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록(驅魔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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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빠마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8.20 00:18
최근연재일 :
2024.09.15 20:55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471
추천수 :
26
글자수 :
135,461

작성
24.09.06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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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단으로(3)

DUMMY



주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는 조언에도 그의 눈빛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스스로 다독일 시간이나 계기가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김 신부는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실제로 악령이나 악마의 형상을 보고 듣는, 소위 말해 오감으로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서로 공개하고 이야기 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퇴마나 구마를 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들은 시각과 청각 등 오감으로 그 실체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감각에 의존 한다.




나만 해도 김 신부와 비슷했다. 처음 내 능력이 개화 된 날.



그때의 충격과 혼란스러움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가 본 어둠은 불결한 기운을 내뿜었고, 나를 비웃듯이 그 모습을 바꾸었다. 내 모습으로···. 그는 나였고, 내가 그였다. 마치 거울을 마주한 것처럼.



내 말을 따라하고, 내 행동을 따라했다. 심지어 주님에게 기도를 드리는 모습까지 똑같았다.





아주 조용한 병실.



최 신부님은 부마자에게서 악령을 쫓기 위한 구마의식을 진행중이었고, 보조사제인 나는 그 앞에 앉아 의식의 절차를 기록하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아무 반응도 없던 남성의 입에서 고통의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최 신부님은 의식의 박차를 가해 남성의 몸에 기생하고 있는 악령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던 한 순간,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던 젊은 남성의 가슴 어림에서 젊은 여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아! 나도 좀 살자! 이 더러운 빛의 자식들아···. 도대체 왜 나를 괴롭히는 거야? 나는 얌전히 수컷의 정기만 얻어 먹고 나가려고 했는데···. 왜! 왜! 괴롭히는 거냐고! 진짜! 싫어!!”



1인실 병실에 그것도 남자 셋이 있는 이 장소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올 리 만무했다. 게다가 이 남성은 이미 일주일 넘게 혼수 상태. 멀쩡한 인간의 음성이 나올 수 없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누워있는 남성의 가슴 어림, 그 곳에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검은 구체가 올려져 있었다.


그것은 사악한 기운을 내뿜으며 주변의 모든 빛과 생기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것은 천천히 움직였고, 내가 그것을 완전히 인지했을 때, 다시 사람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너, 내가 보이는구나?”




어둠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다니······.


너무 놀라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곧 어둠은 형태를 바꿨다. 단발머리를 한 소녀의 얼굴로.


“어때? 이러면 이야기 할 맛이나? 남자들은 이렇게 어린 여자를 좋아하더라고···. 맞지?”



하지만, 그것의 뜻대로 맞장구 쳐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를 이어나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혹은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뭐야! 너!! 왜? 왜? 나를 모른척 해?”



눈을 질끈 감았고, 손을 귀로 막았다.



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놈의 목은 마치 고무인형처럼 길게 늘어났고, 기괴하게 비틀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징그러운 움직임···. 거기에 더해 놈의 얼굴이 소녀의 것에서 내 모습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아! 이런 모습은 어때? 난 너야······.”



애니메이션 속 요괴처럼 길게 늘어난 목 위에 내 얼굴이 있었다. 놈은 내 얼굴과 목소리로 평소에는 있을 수 없는, 상상조차 못한 말들을 쏟아 냈다.


사탄을 찬양하는 말이 나오는가 하며, 차마 사제로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그 목소리는 귀가 아닌 내 머릿속을 직접 파고 들었다.



들어보지도 못한 말들, 알지도 못하는 말들이 내 정신을 갉아 먹었고,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억겁 같이 느껴지는 시간 속에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병실을 뛰쳐나왔다.



그것이 내가 어둠을 처음 목격한 날의 일이었다.




