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발론 - 첫 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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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섭마린
작품등록일 :
2024.08.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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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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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DUMMY


나는 타라를 약간 혼이 나간 듯한 베디비어에게 맡기고, 급하게 전장으로 향했다.


어··· 이거 약간 위험해 보이는데?


우선, 아르트라가 좀 지쳤는지 칼에서 뿜어내는 빛이 약해져 있었고, 움직임도 살짝 둔해 보였다.

인간들을 상대할 때는 무적에 가까웠던 광선검으로도 ‘대왕’ 트롤의 가죽과 근육과 뼈를 단번에 절단시킬 수는 없었나 보다.

무엇보다 무기의 길이가 너무 짧았다.


두 번째로, 트롤의 덩치가 너무 컸다.

인간인지 의심스러운 아르트라의 신체 능력으로도, 단번에 트롤의 심장이나 머리를 노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반면에 트롤은 조금도 지치지 않았는지,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쉼 없이 손과 발을 써서 아르트라를 압박했는데, 거기 스치기만 해도 그녀의 가느다란 뼈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 자명했다.


동료들은 어떤가···하고 봤더니, 올리비아는 이미 석궁의 볼트를 다 소모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고, 레이한도 난감해하고 있었다.

트롤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니까···


어차피 레이한의 화살로는 트롤의 가죽을 뚫지도 못하니 아까처럼 눈을 겨냥하려는 것 같은데···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기회를 잡았는지 한 발 날렸는데 놀랍게도 트롤이 순간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무림의 고수인가?


그 순간, 아르트라가 새처럼 도약해서 놈의 심장을 노렸다.

아냐! 나는 순간 알았다.

트롤이 속임수를 쓰는 거다.


맑고 날카로운 소녀 영주의 고함이 호변에 메아리치고, 아마도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은 듯한 눈부신 빛의 칼이 번개처럼 트롤의 심장을 향하는 순간··· 트롤의 다른 쪽 손이 올라오며 소녀를 쳐서 날렸다.


나는 트롤과 동시에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는데도 그 충격량을 완전히 흘리지 못했는지, 아르트라는 칼을 놓치고 의식을 잃은 상태로 공중을 날았다.

죽지 마라, 제발!


위급함을 느낀 레이한이 빗발처럼 연사를 퍼부었지만, 트롤은 가볍게 손을 들어 눈을 보호하며 날아가는 아르트라를 향해 움직였다.

화살통에 더 이상 화살이 없음을 깨달은 레이한이 망연해지고, 올리비아가 되는대로 바닥의 짱돌을 주워서 던져댔지만, 맞는 놈도 드물었고 놈은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적은 오로지 어린 소녀 하나라는 듯이···


아르트라가 숲 가장자리에 털썩 떨어지고, 뒤이어 도착한 트롤이 두 손을 번쩍 들고 내리치려는 순간, 거의 동시에 도달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트롤이 딛고 선 뒤쪽 다리의 오금을 베었다.

가죽, 근육, 뼈··· 까드득 소리와 함께 거기서 대검은 막혔다.

베지 못했다···

역시, 이 놈한테는··· 무리인가?


나는 순간적으로 대검을 잃지 않으려고 손목을 홱 꺾으면서 스쳐 지나가듯 뽑아 들었고, 트롤은··· 잠깐 몸을 휘청했지만, 이내 다시 중심을 잡고는 고통의 포효를 내질렀다.


나는··· 추락한 발키리의 앞을 막고 서서, 대검을 들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움직였고, 몸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는지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자, 이제 어쩐다···

흘낏 쓰러진 아르트라 영주의 모습을 보았다.

창백한 얼굴에 핏기가 없다.

괜찮은 건가? 모르겠다···


나는 각오를 굳히고 고함을 질렀다.

“올리비아! 레이한! 베디비어! 지금 도망쳐요! 가서 알리고 모두 함께 퇴각해요!”

보이지는 않지만, 아무도 움직이는 기미가 없다···


트롤이 포효를 멈추고는 아르트라 영주를, 그리고 나를 잠시 내려다봤다.

나를··· 알아보는 거냐?


나는 놈의 상판을 올려다보며, 대검을 움켜쥐었다.

“오래간만이다, 이 못생긴 새꺄!”

어, 자꾸 졸음이 오는데···


“뿌우우~~~”

“덤벼 봐, 내!가! 상대해 줄테니!”

