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발론 - 첫 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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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섭마린
작품등록일 :
2024.08.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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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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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DUMMY


“그럼··· 당신들은 천 년도 더 전에 이곳으로 건너온 셈이군요···”

에릭슨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대답했다.

“그건··· 모르겠네···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기록을 남기지 않아. 정확한 햇수를 어떻게 알겠나?”

어··· 천 년 단위가 ‘정확한 햇수’가 필요한 단위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 망할 기록 알레르기 야만인들···


나는 속으로 구시렁대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올리비아는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고, 레이한은 그런 올리비아에게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라, 아들 에릭슨과 덤 앤 더머 형제는 아까 그렇게 언쟁하던 것이 무색하게 서로 부둥켜안고 코를 골며 자고 있네?

과연 보드카, 독주의 힘은 위대하다.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오지 않았나.


어··· 남자 셋이 그러고 자는 모습이··· 좀 그렇긴 한데··· 뭐, 좋은 꿈 꾸기를···

다시 아버지 에릭슨을 돌아보니, 그도 어느덧 취해 잠이 들어 있었다.

어이쿠, 그 연세에 한데서 그냥 주무시면 큰일 납니다.

나는 그를 잘 눕히고 양털 모포를 덮어주었다.


그 때, 레이한을 재우고 난 올리비아가 입을 열었다.

“알비온 말이야···”

어 깜짝이야.

“그거 켈트어로 옛 브리튼 섬, 그러니까 영국을 지칭하는 말이거든.”

“어, 예. 저도 얼핏 들어본 것 같습니다.”

“옛 켈트어의 흔적이 아일랜드의 게일어에 많이 남아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건한테 들은 적이 있다.


“백악 해변 알지? 그 하얀 색을 지칭하는 말이라고도 해.”

“아~ 그런가요?”

“그 왜 색소가 부족한 동물이나 사람을 ‘알비노’라고 하잖아? 그것도 유래가 같다는 설이 있어.”

오, 그런···가? 그건 그렇고···

“제가 궁금한 건, 왜 북구인들의 전설에 브리튼 섬을 지칭하는 인물이 나오는가 하는 점입니다.”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긍정했다.

“나도 그래. 알비온··· 뭐, 나중에 모건 박사님한테 물어보기로 하지.”

아, 역시 모건이 필요하구나···

그립네 모건··· 어, 어흠.


다음날 아침, 에릭슨 일행과 우리는 헤어졌다.

먼저, 어제 이야기된 대로 물건을 교환하고···

‘우정의 선물’로 보드카를 한 통 선물했다.

에릭슨 일행이 크게 기뻐하는 것이, 왠지 양털이나 검은 곰 모피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 같은데?


헤어지기 직전, 에릭슨에게 주변의 ‘도래인’들에 대한 소식을 물어봤다.

“일일이 수소문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네만··· 몇몇 부족에 도래인 노예들이 있다는 소식은 들었네. 우리 부족이야 뭐···”

거기서 쑥스럽게 웃고는,

“지난번에 펜드래건 영주에게 패하는 바람에, 도래인은커녕 우리가 노예가 될 뻔했지.”

하고 껄껄댔다.

“앞으로는 신경 써서 도래인들에 대해 알아보겠네.”

“그래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에릭슨은 거기서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봄이 되면, 우리 바이킹들이 지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움직일 거야. 북쪽에서도 많은 족장들이 배를 타고 내려올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네.”

그는 왜 그런 걸 알려주냐는 표정이 된 아들 에릭슨을 잠시 쳐다보더니,

“지난 번엔 세 부족만 움직였고, 그냥 켈트인들의 준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지.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걸세. 대규모 침공이 될거야. 발키리 영주는 뛰어난 전사지만, 켈트인들이 단합하지 않으면 어려울 거야.”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점점 긴장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되도록 우리 두 민족 사이의 싸움이 그치길 바란다네. 이곳 아발론은 넓어. 굳이 서로 멸족을 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공존할 수 있을 텐데···”

그는 자조적으로 웃고는 마무리했다.

“하지만, 우리 바이킹은 원래 그런 민족이야. 나 같은 소부족 늙은이의 생각만으로는 바뀔 턱이 없지. 다만, 발키리 영주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부디 조심하라고 전해 주게나.”


나는 어젯밤에 결국 왜 아르트라를 ‘발키리’라고 부르는지 듣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지만, 그냥 바이킹식 작별 인사를 하고 에릭슨과 헤어졌다.

