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미래.
“정한결 선수 넘어집니다!!! 주심 PK 선언합니다!!!”
“아아~~~ 분명 유니폼을 잡아당겼어요. 디에고 고딘 선수로 보이는데요. 이미 옐로 카드가 한 장 있습니다.”
“주심! 디에고 고딘 선수에게 다가가 옐로 카드! 그리고 연이어 레드 카드를 선언합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모두 주심에게 다가와 항의를 하고 있지만, 퇴장을 명령 받은 디에고 고딘 선수만이 항의를 하지 않고 있죠. 본인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자신이 분명하게 정한결 선수 유니폼을 잡아당겼다는 사실을 말이죠.”
주심이 PK를 선언한 이후, 나는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후, 얘 왜이리 커.”
“괜찮냐?”
나를 부축해주는 선배들에게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파요. 큭큭. 그래도 잘했죠?”
“하하하, 이것 봐라. 너 설마···”
“형, 이거 카메라에 잡힐 수 있으니까 입 가리고 말해요.”
그제야 조르디 알바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나에게 말했다.
“역시 너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노련하단 말이지···, 뭐 인생 2회차라거나 그런 거 아니냐?”
“하하하하,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네요.”
“방금 연기가 아주 할리우드 같았어서 말이지. 크흐흐.”
이윽고 시간이 지난 뒤.
바르셀로나의 PK 키커로는 리오넬 메시가 나섰다.
타다닷-
파앙-!
철썩-!
군더더기 없는 동작에 정확한 코스, 적당한 슈팅 세기가 맞물린 정석적인 PK였다.
이후 경기는 별다른 특이점 없이 끝났다.
디에고 고딘의 퇴장과 추가 실점을 겪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추격 의지를 상실한 채 뒤로 물러서는 수비만 했고.
우리로서도 굳이 리스크를 감수해가며 공격 작업을 더 할 필요가 없었다.
리그 첫 라운드에서 지난 시즌 리그 최소 실점 팀을 상대로 멀티 득점에 무실점 승리를 했으니.
사실상 더 바랄 게 없었던 셈이다.
그리고.
“한결! 수고했어!”
후안 바레시 감독님은 후반 90분 무렵에 추가 시간 3분이 주어지자 나를 불러들였다.
나 대신 경기장에 투입된 것은 산티아고 몬테로.
이후 같은 시각에 베르누이까지 부스케츠와 교체 되며 그라운드를 밟았다.
1년 만에 그라운드에서 다시 만나게 된 몬테로는 매우 작아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너무도 커져 버렸을 뿐이다.
“많이 컸네, 개 주인.”
몬테로는 나를 향해 씨익 웃으며 그라운드에 들어섰고.
그렇게 3분 뒤, 경기는 끝났다.
삑, 삑, 삐이익-!
“경기 끝납니다!!! 바르셀로나의 홈 구장 캄프 누에서 펼쳐진 바르셀로나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는 바르셀로나의 정한결 선수가 선제골과 PK를 얻어내며, 2대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보통 바르셀로나 경기는 리오넬 메시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경기는 이견의 여지 없이 정한결 선수가 주인공입니다. 사실 시즌 시작 전에 정한결 선수에 대한 우려가 많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성장기가 끝난 줄 알았던 정한결 선수의 키가 190cm를 넘어 2m를 넘겼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정한결 선수가 신체 변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커리어에 큰 위험을 겪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하지만 오늘 경기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고 느끼실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 급격히 키가 자란 선수들이 겪었던 고질병인 무게 중심 문제와 오픈 플레이 상황에서의 둔함, 그런 것들은 정한결 선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어쩌면, 향후 세계 최고의 타겟터가 될 선수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그렇게 된다면 좋겠네요! 그럼 오늘 중계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해설을 맡은 캐스터 배선재.”
“해설 박은성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쓰러지지 않는 거인’ 정한결, 바르셀로나 홈 개막전에서 시즌 1호골 및 페널티킥 찬스 생성.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상대로 2대0 승리.