드러눕고 싶네···


“뿌우우~~~”

근데, 뭐가 자꾸 이렇게 시끄러워···

트롤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가 나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어··· 뭔가 데자뷰가···


순간, 쐐액 쐐액 소리가 하늘을 가르더니, 화살이 빗발처럼 떨어져 내렸다.

대부분이 트롤에게 격중했고, 일부 화살이 놈을 지나쳐 아르트라 영주 근처의 땅에도 떨어져 박혔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날려 영주의 몸을 가리고 엎드렸다.

어떤 놈들이 이렇게 무식하게 활을 쏘는 거냐?

하지만, 계속 빗발치는 화살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제발··· 나한테 맞지만 말아라···

가물가물 저물어 가는 의식 속에서 간절히 빌고 있을 때···

“꾸워어억~~~”

트롤이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고,

나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어, 방금 아르트라가 나를 보고 방긋 웃은 거 같은데?



꿈속에서 나는 어린아이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시체를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도···

문득, 깨달았다.


어, 여기는··· 그래, 남수단에 있는 가브리엘 아튀르의 집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이미 겪었던 일··· 이거··· 또 꿈이구나···


가브리엘은, 선량한 인상의 딩카족 출신으로,

한국군 파병 부대의 현지 안내와 통역 등을 맡고 있었다.

그는 파병 부대가 건설과 의료 지원만을 행하던 초창기에, 말라리아로 고생하던 딸을 부대 의료진이 치료해 준 인연으로, 우리 부대의 현지 도우미 역할을 오랜 기간 맡아 왔었다.


하지만, 부족의 차이, 이데올로기의 차이, 종교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맹목적인 증오를 쌓아가던 현지인들 중에는···

그저 가족의 건강과 안정을 바랬던 선량한 가브리엘을 끝내 용납하지 못한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배신자의 가족을 처단한다고 한 짓은···


고작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일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선량했던 가브리엘 역시 증오에 눈이 멀어버렸고···


어쨌거나, 지금 이것은 꿈이었다···

가브리엘의 부인이 문득 얼굴을 들고 울면서 내게 말했다.

“제가··· 이 아이를··· 헤쳤어요.”


어, 모건이다···

모건이 죽은 아르트라를 안고 울고 있었다.

아르트라··· 얼음 인형처럼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로 모건의 무릎 위에 뉘여 있었다.

나는 동요했다.

진정해! 이건 꿈이다!


아르트라가 갑자기 눈을 반짝 뜨더니, 내게 말했다.

“제이킹··· 왜 이렇게 늦게 왔지?”

나는··· 최선을 다했어···


갑자기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기에 돌아보았더니,

반갑네··· 이도현이 씨익 웃으며 서 있었다.

“형, 오랜만이네··· 잘 있었어?”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비록 꿈이지만···


“형, 일어나 봐!”

깨기가 싫네···

“에이, 정신 좀 차려 봐!”

근데, 이 자식 시끄럽네···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네!”

어··· 이게 뭐냐···

“일어났네.”

이도현이 언제나처럼 밝게 웃으며 내 앞에 서 있었다.


“너···”

“형, 정말 오랜만이네.”

“너···”

“모두들 잘 있어?”

하더니, 살짝 목소리를 낮추고는,

“저기 그때 그 중국 여자 맞지? 레이한이라고 하던데··· 한국말을 하더라구? 모건 씨랑 윤찬이, 수빈이도 잘 있다며?”

“······”

“아니, 형! 왜 이래? 아직 정신이 안 들었어?”

“야···”

“어, 왜?”

“이게 꿈이냐 생시냐?”

“······”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이도현은··· 다소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전의 녀석 그대로··· 엄청 수다를 떨어대기 시작했고, 나는 그제서야 현실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여기는 어디냐? 뭔가 움직이고 있는데?”

그렇다··· 나는 분명 세련되면서도 담백하게 꾸며진 방의 침상 위에 있었는데, 모두 향기가 은은하게 나는 나무로 조각된 것들이었다.

켈트 야만인들의 솜씨는 단연코 아니고···

침대조차 딱딱한 나무 그대로라 좀 등허리가 아픈 게 흠이랄까?


“여긴 배의 선실이야.”

“배?”

오··· 응?

“뭔 배?”

“형···”


이도현은 잠시 나를 딱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형, 헤어진 6개월 동안 왠지 바보가 된 것 같은데?

“······”


이 자식, 너도 켈트 야만인들하고 6개월 동안 생활해 봐라··· 가 아니고···

“너도 나처럼 트롤 세 마리랑 드잡이질 해 봐라. 정신이··· 헉! 그 트롤 놈은 어떻게 됐냐?”