스벤도 마찬가지로 인사를 하고는 씩 웃으며 짐을 실은 말을 끌고 멀어졌고···


아들 에릭슨은··· 덤 앤 더머 형제에게 눈을 부라리고, 레이한에게 다가가서는 당당하게 자신의 목걸이를 벗어 건네더니, 나를 보고 움찔하고는 재빨리 짐말을 끌고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갔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들을 전송했다.

짜식··· 귀엽게 노네···


우리는 야영지와 짐을 정리한 후, 마차를 끌고 서북쪽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브레비스 부족에 한 번 들리고···”

마차의 마부석에 올리비아와 나란히 앉은 나는 양피지에 초등학생의 낙서 수준으로 그려진 칼리시아 지방의 지도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이놈의 지도···


우리는 이미 브리간티아 지역은 정밀하게 지도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도 강윤찬의 드론을 활용해서 항공 측량 사진으로 만들어진 지도다.

미래의 전자기기에 이상할 정도로 관심이 많은 아르트라 영주는 곧 그 항공지도의 유용성을 깨달았는지, 종종 홍수빈의 태블릿을 힘께 조작해가며 지도를 살펴보면서 놀고는(?) 했다.


뭐, 출력···같은 게 가능할 턱이 없으니 아직은 태블릿에만 저장되어 있긴 하지만···

하지만, 그게 어딘가.

이런 조잡한 지도에 비하면...

칼리시아, 아니 아발론 전체의 지도도 차차 만들어 나가면 좋겠지만···

뭐, 아직은 아득한 이야기다.


말고삐를 잡은 올리비아가 그런 나를 슬쩍 건너다보더니 물었다.

“브레비스? 두 달 정도 됐나, 들린 지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브레비스 부족은 육 개월 전의 그 사건 때, 트롤의 습격을 정면으로 들이받아서 폭망 해버린, 붉은 수염 족장의 부족이었다.

원래도 그다지 큰 부족은 아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 백 명에 달하던 전사의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서 요즘 좀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뭐··· 전사 수가 다 합쳐도 삼십 명도 채 안 되는 브리간티아 부족이 할 말은 아니지만···


“키아란 족장은 생긴 건 터프한데, 좀 소심한 면이 있는 것 같지?”

나는 붉은빛의 사자의 갈기 같은 풍성한 머리칼과 수염을 사내답게(켈트족 입장에서) 기르고 복잡하게 땋아서 장식한 브레비스 부족의 족장을 떠올리고는 살짝 웃음을 지었다.

“’소심’이라뇨? 그런 소린 면전에서 하지 마세요 올리비아. 켈트족들한텐 모욕입니다.”

“알지, 알지··· 뭐 설마 내가 그런 분위기도 파악 못하는 어린앤 줄 알아?”

“하지만, 어제 보니 그··· 어린애 하고 으르렁거리던걸요?”

나는 아들 에릭슨과 언쟁을 벌이던 그녀를 떠올리며 반박했다.


“그거야··· 한번 붙어보려고 그랬지. 처음엔 네가 부추기지 않았어?”

어, 그렇···긴 했다.

처음엔 건방진 놈을 좀 곯려 줄려고 올리비아와 한번 싸움을 붙여보려는 생각이 있었지.

“그··· 화기애애하게 장사도 하고 소식도 좀 물어봐야하는데, 그 아버지 앞에서 아들 놈이 두들겨 맞는 꼴을 보여주는 것은 좀 그래서요. 그것도 여자한테.”


올리비아가 그 말을 듣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제이 씨, 스승님이 보기엔 어때? 내가 이길 수 있겠어, 그 녀석한테?”

거 참··· ‘제이’ 아니고 ‘재희’라니까···

“이깁니다. 지금 올리비아는 충분히 강해요. 자신감을 가지되, 늘 방심만 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듣고는 앞을 쳐다보며 말을 몰던 올리비아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 때, 갑자기 마차의 포장 안에서 레이한이 고개를 쏙 내밀더니 말했다.

“나는? 나는? 나도 그 녀석한테 이길 수 있어.”

어, 깜짝이야!

좀! 그런 식으로 갑자기 튀어나오면 TV에서 기어 나오는 무슨 악령 같잖아···


어쨌거나··· 레이한 너는 좀 무리 아닐까?

물론 싸우지 않고도 너는 이미 녀석을 ‘지배’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지···


내가 비굴하게 웃으며 대답을 회피하자, 레이한은 골이 났는지 아들 에릭슨이 준 목걸이를 길바닥에 휙 버리고는 마차 안으로 다시 쑥 들어갔다.

