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록(驅魔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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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빠마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8.20 00:18
최근연재일 :
2024.09.15 20:55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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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글자수 :
135,461

작성
24.08.31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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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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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암사동 미스터리(4)

DUMMY



한 여름의 저녁 7시의 시간.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사물을 구별하기에는 충분히 밝았다.



퉁, 퉁 소리를 내며 조심스레 녹슨 철제 계단을 한 계단씩 올랐다. 삐걱거리고 흔들리는 낡은 철제 구조물의 끝에 도달할 때쯤 곧 회색 콘크리트의 옥상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그 숨이 막히는 곳에 한 걸음 발을 내디디자, 아주 미약하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



평소였다면 구원을 비는 기도로 그 거슬리는 기운을 사라지게 했겠지만, 지금은 그 상황이 좀 달랐다.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 나는 성호를 그으며 한 발 더 다가갔다. 그 불길한 기운을 확인하기 위해서.



“주님 당신의 미천한 종이 주님께 아뢰오니,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 저를 빛으로 인도하시어···.”




뚜벅, 뚜벅 그 곳에 가까워 질수록 그 기운의 정체가 느껴졌다. 엊그제 검은 뱀에게서 느껴졌던, 그 사악한 기운과 같은 것이었다. 악한 기운도 곧 내 정체를 느끼고서 나를 향해 자신의 사악한 기운을 날카롭게 쏘아 보냈다.



‘쐐애액!’ 공기를 가르고 나를 향해 날아온 그 어둠의 기운은 내 눈앞에 이르러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의 촉수처럼 그것은 천천히 내 몸의 이곳저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부정한 것의 움직임을 그냥 보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나는 크게 호통치면 그 어둠의 기운으로 손에 들린 성수를 뿌렸다.



“주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명한다. 사악한 기운이여, 이 성수로 물러가라! 이 땅은 주님께서 보호하시는···.”



어둠의 촉수에 성수가 닿자 마치 뜨거운 불에 데인 것처럼 빠르게 멀어졌다. 그리고 눈에서 그 검은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 '푸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 십 마리의 까마귀들이 하늘 위로 날아 올랐다.



그리고 엊그제의 김 신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무 많은 숫자에 놀랐다는 그의 말.



검은 기운을 서로 나눠 품은 까마귀들.



그 부정한 것들은 도망가지 않고,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내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며 나를 감시했다. 마치 내 모든 움직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불길하게 울어대며.




나는 까마귀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른 단서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어차피, 저 것들은 얼마 전 보았던 검은 뱀과 같은 하수인에 불과하다.



주위가 전부 낮은 건물들 뿐이라, 위에서 내려보면 골목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100미터정도 되는 기다란 거리의 골목길, 그 길에 적게는 세명에서 많게는 여섯명까지 수 십개의 팀이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이방인인 내가 봐도 한숨이 나올 정도로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경찰들이 한 골목에 다섯명씩 배치되어 주민들에게 안심을 주고는 있었지만, 사실 골목에 있는 많은 사람을 통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그것 이외에 무엇인가 느껴지길 기대하며 주위를 살펴 보았지만, 특별한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건물 아래서 담배를 물고 이야기하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우연치 않게 귀에 들어왔다.



“야! 어제 선녀보살네가 뭘 보긴 진짜 본 거야? 쥐새끼 말고?”


“그렇다는 것 같던데? 오늘 유튜브 보니까 난리도 아니더라. 걔네도 뭐 대박 났지 영상 올린지 반나절인데 벌써 70만이 넘었던데?”



“아니,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찍은 거래? 아까부터 봐도. 쥐새끼 한 마리도 없고, 심지어 참새 새끼 하나도 안 날아다니는데 대체 뭐가 있다는 거냐? 아···. 돌겠네. 오늘도 밤샘이겠지?”



“나도 돌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까지 아무것도 안 나오면, 내일은 안 나올 거야. 두고 봐라.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진짜···. 하······.”



그들은 서로 신세 한탄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꽤나 지겨웠던 모양이다. 그렇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아래쪽에서 김 신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 신부님, 저희 아래층으로 내려갑니다!”





첫 번째 집의 세 가구의 심방이 20분도 안되는 시간에 끝이 났다. 이대로라면 우리가 계획한 삼일이라는 시간 안에 충분히 끝낼 수 있어 보였다.



부리나케 이 집 저 집을 옮겨다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까마귀들은 나를 따라다녔고, 김 신부는 무심결에 그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이 동네는 진짜 까마귀가 많네요···.”



김 신부의 한 마디 말에 우리를 안내해 주던 자매님의 시선이 하늘로 옮겨갔고, 곧 그녀는 알쏭달쏭한 표정이 되었다.



“뭐가 많아요···?”



나는 그 순간 김 신부의 팔뚝을 살짝 잡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지금 저 자매님의 반응으로 봤을 때,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이 확실했다. 그녀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하늘의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으니까.



“아! 좀 전에 저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어서 다음 집으로 가시죠.”


“그래요? 난 또 뭐라고······.”



이로써 한 가지 정보는 확실해졌다.



아까 건물 아래서 담배를 피던 사람들도, 지금 하늘을 확인해 본 자매님도, 까마귀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애초에 나와 김 신부를 관찰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오늘은 김 신부를 따라 왔다가 나까지 우연히 발견했다는 말이 더 맞겠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가까이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놈이라면, 이 마을에 우리가 발을 들인 지금의 상황이 놈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모양이었다. 놈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 또 지금은 어디에 어떻게 숨어 있는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놈은 숨어서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



그냥 관찰만 일까? 분명 그 의도는 좋은 것일 리 없다. 악령이나, 악마가 하는 짓은 언제 사람들을 고통과 공포 속에 몰아넣으며 혼란에 빠트리려는 것이 대부분이니까.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이틀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눈에 띄는 다른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사실상 오늘이 이곳을 편하게 살펴볼 수 있는 마지막인 상황.