그때는 어둠을 보는 내 능력이 악령의 저주로 시작 된 것인 줄 알았다. 다른 누구에게도 없는, 내게만 존재하는 특별한 능력이었으니까. 세상의 어둠의 기운이 보인다고 하는 것을 누가 믿으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그것은 오히려 내게 축복 같은 능력이었다.



아주 깊은 곳,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곳에 숨어 있는 놈까지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




“강 신부님!?”



잠시 옛 기억에 빠져 있던 사이 김 신부는 정신을 차린 듯 보였다. 그의 겁먹었던 눈은 어느 새 평범한 그의 눈으로 돌아와 있었고, 떨리던 그의 목소리도 돌아온 상태였다.



“그래, 이제 마음에 준비는 끝났어?”



무언가 깊은 생각을 마친 그에게 내면의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신부님은 이것 말고도 다른 것들이 더 보이시죠?”



문득 물어오는 그의 물음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뭐, 그렇다고 해 둬. 자네보다 이 일에는 더 노하우가 많잖아. 그런데, 그게 하고 싶은 말이었어?”



“아··· 아닙니다. 앞으로는 지금처럼 짐이 되지 않겠습니다.”



나는 조용히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미카엘, 다 괜찮아. 전부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거야.”






잠시 쉬는 사이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갔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아직 주변이 보이는 지금 서둘러 제단을 찾아 움직여야 했다.



“김 신부, 이제부터 내가 앞장 설게.”



그의 앞으로 나선 내 손에는 소금과 망치가 들려 있었고, 뒤에 선 김 신부도 소금과, 성수를 들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잔뜩 긴장한 그를 보며 나는 슬며시 입을 열었다.



“김 신부. 이 소금이 어떤 소금인 줄 알아?”



생각지도 못한 내 질문에 긴장한 김 신부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 찼고, 그의 입에선 뻔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축복 받은 소금으로 감히 가치를 매길 수 없지 않을까요? 주님의 힘이 깃든······.”



“그래! 김 신부 말이 다 맞아. 그런데 말이야. 진짜 중요한 건. 이 소금은 아무데서도 못 구한다. 진짜라니까! 김 신부가, 내가 만들 수도 있는데, 그것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물건이야.”



“···네!?”



여전히 당황스러워 하는 그에게 나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소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14년에 교황님이 방한 하셨을 때, 특별히 축성해 주신 물건이야. 지금 이 자루 안에 들은 거 전부···. 그게 뭘 뜻하는 지 알아?”



“자···잘 모르겠는데요.”




“이 소금이 놈들에게는 완전히 핵무기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긴장하지 말라고. 자네는 양손에 핵무기를 들었으니까.”



짧은 탄식을 내뱉은 그의 굳은 표정은 서서히 풀렸고, 그의 얼굴에 약간의 안도감이 스쳤다. 드디어 그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잘 들어 내가 생각한 작전은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무조건, 강 신부님 뒤를 따르겠습니다.”






까마귀 악령이 사라진 방향으로 한 걸음 발을 내딛자, 아주 가까이에 어둠의 영역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회색 페인트를 바닥에 뿌려 놓은 것처럼 온통 회색빛으로 물든 바닥이 스물스물 자신의 기운을 퍼뜨렸다.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자 나는 걱정스런 마음에 뒤에 있는 김 신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김 신부, 무조건 나만 보고 따라와! 아무것도 듣지도 말고 들려도 대꾸 하지마. 보여도 무시하고···.”



나는 다시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안 보인다면, 무조건 앞을 향해 뛰어. 거기에 내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당부의 말을 더 하려던 나는 그의 결의에 찬 눈빛을 보고 말을 줄였다. 그는 이마 정신적으로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내 작전은 별 게 없었다. 놈에게 시간을 주지 않는 것.



“빨리 간다. 이제부터 진짜 놈의 땅이야. 잘 따라와!”



나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힘껏 앞을 향해 달려나갔다. 제단과의 거리는 거의 일직선. 최대한 빠르게, 놈이 반응하기도 전에 도착해야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발걸음이 빨라졌다.



