직일 수만 있었다면 당장 베드로의 얼굴을 이가 다 나간 칼날로 뭉개 버렸을 것이다.


“성공했어! 성공했다고!! 주군! 주군을 이계에 최초로 소환한 건 바로 저! 당신의 충실한 심복! 베드로입니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채 베드로는 양팔을 파닥거리며 연신 외쳐대고 있었다. 베드로의 시야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따라 나도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허공에는···.


전신에 모든 생명을 앗아갈 것만 같은 불길한 마나를 두른 해골이 둥둥 떠있었다.

해골의 움푹 파여 있는 두 개의 눈구멍이 무언가를 응시하며 피가 응집된 듯한 어두운 적갈색 지팡이를 휘둘렀다.


해골이 응시하고 있던 공간에는 마찬가지로 공중에 둥둥 떠있는 이다인이 있었고, 부지불식간에 이다인이 떠있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마나를 비롯한 모든 게 해골이 만들어낸 무(無)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모종의 수를 쓴 모양인지 이다인은 가볍게 해골의 공격을 피했다.


해골은 몇 번이나 더 공격했으나, 번번이 이다인은 모종의 능력을 발휘해 해골의 모든 공격을 피해냈다.


비록 싸움의 현장에서 직접 체감하는 건 아니지만, 해골의 공격은 내가 봐왔던 공격 중에서 가장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공격이라니.


그런 공격은 본 적도 소문으로조차 들어본 적 없는 공격이었다. 게다가 무의 공간은 공격의 전조조차 없어 사실상 대처할 방법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이다인은 무슨 미래예지가 있는 것마냥 공간이 일그러지기 전에 위치를 옮긴다.


하지만 피해가 없지 않는 모양이다. 마치 기계와도 같던 그녀의 무미건조한 얼굴에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극적인 변화는 아니었으나, 감정 변화가 아예 없는 이다인의 얼굴에서 여태껏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부상이라도 입은 건가?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으나, 아무리 움직여도 영상의 시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관람객으로써 싸움의 행방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분명 두 눈을 부릅뜨고 이다인을 주시했으나,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이다인은 난데없이 해골의 등 뒤에서 나타난다.

그리곤 뼈 사이로 훤히 비치는 해골의 핵에 검을 내리찍는다.


동시에 해골의 핵을 향해 총알이 쏘아진다. 마나가 한 점으로 응집되어 있는 총알은 위압감이 대단했으나.


팅!


해골이 지팡이를 한 번 흔들자 모든 공격이 튕겨나갔다. 아까까지 멀쩡했던 공간에 검은색 기운이 생겨나 모든 걸 튕겨냈다.


나조차 한순간 시야에서 놓친 이다인의 기습이 깔끔히 성공할 줄 알았으나, 해골의 저력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이다인은 반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고, 총알은 쏘아졌던 방향으로 그대로 되돌아갔다.


자연스레 영상의 시선이 총알을 따라간다. 총알은 분명 쌍권총을 다루는 장태식의 공격일 터. 어떻게 대응할까?


한 점으로 마나가 응집되어 쏘아진 총알은 오히려 해골의 검은색 기운까지 더해져 내 동체시력으로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그 속도가 빨랐으나, 장태식은 맞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몸을 비틀어 총알을 피해낸다.


그 정도가 어찌나 아슬아슬했는지 총알에 의해 옷만 찢어질 정도였다. 아주 조금이라도 몸이 신체에 쏠렸다면 그대로 총알에 묻은 해골의 불길한 마나가 장태식의 몸을 갉아먹었을 것이다.


···! 자연스레 눈이 커졌다.


전의 미래예지에도 봤듯이 장태식은 나와 비슷한 전투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반사신경을 믿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적의 공격을 피해내고 반격하는 스타일.


말하자면 극단적인 인파이팅이었다.


당연히 그 어떤 능력보다 극단적인 인파이팅은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아무리 고수더라도 사소한 실수에 치명상을 입으니 말이다.

동체시력도 좋아야 하며 무엇보다 위험을 감지하는 천부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 가히 기교라 불릴 수 있는 재주였다.


이 둘 모두를 충족시켜야 끝없는 전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수없이 많은 전투 속에서도 치명상을 입어본 적이 없는 지금의 나처럼.


나는 내가 극단적인 인파이팅을 고수하는 이들 중 최고라 생각했다. 벼랑의 끝에 끝까지 적의 공격을 참은 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적을 제압하는 데에 내 스타일을 따라잡을 자가 없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내 오만이었다. 내가 장태식의 상황에 처했다면 피부에 상처 없이 옷만 찢어질 정도로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을까?


