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베는 달빛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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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보이맨
작품등록일 :
2024.08.08 16:32
최근연재일 :
2024.09.1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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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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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수박 파티

DUMMY

마크는 참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부모님과 대화할 때나, 대련할 때, 그리고 나를 놀릴 때.

그 모든 순간에 매번 능글맞은 미소를 짓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하하하!! 미치겠네!"

"성함이... 어머니이신가요?"

"풉, 아, 말레아. 너까지 왜 그래. 콜록. 하하!"


내 안의 부정적인 모든 것들을 억누르고 간신히 대답한 거다.

그런데 기침까지 해가며 박장대소하다니.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거울을 본다면 내 얼굴은 다 익은 토마토처럼 붉게 변해있겠지.


"하.. 이렇게 웃어본 게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한창을 웃던 마크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말레아, 어머니께서 긴장하셔서 실수하신 거 같은데, 진짜 이름은 케빈이야."

"아, 맞다! 케빈 씨! 이제 기억나요!"


말레아가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분명 올해 열여섯이라고 들었는데, 키도 크고 몸도 다부져서 케빈 씨일 거라 상상도 못 했네요!"

".. 아."

"수도 생활에서 필요한 게 있으시면 가족이다~ 생각하고 부담 갖지 마시고 말씀해 주세요."

".. 네."


대답하기가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말문이 트이니 한결 수월해졌다.

역시, 정면 돌파를 하는 게 답이었..


"그런데 가면은 왜 쓰고 계시는 건가요?"

"..."


심장이 또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것도 이전보다 훨씬 격렬하게.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손발이 떨린다.

가면을 써야만 하는 이유가 다시금 떠올라서.


내 상태가 좋지 않음을 눈치챘는지, 마크가 나를 대신해 말했다.


"그냥 개인 사정이라고 해두지. 그리고 오늘은 인사만 하러 온 거라 이만 가야겠어."

"네? 갑자기요? 오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

"당분간은 계속 수도에 있을 예정이야."


마크가 내 손목을 잡았다.


"그러니까 다음에 시간 내서 보자고."


말레아의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마크는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얼어붙은 듯한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그를 따라갔다.


"마크 씨, 케빈 씨! 두분 다 다음엔 꼭 같이 식사라도 해요!"


말레아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식사라.. 글쎄.


쿵, 쿵, 쿵.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


* * *


성시우였던 시절의 나는 무더운 여름을 싫어했다.

단 5분만 밖에 있어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많은 체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과일도 수박이었다.

수박을 먹으면 몸의 열기가 식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박들이 있다.

그것도 걸어다니는 수박들이.


'하나.. 둘..'


말레아와 처음 만났던 이틀 전.

힘겹게 집에 돌아온 나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마크와 대화를 나눴다.


- 케빈, 오늘 정말 잘했어.


비아냥이 아닌 진심이 담긴 말.

그 순수한 의도의 칭찬을 시작으로 내 문제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론은...


- 당최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까 답답하네.

- ····.

- 일단 사람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그랬지?

- ..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크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 벨, 케빈 식사 좀 챙겨줘.


가면을 들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 삼촌!

- 이거 받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돌아온 마크가 곧바로 가면을 건넸다.


- 대체 어디 다녀오신..

- 아아, 일단 그것부터 먼저 써봐.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똑같은 가면.

하지만 써보라고 하니, 가면을 받은 뒤 망설임 없이 썼다.


- 썼으면 가면의 왼쪽 눈구멍 위를 두 번 쓸어.


역시 그의 말대로 했다.

그러자..


- 으에엑?! 뭐, 뭐야!

- 내가 뭐로 보여?

- 이, 이게 왜.. 삼촌 맞죠?

-그래, 진정해. 그냥 가면에 마법을 하나 더 걸어놓은 거야.


이후 마크의 설명이 이어졌다.

가면에 새롭게 추가된 마법은 단순했다.

사람의 얼굴이 착용자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로 비춰지는 마법.

뭐, 일종의 환각 마법이라나 뭐라나.


- 오랜만에 달렸더니 피곤해 죽겠네..


