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베는 달빛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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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보이맨
작품등록일 :
2024.08.08 16:32
최근연재일 :
2024.09.1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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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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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모르는 자의 말로

DUMMY

- 지금부터 1시간 뒤 호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은 사실상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모든 지원자들이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5분 안에 시험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자동 실격이라..'


지원자가 너무 많아 3일에 걸쳐 진행된다는 입학 시험.

그래, 어중이 떠중이를 솎아내려는 의도는 알겠다.

하지만..


'굳이 한 시간 뒤에 호명을?'


오히려 그 시간 동안 규칙을 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이 담합해 실력자의 시험을 방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건가?

뭐, 상황에 대비할 시간이라도 공평하게 주자는.. 그런?


"케빈 씨.."


마리아의 부름에 나는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 네?"

"들어보니까 이제부터 최소 한 시간은 꼼짝없이 버텨야하는 것 같은데.. 어떡하죠?"


그래, 아카데미 측의 의도가 뭐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그에 대비하는 게 우선이다.

시험을 치러 왔으니 시험은 치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 일단 호명되기 전까지 최대한 튀지 않게 행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공포 영화를 보다보면 꼭 한 명 쯤은 있지 않은가?

괜히 나대다가 가장 먼저 죽는 놈.

그리고 그런 속담이 있지 않은가?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간 중간 나무가 심어져 있는 넓은 공터.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지원자들.

이 상황에서 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래, 간단하다.


".. 이야기해요."

"네?"

"이전처럼 이야기 하자고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된다.


* * *


1시간은 참 애매하다.

많은 것을 해낼 수도 있지만, 단 하나의 일을 하기에도 부족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공터는... 마치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거대한 눈치 게임 같았다.


마치 내가 했던 생각을 다른 이들도 똑같이 한 듯.

모두가 서로를 주시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마치 고요한 폭풍 전야와도 같았다.


마리아와 나는 계속해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주변을 살펴보니 몇몇 다른 지원자들도 아는 사람들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대화하는 것이 특별히 튀는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높이거나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면,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간혹 튀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딱히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그들을 제지하려는 행동이 오히려 더 주목받을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미묘한 긴장감 속에서 흐르던 시간은 어느새 마지막 모래 한 알이 떨어지며 끝을 맞았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에반스가 우렁차게 외치며 허공에 떠 있던 거대한 모래시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모래시계가 천천히 뒤집히더니, 아래쪽에 쌓여있던 모래가 상단에 자리 잡았다.


"그럼 호명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164번.

하지만 번호는 크게 의미가 없다.

호명은 번호순이 아닌 무작위라고 했으니까.


"27번, 334번."


쳇, 내심 기대했지만 역시나다.


"번호가 호명된 인원은 각자의 시험장으로 입장하십시오."


에반스의 말과 함께 모래시계의 모래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번에는 모래가 다 떨어지면 정확히 5분이 지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잠시만.. 27번?


나는 재빨리 옆에 있던 마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이미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27번, 저네요."


와, 운 무슨 일?

이게 되네?


".. 시험장까지 같이 갈까요?"

"음.. 혼자 가는 게 덜 주목 받지 않을까요?"

"..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긴, 이런 작은 여자 아이를 막아설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럼 혼자 갈게요! 우리는 시험 치고 밖에서 봐요."

"..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아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저 멀리 보이는 마법 시험장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지원자들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남 걱정하는 꼴이라니.

뭐, 괜찮겠지.


혼자 남게 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호명 후 5분이 지나면 자동 실격이라는 압박 때문일까?

지원자들의 긴장감이 눈에 띄게 고조된 것 같았다.


잠시 후,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졌다.

에반스는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으며 우렁차게 외쳤다.


"다음 번호입니다. 92번 203번."


이번에도 나는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내 근처에서 움직이는 지원자도 없었다.

호명된 번호의 주인공들은 아마도 공터의 다른 쪽에 있는 모양이다.


"다음 번호입니다. 2번, 198번."


이번은 반응이 있었다.

오른쪽에서 거대한 덩치의 한 남자가 움직였다.

