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베는 달빛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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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보이맨
작품등록일 :
2024.08.08 16:32
최근연재일 :
2024.09.14 17:49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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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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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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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네? 뭐라고요?

DUMMY

다음날 아침.


"케빈! 아침이야, 일어나야지!"


1층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외침에 나는 잠에서 깼다.

아직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몸을 일으켜 침대를 정리한 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내려와 곧장 식탁에 앉았다.


"흐아암.. 삼촌은요?"

"아, 마크 씨는 간밤에 먼저 떠났단다."


음? 자고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그나저나, 아들. 아침 준비하는 것 좀 도와줄래?"

"네, 엄마."


나는 마크 생각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를 도와 아침을 준비했다.

뭐, 돕는 것이라 해봤자 다 만들어진 음식을 식탁에 옮겨 놓는 게 다지만..


잠시 후,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났다.

마침 타이밍 좋게 샤워를 막 끝내신 듯, 물기 젖은 머리카락을 한 아버지가 부엌으로 들어오셨다.


"케빈, 좋은 아침이구나."

"네, 좋은 아침이에요. 아버지."


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둘러보았다.


"에르델, 내가 씻고 나오면 같이 준비하자고 했잖소."

"아휴, 됐어요. 그리고 당신 대신 케빈이 도와줘서 금방 끝났네요."

"케빈이?"


아버지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향했다.

나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가 한 건 담긴 음식을 식탁에 옮겨 놓은 것 뿐인 걸요."

"그래도 기특하구나."


아버지의 두툼한 손이 부드럽게 내 뒷통수를 쓸어내렸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무한한 사랑이 담긴 그 손길.

나는 그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활짝 웃음 지었다.


* * *


잠시 후, 아침 식사가 시작됐다.

평소와 다를바 없었다.

일상적인 대화와 시시콜콜한 농담이 오가는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식사.

적어도 처음엔 그랬다.


"네? 뭐라고요?"

"제국 국립 아카데미라고 했다."

"아카데미요?"


나는 밥 먹던 손을 멈추고 귀를 의심했다.

뭐? 제국? 국립 아카데미?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그래, 언제까지고 이 숲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

".. 저는 이대로 쭉 두 분과 함께 지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15년이다.

15년 동안 단 한 번도 부모님의 의견에 반해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었고.

하지만.. 이건 아니다.


갑작스레 제국 국립 아카데미라니!

두 분은 2년 전에 있었던 일을 잊으신 걸까?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이야기를 꺼내실 수 없었다.


"케빈.. 엄마도 아들 보내기는 싫어. 항상 우리 가족 셋이서 이 집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그럼 지금처럼 쭉 함께 집에 있으면 안 돼요?"

"케빈.."


내 대답에 어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어머니를 힐끔 바라본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케빈, 정말 평생을 이 숲에서 우리와 함께 지낼 생각이란 말이냐?"


순간 아버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왠지 모르게 사람이 더 거대해진 느낌.

아버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에 '그러지 못할 이유라도 있나요?'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턱 하고 막혔다.


"우리 셋이 평생을 평화롭게 이 집에서 사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사실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어."

"..."

"하지만 세상일이 항상 우리 뜻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지금만 해도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지."

"여보.."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조금이나마 예측하고 대비하려면 필요한 게 뭔지 아느냐?"

"..뭔가요?"

"경험과 능력이다. 미래를 정확히 예지할 순 없지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어느 정도 예측은 할 수 있지."


아버지의 손가락이 창 너머 뒷마당을 가리켰다.

그곳엔 언제 널어놓으셨는지 모를 빨래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가령 느껴지는 습도, 하늘의 색을 보고 오늘은 화창할 거라는 걸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경험이요.."

"그래, 그 경험을 토대로 다가오는 미래를 예측하고 뛰어난 능력으로 대비를 하는 것이지. 그리고 그 경험과 능력은 이런 작은 숲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고."

"..."


아버지의 말 중에 틀린 것은 없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만약'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고 살아간다.

지구의 관점에서 예를 들자면.. 그래, 부모님의 사고로 내가 받았던 사망보험금 같은 게 그 중 하나겠지.


과거의 일을 떠올리자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대화 중이었다.

나는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꾹 누르며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를 보면 숨이 막히는 걸요."

"그래,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깊은숨을 내쉬며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 눈빛에서는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케빈,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우리와만 지내왔지 않느냐? 나와 에르델, 그리고 이 집 말고는 다른 누구와도 접점이 없이."

"네.."

"나는 네가 타인을 마주치면 두려워하는 이유가, 이 고립된 숲에서만 자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본 적이 없어서라고 판단했다."


아버지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전생의 일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대화를 듣고 있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케빈, 2년 전에 있었던 일 기억나니?"

2년 전 일을 잊으셨나 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네, 기억해요."

"그때 웬일로 네가 숲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해서, 마크 씨와 함께 근처 마을에 잠시 다녀온 적이 있잖아."

".. 네."

"그리고 나간지 얼마 안돼서 창백하게 질려서 돌아왔었지."


어머니의 말에 순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숲을 벗어나 마을로 향하는 순간부터 시작된 불안감.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보는 순간 덮쳐온 공포와 숨 막힘.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때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

물론 전생의 마지막 6개월 동안 그런 과호흡을 숱하게 경험했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그 숨 막히는 고통이 덜해지는 건 아니더라.


대체 왜 그때 한번 나가보자고 했을까.

대체 왜 이제는 괜찮아졌을 거라고 혼자 착각했던 걸까.

그래도 그때 그 일 덕분에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이 숲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계시면서 저를 아카데미로 보내시겠다는 건가요?"

