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베는 달빛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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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보이맨
작품등록일 :
2024.08.0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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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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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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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각

DUMMY

"데리고 가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나타난 의료반이 토미를 들것에 실어 갔다.

그의 실격은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치유 마법사가 대기하고 있다 해도, 그 정도 부상을 단시간에 치유하기란 불가능할 터.

결국 번호가 호명될 때 공터에 없는 그로서는 5분 내로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남은 두 놈은 한동안 얼이 빠진 듯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순간 번뜩 정신을 파리더니 황급히 어딘가로 달아났다.

꼴을 보아하니 아직 시험을 치를 생각인 듯했다


낯짝도 두껍지, 그 상황에서 시험을 이어나갈 생각이라니.


어쨌든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감독관의 입에서 다시 번호가 호명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부글거리던 속이 진정될 때쯤 내 번호가 불렸다.


"164번, 502번."


아까 있었던 일 덕분일까.

막아서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아무런 방해 없이 검술 시험장의 문 앞에 다다랐다.


끼이익 -


문을 열자 칠흑 같은 어둠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래, 공터에 들어서기 전 철문을 열었을 때도 이랬었지.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텅-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문이 저절로 닫혔다.

그리고 동시에 주변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밖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넓어 보이는 내부.

그 안에는 다섯 개의 거울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었고, 그중에서 두 번째 거울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이곳이라는 듯이.


나는 그 거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까지 다가갔을 즈음.


우웅-


갑자기 거울 속에서 인영 하나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억?"


아무런 생각 없이 걷다 깜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164번?"


세상 만사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

아마도 이자가 시험관인 모양이다.


* * *


거울 속에서 나타난 자.

그는 시험관이 아닌 단순한 안내자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네요."

".. 아, 네."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을 듯한 건성인 태도의 사과.

뭐 얼마나 늦었다고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긴 한데.. 할 거면 진심을 담아서 하지.

괜히 얹짢아졌다.


“그럼 따라오세요.”


안내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거울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거울 표면이 물결처럼 일렁이더니 그의 모습을 삼켰다.

나는 곧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스륵-


차가운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을 떠보니 눈앞에 긴 통로가 나타나 있었다.

안내자는 이미 몇 걸음 앞서 걷고 있었고, 나는 서둘러 그를 따라잡았다.


"시험은 총 세 개로 구성돼 있습니다."


여전히 귀찮은 듯한 목소리.

하지만 그런 태도와는 달리 그는 성실히 설명을 이어나갔고, 말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1. 시험은 총 세 개로 진행된다.

2, 첫 번째는 신체 능력 테스트, 두번 째는 대련, 마지막은 질의 응답이다.


설명이 끝나자 어느새 우리는 첫 번째 시험장에 도착해 있었다.

중앙에는 인간 형상을 띈 석상이 우뚝 솟아있었고, 옆 벽면에는 갖가지 목재 무기들이 진열돼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첫 번째 시험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안내자가 중앙의 석상에 손을 댔다.

그러자 무채색이었던 석상이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석상이 완전히 푸른빛을 띠자 안내자가 말을 이었다.


"벽에 진열된 무기 중 하나를 선택하셔서 이 석상을 3분 동안 최대한 많이 가격하시면 됩니다.타격 횟수와 충격량에 따라 석상의 색이 푸른색에서 황금색으로 물들고, 모든 부위가 황금색이 되면 만점입니다. 궁금한 점 있으십니까?"


아니, 시험에 관련해서는 딱히 궁금한 점은 없었다.

단순히 석상을 가격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신체 능력을 측정하는지 대충 짐작이 갔으니까.

다만 사소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 마나를 사용해도 되나요?"

"사용 가능하다면 오러까지도 무방합니다."

"..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무기를 선택하십시오."


나는 목제 무기들이 진열된 곳으로 걸어갔다.

단검부터 시작해 숏소드, 롱소드, 거대한 그레이트 소드까지 다양한 목제 무기들 중에서 나는 평소 사용하던 것과 가장 비슷한 얇은 롱소드를 골랐다.


