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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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작품등록일 :
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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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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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마(2)

DUMMY

팔자에도 없는 도망을 이틀째 반복하던 주옥은, 드디어 말 세 마리 가운데 가만히 앉아 그들을 지켜보게 됐다. 그간 전속력으로 달려 왔지만, 그를 추격해 오는 야생마 무리 역시 꼬박 이틀을 포기하지 않고 쫓아왔던 것이다. 열심히 달려 거리를 벌려도, 잠깐 숨이라도 돌릴라 치면 나타나 있는 게 이 야생마 세 마리였다. 꼬박 이틀이 지나자, 주옥은 도주를 포기했다.


‘위험한 상대라면 전력을 다해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거나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기엔 애매한 상대였다. 상대방, 특히 그 중에서도 우두머리 암말이 무섭긴 했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존엄 상실과 관련된 실존적 공포였지, 생명의 위협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틀째 따라오는 저들의 몸짓을 조금씩 관찰해 보니, 자신에게 악의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친구!’


‘새 두목!’


‘좋아!’


이틀 내내 야생마들의 몸짓에서는 대개는 이런 뜻만이 전해져 왔다. 우두머리 암말도 마찬가지여서, 첫 만남때처럼 정신적 외상을 남길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도망치고, 일방적으로 따라오는 관계였지만 그 기간이 이틀씩이나 되자 심경이 적잖이 변했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도망쳐야 할 상대인가 하는 회의감, 그에 따라 낮아지는 경계심, 결과적으로 더 늦어지는 발걸음. 희한하게도, 주옥이 발걸음을 늦추자 야생마 무리도 따라 걸음을 늦췄다. 아예 이동을 멈추자, 야생마들도 그 자리에 정착해 주옥 주위에서 각자 풀을 뜯거나, 저들끼리 몸짓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풀, 맛있다’,

‘두목 빠르다’ 같은 단어 몇 개로 이루어진 간단한 문장들이 전부였다.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주옥은, 짙은 갈색 말이 자신을 바라보자, 준비해 둔 몸짓을 펼쳐 보였다. 네 다리가 각자 따로 놀 듯 어지럽게 땅을 짚었고, 꼬리는 가로로 휘저었으며,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인간이었다면 딱한 길거리 천치 취급 받기 딱 좋은 몸부림이었지만, 말에게는 달랐다. 그의의 몸짓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었다.


‘왜 따라옴?’


지난 며칠 간, 야생마들을 관찰하며 말의 몸짓 언어를 하나씩 습득했다. 말들이 취하는 몸짓 언어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었으니, 이틀 간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보고 어떤 동작이 무엇을 뜻하는지 익힌 것이다. 의미가 잘 전달되었는지, 짙은 갈색 말은 고개를 잠깐 갸웃하더니 몸짓과 소리로 대답했다.


‘왜? 너, 우리 두목.’


당황스러웠다. 방금 말 뜻을 풀어 보자면, '왜냐니? 넌 우리 두목이잖아.' 정도가 적당했으며, 이것 말고 다른 의미이기는 어려웠다. 이건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어, 곧장 되물었다. 마음이 급했지만, 동작을 틀리지 않게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천천히 동작 하나하나를 되짚으며 주옥은 몸짓으로 이렇게 질문했다.


‘나 왜 두목?’


내가 왜 너희 두목이냐는 말이었다. 짙은 갈색 말은 더욱 의아해 하며 대답했다.


‘우리, 정했음.’


우리가 그렇게 정했다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며 야생마 무리를 돌아보았다. 본래는 유성이 있는 암말이 두목이었을 터, 왜 자신이 어느 새 이 야생마들의 대장이 되어 있는 것일까. 왜 그런 걸 맘대로 정하느냐, 나는 너희 두목이 되기 싫다. 주옥은 이렇게 따지려 했지만, 크나큰 문제가 있었다.


‘···그런 몸짓은 아직 모르는데.’


말들은 워낙 무사태평해서 서로가 싸우거나 따지는 경우가 없었고, 그래서 아직 따져묻는 데 필요한 단어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급격하게 뒷골이 당겨 왔다. 말도 골치가 아프구나, 라는 점을 새로 깨달으며, 지금 상황을 정리했다.


‘젠장. 그럼 난 그만두겠다는 말을 배울 때까지 이 녀석들을 끌고 다녀야 되는 거야?’


