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발론 - 첫 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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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섭마린
작품등록일 :
2024.08.15 14:54
최근연재일 :
2024.09.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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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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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엘프

DUMMY

나는 눈을 뒤로 돌려 내가 타고 있는 배를 살폈다.

이건··· 지구에서는 본 적이 없는 형태의 배였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돛이 사각돛이나 삼각돛이 아니고 나비가 날개를 펼친 것처럼 우아하게 위로 들려 있었다.

두 날개가 각각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어쩌면 역풍 항해 같은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쪽에 아는 바가 적은 나로서는···


뱃전을 슬쩍 넘겨다보니, 한쪽에 스무 개가량의 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배의 몸체는 날씬한 유선형이지만, 이 정도면 꽤 큰 축에 속할 듯···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바이킹들의 롱쉽보다 훨씬 클 것 같았다.


그리고, 선실이 있었다.

내가 있던 선실이 반지하 비슷한 느낌으로 살짝 배 갑판 아래 위치하고, 그 위에 한 층 더 우아한 형태의 선실이 있고, 그 앞에 공간이 있어서 배를 지휘할 수 있게 되어있는 구조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간결한 형태인데, 세밀하게 나무를 다듬어 놓은··· 우아한 배였다.

돛의 모양도 멋있고···

실용성 측면은 아직 모르겠지만 말야.



그리고, 엘프들이 있었다.


음··· 아무래도 나는 편견이 좀 있었나 보다.

엘프들은 숲 속의 나무 위에서만 살고··· 음, 이건 좀 원숭이 이미지 같긴 한데···

뭐 풀때기만 먹고 산다든가··· 이건 아직 모르겠고.

무조건 활만 무기로 쓴다든가, 금속제 장비는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뭐 이런 편견들 말이다.


배의 갑판에는 양쪽에 여섯 명씩, 열 두 명의 엘프 전사들이 은빛 갑옷에 은빛 창과 은빛··· 뭐 암튼 방패를 들고 멋들어지게 서 있었는데, 꿈쩍도 안하고 그러고 있는 것이···

그래, 무슨 의장대? 뭐 그런 느낌이었다.

한쪽 열은 모두 남자 엘프들이고, 다른 한 쪽 열은 모두 여자 엘프들로 구색을 쫙 맞춘 것도 특이했고···


모두 지구로 말하면 백인···으로 보였다.

파란 눈동자에, 피부가 하얗고, 금발이나 은발 등 멜라닌 색소가 적어서 나타나는 특징들이 뚜렸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두 귀가 길~쭉했다!


특이한 점은, 이들 열 두 명의 전사들 외에는 배 위에 다른 선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노잡이들이야 아랫쪽에 있다고 해도··· 키잡이나, 견시수, 돛을 조정하는 인원 등도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이런 작업들이 모두 실내에서 이루어지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엘프들에 대한 인종학적 고찰과 배의 구조에 대한 공학적 고찰을 하고 있는 동안, 위층 선실의 문이 열리더니 사람들이 나왔다.

엘프들···이 네 명에다 아르트라와 타라, 그리고 멀린과 레이한이 있었다.


엘프들 중 남녀 두 명은 화려한 의복을 입었고, 개중 남자 쪽은 은빛 서클릿을 머리에 두르고 있어서 지위가 좀 있어 보였다.

여자 쪽은 살짝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남자를 보좌하는 느낌이었고.

나머지 남녀 한 쌍은 무장을 갖추고 뒤를 바짝 따르는 것이, 호위 역인 듯했다.


아르트라가 나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움직이려다 움찔하는 동안, 레이한이 날다람쥐처럼 폴짝 갑판으로 뛰어내리더니 내게 말했다.

“깼구나, 그것 봐 내가 제이킹보다 예쁘고 강하···”


그 때, 레이한을 뒤따라 내려온 타라가 갑자기 내게 확 덤벼와서, 나는 순간 기겁을 했다.

억, 타라··· 끝내 네가 나를 죽이려고···


타라가 내 가슴에 얼굴을 비벼대며 말했다.

“제이킹! 죽음에서 나를··· 불러왔다며? 이제 타라는··· 그대의 것이야.”

“······”


아니··· 그건 칼로 찌르는 것보다 더 무서운데···?


옆에 있던 이도현이 경악했고, 레이한이 입을 뻐끔뻐끔하더니,

“모건 언니는? 역시 제이킹은 바.람.둥.이?”

하고 등을 홱 돌렸다.


그건 아니지··· 난 아무 짓도 안했··· 아니, 심폐소생술만 했다고!

아, 참···

고개를 들어보니 멀린이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고,

아르트라는··· 어, 왠지 눈에 초점이 없는데?


아니, 타라야··· 심폐소생술로 기껏 살려 놨더니···

은혜를 원수로 값는 거야?



엘프들은 펜드래건 성채 아래에 있는 선착장에 배를 대었다.