"무기 선택을 마치셨으면 석상 앞으로 와 주십시오."


나는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다시 석상 앞에 섰다.

무기를 고르기 전까지는 빛나지 않던 석상 앞의 작은 룬석이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30초 후 여기 석상 앞에 배치된 룬석이 꺼지는 순간 시험 시작입니다."


말을 마친 안내자는 구석으로 물러났다.


"그럼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잠시 안내자를 바라보다 다시 석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세를 낮추며 온몸에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후.."


하얗게 빛나는 룬석.

그 빛이 꺼지기를 기다리며.


* * *


마법사 노먼은 입학시험 시즌이 싫었다.

마법 관련 논문 작성에 실험실 조교 일까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시험 안내자 역할까지 맡았다.

게다가 마법 시험장도 아닌 검술 시험장이라니.


'요즘 더미 기술도 좋아졌다던데.. 왜 애꿎은 조교들만 죽어나게 하는 건지.. '


물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안내자를 맡은 3일 동안은 합법적으로 자신의 일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3일이 지나면 밀린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텐데.


'아, 모르겠다.'

그때 일은 그때가서 생각하자.


노먼은 하던 생각을 정리하고, 오늘 수십 번은 반복했을 말을 다시 한 번 입 밖으로 뱉었다.


"30초 후 여기 석상 앞에 배치된 룬석이 꺼지는 순간 시험 시작입니다."


이번 지원자는 왜인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얼굴에 화상이라도 입었나?


"그럼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노먼의 말이 끝나자 지원자는 룬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자세를 낮췄다.

이전의 질문도 그렇고,미미하게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이 지원자는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게 대수인가?


이곳은 제국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는 국립 아카데미다.

시험 응시 자격에 특별한 제한은 없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실제로 오늘 봤던 지원자들 중에서 마나를 다루던 자들이 심심찮게 있지 않던가?

오러라면 모를까, 단순히 마나를 다루는 줄 아는 것만으로는 딱히 감흥이 없었다.


그래, 오러. 그 은발 머리의 지원자처럼.


노먼은 30초라는 시간을 의식하며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30, 29, 28..


눈앞의 지원자는 룬석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하고 있었다.

앞서 있었던 다른 지원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16, 15, 14..


30초.

노먼은 이 짧은 순간도 의식하면 길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런 느낌이 몇 번이나 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안내한 지원자 수를 세보지 않았으니까.


5, 4, 3, 2..


마지막 5초.

노먼의 시선은 룬석과 지원자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1.


룬석의 빛이 완전히 꺼졌다.


캉!


대체 언제 검을 휘두른 걸까.

눈 깜짝할 새에 목검은 이미 석상의 허리에 닿아 있었다.


노먼은 순간 당황했다.

본인이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고작 입학 시험 지원자의 움직임을 놓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희미한 궤적을 간신히 쫓는 것이 고작이라니!


앞서 있었던 자들과 확연이 다른 움직임.

그 예상치 못한 날렵함에 노먼이 넋을 놓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캉? 무슨 소리지?'


하루 종일 목검이 석상을 가격하는 소리를 들어왔지만, 방금 그런 소리는 처음이었다.

그래, 마치 석상에 금이라도 간듯한..


".. 저, 저기요."


지원자의 목소리에 노먼은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돌리니 그가 검을 석상에 댄 채 멈춰 있었다.


"...?"


노먼은 의아했다.

놀라운 움직임을 보여놓고 왜 멈춰 있는 걸까?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 텐데.


"질문은 나중에 하시죠, 시간이 가고 있으니 얼른 시험부터 마저 치르십시오."

".. 아니, 그게 아니라 석상이.."


아까부터 뭔가 소심해 보인다더니.

개미 기어가는 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에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노먼은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이런다고 재시험을 볼 순 없습니다. 방금도 말했다 싶이 시간은 가고 있으니 일단 얼른.. 어?"


지원자의 얼굴을 보다 문득 석상에 맞닿아 있는 목검으로 시선을 돌린 노먼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석상에 박혀있는 목검.