그의 손등을 보니 2번이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그런데 그가 몇 걸음 떼기도 전에, 갑자기 세 명의 지원자들이 재빨리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 가려고, 한센?"

".. 젠장."


2번.. 아니, 한센의 반응을 보니 그는 이런 상황을 이미 예상했던 듯했다.

비아냥거린 지원자. 68번과는 분명 서로 알고 있는 사이 같았다.

물론 좋은 사이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비켜라. 나도 시험을 봐야 한다."

"시험? 네가? 넌 여기 올 자격도 없어, 한센. 네가 내 동생에게 한 짓을 잊었나?"

"그건 오해라고 분명 내가 말했지 않나!"

"또 같잖은 핑계군, 들어줄 가치도 없다. 철문을 지나 공터에 발을 디뎠을 때 네 놈이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가증스럽던지.. "


그 말과 동시에 한센과 대화하던 68번이 손짓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남은 두 명이 한센의 뒤로 돌아 삼각형 대형으로 그를 포위했다.


"덮쳐!"


그의 외침에 세 명의 지원자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한센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한센은 재빨리 검을 들어올려 방어 자세를 잡았다.


챙-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전투가 시작됐다.


챙, 채챙-


한센의 검술 실력은 확실히 뛰어났다.

세 명을 상대로도 안정적으로 공방을 주고받았고, 큰 덩치와는 반대인 날렵한 몸놀림으로 공격을 피해내며 동시에 예리한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역시 다굴에 장사는 없는 것일까.

세 명의 지원자들의 협공이 점점 호흡을 맞춰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한센은 수세 몰렸다.

그의 팔과 얼굴에는 작은 생채기들이 늘어났고, 옷은 찢어지기 시작했다.


챙-


"크윽.."


이번엔 옆구리에 생채기가 난 한센이 후속타를 필사적으로 막아낸 뒤, 순간 모래시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반사적으로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한센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나를 바라보는지에 대한 의문이 피어오를 때 쯤.


"우워어!"


그가 크게 함성을 지르더니.


채채챙-


세 명의 공격을 한꺼번에 받아친 뒤 내쪽으로 몸을 날렸다.


"비켜!"


거대한 몸을 이끌고 빠르게 다가온 한센이 고함을 질렀다.

나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틀었고, 그가 내가 있던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의 뒷모습 너머로 검술 훈련장이 보였다.

조금 전, 그가 본건 내가 아니라 검술 훈련장인 모양이었다.


"서라!"


한센과 공방을 주고받던 세 명도 그를 쫓아 내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이 쏜살같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몸을 틀어 피하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 어?!"


그들 중 가장 선두에 있는, 한센에게 원한이 있어 보이던 68번.

그와 나의 움직임이 무슨 짠 것마냥 딱 맞아떨어졌다.

내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동시에 68번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나는 재빨리 몸을 틀어 피했지만, 68번은 그렇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으로 발이 엉켰고, 결국 그는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다.


쿠당탕 -


68번은 빠른 속도로 뛰었던 탓인지 몇 바퀴를 구르고서야 멈췄다.

그가 넘어지자 나머지 두 명은 멈칫하더니 어떻게 할 줄 몰라 갈팡질팡했다.


"끄으.. 뭐해! 쫓.."


상체를 세우며 외치던 68번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이미 지원자들 틈으로 사라진 한센을 쫓아봐야 늦었다 판단한 듯했다.


".. 이, 이!!"


68번이 분한 듯 땅바닥을 내리쳤다.

그리고 이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 네가 방해만 안 했어도 한센을 잡았을 텐데."


그때 한센을 쫓던 나머지 두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68번에게 다가왔다.


"이거 어떻게 하나? 놈이 도망쳤는데."

"그래, 안타깝게 됐어."


68번이 손에 쥔 검을 지팡이 삼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한센 대신 저놈을 내 앞에 무릎 꿇리는 걸로 하지, 어쨌든 저놈 때문에 한센을 놓쳤으니까."


그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두 명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쨌든 놈을 놓친 건 사실이니까."

"대신 이전에 말한 보수는 확실하게 챙겨달라고."


세 명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향했다.

.. 잠시만, 일이 갑자기 이렇게 된다고?


