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베는 달빛 검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레드보이맨
작품등록일 :
2024.08.08 16:32
최근연재일 :
2024.09.14 17:49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367
추천수 :
9
글자수 :
71,714

작성
24.08.14 16:30
조회
30
추천
1
글자
13쪽

괴물은 누구?

DUMMY

어릴 적, 검은 띠를 따면 RC카를 준다는 꾀임에 넘어가 검도장을 다녔었다.

처음엔 단순히 RC카를 얻기 위해서였지만, 하면 할수록 검도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마침내 검은 띠를 허리에 두르게 되었고, 잊고 있던 RC카도 약속대로 받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검은 띠를 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관장님과 트러블이 생겼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는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검도장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 후로 '검'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그 어떤 것도 손에 잡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 지금으로부터 3년 전까지는 말이다.


* * *


식사를 마친 나는 곧장 뒷마당으로 향했다.


"케빈, 무리는 하지말고!"

"네, 엄마. 걱정마세요!"


뭐, 무리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한계라고 느낄 즈음이면 그것을 귀신 같이 알아챈 마크가 대련을 멈추곤 했으니까.

다친 적도 없었다.

그만큼 나와 마크 사이에는 엄청난 실력 격차가 있었으니까.


"그럼 다녀올게요!"


나는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목검을 들고 곧장 뒷마당으로 발을 내디뎠다.

바닥에 앉아 석양으로 물들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는 마크의 뒷모습과 한쪽 구석에 놓인 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삼촌."


마크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왔어?"

"네.“


나오라고 해서 일단 나오긴 했다만..

고된 대련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대련을 핑계가 입에서 먼저 튀어나왔다.


"그런데 밥 먹고 바로 움직이다 체하면 어떡해요."

"그럼.. 어디 보자."


.. 씨알도 안 먹히는 듯하다.


마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마당 한켠에 있는 커다란 나무로 걸어갔다.

나무 앞에 서서 잠시 살펴보더니, 무언가 고르는 듯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가리켰다.


"이게 적당하겠네."


곧게 뻗은 굵은 나뭇가지에서 손가락을 멈춰세운 마크의 손에 얇은 막이 생겼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그의 손날이 나뭇가지를 가로질렀다.


사악-


나뭇가지는 예리한 칼로 자른 듯 매끈하게 잘려나갔다.

마크는 나뭇가지가 떨어지기 전에 공중에서 그것을 낚아채더니, 손에 생긴 얇은 막으로 나무를 다듬기 시작했다.

그러자 투박했던 나뭇가지가 순식간에 형태를 갖추어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로 만든 단검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떠돌이 보부상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느 떠돌이 보부상이 손에 얇게 오러를 두르고 단 몇 초 만에 투박한 나뭇가지로 단검을 뚝딱 만들어 내겠는가?


"흠, 이만하면 쓸만하겠네."


따끈한 즉석 단검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던 마크가 나를 바라보았다.


"준비는 끝났으니까, 그럼 시작해볼까?"


보아하니 아버지가 오시기 전까지 대련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은 무조건 한 방 먹일 거에요. 그러니까 긴장하세요, 삼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고 하지 않던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방 먹인다.

다른 날이면 모르겠지만, 오늘은 가능할 수도 있다.


"기대할게?"

"..."


마크의 대답과 함께 나는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 * *


대련이 시작되자 눈빛이 변하는 케빈을 보며, 마크는 속으로 감탄했다.


'호오, 볼 때마다 적응 안 되네. 신기할 정도야. 누가 쟤를 10살로 보겠어.'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하는 법.

검을 쥐는 순간 어찌 저리 형님과 닮았단 말인가.

뭐, 그렇다고 형님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날 새겠네, 선공 안 할 거야? 내가 가리?"


마크의 능글맞은 도발에게도 케빈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저 눈동자만 굴리며 마크의 이곳저곳을 살필 뿐이었다.


‘..얘좀 보게? 설마 빈틈을 찾는 건가?'


에이, 10살 꼬마가 벌써부터?

마크는 순간 의아했지만,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일부러 빈틈을 보이는 것.


마크는 아주 짧은 시간 의도적으로 빈틈을 보였다.

그러자 그가 생각한 것이 정답이라는 듯, 케빈의 허벅지가 용수철처럼 튕겼다.


탁!


상반신을 앞으로 기울인 케빈의 목검이 마크의 하단을 향해 휭으로 날카롭게 휘둘러졌다.

그 누가봐도 10살짜리 꼬마의 손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딱!