마치 단단한 돌이 아닌 부드러운 흙을 파고든 것처럼 목검이 석상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있었다.


"..이게 대체."


노먼은 목검이 박힝 곳을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석상에 파고든 목검의 날 부분이 미세하게 더 파여 있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오러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오러까지 견디게 특수 처리한 석상이라고 했는데..


노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목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웅-


푸르게 빛나던 석상이 갑자기 색을 잃기 시작했다.

마치 물감이 씻겨 내리듯, 석상의 푸른 빛이 빠른 속도로 빛을 잃기 시작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석상 전체가 본래의 무채색으로 돌아갔다.


노먼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석상에 걸린 마법을 다시 작동시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래도 망가진 듯했다.


'어, 어떡하지?'


식은땀이 흘렀다.

귀찮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당혹감만이 남았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어떤 지시도 받은 적이 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일이 생길 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 일단 보고를...'

".. 그.. 저기."


혼란스러운 생각에 잠겨 석상을 바라보고 있던 노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 상황을 만든 지원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지원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 이거.. 변상해야 하나요..?"


* * *


1차 시험장을 벗어나니 나타난 긴 통로.

2차 시험장으로 곧장 이어지는 이 통로를 걸으며, 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괜찮겠지? 그 석상, 망가진 것 같던데..'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안내자의 목소리.

황급히 어디론가 전언을 보내는 모습.


분명 사용 가능하면 오러까지도 괜찮다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오러를 사용한 것인데.. 그런 일이 생길 줄이야.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 석상이 불량품이었나?'


온갖 상념이 떠올랐지만 금새 마음을 정리했다.

뭐가 어찌 됐든 이미 벌어진 일.

돌이켜 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을 뿐더러, 따지고 보면 석상을 망가뜨린 게 시험 규정을 어긴 건 아니지 않은가?


'뭐, 일단은 그냥 가라고 했으니까. 시험은 계속 봐야지.'


마침 저 멀리 거대한 석문이 눈에 들어왔다.

2차 시험장으로 향하는 문인 듯했다.


잠시 후, 나는 석문 앞에 도착했다.

2차 시험은 대련이라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1차 시험 때보다 더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후.."


나는 문을 열기 위해 양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왼손 엄지에 끼워져 있는 아버지의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 케빈, 형님 생각하기 전에 나부터 꺾을 생각을 해야지. 그리폰이 드래곤 쫓아가다 날개 태워먹는다?


분명 보이는 건 아버지의 반지인데 왜 마크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 걸까.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인 걸까?


.. 뭐, 아무래도 좋다.

지금 집중해야 할 건 시험이니까.

게다가 대련 상대가 강해봤자지.

설마 아버지와 마크, 그 괴물같은 두 사람보다 강하겠는가?


- 그래, 대련 상대가 강해봤자지. 어디 드래곤 앞에서 날개 자랑을.


풉, 그래. 마크가 내 옆에 있었다면 분명 그 독심술 같은 능력으로 이렇게 말했겠지.

능청맞은 마크를 떠올리니 어느새 긴장이 풀리는 것 같다.

그럼 이제..


"가자."


나는 양손으로 석문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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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노인과 문양 24.09.14 6 0 12쪽
12 강한 상대를 이기는 법. 24.09.11 13 0 13쪽
» 변상각 24.09.06 13 0 12쪽
10 주제 모르는 자의 말로 24.09.03 14 1 13쪽
9 시험 시작? 24.08.29 28 1 11쪽
8 수박 파티 24.08.26 24 1 12쪽
7 어머니, 우리 어머니 24.08.23 32 0 12쪽
6 제국으로 24.08.22 30 1 11쪽
5 이별 24.08.20 29 1 14쪽
4 네? 뭐라고요? 24.08.16 36 1 13쪽
3 괴물은 누구? 24.08.14 31 1 13쪽
2 케빈 24.08.13 45 1 13쪽
1 프롤로그 24.08.09 6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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