- 2m 높이에서 바라보는 축구는 어떨까. 정한결, ‘철옹성’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상대로 압도적인 신장 과시. 바르셀로나 시즌 1호골 기록.
- 디에고 고딘, “오늘 정한결은 도무지 막을 수 없는 거인과도 같았다. 다음 경기에서는 반드시 대처법 연구하고 올 것.”
- 디에고 시메오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 “정한결은 메시가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다. 그런 선수가 메시와 함께 뛰고 있다는 건 다른 팀들에겐 재앙과도 같을 것이다.”
- [MARCA] 까딸루냐의 미래이자 스페인의 미래, 페르난도 토레스 이후 스페인 최고의 공격수 탄생.
- [Mundo Deportivo] ‘타겟터의 무덤’일 줄 알았던 바르셀로나에 등장한 라 마시아 출신의 영웅.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희망적 개정판.
- 후안 바레시, “이번 시즌은 바르셀로나 팬들의 서포팅 역사상 가장 많은 헤딩 골을 보게 될 것.”
- [sport] 평점 9.0 정한결, 프리메라리가 1R 전체 MVP 선정. 공중볼 경합 15번 중 15번 승리.
경기 종료 후 스페인 언론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언론에서는 나의 활약을 두고 수많은 기사들을 쏟아냈다.
다음 날 발행 된 스포츠 신문에서는 1면에 내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 사이에서 헤딩을 하며 골을 터뜨리는 장면을 넣었고.
이와 같은 소식은 당연히 한국에도 전해졌다.
└ 승리의 정한결 지지자들은 출첵 박아라 ㅋㅋㅋㅋㅋㅋㅋ
└ 하···, 얘가 한국에 남았으면 향후 10년 동안은 스트라이커 걱정 없는데, 축협은 이런 애 놓치고 도대체 뭐하냐? 지난 월드컵 때 데려갔어도 충분히 1인분, 아니 2인분은 했겠구만···
└ 정보) 그때 당시에도 프리메라리가 올해의 신인상이었다. K리그 전체 압살하고도 남을 성적이었음···
└ 그건 월드컵 끝나고 14/15 시즌. 그 전까지는 바르셀로나 내부에서도 전력 숨긴다고 청소년 대표팀 경기도 막았음.
└ 그럼 축협은 스페인 최강 팀에서 뛰고 있는 유스 정보 확인도 제대로 안 했다는 거 아님?
└ 이거 맞다. 사실 있는지도 몰랐을 가능성 농후 ㅋㅋㅋㅋ
└ 이제 와서 정한결이 스페인 국대 포기하고 한국 국대로 온다 해도 5년 동안은 A매치 못 뜀. 애초에 한국 국적 다시 갖게 되면 군대 가야 하는데 오겠냐고 ㅋㅋㅋㅋㅋ
└ 팩트) 2016 프랑스 유로 정한결(스페인) 출격 사실상 확정. 한국인 최초로 유로 데뷔 ㄷㄷ
└ 이건 진짜 X간지 나네.
└ 바르셀로나에서 초장신 공격수 뚝배기 딸깍 축구를 보게 될 줄이야··· 근데 쟤 왜 키가 2미터면서 발밑도 좋냐?
└ 라 마시아 출신이잖아~ 한잔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개막전 이후.
다음 경기인 말라가와의 리그 경기까지는 6일 정도가 남아 있을 무렵.
2015년 8월 26일.
오전 10시 45분.
TV에서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2016 유로 예선에 나설 A 대표팀 명단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어머, 이제 시작하려나 보다.”
“흠······”
거실에는 TV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있었고.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는 누나까지도 소파에 앉아 말없이 TV를 보고 있을 정도였으니.
우리 가족이 얼마나 이 사안에 관심이 많은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케르 카시야스.
제라르 피케.
루카스 바스케스.
안드레 이니에스타. 등등.
대부분의 선수들은 바르셀로나 혹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이었고.