“강 신부님, 이걸 뭐라고 말씀 드려야 할지···. 그냥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좀 전에 올라 온 영상이거든요?”


김 신부가 당황스러워 하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건넸다.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재생되는 영상에는 사제복을 입은 나와 김 신부, 그리고 암사동 성당의 신부님들의 모습이 차례로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면에는 선동마을의 골목을 음침하게 표현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곳을 돌아다니는 우리의 모습이 번갈아 비쳤다.



“암사동에 신부가?”로 시작한 영상의 자막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갔다. “왜 하필 지금?”, “사제들이 알고 있는 진실은?”. “정말 악령이 존재하는 건가?” 같은 문구의 자막이 빠르게 지나가며 시청자로 하여금 긴장을 놓치지 않게 만들어 졌으져, 마지막에 가서는 기계음으로 녹음 된 목소리의 나레이션이 이어졌다.



“이들이 과연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요. 사제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무엇이며, 그들이 알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요.”



화면의 마지막은 옥상에 올라간 내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30초짜리 짧은 영상은 마치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이틀 동안 그곳에 있는 거의 모든 집들을 들락날락했으니, 아닌 척 해도 이야깃 거리만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 그대로 좋은 먹이나 다름 없었다.



영상에는 여러 추측성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진짜 악령이 있다는 둥, 사제들이 무언가를 꾸민다는 둥. 그러나, 언제나 진실 된 말을 하는 사람은 있는 법. 자신을 선동마을에 사는 주민이라고 밝힌 사람은 신부들이 주민을 위해 집집 마다 방문기도를 해주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상황은 모르는 일.




“오늘은 좀 귀찮아 질 수도 있겠어요? 그죠?”



김 신부의 말처럼 지난 이틀은 생각보다 수월했지만, 아마도 오늘은 우리를 바라보는 눈들이 더 많은 만큼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동마을에 입구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봤고, 그 눈빛은 아무런 관심도 없던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물어보고 싶어하는 눈빛.



이곳에 있는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좋은 요리재료에 불과했다. 편집이야 어차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하기 나름일 테고, 결국 그들의 목적은 진실이 아니라 우리 머리 위에 떠오르는 조회수일 테니까.




“젊은 총각 좀 비켜! 우리 빨리 기도해주러 가야 하니까!!”



그러나 그들은 쉽사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앞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자매님은 우리를 지키는 든든한 방패이자, 길을 이끄는 인도자였다.



“오늘 안에 다 못하면, 젊은 처자가 책임질 거야? 이 분들은 우리 동네를 위해서 기도해주신다고 하는데, 그것까지 막으려고 그래? 아휴···. 대체 다들 왜 그래, 내가 우리 애 같아서 하는 말인데···.”




길을 막아오는 자들은 자매님과의 몇 마디 대화에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를 옮겼고, 그녀 덕에 다행스럽게도 심방 내내 우리를 향해 접근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해가 저물었을 때, 마침내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마침내 남은 집은 세 곳.



주황 가로등 불빛에 시야를 의지해 건물의 옥상에 올라도 새롭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다만, 골목길 이곳저곳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는 첫날과는 눈에 띄게 변해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쪼그려 앉아 자신들의 일상을 즐기기에 바빴다. 근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한 곳에서 보낸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일상의 루틴이 되어버린 셈. 주변 환경에 대한 경계심은 무뎌졌고, 그들에게 새로운 자극도 없었다. 막연히 무언가 나타나길 기대할 뿐.




반면에 나는 여전히 나를 반기는 까마귀들을 마주했다. 언제부터 인가 녀석들은 건물 높이와 비슷한 전봇대에서 날아 올랐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나를 조롱했다.




내 목표는 바람소리를 내며 사람을 놀라게 하고, 발자국 소리와 비슷한 소음을 내는 악령과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까마귀들, 그리고 엊그제 만난 검은 뱀까지, 그 사이의 연관성을 찾으려는 것이었지만. 명확하게 얻어낸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나를 희롱하는 까마귀들을 보며 깊은 생각을 이어나갈 때. 뜻하지 않게 골목길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꽤 왜소한 체격의 그는 야구모자를 쓴 채,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 동화 되어 있었다. 마치 주변과 하나 된 듯한 그의 모습은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면 그저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가 언제부터 그곳에 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느긋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저 사람은 왜 서 있는 것일까?




그가 그곳에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있는 이들과는 전혀 다르게 홀로 그곳에 선 이유. 동료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촬영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진짜 단순하게 어둠이 좋아서 혹은, 담에 등을 기대고 있는 저 상태가 편해서 그곳에 기대어 서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혹시 그게 아니라면···?




약간의 의심이 드는 그 순간, 그가 고개를 슬며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있는 곳을 쳐다 보더니 나를 발견 하고는 잽싸게 다시 고개를 쑥였다.



뭐지? 왜? 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번엔 내가 천천히 까마귀들을 보는 척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내 눈동자는 그를 향해 있었다. 나에겐 그의 다음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나를 바라 볼 것인지 아니면, 계속하던 일을 할 것인지. 만약에 그가 나를 올려다 본다면···.



잠시 후, 그는 몸을 조금 더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행동은 적당히 느리고 적당히 자연스러웠지만, 오히려 내 눈에는 그 점이 더 의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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