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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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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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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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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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를 모르는 놈들

DUMMY

이제 평소처럼 나물 반상을 차려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주옥은 육식 역시 사양하지 않는 편이었다. 도가와 불가 문파는 대부분 정통 문규로서 육식을 금했지만, 사실상은 잘 지켜지지 않았으니, 점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몸으로 고기 먹어도 되나? 아니, 고기 이전에, 뭘 먹을 수 있는 거야?’


건초 따위를 씹어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밥, 나물, 고기를 떠올려 봤지만, 그래 봤자 전혀 입맛이 동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눈앞에 떨어져 있는 건초 더미가 훨씬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드디어 입이 이끌리듯 건초 더미로 향했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 침이 금방이라도 흐를 듯했다.


‘맛만, 맛만 보자. 말로 살아가기 위한 경험이야. 인간성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고.’


이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주옥의 말 몸은 강렬한 식욕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이렇게 강한 욕구를 느낀 적이 있던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이었다.


흑마는 간신히 두터운 입술 끝을 오므려 건초 한 줄기를 문 뒤, 천천히 입 안으로 끌어당겨 어금니로 씹기 시작했다.


‘고소해!’


두어 번 씹자마자, 왜 건초 더미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이끌렸는지 이해가 됐다. 마치 참깨를 씹는 듯한 고소함 뒤에, 달큰한 맛이 살짝 감돌며 마무리를 해 주었다.


그 다음, 잠깐 정신을 놓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눈 앞에 수북히 쌓여 있던 건초 더미는 사라져 있었고, 주옥의 어금니는 마지막 남은 건초 줄기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보는 사람도 없었건만, 괜히 민망했다.


‘흠흠, 나쁘지 않네. 맛만 본 거니까, 어디까지나.’


깔끔하게 사라진 건초 더미를 애써 무시하며 몸을 뉘었다. 어떻게 누워야 가장 편할까, 여러 자세를 시도해 봤지만 결국 옆얼굴을 땅에 대고 옆으로 눕는 게 최고였다.


‘괜히 이러고들 자는 게 아니었구만.’


말들이 옆으로 누워 자는 모습을 떠올리며, 주옥은 더욱 기세 좋게 늘어졌다. 새파란 하늘이 맑았고, 조각 구름 몇 개가 떠갔다. 어제 겪은 일들의 충격이 아직 생생한데, 세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게 신기하기도, 야속하기도 했다.


‘끔찍하게 당한 사형제와 제자들을 보지 못했다면, 지금 이 순간도 꿈이라고 믿었을 거야. 농부 부부는 분명 좋은 사람들이지만, 이들과 언제까지 함께 해야 할지는 고민이 되는군.’


결국, 그의 고민은 이렇게 귀결됐다.


태상노군 개자식.


옆으로 누운 자세 그대로, 주옥은 끊이지 않는 상념에 의식을 맡겼다. 그러다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들었다.


“쉿! 쓸 데 없이 소리내지 마!”


잠을 깨운 목소리는 농부와 그 부인의 것이 아니었다. 어느 새 밤이 깊었음에도, 고개를 치켜든 주옥의 시야 저 멀리에 검은 신형 둘이 보였다. 분명히 들어본 남자 목소리 둘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어제 들어본 목소리였다.


‘그 놈들이다. 어제의 마교 좀도둑들. 여기엔 또 왜?’


인간 시절엔 절대 듣지 못했을 거리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쪽으로 귀를 돌리자 둘의 말소리에 더해 발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두 도둑은 어제의 그 마교 신법을 밟으며 이 민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주인이 깨면 안 돼! 자고 있을 때 덮쳐야 당황해서 간이고 쓸개고 다 내놓는다니까.’


‘알았어, 알았다고!’


두 사람은 농부의 집 쪽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아직 거리가 멀어 시커멓게만 보일 뿐이었지만, 다가오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주옥은 대화를 듣고 단번에 둘의 의도를 파악했다.


‘미친 놈들. 적당히를 모르는군. 오늘은 약탈이냐.’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사문에 대한 복수심이 예상보다 크지 않았을 뿐, 사문 뿐 아니라 친구를 욕보이고 그 유품을 가로챈 놈들이었으니 저 두 마교 놈들은 여전히 가증스러웠다. 점창의 이름을 들먹일 것도 없이, 개인적 차원에서의 분노가 차올랐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약탈 목표는 지금 주옥이 몸을 쉬고 있는 농부의 민가가 분명했다. 이 집은 상당히 외딴 곳에 있어 도적의 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평소였다면 예외였을 것이다. 점창의 영역 내였기 때문이다. 관과 무림은 상호불가침이지만, 민과 무림은 상호불가분, 조정의 권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공이 없는 민초들은 일대에 자리잡은 대문파의 보호를 받았다. 이곳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은 점창파였다. 그러니 농부 부부는 지금 저 마교 놈들의 습격을 전혀 예상치 못할 게 분명했다.


