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베는 달빛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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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보이맨
작품등록일 :
2024.08.08 16:32
최근연재일 :
2024.09.1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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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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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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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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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국으로

DUMMY

평화로운 시골 마을 어귀.

그 한적한 들판를 가로지르는 한 무인 마차 안.


"어때, 가면을 쓰니까 좀 괜찮아?"


마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아요."

"다행이네."


솔직히 걱정했다.

가면을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을까봐.

또 이전과 똑같이 숨조차 쉬지 못 할 까봐.


하지만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마을에 가까워지자 심장박동이 빨라졌지만, 과호흡이나 다른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좋아, 그럼 이제 그 가면의 편의 기능들을 설명해줄게."


이후, 마크가 설명한 가면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상당한 강도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건 기본.

착용자의 체온을 적정 온도와 습도로 유지하고, 오감 보조는 물론 자체 청결 기능까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비저블이요? 그 투명해지는 마법 말인가요?"

"그래, 케빈. 이제 마나를 다룰 수 있지?"


그의 시선이 내 왼쪽 엄지에 끼워진 반지를 향했다.


"아까 보니 마나를 한곳에 모으는 정도는 가능해 보이던데."

”네, 맞아요.“

"그럼 설명 전에 먼저 가면부터 벗어볼래?"

".. 지금요?"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마음이 편안해질만한 풍경.

하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건 평화로운 시골 정경이 아니라

마차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냥 쓰고 있으면 안 될까요.."

".. 저기 있는 사람들 때문인 거지?"

"네, 생각보다 가까운 것 같아서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마크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촤라락 -


"자, 이러면 괜찮지?"


나는 마크의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초록빛 시골 풍경으로 가득하던 창문이 어느새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커튼을 칠 수 있었으면 진작에 좀 쳐주지..

나는 움츠리고 있던 몸을 펴고 가면을 벗었다.


"네, 괜찮아요. 감사해요, 삼촌"

"고작 커튼 하나 쳐준 거 가지고 감사는 무슨. 그럼 마저 설명할게."


마크가 가면을 가리켰다.


"가면 안쪽 미간 부분에 네모난 문양이 보이지?"

"네모난 문양이요?"


나는 즉시 가면 내부를 살폈다.

그의 말대로, 복잡한 다른 문양들 사이에 아무 무늬 없는 정사각형이 눈에 들어왔다.


"네, 보여요."

"그 네모난 부분이 빛날 때까지 네 마나를 한 번 집중시켜 볼래?"


나는 대답 대신 곧바로 마나를 집중했다.

그러자 정사각형이 옅은 빛을 발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에 띄게 밝아졌을 때쯤 가면과 함께 내 몸이 투명해졌다.


"우와."

"어때, 굉장하지?"


어머니에게 들은 바로는 인비저블은 낮은 급의 마법이 아니었다.

그런데 가면 하나로 인비저블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다니?

거기에 편의를 위한 마법들까지 잔뜩 넣어놓고선.. 뭐? 굉장하냐고?

그 말로는 부족할 정도다.


"네, 삼촌. 이 정도면.. 이거 아티팩트 아니에요?"

"뭐, 개별적으로는 대단한 마법들은 아니지만, 그 수가 워낙 많으니... 그렇게 불러도 되겠지. 그리고.."


마크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30분이라는 유지 시간과 하루에 한 번이라는 사용 횟수 제한.

빛을 발하던 네모난 문양을 살짝 누르면 나오는 마석을 담을 수 있는 칸.

그리고 그곳에 장착된 마석을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한다는 것까지.


그렇게 가면에 대한 설명이 모두 끝났다.


"이런 건 대체 어떻게 만드신 거에요?"


내 질문에 마크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시간과 돈, 그리고 인맥을 써서?"

"..."

"그런 표정 짓지마. 사실이니까."


.. 투명화는 아직 풀리지 않았는데.

대체 내 표정이 어떤 줄 알고 이런 말을..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안 봐도 뻔하네."


하하.

그래, 원래 이런 양반이었지.

말을 말자.


* * *


아카데미가 있는 제국 수도를 향해 떠난 지 이틀이 지났다.

말이 끄는 일반 마차(馬車)가 아닌 마석을 연료로 하는 마차(魔車)였기에,

샤워와 용변을 해결하는 짧은 휴식 외에는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바로 지금, 제국의 수도가 내 눈앞에 있다.


"와.."


멀리서 봤을 때도 압도적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장벽의 높이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장벽의 한 면 한 면이 빌딩 한 채와 맞먹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커텐 사이로 비치는 수도의 위용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정지, 정지!"


병사의 우렁찬 목소리에 마차가 서서히 멈춰 섰다.

이에 나는 곧바로 가면을 썼고, 마크가 커텐을 걷자 갑옷을 입은 병사가 다가왔다.


"신원과 방문 목적을 밝히십시오."

"마크라고 합니다. 상인이고,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조카를 데려왔습니다."


마크가 서류를 건네자 병사는 꼼꼼히 확인했다.

그러다 문득 나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너는 왜 가면을 쓰고 있는 거지?“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마크가 재빨리 나서서 말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류에는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흠, 그건 그렇습니다만.."


