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 공짜였을 리가 없지
텍사스 대학 – 오스틴은 텍사스 A&M과 함께 [“Big-12의 규격 외 팀.”]으로 꼽히고 있다.
이들이 작년 기록한 총수입 3억 8,760만 달러는 12개의 공립 학교가 모인 Big Sky 컨퍼런스를 포함한 다른 여덟 개의 공립 학교 컨퍼런스의 개별 총수입보다도 많다.
하지만,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 NCAA Division 1 대학의 진짜 수입은 기부금에서 나온다.
바로 오늘, 텍사스 대학의 총장 그렉 펜베스(Greg Fenves)가 이야기하려는 것도 이런 부분이다.
현재, 텍사스 대학은 중대한 기로 앞에 서 있다.
수억 달러를 결정지을 정말 중요한 갈림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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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2월 18일
#-1. 미국, 텍사스 오스틴
#-2. 텍사스 대학 – 오스틴
#-3. 총장실
“마이클!”
“그렉. 오랜만이네요. 작년 파티 때였던가요?”
“로저의 파티였죠.”
“하하. 기억합니다.”
그렉 펜베스가 마이클로 불린 이를 반갑게 총장실 안으로 안내한다.
이 남자의 이름은 마이클 델(Michael Dell).
IT 종합기업인 Dell Inc.의 설립자이자.
Dell Tech.의 의장 겸 CEO다.
동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불과 19세밖에 안 되는 나이에 20만 달러의 순이익을 내면서 대학을 중퇴했지만, 한때 몸담았던 텍사스 - 오스틴을 위해 많은 기부금을 내고 있다.
이유는 텍사스 롱혼 풋볼팀을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텍사스 대학의 풋볼 팀은 Dell Inc.가 제공한 첨단 과학을 훈련에 접목한 일로도 유명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지난해 MLB의 은퇴한 스타, 로저 클레멘스가 주최한 파티에서 만났다.
로저 클레멘스 또한.
텍사스 - 오스틴의 졸업생이다.
“바쁘셨을 텐데,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하. 이맘때면 매년 있는 일이죠.”
“···.”
“그래서? 계획이 뭐죠?”
바로 본론으로 들어선 마이클 델은 그렉 펜베스가 밝히는 풋볼팀의 비전을 듣길 원했다.
그에 따라.
기부금액이 바뀔 것이다.
늘 그랬듯이.
“알고는 계시겠지만, 올해 저희는···.”
“5-Star 셋을 데려왔죠.”
“···.”
“솔직히, 그보다 많을 줄 알았습니다.”
마이클 델은 텍사스 롱혼이 7월이 되기 전에 3명의 5-Star를 리쿠르팅한 것은 좋았지만, 더 추가로 뛰어난 선수를 데려오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에 그렉 펜베스는 송구해 했다.
현재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태도에서.
누가 갑(甲)이고 을(乙)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사회적으로도 마이클 델이 더 위다.
나아가, 마이클 델은 팀의 감독을 지적했다.
“톰 허먼의 지도력이 아쉽습니다.”
“그는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올해 성적이 괜찮긴 하지만, 이런 리쿠르팅으론 내년에 다시 중위권에 머물 겁니다. 매년 가장 많은 돈을 Big 12에서 벌어들이는데, 이 정도는 너무하지 않습니까?”
“··· 하지만, 우리에겐 명백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진땀을 흘리는 중인 그렉 펜베스가 괜찮다면 따로 브리핑할 사람을 불러도 되냐고 했다.
마이클 델이 누구인지 묻자.
“톰 허먼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무려 텍사스 대학의 총장이 진땀을 흘릴 정도로, 오늘의 이 자리는 매우 중요했다.
매년 NCAA D1의 대학은 각자가 속한 컨퍼런스로부터 중계권료를 포함한 분배금을 받고, 티켓 및 상품 판매 등으로 한 번 더 수입을 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졸업생들의 기부금이다. 가끔가다가 순수한 선의로 들어오는 돈도 있었지만 그런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졸업생들은 오직 단 하나의 명제가 채워졌을 때만 그들의 지갑을 열었다.