이곳은··· 성채의 호수쪽으로 나 있는 일명 ‘호수문’이라는 쪽문과 연결되는데, 뭐 그동안 영주에게 생선을 바치려는 몇몇 브리간티아 주민들이 드나들었을 뿐 완전히 방치되어 있던 곳이었다.


어, 춥다···

배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나는 찬바람에 벌벌 떨었다.

게다가 왠지 아르트라 영주로부터 북서 계절풍이 부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옆구리에 찰싹 매달려 있는 타라를 어떻게든 떼어내려 노력하는데, 레이한이 큰 깨달음을 얻은 듯 한 마디 했다.

“오호, 그래··· 옆구리가 시렵다···라는 건 그런 뜻? 레이한 이제 알았어.”

어, 제발 안 그래도 추운 사람한테 부채질 좀 하지 말고 좀 가라, 응?


선착장에는 모건, 홍수빈과 피온, 그리고 두브와 반 형제가 나와 있었다.

브리간티아인들은 엘프들과 그들의 배를 보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자신들의 영주가 돌아와서 기뻐했고···

홍수빈은 이도현과 부등켜안고 기뻐했다.


“옵빠! 옵빠! 살아있었군요! 엉엉!”

“그래, 야 수빈아. 반갑다!”

“어흑 어흑···”

어, 또 저러네 홍수빈 녀석···

평소에는 세상 시니컬한 녀석이···


모건은 아르트라와 포옹하고 둘이 잠깐 뭔가를 이야기하고는,

“도현 씨, 반가워요, 정말··· 잘 왔어요.”

이도현을 글썽글썽한 눈으로 반기더니, 내게로 다가왔다.


“재희 씨, 음···”

모건은 내 옆에 붙어서 비비적대고 있는 타라와 나를 한참동안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포옥 쉬었다.

그러고는 턱짓으로 타라를 가리키며 갑자기 한국어로 물었다.

“그런데, ‘그건’ 뭔가요?”


어··· ‘그거’···라니···

그래도 사람한테 ‘그거’라고 하면 안돼죠, 모건···

해는 떴는데, 어째 갈수록 추워지는 것 같냐?



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네 명의 엘프들이 다가오자 모건은 다시 한번 나를 슬쩍 흘겨보고는 이내 주의를 그쪽으로 돌렸다.

“반갑습니다, 숲의 친구들이여. 브리간티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펜드래건 성의 살림을 맡고 있는 모르가나 펜드래건입니다.”


엘프들 중에 나이가 들어 보였던 여성이 모건의 인사를 받았다.

“평안하기를. 이분은 고리아스의 타바른 왕자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브리안입니다.”

어, 켈트어를 할 줄 아네?

게다가, 무려 ‘왕자’라니···


타바른 왕자는 눈부신 금발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살짝 고집스러운 눈매와 입을 가지고 있었지만, 뭐 그린듯한 ‘미남’인 것은 분명했다.

모건이 그에게 다가가 켈트식으로 인사했다.

“귀하신 분을 환영합니다. 펜드래건이 손님으로 모시오니, 들어오셔서 함께 불을 쬐고 음식을 나누시길.”


왕자가 그런 모건을 관심있게 보더니 입을 열었다.

“모르가나 펜드래건··· 그대는 펜드래건의 혈족인가?”

“먼 혈족입니다, 왕자님.”

타바른 왕자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모건의 인도를 따라 일행과 함께 호수문으로 이동했다.

먼저의 여성이 통역인 줄 알았는데, 왕자도 켈트어를 하는구만···


많은 수의 엘프들이 함께 입성하려 하면 어쩌나 살짝 고민했는데, 다행히 엘프들도 그 정도의 예의는 있는지 왕자와 세 명의 일행만 입성하고 나머지 병사들은 모두 배에 남았다.


몸이 몹시 피곤하고 졸음이 몰려왔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아르트라와 타라, 멀린이 휴식을 취하러 가고, 모건이 엘프들을 손님들의 방으로 모시는 동안, 나는 동료들과 함께 원탁의 방에 모여 먼저 이도현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이도현이 먼저 운을 떼었다.

“윤찬이는? 돌아오려면 아직 멀었어?”

홍수빈한테 대충 소식은 들었나보군.


“아마도··· 부상당한 전사들도 마차에 싣고 오려면 좀 시간이 걸릴 거야.”

“어, 그래···”

이도현은 살짝 아쉬운 표정을 했다.

뭐, 둘은 단짝이었으니까.


“그보다, 저 엘프들은 대체 뭐냐? 너는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거야?”

“오빠, 잠깐요. 모건 언니가 오시면 함께 듣죠. 우선 우리 이야기부터 들려드리면 어때요?”

홍수빈이 제안했다.


그래 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홍수빈이 6개월 전 헤어진 뒤부터 겪은 일들을 이도현에게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이도현은 특유의 넉살로 홍수빈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가며 이야기를 들었고.

홍수빈의 관점에서 우리의, 특히 나의 행동에 대해 듣는 것은 약간 생경한 느낌이었다.


