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베는 달빛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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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보이맨
작품등록일 :
2024.08.08 16:32
최근연재일 :
2024.09.1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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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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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어머니, 우리 어머니

DUMMY

외관에 비해 단촐하다.

그리고 더럽다.

마차에서 내려 마크의 집에 발을 디뎠을 때 든 첫인상이었다.


"얹혀 사는데 할 말은 아니지만 이건 좀.."

"벨, 청소해줘."


마크의 명령에 벨이 집 구석구석을 빠르게 청소하기 시작했다.


"미안. 미리 청소를 해두려 했는데, 최근에 수도에 들를 시간이 도저히 없어서..."


뻔한 핑계라고 할만한 말이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그의 말이 사실임을 뒷받침했다.


"정말 그랬던 것 같네요. 벨을 두고 집이 이렇게 됐을리 없으니까요."


먼지 하나 날리지 않고 재빠르게 청소하는 벨.

그런 벨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나는 마크를 따라 거실 소파에 마주 앉았다.


"어때, 내가 왜 항상 벨을 데리고 다니는지 알겠지?"

"네, 확실히 이해가 되네요. 어디서든 쳥결 하나는 확실하겠어요.“

"..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


마크는 뒤에 할 말이 더 있어 보였지만 말을 아끼는 듯했다.

아니, 마차를 운전하고 청소를 하는 것 말고 다른 게 있으면 한번 보여주던가..


"뭐, 언젠가는 벨의 진가를 보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와, 또? 한 두 번도 아니고 매번 대화할 때마다 이러는 건..

안 되겠다.

이왕 함께 살게 된 거, 이참에 한 번 속 시원히 물어봐야겠다.


"삼촌."

"응?"

"혹시 독심술 같은 거 배우셨어요?"

"독심술? 그게 뭐야?"


아차.


"아, 제 생각을 어떻게 다 아시냐고 물어본 거에요."

"아아, 그거? 그냥 때려 맞추는 건데?"

"..."


이 양반이 지금 장난을 치는 건가?

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무표정이다.

그럼 진짜로..


"장난이고, 내가 떠돌이 보부상이라서 그래."

"아, 네."


그 놈의 떠돌이 보부상.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한편으로는 대체 언제까지 자신을 그렇게 부를지 궁금하기도 하다.


"물건을 팔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돼."

"..."

"그리고 그러다 보면 사람의 표정이나 행동을 읽는 눈이 생기게 되거든. 특히 네 경우는.."


마크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위 아래로 훑었다.

이전보다 한층 더 날카로워진 눈빛.

거기다 묘한 압박감까지.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분위기를 잡는 건지.

괜히 긴장되게.


꿀꺽-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특히 제 경우는요?"

"으음, 케빈.. 너 같은 경우에는.."


마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냥 이마에 써져 있더라고?"

".. 네?"

"이마에 써져 있다고."


아, 장난치나.


"아, 뭐예요, 진짜.."

"하하, 알았어~ 사실은.."

"괜찮아요, 벌써 김샜어요."


분명 알려준다고 해놓고는 또 놀릴 게 뻔하다.

그럼 그 전에 미리 차단.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 아닌가?


"그럼 케빈, 이제부터 본론을 이야기를 해볼까?"


미소 짓던 마크의 표정이 돌연 진지해졌다.


"아카데미 말이죠?"

"그래, 입학 시험이 있는 건 알고 있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께 들어서 알고 있어요."

"형님께 뭐라고 들었는데?"


제국 국립 아카데미.

통칭 '데바칸스'는 입학 시즌마다 입학 시험을 실시한다.

지원자가 많아 총 3일에 걸쳐 시험이 진행되며, 결과는 그 다음 주에 발표된다.


아버지에게서 들은 내용을 말하자 마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어 보이네."

"네, 그런데 시험 날짜는 듣지 못했어요."

"그래? 그 중요한 걸..."


마크의 표정에서 다시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졌다.


"시험은 일주일 뒤야, 알아둬."

".. 일주일 뒤요?"

"왜? 준비할 시간이라도 필요해?"


마크의 시선이 내 무릎 위에 얹은 손으로 향했다.


"16년은 이미 충분한 거 같은데?"

"그게 아니라..."

"벨!"


내 말을 끊은 마크의 외침에 어느새 청소를 마친 벨이 그의 옆에 나타났다.


"홍차, 두 잔 내려줘."