풋볼.
풋볼팀의 성공 말이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까지 맥 브라운(Mack Brown) 아래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텍사스의 기부금은 매년 수억 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그동안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있었음에도, 2014년과 2015년 부진했던 텍사스 대학의 기부금은 2000년대 중반까지 받았던 금액보다 적었다.
급기야 작년 톰 허먼의 체재에서 큰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올해 텍사스 대학으로 들어온 기부금은 겨우(?) 1억 36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한데 만약 성공을 약속할 수 있는 재능이 온다면?
기부금은 단숨에 열 배 이상 뛰어오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다.
과거의 기록을 바탕삼아.
텍사스 - 오스틴을 졸업한 유능한 재원들이 대학을 위해 기꺼이 전문적으로 분석해 내어놓은 수치다.
물론 그 비용은 무상이었다.
이것을 설명코자, 그렉 펜베스는 마이클 델이 달갑지 않아 하는 톰 허먼을 총장실로 불렀다.
딸깍.
문이 열리고, 곧.
톰 허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곤 공손하게 마이클 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톰 허먼입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올해 잘 해주시더군요.”
“하하. 더 나아져야죠.”
본심을 감춘 두 남자의 짧은 대화가 오가고.
톰 허먼은 곧 준비된 자리에 섰다.
총장실 내부가 천천히 어두워진다.
“우리에겐 2년에 걸친 리루크팅 계획이 있습니다.”
“2년이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톰 허먼이 고개를 끄덕이자.
함께 따라온 허브 핸드(Herb Hand)가 영상을 틀었다.
화면 속, 한 풋볼 선수의 모습이 비쳤다.
“바로 이 친구입니다.”
“··· 드웨인 모이 스톤.”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요. 지금 미국에서 이 친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톰 브래디나 르브론 제임스급은 아니어도, 마이크 트라웃이나 클레이튼 커쇼보다는 확실히 유명할 겁니다. 캘리포니아를 빼면 말이죠.”
마이클 델의 말에.
톰 허먼은 놀라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준비한 것도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드웨인 모이 스톤의 명성은 어지간한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를 가볍게 능가했다.
메이저리그가 현재 젊은 층에서 인기가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온 모이는 본토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증거가 바로.
유니폼의 판매 숫자였다.
2017년 한해 카후쿠 고등학교의 드웨인 모이 스톤 저지는 고교와 대학 그리고 NFL 풋볼을 통틀어 27번째로 많이 팔려나간 유니폼이었다.
이미 NCAA D1 풋볼팀 팬들 사이에선, 본인이 응원하는 팀 유니폼에 모이의 이름과 14번을 찍고 다니는 게 유행이 됐다.
“혹시 모르실까봐 준비한 내용이었습니다.”
“저 친구를 데려오려는 겁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게··· 가능은 하고요? 알기론 저 친구의 리쿠르팅 조건이 꽤 까다롭다던데요.”
“어렵지만, 해봐야죠.”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한 톰 허먼.
그는 다시 허브 핸드를 바라봤다.
이윽고 화면이 바뀌었다.
“여기에 있는 이름들은 내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친구들입니다. 매년 그랬듯, 좋은 자원들이 많습니다. 베일러 쿱. 브록 출신이고, 내년 최고의 타이트 엔드입니다.”
베일러 쿱(Baylor Kupp).
다닐 롸이트(Darnell Wright).
개럿 윌슨(Garrett Wilson).
케년 그린(Kenyon Green).
공격팀에서 뛸 수 있는 탑 프로스펙터들.
이들의 이름을 열거한 톰 허먼은 이들 중 최소 셋 이상을 데려온 뒤, 2020년에 다시 리쿠르팅 할 선수들과 함께 어떤 세대를 만들 거라고 했다.
“The King`s Era.”
모이(Moi)가 하와이어로 ‘왕’이라는 것에 착안.
톰 허먼은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이 세대의 목표는 당연히 내셔널 챔피언십 우승이고, 최소한 매년 2패 이하의 성적으로 Big-12 최고의 팀이 되는 게 기본이었다.