아니. 장담하건데 나는 아직 저 정도 급이 아니다. 적의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고 적의 수급을 취한다 생각했으나, 나는 아직 한번도 옷이 저렇게 깔끔히 찢어질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본 적이 없다.


나는 옷을 여벌의 목숨이라 생각할 정도로 결벽에 가깝게 관리했다. 여태까지 옷에 공격이 닿는다는 건 목숨이 위험할 뻔했다는 명징한 증거라 생각했었다.


장태식의 회피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오히려 옷에만 공격이 닿는다는 건 본인의 회피 능력이 극에 달했다는 증거. 부정적인 신호가 아닌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야말로 극한에 극한까지 추구한 회피였다. 저 정도로 극한을 추구하면 반격은 그만큼 효과적으로 들어간다. 회피에 쓰였던 시간이 그대로 반격에 쓰이는 시간으로 치환되니.


역시 세상은 넓고 상상을 초월하는 기인은 많다. 다시 한 번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으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장태식이 저 정도면 다른 팀원들은 어떤 능력을 보여줄까?


기대를 했으나, 장태식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수히 많은 좀비의 시체만 보일 뿐.


각자 흩어져서 상대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전략을 사용하는 줄 알았으나,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미래 예지가 나한테 이 장면을 보여준 이유. 그건 내가 중대한 위기에 처했기 때문. 어쩌면···.


내 예감이 맞았다고 칭찬이라도 해주듯 동영상은 나한테 정답을 알려주었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말한 걸 들어본 적 없는 장태식의 입을 빙의해서 말이다.


“저 괴물의 목숨은 내가 목숨을 불태워서라도 해결해보지. 다들 편히 쉬어라.”


입술을 짓씹으며 장태식이 해골을 노려보았다. 그리곤 생명력과 직결된 마나를 전부 끌어모아 권총과 발에다 감으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장태식이 허공으로 뛰어오른 자리에는 좀비가 아닌 인간의 시체가 있었다.


나이를 먹고도 중2병을 버리지 못한 배서연은 머리만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사방에 핏자국이 흩뿌려진 걸 보아하니 해골이 만든 무의 공간에 빨려든 모양이다.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나 본성은 나쁘지 않은 듯한 여자, 강지연은 두 눈을 부릅뜨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사인은 장기의 폭발. 마나를 보관해 놓은 장기인 심장이 터져 있었다. 온몸이 빗물에 젖어 그 시체는 더욱 추레해 보였다.


최수범은 살아 있었으나, 팔이 한 쪽 잘려 있었다. 그는 구슬프게 누군가의 시체를 끌어안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몸이 굳었다. 보고 싶지 않았으나, 동영상은 멋대로 화면을 움직이더니 나를 시체 앞까지 데려갔다.

시체를 본 순간,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시체의 정체는··· 나였다.


동영상에 보인 시체 중 가장 참혹하게 죽임당한 내 시체는 멀쩡한 구석이 없을 정도로 칼날에 난도질당해 있었다.

두 눈은 저기 있는 해골처럼 텅 비어 있었고···.


더는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는···.


“왜 그래? 어디 아파?”


이다인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돌아왔구나···.

위장에서부터 올라오는 구역질을 애써 참으며 나는 눈을 부릅떴다.


뇌리에 스쳐 간 기억은 분명 닥쳐올 미래일 터. 미래를 바꾸기 위해선 베드로가 불길한 무언가를 소환하기 전에 제압해야 한다.


다행히 미래 예지의 미래는 바꿀 수 있으니.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감이 좋지 않아요. 다들 있는 힘껏 달릴 준비해요. 제가 앞장설 테니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미래를 보는 아포칼립스 속 구원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생존자들(3) 24.08.08 6 0 12쪽
9 생존자들(2) 24.08.07 8 0 15쪽
8 생존자들(1) 24.08.06 10 0 19쪽
7 미래를 뒤틀다(3) 24.08.05 10 0 15쪽
6 미래를 뒤틀다(2) 24.08.04 13 0 19쪽
5 미래를 뒤틀다(1) 24.08.03 17 0 20쪽
» 참혹한 미래 24.08.02 17 0 19쪽
3 새로운 조직(2) 24.08.01 20 0 14쪽
2 새로운 조직(1) 24.08.01 28 0 13쪽
1 미래 예지의 발현 24.08.01 53 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