68번이 검을 들어올려 나를 겨눴다.


"네가 방해만 안 했어도 한센을 잡았을 텐데. 그 책임은 네가 져야겠어."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내가 방해를 했다고?


".. 그 한센이라는 분을 놓치신 건 그냥 그쪽분들의 실력 부족 아닌가요?"


마크에게, 아니 정확히는 사람 얼굴이 수박으로 보이게끔 가면에 마법을 부여해준 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기능이 아니었다면 나는 저런 터무니없는 억지에 병신같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있었을 테니까.


내 말에 68번이 아닌 나머지 두 명이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하, 실력 부족?"


둘 다 '실력 부족'이라는 말에 긁힌 듯했다.


"갑자기 말려들게 해서 나름 미안한 감정도 있었는데.."

"휴고, 너는 가만히 있어. 저놈에게 내가 직접 쓴맛을 보여줘야겠어."


휴고라 불린 사내는 나와 동료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토미. 너무 큰 부상을 입히면 자동 실격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걱정마."


토미가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섰다.


"그건 아주 잘 기억하고 있으니까."


어이가 없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꼴이라니.

이자들은 내 실력도 모르면서 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걸까?

설마 그 어줍짢은 실력을 믿고?


"어이, 거기 너."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이 자들은 모를 테니까.


"나는 토미다, 네 이름은 뭐지?"


이전에 그들과 삼 대 일로 겨뤘던 수험 번호 2번.

생각보다 검술이 꽤 훌륭했던 한센.

그런 한센보다 내가 훨씬 강하다는 것을.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쫄아버린 모양이군."


토미는 내게 검을 겨눈 채 말을 이어가며 천천히 다가왔다.


"누군가가 이름을 정중하게 이름을 물을 땐 그에 맞게 대답해야 한다는 걸 부모에게 배우지 못한 모양이야. 네놈 부모는 부모로서 실격이군."

"...."


뭐라고?


그가 다가와도 아무렇지도 않던 마음에 순간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그 순간.


타닥-


내가 공격 범위에 들어왔다고 판단했는지 토미가 몸을 날렸다.


"일단 그 거지 같은 가면을 벗겨 네 놈의 상판부터 까주마!"


나를 향해 휘둘러지는 토미의 검.

하지만 그런 느려터진 공격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놈이 방금 내게 한 말.


부모로써의 자격?

거지 같은 가면?


나는 순간 마나를 끌어올렸다.

이어서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는 토미의 공격을 손바닥으로 쳐낸 뒤, 그대로 놈의 왼팔을 향해 발차기를 꽂아넣었다.


빡!


발끝에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감각이 전해졌다.

처음 느껴보는 소름돋는 감각.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쿵-


자신감 넘치던 모습이 무색하게 토미는 지면에 처박혔다.

그리고는 물수제비처럼 두어 번 튕겨나가더니 마지막엔 데굴데굴 구르다 멈췄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쓰러진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끄어.. 내.. 팔.."


토미는 전신에 타박상을 입은 채 보기 흉하게 짓이겨진 팔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놈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방금 뭐라고 했지?"

"끄어어.. 내 팔.."


짝!


마나는 거뒀다.

죽으면 안 되니까.


"대답해라."

"흐어어.. 대체.. 무엇을.."


짝.


내가 욕 먹는 건 상관이 없다.

그런데 부모님을 욕보이다니?

끓어오르는 분노가 주체가 되지 않는다.


"그 더러운 입으로 방금 뭐라고 했지?"

"데둉합니다.."


바지를 타고 흐르는 노란색 액체.

놈이 실금을 지리더니 이내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하.."


나는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토미의 몸이 축 늘어진 채 바닥에 떨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두 명을 바라보았다.

충격이 컸는지 제자리에서 선 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 새끼, 데리고 꺼져."


이전까지 소란스럽던 공터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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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국으로 24.08.22 30 1 11쪽
5 이별 24.08.20 28 1 14쪽
4 네? 뭐라고요? 24.08.16 36 1 13쪽
3 괴물은 누구? 24.08.14 30 1 13쪽
2 케빈 24.08.13 4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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