물론 어제 점창파는 완전히 무너졌지만, 그렇게 된 것은 이제 겨우 하루, 아직 대외적으로 그 사실이 알려지기엔 일렀다. 그래서 주옥 역시 막연히 오늘 밤 정도는 점창파라는 이름이 이 농부 일가를 지켜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상대가 점창파를 무너뜨린 바로 그 세력, 즉 마교라면 현재 이 민가를 보호해줄 권력은 없다는 걸 가장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좋이 않은 일이 벌어질 예감을 느끼며, 주옥은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의 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농부 가족이 피해를 입는 건 싫다.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지? 무공도 없고 말이 되어 버린 몸으로···어라?’


근심은 순간 의문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무공을 못 썼던 이유는, 재수 없게도 그런 몸을 타고 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몸은 지금 어디 갔던가? 어제 점창혈사에서 죽어 사라진 것 아니었던가? 황당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이는 가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할까?’


* * *


두 명의 괴한은 순식간에 민가에 다가섰다. 이런 외딴 초가집 주인에게 무공이 있을 리 없었다. 만약 재수가 없어 무인이 튀어나오더라도 수준이 대단할 리 없으니, 둘이 같이 덤벼 척살하면 그만이었다. 그들이 한 몫 챙기기엔, 여기보다 나은 곳이 없었다.


‘어제 말을 잃어버린 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까워. 이렇게라도 그 손해를 메꾸지 않으면 분해서 돌아버릴 것 같단 말이지.’


농부의 집 마당으로 접근하는 조씨 도둑은 이렇게 생각했다. 원래 자기 것도 아닌 말이 도망친 것을 손해라 칭하는 게 모순이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자라면 이런 파렴치한 짓을 나설 리도 없었다. 둥근 얼굴 도둑은 속으로 되뇌었다.


‘젠장. 어제 그 짐승한테 얻어맞은 데가 아직도 욱신거리네. 피멍까지 들었는데 겨우 검 하나로 만족할 순 없지.’


주옥의 뒷발차기는 그를 무력화시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뚜렷한 외상을 남겼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나니 두 도둑은 오히려 더 악에 받쳤다. 이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이 민가를 약탈하고 아무 일 없던 척할 속셈이었다.


마당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달빛이 들지 않는 마당 한 구석이 조금 어두웠지만, 전체적으로는 자연스러운 민가의 풍경이었다. 목표를 확인한 두 괴한은 서로 눈빛을 한 번 교환했다. 그리고는, 행동을 시작했다.


쾅!


두 괴한이 농부와 그의 부인이 잠들어 있는 침실 문을 요란하게 열어젖혔다. 그 소리에 무고한 두 민초가 놀라 잠에서 깼다. 아직 정신이 덜 돌아온 두 민초에게, 괴한들이 윽박질렀다.


“우린 전 무림이 벌벌 떠는 마교다! 가진거 다 내놔!”

“은전 한 톨이라도 숨겼다간 우리가 왜 마교라 불리는 지 똑똑히 알려 주겠다!”


* * *


주옥은 다시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명상에 집중했다. 마당에서 벌어지는 소란이 귀와 피부를 통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 쪽에 신경을 분산시킬 수 없었다. 그 사이, 자다가 속수무책 마당으로 끌려 나온 농부가 경황 없이 말을 더듬었다.


“모,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그러니까, 은이고 뭐고 다 내놔. 그럼 살려주마.”


“예,예이. 여보! 들어가서 값 나가는 건 전부 가져 와요.”


농부는 자신의 부인에게 급히 요청했다.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급히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갓난 아이가 찢어져라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농부 가족은 목숨만은 보전하기 위해, 이제 강도가 된 마교인들의 지시를 허둥지둥 따랐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농부는 의아하기 그지없었다. 무림의 정점이라던 구파일방 중 하나, 점창파는 지금 왜 농부 가족을 보호하지 않는 것일까? 여태껏 이들은 점창파에 보시(布施)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세금을 납부해 왔다. 그 대가로 보호를 받는 게 지금까지 이들과 점창파 사이의 규칙이었으니, 이런 도적들 따위는 집에 접근하기도 전에 점창파 순찰대에게 걸려 쫓겨났어야 했다. 순찰대는 뭘 하고 있기에 지금 자신이 이런 꼴을 당한단 말인가?