이야기하는 도중, 모건이 일을 마쳤는지 돌아와서 조용히 앉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어젯밤 아르트라 영주를 찾아 트롤을 추적했던 이야기까지 덧붙여서 우리쪽의 이야기를 대강 마무리했다.


“그럼, 아까 그 괴물이··· 우리가 헤어질 때 마주쳤던 그 놈이라는 말이에요? 우와~ 이거 참, 엄청난 우연이랄까, 인연이랄까···”

듣고 보니 그랬다.

6개월 전, 이도현과 헤어진 것도 바로 그 트롤을 만났기 때문이었지.


모건은 그 이야기에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얼굴을 살짝 찌푸렸고,

이도현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농담을 던졌다.

“그나저나, 형··· 아까 잠깐 보니 그 괴물하고 맞짱 뜨던데··· 대체 그 동안 어떤 삶을 살아온 거예요?”

나는 그냥 웃었다.


“사실, 엘프들은 배를 호변에 세우고 날이 새기를 기다리던 중이었어요. 바람을 잘 만나서 너무 빨리 도착했거든··· 내가 듣기로는 해가 뜬 뒤에 다시 출발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어요.”

이도현이 설명했다.


“그런데, 멀지 않은 호숫가에서 불빛이 번쩍번쩍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그쪽으로 배를 붙여보니 그 난리더라고.”

어, 그래··· 그렇게 보면 강윤찬의 드론이 우릴 살린 셈이다.


“그 괴물이 도망가고 나서, 배를 내려보니 원래 엘프들이 찾아가려고 했던 펜드래건 영주 일행과 형이 함께 있는 거야. 처음에는 형이 어떻게 된 줄 알고 어찌나 걱정했던지···”

“뭐, 다들 무사하니 된 거지.”

나는 트롤을 결국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패배한 것이 생각나서 씁쓸해졌다.


모건이 살짝 끼어들었다.

“고리아스···의 타바른 왕자 일행은 일단 오후에 접견하기로 했어요. 그 뒤에 저녁 만찬에 초대하고요. 그때까지는 손님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걸로···”

“후흣, 진짜 ‘왕자님’··· 인가요?”

홍수빈이 장난스럽게 중얼거렸다.


“게다가 무려 ‘엘프’ 왕자님··· 진짜 잘생기긴 했던데? 그치, 레이한?”

홍수빈의 표정이 몽롱해지는 것이 어째 좀···

하지만, 레이한은 이미 홍수빈의 어깨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홍수빈은 그런 그녀를 보고 ‘쳇’하더니 말했다.

“엘프 왕자님도 ‘대왕’쥐를 겪어봐야 하는 건데···”

응? 왜 그런 못된 심보를 부리는 거냐?


다행스럽게도 그럴 일은 없는 것이, 모건이 그동안 우리 일행과 아이벨, 그리고 마을 아낙네들을 지휘해서 펜드래건 성의 본채 내부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돈해 놓았다.

손님방들도 말끔해졌고, 부실했던 침대 등의 기본적인 가구들도 올리비아와 대장장이 늙은 마난을 시켜서 그럴듯하게 새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지금은 오성 호텔급··· 은 못돼도 쉽게 욕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나저나, 이제 그 ‘고리아스’의 ‘타바른’ 왕자와 그 일행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나는 이도현을 재촉했다.

“자, 이제 네 차례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 좀 해 봐라. 저 엘프들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어, 그래요.”


이도현은 자신의 앞에 놓인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유이하고 저는···”

“유이? 유이가 누구에용?”

시작하자마자 홍수빈의 태클이 들어갔다.


하지만, 금세 생각이 났던지 스스로 대답했다.

“아, 그때 그 중국 여자애 말이죠?”

“중국이 아니고 일본 앤데?”

응? 다들 살짝 어리벙벙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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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프 24.09.07 16 1 12쪽
37 재회 24.09.06 14 1 12쪽
36 트롤들 24.09.05 13 1 13쪽
35 추적 24.09.04 14 1 12쪽
34 귀환 24.09.03 12 1 11쪽
33 습격 24.09.02 13 1 12쪽
32 24.09.01 11 1 12쪽
31 키아란 24.08.31 13 1 12쪽
30 올리비아 24.08.30 10 1 12쪽
29 바이킹 24.08.29 9 1 14쪽
28 행상 24.08.28 14 1 12쪽
27 에릭슨 24.08.27 12 1 12쪽
26 막간극 - 온천에 간 기사, 인어를 만나다 24.08.26 14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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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계시 24.08.25 16 1 12쪽
23 캐리어 24.08.24 18 1 12쪽
22 호수의 여왕 24.08.24 15 1 10쪽
21 멀린 24.08.23 23 1 12쪽
20 만찬 24.08.23 40 1 12쪽
19 브리간티아 24.08.22 36 1 12쪽
18 발키리 24.08.22 44 1 13쪽
17 각개격파 24.08.21 2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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