물론 그것은 사실 실패나 다름 없다.
무조건, 내셔널 챔피언이 되어야 했다.
약 25분 동안 이어진 브리핑이 끝나고.
톰 허먼이 다시 공손히 인사를 하곤 총장실을 떠났다.
그렇게 다시 남겨진 된 두 사람.
그중 마이클 델이 먼저 말했다.
“그래서? 얼마나 필요하죠?”
대번에 밝아지는 그렉 펜베스의 얼굴.
텍사스는 오늘.
조건부로 최소 2억 달러를 약속받았다.
***
#. 2017년 12월 19일
#-1. 미국, 조지아 애선스
#-2. 조지아 대학교
#-3. 총장실
텍사스 대학 – 오스틴이 뒤늦게 RFM에 뛰어든 이튿날, 조지아 대학의 총장실에서도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대학의 장래가 밝군요.”
“하하. 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조지아의 총장 제러 모어헤드(Jere Morehead)는 대학을 잘 이끄는 것으로 평가가 높다.
NCAA D1 대학 총장이 해야 하는 일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풋볼팀 운영을 매우 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역시, 조지아는 고교 최대어 트레버 로렌스를 데려간 클렘슨보다 [“리쿠르팅을 잘했다.”]고 평가받았다.
여러 우려가 있긴 해도 트레버 로렌스와 함께 최고 쿼터백으로 평가받은 저스틴 필즈를 데려왔고, 여섯 명의 5-Star와 10명의 4-Star를 추가했다.
특히 자머리 샐여(Jamaree Salyer).
자미르 화이트(Jamir White).
케이드 메이스(Cade Mays).
트레이 힐(Trey Hill).
제임스 쿡(James Cook).
공격팀에 추가된 선수 중, 이 다섯 명을 데려온 것이 가장 좋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유는 단 하나.
DFM.
드웨인 모이 스톤을 생각했을 때.
가장 최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만 3,600만 달러의 기부금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몇이나 남았지?”
“6명이요.”
“휴우- 그거 아나?”
“?”
“우리 같은 대학은 십시일반으로 모아야 한다는 거.”
“하하. 차라도 한 잔 가져다드릴까요?”
“그래 주게나. 부탁하지.”
조지아 출신 중엔 성공한 배우나 미디어 관계자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큰돈을 가져다줄 재벌 쪽은 조금 약했다.
그래서 늘 작은(?) 기부금을 모아야만 했다.
하지만.
모어헤드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삐리리-
- 총장님?
“왜 그러나?”
- 댄 아모스 씨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이런, 그 양반도 참. 연결하게.”
Aflac.
1955년에 설립된 조지아 기반의 보험 회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Aflac은 근무 중인 직원만 11,000여 명에 달하며, 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오리는 미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리고 이곳의 최고 경영자인 댄 아모스(Dan Amos)는 조지아 출신 중에서 가장 부유하고 또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보유 자산은 최소 2억 8천만 달러 정도로 알려졌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댄! 오늘은 어쩐 일입니까?”
반갑게 통화를 시작한 모어헤드와는 달리.
반대에선 다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 조지아가 가장 앞서나가지 않는다고 했네.
“뭐라고요?”
- 내가 따로 확인해 봤는데, 드웨인 모이 스톤의 리쿠르팅에서 조지아가 가장 앞서나가지 않는다고. Damn it, 제러. 그 아이를 데려오지 않으면, 기부금이고 뭐고 없는 줄 알게.
딸깍.
“···.”
일방적으로 말하고.
일방적으로 화내고 끊었다.
하지만, 딱히 뭐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일에서는 언제나 돈을 내는 쪽이 절대였고, 조지아는 결과로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세워야 했다.
6,740만 달러.
1억 1,170만 달러.
전자는 작년 조지아가 8승 5패로 시즌을 끝낸 후 2017 시즌을 앞두고 벌어들인 기부금이고, 후자는 올해 SEC에서 우승한 상태에서 약속받은 내년 기부금이다.