이따금 아스필리쿠에타 같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도 명단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은 등번호 9번입니다.”
델 보스케 감독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모두가 이 다음 델 보스케 감독이 어떤 말을 할지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매우 큰 이슈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9번 공격수는, 바르셀로나의 정한결 선수입니다.”
수많은 스페인식 이름 사이 낯선 한국식 이름.
우리 가족이 스페인으로 귀화를 완료했음에도 한국식 이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스페인 당국의 배려 덕분이었다.
“와아아아아!!! 축하해 아들~~~!!!”
엄마는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며 나를 껴안아주었고.
“야, 경기 끝나고 유니폼 버리지 말고 가져와라. 내 친구가 스페인 국대 유니폼 좀 보고 싶대.”
누나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들, 수고 많았다.”
아빠는 늘 그렇듯 건조하고 담담한 어투로 나를 축하해주었고.
“이렇게 호들갑 떨었는데 이름 안 불렸으면 갑분싸 오졌을 듯 크크큭.”
파툼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거실 허공을 날아다녔다.
* * *
“왔냐! 우리 깜찍하고 큼직한 후배!!!”
바르셀로나 훈련장에 도착하자 나를 가장 먼저 맞아준 건, 나와 함께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발탁 된 선배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이뻐하는 선배가 있었는데.
세르히오 부스케츠 형님이 그랬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몇 안 되게 나와 물리적 눈높이가 맞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부스케츠 형님은 내 뒷목에 팔을 감싸며 친근감을 과시했고.
“이 녀석이 우리랑 같이 뛰고 싶어서 스페인에 귀화까지 했잖아. 얼마나 기특한 녀석인지 몰라.”
훈련장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에 나를 칭찬했다.
“벌써부터 훈련장에서 카시야스가 널 보고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 크하하하하.”
같은 스페인 국가대표 선수인 조르디 알바 선배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러자 부스케츠 선배도 그 말을 듣고 함께 웃었는데.
“왜요? 카시야스 선배가 훈련장에서 어땠는데요?”
“아아, 넌 이번이 처음이라 모르겠구나? 말도 마라. 맨날 훈련장에서 바르셀로나 애들은 키가 작아서 세트피스 수비할 때 편하다드니, 꼴에 레알 마드리드 주장이라고 자존심을 부려서 말이야.”
“걔도 골키퍼 치고 키가 엄청 작잖냐. 물론 스페인 대표팀에서 거의 제일 작은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그 녀석 가끔 보고 있으면 바르셀로나 소속 선수들을 다소 무시하는 듯한 경향이 있단 말이지.”
“뭐 이젠 괜찮아! 어차피 한결이가 키로 찍어 눌러줄 테니까. 크흐흐.”
아무래도 바르셀로나-스페인 선배들이, 나의 발탁을 반기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가오는 주말에 있을 말라가와의 원정 경기를 마친 뒤 곧장 스페인 축구 대표팀 훈련장으로 이동할 것이었고.
선배들은 어쩐지···, 말라가와의 경기보다 대표팀 합류를 더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경기 끝납니다!!! 지난 경기에 이어서 이번 경기에서도 득점을 터뜨린 리오넬 메시의 해트트릭과 정한결 선수의 득점으로 인해 바르셀로나가 이번에도 승점 3점을 따냅니다!!!”
“이번 경기는 비록 모두가 기대하는 정한결 선수의 헤딩골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가 왜 바르셀로나 선수인지 여실히 증명한 경기였죠?”
“네 그렇습니다. 공중볼에 탁월한 장점이 있지만 발밑 기량도 어느 탑급 선수 못지 않은 정한결 선수가, 메시의 골을 돕고 자신의 득점까지 기록한 모습은 정말이지 압권이었습니다!”
말라가와의 경기 다음 날.
나는 바르셀로나-스페인 선배들과 함께, 마드리드에 있는 훈련장으로 떠났다.
그곳은, 바르셀로나하고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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