그 말을 들은 벨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금세 찻잔을 가져와 테이블에 놓았다.

이어서 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붉은 빛깔의 홍차를 따랐다.


쪼르륵 -


잠깐, 홍차를 이렇게 빨리 끓일 수 있다고?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어느새 찻잔에 홍차가 가득 찼고, 마크는 그중 하나를 들어 내게 건넸다.


"사람과 마주하는 문제 때문인 거지?"

"네?"

"방금 내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네가 대답하려던 거 말이야."

"아, 네.. 맞아요."


마크는 자신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럼, 그 공포 내일 극복하러 나가볼까?"

"네.. 네?!"

"오, 이렇게 바로 수락할 줄이야."


저기요? 선생님? 이게 대체 무슨 수작이신지?

이곳에 남기로 마음을 먹었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뭐, 쇠뿔도 단숨에 빼라고 하잖아. 네게 소개시켜주고 싶은 사람도 있고. 오늘은 여독을 풀고 내일 바로 나가자.

"아니, 삼촌. 잠시만.."

"어우~ 이틀 내내 마차에서 잤더니 확실히 피로가 좀 있네."


마크가 기지개를 켜더니 찻잔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방은 저기 부엌 옆이니까 네가 쓰고 싶은 방은 알아서 골라 써."

"..."

"아, 그리고. 벨이니까 가능한 거야."


자기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마크가 나를 돌아봤다.


"홍차를 순식간에 끓이는 거 말이야."


* *


누군가 사람 냄새나는 느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


"직접 가공해 만든 수과 사탕 사세요! 5개에 단돈 2실버!"

"저 멀리 쟈스 왕국에서 날아온 웃음 가루 사세요! 중독성 없는 합법 제품이에요!"


분주하게 오가는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들.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의 외침이 허공을 가로지르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그래, 굳이 가까이 있지 않더라도 그 사람 사는 냄새가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 사람이 정말 많네요."

"제국의 수도인 데다 여긴 광장 근처니까. 그런데..."


광장 쪽을 보고 있던 마크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리 이런 음침한 뒷골목이 아니라 저 환한 광장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 삼촌이 이쪽으로 가도 길이 나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렇긴 한데, 그건 그냥 길이 있다고 알려준 거고. 이러면 오늘 밖으로 나온 가장 큰 이유가 무의미해지잖아."


그래, 안다.

오늘 나온 이유가 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그리고 어제 하룻밤을 지냈으니 입학 시험까지 일주일도 안 남았다는 것도.

하지만 나도 아직은 어쩔 수 없다.


"삼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 뛰라고 하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되겠어요?"

"잘 뛰겠지.“


“아니.. 모든 일엔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잖아요."

"그럼 다음 순서로 저기 광장으로 가보는 건 어때?"


".. 오늘은 이렇게 밖으로 나온 것으로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이죠."

"첫술?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으면서 술 타령은.“


썩을.

단 한 마디도 져주질 않는다.

이렇게 된 게 대체 언제부터 였을까?

분명 어릴 땐 내가 무서워하는 모습만 봐도 쩔쩔매던 사람인데.


"아, 삼촌."

"알았어, 그럼 오늘만이다?"


그렇게 우리는 시끌벅적한 광장을 등지고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양지와 음지.

이 둘은 어디를 가나 존재하지 싶다.

그래, 광장이 수도의 양지라면.

이 뒷골목은 음지일 것이다.


뒷골목 입구에선 몰랐지만,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니 이곳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낮부터 술에 절은 자.

허름한 옷차림의 노숙자.

음습한 그늘에 숨은 듯 서 있는 수상한 남자 등.

광장의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부류였다.


쿵, 쿵, 쿵.


심장 소리가 머릿속까지 울렸다.

마크의 등에 바짝 붙어 고개를 숙인채 걸었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 삼촌, 언제 도착해요?"

"거의 다 왔어."


처음 등산하는 초보자가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나요?"라고 물었을 때.

'조금만 더 가면 돼!'라고 고인물이 대답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조금'이 지나고 한참이 흘러서야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법.

물론 여기서 초보자는 나고, 고인물은 마크다.


"여기야."


.. 다행히도, 거의 다 왔다는 게 빈 말이 아니었나보다.


마크가 발걸음을 멈추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뒷골목은 언제 벗어난 건지 여관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말레아의 안식?"

"그래, 들어가자."