체고(體高)가 5척에서 5척 반 정도인 야생마 무리를 보니, 이들이 왜 자신을 대장으로 삼고자 하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지금 자신의 몸은 인간 시절에 봐 온 어떤 말보다도 덩치가 컸으니, 야생마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그들의 눈에 자신은 무리를 가장 든든히 지켜줄 동족으로 보일 것이다.


의외인 것은 전 우두머리였던 유성 암말이었다. 보통 동물들의 대장이라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싶어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지금은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을 대장이라 부르고 있다. 이것은 서열 의식이 강하지 않은 유성 암말의 성격 때문이었는데, 꽤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으니 지금의 주옥에겐 의문 뿐이었다. 어쨌든 순식간에 군식구가 셋이나 붙은 처지이니,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앞날이 막막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세 마리나 더 책임져? 말에 대해서도 날 모르고, 심법도 전혀 진전이 없···’


그 때, 흑마의 커다란 두 눈이 끔벅였다. 이 네 마리를 끌고 다니는 게 정말 귀찮기만 한 일일까? 방금 생각한 대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걸 반드시 혼자 해야 하는 걸까?


당장 초원에서 첫 운공을 할 때도 암말의 방해를 받고 크게 놀랐었다. 만약 그게 암말이 아니라 맹수였다면 공격을 받았을 지도 몰랐다. 게다가 말들에게서 도망치던 근래 이틀, 틈틈이 각종 심법으로 운공을 시도해 봤지만, 여전히 반응이 전혀 없기도 했다. 운공이 실패하는 이유는 복잡다단했으니 그 때마다 문제를 고쳐 나가야 했건만, 도망치기 바빠 그 과정에 비교적 소홀했다.


지금 주옥은 새 몸을 얻었으니 다양한 시도를 해 봐야 했고, 그 사이 자신을 보호할 방법도 필요했으며, 말로서 살아가는 방법도 익혀야 하는 처지였다. 지금껏 자신을 쫓아온 야생마들은 그 모든 과정을 방해하는 대상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발상을 전환해 보면 어떨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지금껏 보이지 않던 다른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손익이 차례대로 정리되었다.


‘가만, 이들과 함께 다니면 운공은 오히려 편해지는 거 아니야? 서로 위협을 알려주면 되니까. 게다가 말들의 대화법이나 생활하는 법도 알게 될 거고. 물론 내가 나서서 이들을 지켜주긴 해야겠지만, 나한텐 무공이 있으니 웬만한 위협은 극복할 수 있겠지. 그럼 남은 문제는···’


유성이 있는 전 우두머리 암말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저 암말과 잘못 얽혀,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밑바닥에 떨어지는 것.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큰 위협이었으니, 이 위협을 해소할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했다. 주옥은 온몸을 비틀며 눈앞의 짙은 갈색 말에게 물었다.


‘쟤, 짝짓기 언제?’


짙은 갈색 말은 그 질문을 보고 곧장 대답했다. 야생마가 인간의 정조 관념 따위에 얽매일 리 없으니, 답에도 거침이 없었다.


‘지금 안 함. 발정기 끝.’


발정기라는 단어를 알아듣고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동시에,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방금 들은 말(사실은 몸짓)인즉, 발정기만 피하면 위기의 순간도 피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여기다 안전장치를 하나만 더 걸면, 당분간 이들과 함께 다니는 것도 나름 괜찮은 경험이 될 터였다. 주옥은 마음을 굳게 먹고 몸을 움직여 표현했다.


‘나, 짝짓기 못 함. 없어.’


그러자, 짙은 갈색 말은 주옥은 한참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몸짓이었다. 그 몸짓이 뜻하는 바는 이러했다.


‘아쉽다. 그래도 괜찮다. 두목. 강하고 빠르니까.’


아쉽다니? 그 의미를 잠깐 생각해보고는, 곧 경악했다. 주옥을 눈독 들이던 건 유성 암말 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눈앞의 짙은 갈색 말 역시 암컷이었다.


* * *


야생마들은 한 번도 인간의 손을 탄 적 없이, 평생 이 세 마리만 함께 해 왔다. 거기다 짐승의 지능이었으니 따로 서로를 지칭할 일이 없어 이름조차 없었다. 이에 주옥이 각자 이름을 지어 주었다.