마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늦은 밤이 돼서야 다시 나온 것이 그날의 일이었다.


'셋.. 넷..'


걸어다니는 수박은 확실히 어딘가 기괴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나름 효과가 있어 보였다.

눈이 없는 민둥매끈한 줄무늬 얼굴.

그 표면에서는 나를 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형아, 가면은 왜 쓰고 있어요?"

'다섯... 어라, 작은 수박이네..'


큰 수박은 조금 소름 돋지만, 작은 수박은 꽤 귀여워 보인다.


"토미! 이상한 사람한테 말 거는 거 아니라고 했지!"


중간 수박이 작은 수박의 손을 잡아끌었다.

작은 수박의 몸짓에서 어리둥절함이 느껴졌지만, 이내 말없이 중간 수박을 따라갔다.

나는 그들의 둥근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수박들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예순 일곱.. 예순 여덞..'


그렇게 수박을 세며 걸은지 얼마나 됐을까?

세고 있던 수박의 갯수가 3자리 수가 넘어갈 즈음.

나는 얼마 전에 봤던 과일 가게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한창 제철인 카쿤산 룬베리가 3개에 단돈 2실버!“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수박.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크기의 수박들.

나는 그들의 틈에 서서 긴장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 뭐 좀 사러 왔는데요.”

”네, 손님! 무엇을 드릴까요!“


다행이다.

대화를 하면 수박이 다시 사람처럼 느껴질까 걱정했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 혹시 무화과가 있나요?”

"어, 무화과요? 얼마나 필요하신가요?"

“5개 정도요..?”

"5개요? 잠시만요.“


주인은 뒤를 돌아 선반을 살펴보더니,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세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나를 향해 돌아섰다.


"운 좋으시네요, 손님. 마침 딱 5개가 남아있어요!"

“.. 그럼 얼마인가요?”

“5개는 1실버 25쿠퍼입니다!“

“.. 그걸로 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가게 주인은 재빨리 무화과를 골라 종이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값을 지불하고 주인에게서 무화과가 담긴 종이 가방을 막 건네받은 그 순간.


“아저씨! 안녕하세요!”


갑자기 옆에서 활기찬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마리아. 심부름왔니?“

“네! 오늘은 무화과 사러 왔어요!”

“아..”


주인의 목소리에서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어쩌지.. 방금 이 분이 남은 무화과를 다 사가셨어."

".. 정말요? 하나도 없어요?"

"그래, 미안하구나. 대신 다른 과일은 어떠니? 룬베리가 맛있게 익었단다."

"중요한 손님이라 꼭 무화과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작은 수박의 고개가 나를 향해 돌아갔다.

나를 바라보는 건지, 내 손에 든 무화과 봉투를 보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말없이 움직이지 않는 그 모습이 왠지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주인과 작은 수박, 그리고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저기.."


주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손님, 괜찮으시다면 혹시 무화과를 이 아이에게 양보해 주실 수 있을까요? 대신 제가 룬베리를 싼 가격에 드리겠습니다!"

".. 아"


나는 무화과가 든 봉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오늘 이 가게에 온 목적은 과일을 사기 위함이 아니었다.

새로운 마법이 추가된 이 가면을 쓰고 혼자서도 사람들 사이에 섞일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뿐.

무화과를 고른 것도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마크가 무화과를 좋아해서 가능하면 사오라고 했기 때문이었을 뿐.


결국 무화과든 룬베리든 내게는 큰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 손에 든 무화과를 작은 수박에게 양보해도 무방했다.


게다가 집을 나서기 전, 마크가 말하지 않았던가?


- 무화과 없으면 아무거나 사와!


나는 고개를 들어 주인과 작은 수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네. 그렇게 하죠."


내 말에 주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옆에 있던 작은 수박 역시 활기를 되찾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더니, 내가 건네는 무화과 봉투를 받아들고는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갔다.


"약속대로 룬베리를 싼 가격에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룬베리 봉투를 받아들고 가게를 나섰다.


"으음.."


이제 확실히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심력이 꽤 크게 소모되는 느낌이다.

심력이 소모되니 피로가 몰려오는 듯했다.