마크가 발걸음을 떼자 나도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건물로 들어서자 수수한 인테리어와 함께 바로 앞에 프론트가 보였다.

마크가 프론트 앞에 서더니 외쳤다.


"말레아? 안에 있어?"


- 마크씨? 어머, 잠시만요!


목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프론트에 나타났다.


"이게 얼마만이에요! 연락도 없이!"


조금 전, 광장에서 들었을 법한 활기찬 목소리.

마크 뒤에 숨어있던 나는 빼꼼 고개를 내밀어 그 여인을 살폈다.


아름다웠다.

오늘 곁눈질로 본 광장의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거기에 오묘한 적색을 띠는 적발과 적안.

그 불타는 듯한 모습이 아름다움에 신비함을 더했다.


"뭐, 누가 들으면 우리가 자주 연락하는 사이인 줄 오해하겠어. 그리고.."


마크가 미간을 찌푸렸다.


"요즘 항상 그 모습으로 다니는 거야?"

".. 아!"


말레아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커다랗게 빛나던 눈이 반쯤 감긴 듯 작아졌고, 매끈했던 얼굴에는 작은 주근깨들이 솟아올랐다.

마지막으로 석양이 지듯, 그녀의 그 오묘한 적색들이 점점 갈색으로 물들어갔다.


잠시 후, 아름답다 생각했던 여인은 어느새 평범한 여관 주인이 되어 있었다.

마법인가?


"아니에요~ 혼자 있을 때만 그래요. 평소에는 지금 모습이랍니다."

"조심하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여전히 언짢아 보이는 마크를 향해 말레아가 눈웃음을 지었다.


"에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크 씨 앞인데 괜찮지 않나요?"

"누누이 말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조심해. 내 앞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어."

"...정말,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그나저나..."


말레아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재빨리 마크의 뒤로 숨었다.


"방금 마크 씨 뒤로 숨은 가면 쓴 분은 누구신가요?"

"곧 아카데미 입학 시험이잖아, 잊었어?"

"그건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근데 그게 이 분과 무슨... 아!"


무언가 깨달은 듯 말레아의 탄성이 터지자, 마크가 재빠르게 옆으로 몸을 피했다.

마크라는 장벽이 사라지자 나는 자연스레 말레아와 눈을 마주쳤다.


"어억?!"

"그래, 내가 말한 형님의 아들이야. 서로 인사해."


쿵, 쿵, 쿵.


"반가워요."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저는 여기서 여관을 운영하는 말레아라고 해요."


속이 메스꺼워진다.


"마크 씨에게 종종 듣기만 했는데 이렇게 만나뵙게 되니 반갑네요."


무슨 말을 헤야할지 당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분명 마크 씨에게 들었는데... 몇 개월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눈동자만 굴려 마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빤히 쳐다볼 뿐,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


곁눈질로 본 말레아의 표정에는 의문이 가득해 보였다.

내가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이 상황은 끝나지 않겠지.

이 망할 삼촌, 이렇게 나왔다 이거지?

오냐, 내가 못 할 것 같아?


떠올리자.

나로 인해 눈물 흐리시던 어머니의 흐느낌을.

그리고 기억하자.

퉁퉁 부어있던 어머니의 두 눈을.


"저기.. 무슨 문제라도?"


터질 듯한 심장, 메스꺼움, 두통.

어머니를 떠올려도 모든 게 그대로다.

하지만 내 마음에 용기가 피어오른다.

그래, 부딪혀 보는 거야.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안녕하세요!"


어머니를 떠올려라, 어머니!


"저는 어머니입니다!"


"??"

"??"

".. 아?"


오늘은 마크가 참 원망스러운 날이다.


*

*

*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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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노인과 문양 24.09.14 6 0 12쪽
12 강한 상대를 이기는 법. 24.09.11 13 0 13쪽
11 변상각 24.09.06 12 0 12쪽
10 주제 모르는 자의 말로 24.09.03 13 1 13쪽
9 시험 시작? 24.08.29 28 1 11쪽
8 수박 파티 24.08.26 23 1 12쪽
» 어머니, 우리 어머니 24.08.23 32 0 12쪽
6 제국으로 24.08.22 30 1 11쪽
5 이별 24.08.20 28 1 14쪽
4 네? 뭐라고요? 24.08.16 36 1 13쪽
3 괴물은 누구? 24.08.14 30 1 13쪽
2 케빈 24.08.13 45 1 13쪽
1 프롤로그 24.08.09 6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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