만약 내년 1월 Big 12 우승팀인 오클라호마를 꺾고 결승에 올라 내셔널 챔피언이 된다면, 최소 2배에서 최대 3배의 기부금을 기대해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졸업생들로부터 약속받은 기부금은 드웨인 모이 스톤을 리쿠르팅 했을 때 별도로 받을 돈이었다.
물론.
드웨인 모이 스톤이 팀을 성공으로 이끌 거라는 확신은 1%도 할 수 없다.
전미 최고의 고등학생이었던 신입생이 불과 몇 개월 만에 전미 최고의 쓰레기 풋볼 선수라고 손가락질받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풋볼에 미친 사람들에겐.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졸업한 대학의 풋볼팀이 스타를 품었다는 것.
그걸로 나아질 거란 희망을 품는다는 것.
본인들에게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데도, 수많은 성공한 이들은 풋볼이란 값비싼 취미에 기꺼이 천문학적인 돈을 지불했다.
괜히 풋볼팀의 성공이 대학의 성공인 게 아니다.
정말로 풋볼팀의 성공은 대학의 성공이다.
“후우- 반드시 그 아이를 데려와야 해.”
NCAA 풋볼 리쿠르팅의 민낯.
이는 항상 스포츠 그 자체보단.
늘 자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 2017년 12월 23일
#-1. 하와이 -> 댈러스 편 비행기 안
#-2. 태평양 상공
내가 처음 어떤 제안을 했을 때.
부모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또 멜 고모도.
[“멜 선생님의 말을 듣는 게 어떠니?”]
[“What?”]
[“크흠. 아, 아무것도 아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존 모스 코치님은 잠시 저 뒤로 치워두겠다.
아무튼.
All-American Bowl에 참가가 결정되면서, 나는 하와이에서 몸을 만드는 것보다는 텍사스의 유명한 트레이너를 찾아 수업을 듣는 게 더 나을 거란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홀로 텍사스에 가겠다고 했다.
당연히, 부모님은 안된다고 했다.
아직 16살밖에 되지 않은 하와이섬 소년을 본토에 홀로 내보낸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꼭 가고 싶었다.
그렇게 설득을 하던 때.
[“아!”]
[“응?”]
내게 매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난 그 즉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결국.
[“하···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겠니?”]
[“제발, 제발, 제발, 제발요. 네?”]
[“여보?”]
[“모이? 몇 가지만 약속하렴.”]
[“네! 그럴게요!”]
부모님을 두 손 두 발 들게 만들어.
댈러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됐다.
하와이에서 댈러스까진 7시간 30분.
비행기 표는 146달러였다.
비행기삯은 그동안 모아놓은 돈에서 나갔고, 본래는 트레이닝 비용도 내가 내려고 했으나 거기까진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꼭 갚아드려야지.
당연한 부분이다.
“실례지만···.”
“응?”
“혹시 운동하니?”
“오- 네. 풋볼이요.”
“어쩐지. 몸이 거의 내 두 배만 하더라니.”
“하하. 댈러스가 집이신 거예요?”
“응? 어떻게 알았지?”
그야.
누가 봐도 관광을 했던 사람 같으니까.
“이런. 티가 났나 보군.”
“하와이는 어떠셨어요?”
“환상적이었어. 왜 진즉에 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거 멋지네요. 진짜 좋은 동네거든요.”
풋볼을 한다는 건.
어디에서든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비행기 안에서도 나는 처음 만난 분으로부터 초콜릿 바와 바나나 그리고 음료를 받았고, 지나가던 분은 날 안다며 잠시 사라지더니 종이와 펜을 들고 오셨다.
그래서 난 사인을 해드렸다.
“와우. 유명한가 본데?”
“조금요. 하와이가 좁은 동네거든요.”
“조금은 무슨. 그거 아세요?”
“?”
“이 친구는 풋볼을 하기 전부터 난리가 났던 친구예요. 그리고 작년에 풋볼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2020 클래스 리쿠르팅 랭킹 No. 01이 되었고요. 사인 안 받으시면 후회할 겁니다.”