"흐암."


나는 하품과 함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케빈, 준비 다 됐어?"

"거의 다 됐어요!"


거실에서 들려오는 마크의 목소리에 나는 서둘러 가면을 썼다.

잠시 후, 방을 나서자 현관문 앞에 서 있는 마크가 보였다.


"배고프다, 얼른 가자."


마크가 현관문을 열자 그 문틈 사이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졌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다급하게 외쳤다.


"잠시만요!"


그러고는 왼쪽 눈구멍 위를 두 번 쓸었다.


"이제 됐어요."

"아아."


무엇 때문이었는지 눈치 챈 마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먼저 집을 나섰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함께 나선 수도의 거리는 마법 등불이 어둠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었지만, 집이 광장과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거리의 인파는 낮보다는 적었다.

하지만 낮보다 적다 뿐이지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제 정말 괜찮아 보이네?"

"네, 다 삼촌 덕분이에요. 감사해요."

"감사는 무슨. 어쨌든 마법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아니니까. 조금씩 혼자 극복하려고 노력해봐."


마크가 가면을 손가락으로 살짝 튕겼다.


"평생 가면 쓴 채 지낼 건 아니잖아?"


... 이 정도 착용감이면 사실 평생 써도 될 것 같긴 한데.


"네, 알겠어요."


이후에 마크는 아카데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뿐 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나 역시 내 문제는 뒤로 한 채, 아카데미에 관한 대화를 이어갔다.


잠시 후, 우리는 '말레아의 안식'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금일 휴무'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지만, 마크는 그 문구를 무시한 채 문을 열었다.


딸랑-


"왔어~"


프론트 앞에서 바닥을 쓸고 있던 말레아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 마크 씨, 케빈 씨. 일찍 오셨네요?!"

"응, 배가 고파서 말이야. 오늘 하루종일 안 먹었더니 허기가 지네."

"하루종일요? 왜요? 오시기 전에 뭐라도 드시지 그러셨어요."

"아, 집에 요리해 먹을 재료가 떨어져서 원래는 그냥 대충 과일로 때우려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마크가 뒤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케빈이 룬베리를 사왔더라고."

"에엑? 마크 씨, 룬베리 먹으면 큰일 나지 않아요? 저번에 한 번 잘못 먹었다가 사경을 헤맸다면서요."

"그러니까, 어떻게 사와도 하필 룬베리를..."


... 어쩐지. 룬베리를 쳐다만 보고 입에는 대지도 않더라니.

그렇게 심한 알레르기가 있었다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제가 얼른 저녁 준비해 드릴게요."

"응, 그나저나 마리아는? 저번에도 왔을 때도 못 봤던 것 같은데."


마리아? 뭐지? 왜 이름이 왜 낯설지 않지?


"잠시 어디 다녀온다고 해서 나갔어요. 늦게 오지 말라고 했으니 곧 돌아올 때가 됐는데..."


바로 그때.


딸랑-


가게 입구 문이 열리더니 활기찬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나 왔.. 어? 마크 씨?"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목소리.

나는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허리에 간신히 닿을듯한 키.

베이지 블라우스에 갈색 끈으로 허리를 묶은 긴 치마.


아, 누군지 기억났다.


"무화과?"


분명 오늘 내 무화과를 가져간 그 작은 수박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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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노인과 문양 24.09.14 6 0 12쪽
12 강한 상대를 이기는 법. 24.09.11 13 0 13쪽
11 변상각 24.09.06 12 0 12쪽
10 주제 모르는 자의 말로 24.09.03 14 1 13쪽
9 시험 시작? 24.08.29 28 1 11쪽
» 수박 파티 24.08.26 24 1 12쪽
7 어머니, 우리 어머니 24.08.23 32 0 12쪽
6 제국으로 24.08.22 30 1 11쪽
5 이별 24.08.20 29 1 14쪽
4 네? 뭐라고요? 24.08.16 36 1 13쪽
3 괴물은 누구? 24.08.14 31 1 13쪽
2 케빈 24.08.13 45 1 13쪽
1 프롤로그 24.08.09 6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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