"..케빈, 엄마는 그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잘 먹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끊으며 포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지만, 특별히 뭐라고 하시진 않으셨다


"그럼 남은 식사 맛있게 하세요."


나는 식탁에 앉아계신 부모님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 * *


"하.."


나는 한숨과 함깨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창밖을 보니 이미 어둠이 내려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난 거지.."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마나 연공을 하려 했다.

하지만 연공은 무슨, 그저 가부좌를 튼 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내 몸을 휘감는 복잡한 감정들을 추스르기에도 벅차, 제대로 된 연공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야 그 독 같은 감정들이 조금 가라앉은 듯했다.


"..배고프네."


사람이란 참 간사한 존재다.

조금 살만해지니 곧바로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부터 찾으니 말이다.

그래,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향했다.


끼익-


슬며시 방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밀려들어왔고.

어두워진 복도를 둘러보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분명 음식을 놓고 가시겠다고 하셨는데.

혹시 시간이 너무 지나 치우신 건가?


꼬르륵-


이제는 배에서 음식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이에 나도 모르게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래층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 보니 부모님은 이미 방에 들어가신 모양이다.


'그럼..'


나는 천천히 복도로 나섰다.

목조 건물이라 발소리가 잘 울리는 데다 집 안이 고요해서, 평소처럼 걸으면 나무 바닥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릴 것이 뻔했기에.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무 계단이 삐걱거릴까 봐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조금 내려오자 어둠에 잠긴 1층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두 분 다 방으로 들어가신 게 분명해 보였다.


"후.."


잠시 후, 마지막 계단을 내려선 나는 주변을 한 번 더 살핀 뒤 부엌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곧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거실을 가로지르는 동안, 가까워진 부모님의 방 문틈 사이로 미처 보지 못했던 미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 아직 안 주무시나 보다.'


이미 내려온 마당에 빈 손으로 돌아가긴 아쉽지만..

뭐, 지금 당장 무언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 날 것도 아니고.


망설이던 것도 잠시, 나는 다시 계단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흐흑.."


"...?"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분명 어머니의 흐느낌 소리였다.

왜지? 뭐 때문인 거지? 설마 오늘 일 때문인가?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배고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걱정이 한가득 차올랐다.

이에 내 발걸음은 자연스레 부모님 방 쪽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흑.. 흐윽.."


문 앞에 선 나는 주저했다.

노크를 해야 할지, 그냥 들어가야 할지 망설이는 그 순간.

방 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르델, 당신은 케빈에게 항상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었잖소."

"하지만.. 흐흑.."


어머니의 흐느낌 소리에 가슴이 내려앉는 듯했다.

노크할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숨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내가.. 내가 부족해서.. 케빈이 이렇게 된 거에요."

"에르델.."

"그람, 저는 엄마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인가봐요.."


.. 여기까지다.

이 이상 듣는다면 가슴이 터질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히 몸을 돌려 계단으로 향했다.

심장 소리가 뇌까지 울리는 듯해, 조심해서 계단을 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방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만 해도 셀 수 없이 내쉰 한숨을 다시 한 번 내뱉었다.


"하.."


어머니의 흐느낌.

그리고 아버지의 무거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배고픔은 이미 까마득히 잊혀진 지 오래였고.

대신 무거운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 진짜 아닌데."


어머니의 사랑이 모자란 것도, 교육이 잘못 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자신의 문제일 뿐이었다.


"어떡하지.."


사실, 해결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그 망할 아카데미를 간다고 하면 될 일.

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될 일이었으면 어머니의 흐느낌을 들을 일도 없었겠지.


"하.."


다시 한번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늘 밤은 길고 긴 밤이 될 것 같다.


* * *


날이 밝았다.

결국 지난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짹짹- 짹-


창문틀에 앉은 작은 새의 지저귐을 들으며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바로 방을 나서 1층으로 향했다.


"케빈?"

"엄마."


계단에서 내려오자마자 아침을 준비하고 계신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어제 눈물을 흘리셨기 때문인지 눈가가 부어 있었다.


젠장.


"저 배고파요."

"어, 어. 얼른 여기 앉아. 엄마가 금방 아침 차려 줄게."


나는 식탁에 앉았다.

서로 말이 없어 집기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샤워를 마친 아버지가 식탁 맞은편에 자리했다.

왠지 그 얼굴을 마주할 수 없어 나는 고개를 숙였다.


"배고팠을 텐데, 많이 먹어."


어머니가 음식 담긴 그릇을 내 앞에 놓으셨다.

그 음식을 보자 잊고 있던 허기가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입 뜨기 전에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저기..아버지, 엄마."


내 말에 막 자리에 앉으려던 어머니가 멈칫했고,

묵묵히 포크를 집던 아버지도 손을 멈추셨다.

그런 두 분을 번갈아 바라본 나는 말을 이었다.


"제국 국립 아카데미에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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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노인과 문양 24.09.14 6 0 12쪽
12 강한 상대를 이기는 법. 24.09.11 13 0 13쪽
11 변상각 24.09.06 13 0 12쪽
10 주제 모르는 자의 말로 24.09.03 14 1 13쪽
9 시험 시작? 24.08.29 28 1 11쪽
8 수박 파티 24.08.26 24 1 12쪽
7 어머니, 우리 어머니 24.08.23 32 0 12쪽
6 제국으로 24.08.22 30 1 11쪽
5 이별 24.08.20 29 1 14쪽
» 네? 뭐라고요? 24.08.16 37 1 13쪽
3 괴물은 누구? 24.08.14 31 1 13쪽
2 케빈 24.08.13 4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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