병사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풀지 않았지만, 더 이상의 추궁은 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입성을 허가합니다."


마크가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고, 마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수도 내부 전경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넓은 대리석 도로를 중심으로 양옆에 늘어선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과 그 뒤로 드문드문 보이는 탑들.

그리고 거리 곳곳에 이제 막 빛을 밝히기 시작한 마법 등불 아래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수많은 사람들.


"여차하면 돈이라도 좀 찔러줘야 하나 싶었는데, 확실히 수도라 그런가 기강이 확실하구만."


고개를 뒤로 젖혀 지나친 성문을 바라보던 마크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케빈, 괜찮아?"

".. 잘 모르겠어요."


거리의 많은 사람들을 보자마자 다시 이 모양이다.

가면을 썼는데도 말이다.

젠장.


촤르륵-


익숙한 커텐 치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 저 괜찮을까요?"

"뭐가?"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거요."


솔직히 아카데미 진학을 결정했을 때, 이제는 괜찮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면을 쓴 채 수도로 향하는 길의 풍경을 감상하던 조금 전까지도 그 생각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오판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내가 이걸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무서워?"

"솔직히 말하자면.. 네, 그래요."


나는 다시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그 순간부터 마차 안은 침묵에 휩싸였다.

잠시 후, 마크가 깊은 숨을 내쉬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케빈, 그러고 보니 물어보려다 깜빡한 게 있어."

"... 뭔가요?"

"숲을 떠나기 싫어하던 네가 결국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 말이야. 뭐 때문이었어?"


결심하게 된 이유라..

그때의 일을 마크에게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가 부모님에게 말할 사람도 아니고.

애초에 이런 일을 털어놓을 사람도 그 뿐이고.


“어머니 때문이에요..”

“형수님? 형수님이 왜?”

“그게..”


나는 6개월 전 있었던 일을 마크에게 설명했다.

아카데미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식사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일.

그리고 그날 저녁, 어쩌다 어머니의 흐느낌을 듣게 된 일.


마크는 내 이야기를 듣고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런 일이 있었구나."

"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줄까?“

”네?“

”네가 방금 말했잖아, 형수님 때문에 왔다고.“


마크가 좌석에 몸을 기댔다.


”네가 원해서 온 것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돌려보내줄 수 있어."

"...”

“물론 네 부모님은 조금 속상해 하시겠지만, 너는 사람을 마주하는 공포를 더이상 겪지 않아도 되겠지.“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이대로 돌아간다면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눈이 퉁퉁 부어있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지금 당장 저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도 두려운 게 사실이다.

..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케빈, 누구나 각자의 공포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


마크는 손가락으로 좌석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누군가에겐 거부할 수 없는 황명이, 다른 이에겐 연구의 실패가, 또 어떤 이는 벌레를 보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될 수 있지."

“···“

"그래, 따지고 보면 그 공포를 애초에 겪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하지만 케빈."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여태까지 그런 공포를 한 번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심지어 네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고.“

".. 아버지도요?"

"그래,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럼 우리가 이런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뭐냐는 거지."


공포를 벗어나는 방법.

피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남은 건 하나다.


"간단해, 그 공포와 맞서는 거야."


그래, 뻔하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공포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결국 그것과 마주하고 부딪혀 극복해야 할 거다.

다만 말처럼 쉽게 해결될 일이라면 진작에 그렇게 했겠지.


나는 마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말로 들으니까 쉬워 보이네요."

"아니, 쉽다고 한 적은 없어, 케빈. 공포와 맞서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야."


마크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하지만 넌 이미 그 쉽지 않은 일에 이미 첫 발을 내딛었어. 뭐 더 큰 공포에 떠밀려 나온 것 같긴 하지만... 네가 이 마차에 있다는 게 바로 그 증거지."

"더 큰 공포요?"

"그래."


나를 가리키던 그의 손가락이 내 가슴팍의 펜던트로 향했다.


"사람을 마주하는 두려움보다, 형수님이 슬퍼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더 두려웠던 거 아니야?"


맞다.

어머니의 슬픈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포인 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을 마주하는 것보다 견디기 힘든 건 맞았다.


"게다가 케빈, 네가 사람을 마주하는 걸 두려워하는 이유는 너도 잘 모르겠다며?"

"네."


잘 모르는 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거지만..


"하지만 어머니가 슬퍼하시는 이유는 확실하잖아."

".. 맞아요."


마크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크기와 상관없이 확실하게 대처 할 수 있는 공포부터 해결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지 않아?"

"..."

"뭐, 그 두려움의 크기를 모르는 내가 네 선택을 강요할 순 없겠지만 말이야."


그의 말에 나는 목에 걸린 어머니의 펜던트를 감싸 쥐었다.


"..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네가 정하면 돼."


그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마크가 의도한 것일까.

달리던 마차가 멈췄다.


"지금 도착한 이곳에 내릴지, 아니면 다시 그대로 숲으로 돌아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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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으로 24.08.22 29 1 11쪽
5 이별 24.08.20 2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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