회색 말은 숫말, 주옥이 지어준 이름은 회영(灰影)이었다. 그리고, 야생마 무리의 청일점이기도 했다. 이 점은 주옥에게도 의외였다. 야생 동물들은 가장 힘이 센 개체를 우두머리 삼는 줄만 알았으니, 우두머리가 암말이라면 셋 다 암말일 거라 예상했던 것이다. 주옥은 각 말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며 수컷이 우두머리가 아닌 이유를 추측해 봤다.


‘말들은 근육량이나 덩치나, 암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 그럼 자손을 낳을 수 있는 암말의 영향력이 커질 수도 있겠지. 말은 1년이면 거의 장성하니까. 나를 두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워낙 강하기 때문인가?’


말과 관련된 그의 지식은 제한적이었으니 마음대로 추측한 내용이었다. 실제로 암말의 상하반신 체중 배분이 더 균형적이어서 오래 달리기에 유리하다거나, 암말의 성격상 안전과 보호를 우선시하여 우두머리에 어울린다는 등의 정보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파악할 수 있었다.


짙은 갈색 말은 갈청(褐淸), 유성이 있는 전 우두머리 암말은 말 그대로 유성(流星). 며칠간 이들과 함께 해 보며, 주옥은 이 말들의 지구력과 주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점을 깨달았다. 인간 시절 봐 왔던 말들과 비교해서도 그랬고, 자신과 비교해도 이 두 능력만은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경공까지 써 가며 진심으로 도망치는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올 때부터 느껴 왔던 점이었다.


영양 상태가 좋아 보이긴 했으나, 왠지 그걸로는 설명이 부족해 보였다. 말이라면 인간에게도 귀중한 재산이니, 보양식을 챙겨 주거나 마의(馬醫)를 붙이는 등 철저히 관리한다. 주옥은 이들이 자신과 필적하는 능력을 갖게 된 데 반드시 계기가 있을 거라 여기고, 유성에게 질문했다.


‘너희, 뭐 먹어?’


일단은 먹는 것부터 확인할 요량. 대륙은 넓었고, 무림의 자연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약(靈藥)이 많았다. 이 말들의 체력과 주력을 보면, 혹 그런 자연의 영약을 챙겨먹은 건 아닌지 궁금했다. 물론, 호락호락하게 대답해 줄 말들이 아니었다.


‘풀! 맛있는 풀!’


유성은 몸으로는 이렇게 대답하며, 발치에 핀 잔디를 한 입 뜯어먹었다. 말들의 지능은 어디까지나 짐승 수준이었으니,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한 번에 답해주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점창의 장로를 맡을 때도 어린 제자들의 동작을 봐 주며 나름대로 소통을 해 본 그였다.


‘풀 싫어. 다른 거, 뭐 먹어?’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으니, 답이라도 얻으려면 이렇게 묻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그러자 유성이 대답했다.


‘열매, 벌레, 뱀, 버섯, 나무껍질. 다른 것들. 먹어 봐.’


그 말에 주옥이 약간 놀라 되뇌었다.


‘벌레랑 뱀?’


말은 원래 하루 종일 풀을 뜯어먹는 동물이니 버섯과 나무 껍질 정도는 얼마든 예상 가능한 먹이였다. 하지만 벌레와 뱀은 예상을 빗나갔다.


‘풀을 먹는 짐승 아니었나?’


인간 시절 말에 대해 각별한 관심이 있진 않았다. 단순히 건초나 생 풀을 여물로 준다는 것 정도만 알았지, 이렇게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줄도, 그래도 되는 줄도 몰랐다. 게다가 버섯, 벌레, 뱀이라면 죄다 맹독을 가진 것들 아닌가. 주옥이 서툰 몸짓으로 급히 물었다.


‘벌레, 뱀, 버섯, 먹어도 돼?’


유성은 말의 얼굴로 저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신기할 지경으로, 눈에 띄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당연.’


당황스러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먹이들인데다, 자신이 과연 벌레나 뱀을 요리도 하지 않고 씹어먹을 수 있을 지가 또 하나의 관건이었다. 풀 종류는 이제 아무런 부담 없이 씹어넘길 수 있게 됐지만, 뱀을 통째로 씹어먹는다 생각하니 또다른 도전이 될 것만 같았다. 긴장한 주옥이 꼴깍 삼킨 침이, 긴 말 목을 한참 동안 타고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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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천마는 자유예요 +1 24.08.10 89 4 13쪽
6 진정한 마공 24.08.09 86 5 17쪽
5 적당히를 모르는 놈들 24.08.08 87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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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마와 흑마 +1 24.08.05 212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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