불행히도, 농부는 그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방식을 택하고 말았다.


“저··· 나리들, 괜찮으시겠습니까? 여기는 점창파의 영역인데···”


농부가 흙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강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말에 마교인들의 눈빛이 한층 매서워졌다. 이 모든 대화를 듣고 있는 주옥 역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뭐? 괜찮겠냐고? 큭큭, 야, 이 새끼, 지금 뭐라는 거냐?”


앞서 쳐들어온 강도가, 뒤따라 들어온 강도를 돌아보며 킬킬거렸다. 뒤따라 들어온 강도 역시 그 웃음을 보고는 더욱 비열하게 웃으며, 바닥에 납작 엎드린 농부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말했다.


“그 말은, 네 연놈들 뒷배에 그 잘난 대점창파가 있으니 각오해 두라는 말이냐?”


“죄,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나리들께서 혹 해코지를 당하실까···”


퍽!


둔탁한 타격음이 울려퍼졌다. 둥근 얼굴 강도가 내력이 담긴 발길질로 농부의 배를 걷어찬 것이다. 마당에 혼자 남아있던 농부가 그대로 앞으로 엎어지며, 끅끅대는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강도는 농부를 가소롭게 여기며, 엎어진 그의 머리 위에 대고 말했다.


“흥, 주제를 몰라도 유분수지. 어디 일월교 앞에서 점창 따위를 들먹여? 잘 들어라, 이 무지렁이 새끼야.”


그리고, 여전히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끙끙대고 있는 농부의 머리채를 위로 홱 잡아채,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억지로 고개가 들려진 농부는 강도들과 감히 눈을 맞추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강도는 빙글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점창은 이제 없어. 우리 일월교가 지도상에서 점창이란 이름을 지워버렸다고. 알았냐?”


“예···예? 점창파가 없다니···”


콰직!


이번엔 주먹이 머리채를 잡힌 농부의 얼굴을 후려쳤다. 얼굴 정면의 콧대를 노린 일격이었다. 내공을 싣지 않은 주먹이라도, 이렇게 무방비하게 얼굴을 맞으면 부상을 입을 법했다. 헌데 지금 강도는 주먹에 분명히 내력을 실었으니, 단 일격만에 농부는 피를 터뜨리며 축 늘어지고 말았다.


“끅···끄억···”


농부의 콧속에서 터진 피가 호흡기를 타고 들어오며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냈다. 농부의 부인이 집 안에서 뛰쳐 나왔다. 이미 배를 가격하는 소리가 들릴 때부터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밖을 살피던 그녀였다.


“부군!!”


부인의 비명은 듣기만 해도 끔찍해서, 주옥의 귀에는 마치 단말마처럼 느껴졌다. 축 늘어진 자신의 반려자를 감싸 안으며, 그녀는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는가, 침묵으로 질문했다. 소리 내어 따지기에는 공포가 입을 막았다.


지금 벌어지는 참상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라면, 얼마든지 달게 받을 수 있었다. 천재지변이라면,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하늘의 뜻이겠거니, 하며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두 낯선 남자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헹, 의식은 붙어 있나. 자, 네년은 빨리 귀중품을 챙겨 나와! 네 남편을 살리려면 그게 가장 빠른 길이야!”


동료가 농부를 때리는 과정을 낄낄대며 지켜보던 다른 도적은, 눈물 범벅으로 절규하고 있는 부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최소한의 질서가 사라진 공간에서, 강자는 약자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다.


부인은 귀중품을 찾아 오라며 방 안에 내던져졌다. 그 바람에, 입고 있던 치마가 치켜올라가 그녀의 흰 허벅지가 드러났다. 방금 그녀를 방 안에 던져 넣은 조씨 강도가 잠시 멈춰서 그 모습을 보더니, 웃으며 동료에게 말했다.


“시간이 좀더 있었으면 좋았을 걸.”


“미친 놈.”


둥근 얼굴 강도가 능글맞게 웃으며 타박했다. 농담의 명백한 함의나, 그런 농담을 듣고도 장난스럽기 그지없는 대꾸나, 두 마교인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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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야생마 +1 24.08.11 78 4 13쪽
7 천마는 자유예요 +1 24.08.10 89 4 13쪽
6 진정한 마공 24.08.09 86 5 17쪽
» 적당히를 모르는 놈들 24.08.08 87 4 13쪽
4 그럼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1 24.08.07 108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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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마와 흑마 +1 24.08.05 211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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