마크는 한손에 쥔 단검으로 케빈의 공격을 가볍게 받아쳤다.


"오, 케빈. 이제 거북이보다 조금 나은데?"

"이익!"


이를 악문 케빈이 다시 마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물론 마크는 당연하다는 듯 여유롭게 공격을 받아냈고.

그렇게 대련은 계속해서 케빈의 공격을 마크가 받아치는 양상으로 이어졌다.


* * *


"허억.. 허억.."


숨이 가쁘다.

별로 움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아,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서 그런 건가?


"아직 멀었어, 케빈."


저 괴물은 여태까지 내 공격을 단검 쥔 한손으로 다 받아내놓고 땀 한방울 흘리지 않는다.

역시 떠돌이 보부상은 무슨..

차라리 지나가는 개가 두 발로 걸어다닌다 해도 이것보다는 믿겠다.


"10살 치고는 굉장한 건 인정한다만, 그래도 풋내는 어쩔 수 없구먼?"


.. 안다.

저건 나를 움직이게 하기 위한 도발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말들이 묘하게 나를 건드린다.

쉽게 말하면 '긁'힌다고 해야하나?


"끝난 거야? 설마? 그런 거라면 전에 비해서 조금 빨라진 것 말고는 나아진 게 없어 실망인데?"


끝난 거냐고? 아니, 그럴리가.

다른 날이라면 몰라도 오늘만큼은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다.


마크는 내 체력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챘을 터.

반대로 말하면 그가 가장 방심하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는 소리 아닌가?


그렇다면..


"흡, 후.."


나는 코로 마쉰 숨을 입으로 깊게 내쉬었다.

그간 활용하지 않았던.

잠들어 있던 티끌만한 마나가 온몸을 타고 도는 것이 느껴졌다.


'기회는 딱 한 번.'


이 생각과 함께 나는 다시 마크를 향해 몸을 날렸다.


"?!"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거리가 좁혀지자, 마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목검을 크게 휘둘렀고.

예상대로 마크는 단검으로 내 공격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


타다닥-


나는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켜 마크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어 재차 그의 허리를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어느새 나를 향해 몸을 돌린 마크가 목검을 향해 단검을 가져다 대며 외쳤다.


"케빈! 너 드디어 마나를 활용할 수 있게 된.."


지금이다.


"핫!"


나는 짧은 기합과 함께 허리를 향하던 검의 궤적을 가슴 쪽으로 뒤틀었다.

관성의 법칙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움직임.

내심 실패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 했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탁!


회심의 일격은 민망해질 정도로 가볍게 막혔고.

마크는 내 몸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털썩.


마크와 멀리 떨어진 나는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다친 곳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갔을 뿐.

젠장, 이번에는 한 방 먹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잠시 후,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한 마크가 내게 다가왔다.


".. 케빈, 그 1식 언제부터 쓸 수 있게 된 거냐?"


나는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얼마 되지 않았어요."

"아니, 아무리 형님의 자식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왜요? 뭐가요?"

"아니야, 그럼 형님은 이 사실을 아셔?"

"아니요. 아직 아버지도 모르세요."


마크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흠, 그럼 네 1식을 본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는 거지?"

"네, 맞아요."

"흐흐, 이 사실을 말하면 형님이 어떤 표정 지으실지 궁금해지네."


잘은 몰라도 이 양반, 무언가 즐거운 상상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13식 중에 고작 1식을 사용한 것이 그렇게 들뜰 일인가?


'모르겠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쉬고 싶을 뿐.

나는 어느새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황금빛 노을을 낀 하늘 아래.

단단하게 다져진 흙바닥 위에 노을과 같은 황금색 머리를 가진 소년이 누워 있었다.


"으.. 삼촌, 오늘은 유독 더 빡센 거 같은데요?"


누워있는 소년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듯 잘게 떨렸다.

이를 지켜보던 사내가 목검을 어깨에 걸친 채 대답했다.


"아니, 어떻게 매번 올 때마다 이러냐.. 이제 나는 네가 무서워지려고 하는데?"


사내의 말에 소년이 부들거리는 허벅지를 부여 잡으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아직 아버지에 비하면 한참 멀었죠."

"그렇지.. 그래도 아직 삼촌한테는.. 안 되는.. 응?"


어깨에 목검을 걸치고 있던 사내의 팔이 내려갔다.


"케빈, 네가 네 나이에 비해 엄청난 건 사실이야. 벌써 2식을 쓰고 3식을 흉내 내는 수준이니까. 하지만..."