목표는 제단에 있는 사악한 기운이 담긴 항아리. 그것을 빨리 부술수록 우리에게 유리했다.



비탈진 산길을 뛰어오르기를 잠시,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거센 맞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불어오는 이유는 단 하나.



“···인···간···. 너는······함부로··· 나의······.”



검은 하늘을 울리는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놈에게 붙잡혀 있을 수 없었다. 놈이 무슨 말을 하던, 어떤 반응을 보이던, 중요한 것은 항아리였다.



“이름도 없는 놈이 어디! 누구의 앞을 막는 것이냐! 저리 꺼지란 말이다!”



나는 놈을 호되게 꾸짖으며 손에 들고 있던 소금 한 줌을 앞으로 뿌렸다. 그 순간 ‘끼이이이엑!’ 하는 고통에 가득 찬 비명 소리가 숲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내 눈에는 가장 큰 나무, 그 위에 앉아 있던 어둠의 형상이 함께 뒤틀리는 것을 보았다.



“김 신부, 뛰어!!”



예상치 못한 기습을 성공시킨 나는 바람이 잦아드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시 앞으로 빠르게 뛰어 나갔다. 놈이 정신을 못 차리는 지금, 최대한 거리를 더 좁혀야 했다.



“강 신부님··· 헉, 다음에는··· 헉, 제가 하겠습니다!”



다행히 김 신부의 거친 숨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알겠어! 잘 따라와!!”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불결한 기운이 우리를 향해 빠르게 쏘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왼쪽이다! 던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 신부가 소금을 뿌렸고, 우리를 향해 쏘아지던 불결한 기운은 급격히 그 기세가 약해졌다. 그러나, 속도를 더 올려야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그 기운이 느껴졌다.



“김 신부! 그냥 뛰어!”



이번에는 무언가를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정신없이 비탈 위를 향해 달릴 뿐.



“강 신부님! 헉,헉··· 소금 준비··· 됐습니다!!”



다시 앞에서 불길한 기운이 눈 앞에 나타난 찰라, 김 신부가 타이밍 좋게 무기를 준비했다.



“잠깐 멈춰!”



김 신부도 숨을 고르며 눈 앞을 주시했다.



“지금 던질까요?”



그도 뭐가 느껴졌는지 손을 들어 올렸으나, 나는 거리를 생각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어둠의 장막, 그것을 한 번에 찢고 나가야했다. 김 신부는 긴장한 표정으로 앞을 노려봤고, 나는 숨을 죽인 채 거리가 좁혀지길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어둠의 장막이 우리를 덮치려는 순간 나는 앞을 향해 달려나가며 소리쳤다.



“지금!!”




우리는 전력으로 뛰었다. 이제는 조금도 속도를 늦출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지금 우리 뒤를 쫓아오는 어둠의 장막에 그대로 잡혀버리고 만다.



“무조건 앞만 뚫어!”



앞을 가로막는 어둠에 소금과 성수를 뿌리며 전력으로 내달린 결과.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펌프질 하는 지금.



그토록 찾았던 제단을 눈 앞에 둘 수 있었다.



거대한 웅덩이처럼 파 놓은 땅과 그 주위를 시멘트 벽돌과 모래주머니로 쌓아 만든 참호. 그 안에 복잡하게 그려진 문양과 고대어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제단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제단 보다 그 옆에 놓인 커다란 항아리. 그곳에 눈이 돌아갔다.



“신부님, 이게······. 이게 다 뭔가요···?”



김 신부도, 나도, 눈 앞에 처음 보는 광경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항아리 안으로 이름 모를 곤충들이 떼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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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보자(1) 24.09.08 15 1 12쪽
18 제단으로(4) 24.09.07 10 1 12쪽
» 제단으로(3) 24.09.06 1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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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암사동 미스터리(3) 24.08.30 2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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