처음엔 호의로만 날 대해줬던 분이.
곤란해하며 얼굴을 긁적였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했다.
“사인해 드릴까요?”
“오- 그래 줄래?”
“얼마든지요.”
약간 자리가 소란스러워지면서 주변에서 날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러자 스튜어디스가 다가오더니 내게 자리를 이동할 것을 권유했다.
어라.
쫓겨나는 거야?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해드릴게요.”
“오.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해요.”
“···.”
안전을 위해서란 말에.
난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동안 즐겁게 대화를 나눴던 분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인 후, 나는 가방을 내려서 스튜어디스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누가 동영상을 찍는 것 같던데.
뭐, 상관있으려나?
전생에서는 자주 타봤던 일등석이지만.
이번 생에서는 또 처음이다.
“오- 쾌적해.”
“그리고 말인데···.”
“응?”
“나중에 저희한테도 사인 좀 해주실래요?”
“··· 하하. 네.”
어쩐지.
공짜였을 리가 없지.
그래도 업그레이드에 사인 몇 장이면 싸게 먹혔다.
자리를 이동한 후 다시 찾아온 평화.
일등석엔 사람이 몇 명 없다.
그래서 잠시 영화를 보거나 가져온 책을 읽을까 했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랩톱을 꺼냈다.
요즘에 나는 진학할 대학 목록을 정리하고 있다.
워낙 많다 보니 헷갈리지 않도록.
지금은 올해 리쿠르팅 결과를 반영하는 중이다.
그리고 현재 기록하는 것은 오펜시브 가드 쪽.
조지아랑.
텍사스 A&M이 좋은 재능을 데려갔네.
A&M이 은근 잘해냈다.
클렘슨은 정배로 간 거 같고.
분위기를 봐선 나랑은 빠이빠이다.
앨라배마는 무조건 올 것 같은데.
쓰-읍.
솔직히 닉 세이번은 잘 모르겠다.
다른 데가 잘해주면 참 좋은데 말이다.
“조금만 더 해 봐. 조금만 더.”
그리고.
현재 내 마음속 1번은.
“응?”
목록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본토의 땅 위를 날고 있었다.
창밖을 내려다보던 중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댈러스/포트워스 국제공항.
처음부터 알았지만.
건물 같은 건 전생이나 이번 생이나 전부 똑같다.
“저기, Mr. 스톤?”
“Yes Sir.”
반사적인 대답에 스튜어디스가 웃었고.
조금 쑥스러웠던 나는 내민 펜을 받아 들었다.
사인 몇 개.
그리고.
찰칵.
탑승객이 모두 내리고 난 뒤 기장 및 스튜어디스와 함께 사진을 찍은 후, 짐을 찾고 나서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러자.
“모—이!!”
그리 멀지 않은 곳.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였다.
“할머니!!”
댈러스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콜리빌(Colleyville)이라는 동네에서 살고 계신 은퇴한 작가.
그렇다.
우리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
부모님께 허락받을 때 내가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외할머니였다.
“오, 모이. 이게 얼마 만이니.”
“3년이요, 할머니. 죄송해요.”
“뭘. 배고프진 않고?”
“그 조막만 한 기내식으로 제가 배가 부를 거로 생각했던 것 있죠? 웃기지도 않는다니까요.”
“하하. 얼른 가자. 맛있는 걸 먹으러.”
Hello Big-D.
스포츠 쪽으로 라이벌리가 있는 팀의 팬들로부터 Big Dick(큰 거시기 혹은 엄청난 머저리)으로도 불리는 댈러스에서, 나는 당분간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 작가의말
리쿠르팅 얘기는 서서히 수면 아래로 잠시 내려갑니다.
참고로 본문에 내용은 과장은 없습니다.
만약 이게 현실이라면.
D1 최고 대학은
모이의 리쿠르팅 여부에 따라
적게는 수천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억 달러의 기부금이 오가는 상황입니다.
아무튼.
독자님들의 선호작, 추천, 댓글은 저에겐 큰 힘이 됩니다! ♥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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