사내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형님 생각하기 전에 나부터 꺾을 생각을 해야지, 그리폰이 드래곤 쫓아가다 날개 태워먹는다?"


잔소리 아닌 잔소리에 소년은 문득 5년 전 과거를 떠올렸다.

그래, 이 괴물같은 삼촌에게 1식을 처음으로 보였던 날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지르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옆에서 양 주먹을 불끈 쥐시는 어머니.

그리고 마치 아기의 첫 걸음마를 본 사람처럼 자랑스러워 하는 마크까지.

소년은 그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튼 고생했다. 형님이랑 형수님 기다리시겠다 얼른 돌아가자."

"네, 삼촌!"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 두 사람은 이내 뒤돌아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고된 대련을 마치고 샤워를 끝낸 우리를 아버지의 목소리가 맞이했다.

오늘은 작업이 일찍 끝났는지 아버지는 이미 식탁에 자리를 잡고 계셨다.


"다들 고생했다."


마크가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어, 다들 안 드시고 기다리셨어요? 먼저들 드시지 참.."

"하하, 자식 교육에 지대한 도움을 주는 사람을 두고 어떻게 먼저 먹겠나?"

"아이고, 형님.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얼른 드십시다!"

"그래, 시장할 텐데 얼른 먹거라."


그렇게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어머니의 요리 실력은 역시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즐겁게 식사하며 대화하던 중 마크의 말을 들은 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뭣? 3식을 흉내 정도는 낸다고 했느냐?"

"형님 곁에서 지낸 세월이 얼만데, 제가 그걸 구분 못하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렇군.. 벌써 3식을 흉내를 낸다는 건가."


아버지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으셨다.

1식과 2식의 성취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

이에 의아함을 느끼던 그때.


짝짝-


"그거 정말 잘 된 일이네요."


어머니의 박수 소리와 함께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단숨에 반전됐다.


"15살에 벌써 3식이라니! 축하해, 아들."

"감사해요 엄마!"

"그람, 당신도 저 나이엔 3식을 못 썼죠?"


아버지가 씩 웃으며 답했다.


"하하, 성인이 된 이후에 창안한 검술이라 알 수 없지만.. 확실히 그랬을 것 같소."


그러더니 시선을 내게로 옮겼다.


"3식의 흉내라고는 하지만, 흉내 내기 시작했다는 건 곧 3식을 사용하게 될 거란 뜻이다. 축하한다. 역시 내 아들이야."

"아니에요, 다 아버지 덕분인 걸요."

"어어, 케빈? 나는 왜 빼는 거냐?"

"아이참, 마크 씨 지분도 당연히 있죠. 안 그렇니, 케빈?"


그렇게 돌아온 훈훈한 분위기 속에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식사가 끝이 났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케빈. 엄마랑 아빠는 마크 삼촌이랑 따로 이야기할 게 더 있어서 먼저 가서 쉬고 있으렴."


보통은 저녁 식사가 끝나면 모두 함께 정리를 했다.

이야기가 길어지더라도 이렇게 나만 먼저 보낸 적은 없었는데...


"네, 그럼 먼저 올라가 볼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좋은 꿈 꾸렴."


나는 궁금한 마음을 누른 채 곧장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섰다.

몰래 들어볼까 싶었지만, 내려오는 계단 소리에 아버지가 눈치채실 게 뻔했다.


"연공이나 해야겠다."


방금 식사를 마쳐서 눕기도 애매하고, 당장 졸리지도 않았다.

게다가 고된 대련 후 마나 연공을 하면 피로가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기에.


나는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후.."


천천히 눈을 감았다.

호흡이 깊어지며 주변의 마나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연공에 빠져들어 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간 베는 달빛 검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필독. 24.08.09 53 0 -
13 노인과 문양 24.09.14 6 0 12쪽
12 강한 상대를 이기는 법. 24.09.11 13 0 13쪽
11 변상각 24.09.06 12 0 12쪽
10 주제 모르는 자의 말로 24.09.03 14 1 13쪽
9 시험 시작? 24.08.29 28 1 11쪽
8 수박 파티 24.08.26 23 1 12쪽
7 어머니, 우리 어머니 24.08.23 32 0 12쪽
6 제국으로 24.08.22 30 1 11쪽
5 이별 24.08.20 28 1 14쪽
4 네? 뭐라고요? 24.08.16 36 1 13쪽
» 괴물은 누구? 24.08.14 31 1 13쪽
2 케빈 24.08.13 45 1 13쪽
1 프롤로그 24.08.09 69 1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