어··· 참··· 남자의 순정을 저렇게···



올리비아는 원래 몸을 쓰는 일을 좋아하는 데다, ‘복수’라는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어서인지 지난 육 개월 동안 노심초사하며 자신을 연마해 왔다···

앞서 말했던 소위 ‘슈퍼맨’ 사건 이후로, 올리비아는 며칠간 고민하더니 나를 찾아왔더랬다.


“제이 킴, 당신 군인이었다면서? 그것도 SAS 같은 특수 부대의.”

응? 갑자기 SAS냐?

좀 다르긴 한데···

나는 영어로 일일이 설명하기가 머리 아파서 그냥 ‘대충 그렇다’고 대답했다.

올리비아는··· 자신의 몸을 지키고 다른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대뜸 부탁해왔다.


나는, 살짝 곤란해져서 완곡히 거절했다.

켈트인들이 쓰는 무기는 나로서는 익숙하지 않아서 좀 어렵다···

특수 병과 군인들이 배우는 것은 치명적인 살인술이 대부분이라 좀 그렇다···

사실, 복수심에 불타는 올리비아가 날붙이를 들고 설치다가 크게 다치거나 죽···는 것은 바라지 않았으니까.

여자라서 얕보는 마음도 조금 있었고···


하지만, 올리비아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복수를 다짐하는 모습에 그만··· 마음이 약해져버리고 말았다.

“그럼, 무슨 무기를 배우고 싶습니까?”

올리비아는 눈물을 닦고 우물쭈물 망설이더니,

“사실, 고백할 게 있어.”

라고 말했다.


저런, 고백은 좀··· 나한테는 모건도 있고···

“나는 첨단 공포증이 있어.”

“······”


그게 말이 되냐!

어! 복수를 하겠다고, 무기를 배우겠다는 여자가 말야, 어!

첨단 공포증이라니!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를 뻔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참았다.

음···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까마귀 족장 놈의 칼에 목이 베여 살해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으니까.


내가 참아야지 뭐···

하지만, 애당초 첨단 공포증이라면 상대방이 날붙이를 들고 달려드는 것은 어찌 감당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또 괜찮다고 했다.

대신, 자기가 날붙이를 들 자신은 없다고···


나는 할 수 없이 그녀에게 우선 기초 체력 강화 훈련을 시키고 맨손 격투술을 가르치기로 했다.

뭐, 나 자신도 홍수빈이 말한 ‘아발론에서 계속 지내면, 뼈다귀가 또깍 부러질 정도로 약해지고 근육이 흐물흐물해질 거예용’ 하는 말에 충격 받은 것도 있고 해서, 꾸준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한두 달 같이 운동하고 가르치는 동안, 다른 일행들도 함께 운동에 끼곤 했다.

다들 은근히 홍수빈의 경고가 신경 쓰였나?


우선, 강윤찬은 원래 몸치란 것을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든 운동을 빼먹으려 농땡이를 부리다가 홍수빈에게 귀가 붙잡혀서 나왔고···


홍수빈은··· 정말··· 심하게 몸치였다···


레이한은 ‘슈퍼맨’ 사건 때 이미 증명했듯이, 가장 유연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 무슨 동작이든 연체 동물처럼 곧잘 쉽게 따라했다.

알고 보니 중국에서 배우가 되기 위해서 무슨 연기 학원에 다니는 외에도, 무용과 우슈 따위를 배웠다고 했다···


다섯 중에서 근력, 순발력, 유연성, 지구력 등을 종합해서 가장 높은 점수를(내가 보기에) 받은 것은 모건이었다.

모건은 그냥 대충대충 따라하는데도 다 잘 했다···


올리비아는, 일단 깡마르기는 했지만 키가 무척 큰 편이었다.

모건도 여자치고는 제법 큰 편인데, 올리비아 옆에 서면 귀여워(사실 귀엽다) 보였으니까.

기본적으로 활동적인 사람이라, 근력도 꽤 있었고···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는 ‘노력’이 있었다.

복수심이 그 열심을 부채질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녀는 꾸준히 성장했고, 배움을 받아들였다.


아르트라 영주도 가끔 우리들이 성채 뒤뜰에서 그러는 것을 구경했는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뭐, 그녀는 내 기준으로 봐도 인간을 초월한 그 무엇에 가까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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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비아 24.08.30 1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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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계시 24.08.25 16 1 12쪽
23 캐리어 24.08.24 18 1 12쪽
22 호수의 여왕 24.08.24 15 1 10쪽
21 멀린 24.08.23 23 1 12쪽
20 만찬 24.08.23 40 1 12쪽
19 브리간티아 24.08.22 36 1 12쪽
18 발키리 24.08.22 44 1 13쪽
17 각개격파 24.08.21 2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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