“그놈은 도망갔어. 엘프들이 활로 마구 쏴대니까 견디지 못하고 튀던데?”


그래, 무식하게 쏴대서 하마터면 아르트라하고 나까지 맞을 뻔했지···하다가,

“뭐라고 했냐? 엘프···들?”

“어, 형 아무래도 좀 쉬게 해 줘야 하나? 영 상태가 이상한데?”


“아니, 그보다 아르트라는? 괜찮냐? 안 다쳤어?”

이도현이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르트라? 그··· 이쁜 애 말이지? 그쪽 영주라며? 근데 그냥 말 트고 지내는 사이야?”

하더니, 또 은근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르트라··· 이름도 이쁘네. 겁나 미인이던데? 혹시 남자 친구는 있대?”

“······”

이 새끼···



“뿌우우~~~”

어, 이건 아까 들었던 그 소라고둥 나팔··· 소리인가?

“어, 형 도착했나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가 하고, 일단 나가보자고.”

녀석이 먼저 황급히 방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무슨··· 지금 자세한 이야기는커녕 간단한 이야기도 못 들었는데?

나는 구시렁거리며 몸을 덮고 있던 가벼운 이불을 젖히다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나 나체였어?

누군가 몸을 홀딱 벗기고 몸을 씻겼나 보다.


아니, 특별한 외상도 없는데 굳이···

나는 뜻하지 않게 순결을 뺏긴(?) 느낌에 잠시 멍하다가, 다시 나팔 소리가 들리자 황급히 침대 옆에 놓여 있는 내 옷을 찾아 입고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어라? 비좁은 짧은 복도였다.

아 참, 배···라고 했지?

빛이 보이는 쪽으로 따라가서 계단을 올라갔더니···

나는 칼리시아 호수 위를 미끄러지며 움직이고 있는 배의 갑판 위에 있었다.


어, 춥긴한데··· 이야, 장관이네···

배의 선수는 동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마침 펜드래건 성채가 막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 삼아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호수 위로는 언제나처럼 고요한 물안개가 잔잔히 흐르고 있었는데, 내가 탄 배는 그 물안개를 헤쳐가며 전진하고 있었고.

결국 밤을 샜구만···


오늘은 날이 맑으니 물안개도 금방 없어지겠어···

그동안 지금처럼 펜드래건 성채를 뒤쪽 정면에서 바라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쪽에서도 드래곤의 머리가 호수 방향을 향해 도도히 서있는 것이 보였다.

양쪽으로 다 드래곤의 머리가 보이도록 만들어졌네··· 대단해···

아무리 생각해도 저 성채는 켈트 야만인들의 작품은 아니었다.


이쪽의 나팔 소리를 들었는지, 성채 쪽에서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아니라 쬐끄만 머리통이 창문을 통해 이쪽을 내다보더니 소프라노 톤으로 소리를 꽥꽥 질렀다.

“배! 배예용! 배가 다가와욧!”

“수빈이구나! 이야 정말··· 반갑네.”

어느새 이도현이 옆으로 다가와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음··· 나는 다른 고민을 좀 했다.

배가 이렇게 다가오도록 눈치를 못 채다니···

성채 뒤쪽으로도 파수병을 좀 배치해야 할라나?


하지만, 이 경우가 특이하기는 하다···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브리간티아 부족이 호수에서 생선을 잡을 때 사용하는 조각배 외의 ‘배’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칼리시아의 켈트 부족들이 이런 커다란 배를 군선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미처 생각조차 못했으니까···

어차피 칼리시아 부족들 중에서도 호수에 접하고 있는 것은 브리간티아와 북쪽의 소규모 부족들 뿐이고, 다른 부족들은 모두 그 동쪽으로 분포해 있다.


하지만, 바이킹들은 다르겠지···

그들의 롱쉽이야 뭐 지구에서도 역사적으로 그 실용성을 높이 평가받았고, 에릭슨의 말에 의하면 여기에서도 같은 종류의 배를 사용하고 있는 듯했으니까···

역시 대비는 해 놔야 할라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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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호수의 여왕 24.08.24 15 1 10쪽
21 멀린 24.08.23 23 1 12쪽
20 만찬 24.08.23 40 1 12쪽
19 브리간티아 24.08.22 36 1 12쪽
18 발키리 24.08.22 43 1 13쪽
17 각개격파 24.08.21 2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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